# 137
“……이렇게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오드리히가 그랬듯이 언젠가 차원의 기둥이든, 던전이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여기서 이렇게 최악의 형태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런 만남도 괜찮지 않나? 타락한 영웅의 동료. 그리고 그 동료들을 물리치기 위해 나타난 새로운 영웅들.”
과장스럽게 이야기한 에들렌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꽤나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약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당신 꽤나 악취미로군.”
방금 전 말이 조롱이었다면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에들렌의 말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지금 이 만남을 그저 유쾌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에들렌 님…….”
메이룬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어린 시절, 자신들의 우상이자 영웅으로 불려왔던 남자.
그가 도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하이룬 님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그리고 왜 절친한 동료였던 그녀를 이렇게 끔찍한 꼴로 만든 것인가. 메이룬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짓이라…… 글쎄. 무슨 짓으로 보이나?”
메이룬의 질문에 에들렌은 입가를 올리며 되물었다. 단순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본 것뿐인데도 메이룬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죽어 가는 하이룬의 생명을 강제로 연명시키며 신성력을 쥐어짜내는 것 같나? 아니, 아니지. 하이룬을 제압해 강제로 신성력을 뽑아내는 쪽이 더 비극적이겠군.”
“그…… 그만…….”
“내게 대답을 구하지 않았나. 자 골라봐라. 이 둘 중에 정답이 있다. 과연 하이룬은 어느 쪽에…….”
파칵!!
에들렌의 뒤편에 있던 천장에 거대한 칼자국이 새겨졌다.
잠시 몸을 이동시켰던 에들렌은 시선을 돌려 흑월을 바라보았다.
“기본 예절이 없는 녀석이로군.”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에들렌의 비아냥에 흑월은 검을 고쳐 잡으며 하현과 메이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에들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성력의 근원을 없애고, 너를 죽여 버리는 것이지.”
카앙!!
에들렌의 방벽에 불꽃이 튀었다. 공격이 거듭될수록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고, 에들렌의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메이룬 씨,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계시죠?”
“뭐…… 아니, 그건…….”
메이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이미 흑월이 말해주었다.
신성력의 근원을 없앤다.
즉 저 관속에 들어 있는 하이룬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룬 님을 죽여야 한다니…… 그런 건…….”
“그러면 나서지 말아주세요.”
하현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 말에 메이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은인을 죽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막지는 말아주세요. 지금 여기에는 수만 명의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자신을 직접 키워줬다는 사람을 죽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방해하지 않도록 확실히 못 박아 두는 것이다. 저 은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현의 시선을 받은 메이룬을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콰앙!!
그 말로 충분하다.
바닥을 박찬 하현은 방의 중앙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자세를 하고 중앙에 따로 있는 하이룬.
추측이지만 그녀가 아마 이 방의 핵심이리라.
“멈춰라!!”
하현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에델른이 다급하게 외치며 손을 뻗으려 했다.
카앙!
하지만 흑월의 매서운 공격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하현은 순식간에 관의 앞까지 도달했다.
‘만약 살아 있다면 고통 없이.’
일격으로 머리를 터뜨려 보내 주리라. 하현은 굳게 다짐하며 꽉 움켜쥔 주먹을 앞을 향해 내질렀다.
터엉!!
그리고 메마른 소리와 함께 하현의 주먹이 멈췄다.
“뭐…….”
그 감촉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관의 강도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힘이 하현의 일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이건……신성력?’
관 안에만 있다고 생각했던 신성력이 하이룬이 있는 관은 보호한 것이다.
그에 하현은 대력난탄까지 사용해가며 관을 두들겼다.
터엉! 터엉!!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퍼부어도 신성력에는 약간의 흔들림이 있을 뿐, 부서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에 하현이 이를 악물고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
“큭…… 크하하…… 크하하하핫!!”
하현을 바라본 에들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까지 금이 가던 방벽이 완벽하게 되돌아왔고, 에들렌은 여유롭게 흑월의 검을 막아냈다.
“그래…… 역시 기대한 대로야. 이걸로 곧장 판을 뒤엎을 필요는 없어졌군.”
쿠웅!!
방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바닥 아래 숨겨져 있던 마법진이 빛을 발했고, 하이룬이 잠들어있는 관 안에서 막대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마법진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무슨 짓을 꾸민 거냐!!”
주변을 둘러보고 하현은 알 수 있었다. 에들렌은 자신들이 탑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을 피할 수 없는 함정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다.
“단지 새로운 영웅의 신고식일 뿐이다. 아. 참고로.”
강렬해지는 빛 안에서 에들렌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전이를 거부하면 전쟁터에 있을 네 동료들이 모두 죽을 테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다.”
***
페젤론의 군대와 협회 간의 전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갔다.
수적으로는 페젤론의 군대들이 압도적이었지만, 드래곤들이 가세하면서 밀리지 않게 되었다.
“드래곤들을 죽여라!! 놈들만 죽이면 적은 오합지졸이다!”
라티온의 외침에 따라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하늘을 뒤덮는 화살비와 마법 앞에 드래곤들은 마법으로 응수했고, 거대한 폭발이 하늘 위를 뒤덮었다.
큰 상처라고는 보이지 않는 드래곤들의 모습에 라티온이 이를 갈았다.
“다음 제물들은!”
“앞의 시련으로 제물들이 모두 죽어 더 이상 없습니다!”
“……빌어먹을.”
부관의 말에 라티온이 이를 갈았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준비했던 수십만 명의 제물.
그 제물을 한 번에 모두 사용했다니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필승의 카드라고 좋을 대로 지껄이더니 결국 이 꼴이군.”
두 개의 차원이 융합되면서 생겨난 기적이자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힘.
그 시련을 이제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병사들을 자결시킬까요?”
“하지 마라. 아무리 놈들이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그렇게 병사들을 펑펑 쓰면 결국 미래가 없어.”
지금의 군대는 훗날 틈새를 타고 올 마왕군과 싸우기 위해 양성한 정예군들이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을 그냥 희생시켜서는 안 되었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지 마, 이 망할 놈들아!!」
콰아앙!!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거대한 진동. 라티온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데이카른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강화병사들과 맞서 싸우는 기계용의 모습이 보였다.
“지독한 놈이군…….”
앞에 보였던 압도적인 위용에 비하면 전전긍긍하며 싸우는 그 모습은 다소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덤비고 있는 강화병사들이 하나같이 A급에서 S급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리라.
“부관!”
“예!”
“네가 병사들을 지휘해라. 나는 선두로 나가 놈들을 처 죽이겠다. 저 괴물이 묶여 있는 동안 병력을 몰살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장군이라는 칭호에 라티온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한 왕국의 왕인 자신이 고작 장군이라니. 하지만 그 여제라는 엘프의 실력을 떠올리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왕국은 이 차원을 손에 넣은 뒤 얼마든지 다시 세워도 될 것이다.’
애초에 그런 약조였었다.
라티온은 그것을 상기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망토를 끌러 내리자 최소한의 방어구만 걸치고 있는 그의 신체가 드러났다.
‘저 빨간 드래곤도 합류하면 골치 아프겠군. 이 사이에 놈들을 완전히 붕괴시킨다.’
브라스마티를 묶어 두고 있는 두 장군의 모습을 본 라티온은 주먹을 풀었다.
전신의 육체가 활성화되고, 눈앞의 광경이 환하게 개인 것처럼 밝아졌다.
쿠드드득-
두 발은 지그시 땅을 짓누르고, 라티온의 몸에 막대한 투기가 둘러졌다.
그리고 두 발을 뗀 순간.
퍼엉!!
눈앞에 있던 병사들의 몸이 피 안개를 흩뿌리며 사라졌다.
“크하하하하!!”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피 냄새.
닿은 순간 흔적도 없이 으깨지는 연약한 몸뚱아리들.
왕이 되었음에도 라티온이 늘 최전선에 서는 이유는 오로지 그 두 가지를 위해서였다.
콰아앙!!
라티온이 수십 명의 토벌자를 학살하며 달려갈 때, 그의 앞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라티온은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냐.”
“늙은이.”
라티온의 물음에 강철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어깨를 풀었다. 그 괴팍한 대답에 라티온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아니.”
우드득.
주먹을 움켜쥔 강철이 눈을 번뜩였다.
“죽으란 거다.”
콰아앙!!!
둘의 주먹이 맞부딪치고 주변으로 강력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주먹과 맞대고 있는 강철의 모습에 라티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놈…… 인간이냐?”
“눈은 삔 거냐?”
콰아앙!!
다시 한 번 충돌하는 주먹.
방금 전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던 라티온의 입가가 씰룩였다.
단순히 학살에만 끓어올랐던 두 눈에 호승심이 가득 피어올랐다.
“으하핫!! 인간치고는 꽤 단단하군!”
“네놈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나 보군.”
강철의 이죽거림에 라티온은 씩 웃으며 맞닿은 주먹을 꾹 밀었다.
둘의 발이 땅 아래로 파묻히고, 두 주먹이 부들거렸다.
싸움보다는 힘겨루기에 가까운 무식한 공방.
하지만 라티온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티거라는 녀석을 알고 있나? 녀석은…….”
“산만한 덩치를 지닌 호랑이겠지.”
강철의 심드렁한 대답에 라티온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별거 아니다.”
맞붙었던 두 사람의 주먹이 떨어지고, 강철은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휘둘렀다.
그 모습에 라티온도 이전과 같이 온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나도 잡아봤거든.”
콰아아앙!!!
“……?!”
맞부딪친 주먹에 라티온의 두 눈이 커졌다. 분명히 이전과 다를 것 없어 보였던 일격.
하지만 근육부터 뼈 전체가 시큰한 이 힘은 이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물렁하구만.”
“뭐라고…….”
강철의 비아냥에 라티온의 두 눈이 일그러졌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육체에 대한 모독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문 라티온이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두르려고 할 때.
콰아앙!!
두 사람이 있던 자리 위로 거대한 화염구가 떨어져 내렸다. 예지를 통해 감지했던 강철은 곧장 피해냈고, 라티온은 그대로 화염구에 휩싸였다.
“어떤 개자식이 이쪽으로 쏜 거냐!!”
파앙!!
약간 그을린 채로 마법 밖으로 벗어난 라티온이 핏발 선 눈으로 마법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하늘을 오가며 서로 마법을 날리는 지호와 마도왕의 모습이 보였다.
“마도왕!!!”
마도왕의 손에 맺힌 화염을 본 라티온이 이를 갈며 외쳤다. 그에 마도왕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법도 형편없는데 조준 실력도 형편없는 모양이군.”
비아냥거리는 지호의 말과 동시에 수십 갈래의 전격이 마도왕을 향해 쏟아졌다.
그에 마도왕의 손이 휘둘러지자 번개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흩어졌다.
“세계의 힘을 통해 겉핥기로 마법을 배운 햇병아리 따위가 감히 지금 내 앞에서 마법을 논하느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오직 마법만을 연구해 왔다.
그런데 많아 봐야 40살도 안 되는 것 같은 젊은 녀석이 자신에게 지적이라니.
마도왕에게는 그 말 자체가 모독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도왕의 일갈에 지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법에 나이를 빗대며 일갈하는 얼간이는 또 처음 보는군. 네가 몇 년을 배웠건, 내가 몇 년을 배웠건 결국 수준은 비슷하니 네놈이 멍청한 것 아닌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마도왕의 양손으로 막대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마찬가지로 마나를 끌어 모어든 지호가 옅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꼭 할 말이 없는 놈들이 자주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하지.”
“이, 이 노오옴!!”
콰아앙!!
준비했던 마법이 충돌하고, 주변으로 그 여파가 폭발처럼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후웅!
그녀가 얼굴이 있던 자리로 괴물로 변한 병사의 주먹이 스쳐 지나갔다. 어림잡아도 A급 되어 보이는 막강한 수준.
“시시해.”
퍼엉!
하지만 SS급으로 성장한 지현에게는 감흥도 나지 않는 상대였다.
병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만, 역시 흥이 안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지현의 두 손은 전력을 다해 움직이며 강화병사들을 도륙했다.
‘회장과 드래곤들이 저 4명을 오래 붙잡아봐야 10분도 안 돼. 빨리 끝내야 한다.’
강철과 지호, 아퀼로와 브라스마티가 SS급 중에서도 강한 녀석들을 붙잡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수는 많았다.
이 강화병사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합류하지 않으면 회장과 드래곤들이 위험해지리라.
쿠구궁!!
지현의 두 손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고, 그녀의 몸에 거대한 붉은색 기운이 일렁였다.
일대까지 퍼져 나가려 하던 기운은 조금씩 압축되며 지현의 몸에 얇은 막처럼 둘러졌다.
퉁!
바닥을 박차고, 그녀가 강화병사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고 예리한 강기의 칼날이 길게 맺혀 있었고, 병사들의 목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방금으로 4분의 1인가.’
오직 혈화광권만을 심화하며 배워나갔던 지현.
그녀는 이제 레벨뿐만 아니라 강기계열 스킬에서 최강이라 해도 좋을 숙련도를 얻게 된 것이다.
“얼른 끝내자고.”
이 상태는 그리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현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강화병사들은 단말마도 내뱉지 못한 채 목이 떨어져나갔다.
전쟁은 한쪽이 불리해 보였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어느 한쪽이든 약간의 차이로 결판이 나게 되리라.
쩌저적!!
누구의 개입도 없었다면.
“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기감에 민감한 마도왕과 지호, 니레이크와 아민을 비롯한 마법사들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양의 신성력.
그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이 전쟁터의 상공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었겠지만, 뒤이어 나타난 신성력의 구슬에 마법사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도대체…….”
방금 전 느껴졌던 막대한 양의 신성력. 그 힘이 저 거대한 구슬의 일부분밖에 되지 않는 아주 극소수의 양이라는 것이다.
퉁!
그 거대한 신성력의 구슬 안에서 네 사람이 튕겨지듯이 나왔다.
뭉쳐있는 세 사람은 흑월과 하현, 메이룬이었고 떨어진 자는 에들렌이었다.
모두가 그 신성력의 구슬과 그 안에서 나타난 네 명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만둬, 이 미친놈아!!!”
하현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에들렌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싫다.”
철컥!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성력의 구슬 안에 선이 그어지며 자물쇠의 형태를 갖춰갔고, 신성력이 사라져 가면서 잠금이 풀리듯 구슬이 좌우로 열렸다.
푸화아아아악!!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은 방금 전 신성력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막대한 양의 마기.
그 끔찍한 마기 속에 한 사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극한의 근육으로 무장된 갈색 몸과 최소한으로 묶여 있는 무장.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무심한 눈길에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검은 뿔.
“저건…….”
“마, 말도 안 돼…….”
본 적 없는 자는 본 것만으로 알아차린다. 직접 목격했던 자들은 본능적으로 떠올린 기억에 몸을 떤다.
그저 모습을 드러내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주는 존재감.
페젤론을 멸망시킨 최강자, 마왕의 강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