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36화 (136/158)

# 136

30.새로운 영웅

“여기는…….”

“대단하네요.”

경계의 안으로 들어선 흑월과 라젤린은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방금 전 보았던 풍경과 똑같았지만 명백하게 다른 모습.

하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올 수 없을 경계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모두 신기한 기분이었다.

“움직일게요.”

둘의 몸을 잡은 하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하고 군대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왔다. 거대한 성과 수십 개의 건물.

어지간한 도시 수준으로 구비되어있는 시설들에 하현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살펴보았다.

“이곳에서는 안 느껴지시죠?”

“네…… 여기서는 어떤 힘도 안 느껴져요.”

라젤린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계의 안에서 바깥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라젤린의 힘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방향을 잡으실 수는 있겠어요?”

“방금 전에 느꼈던 기운에 의하면…… 이쪽 방향이에요.”

곰곰이 고민하던 라젤린은 한쪽을 가리켰다.

건물들 중에 눈에 띈 건물은 총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천장이 열려져 있는 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못지않게 거대한 탑이었다.

라젤린이 가리킨 방향에는 그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었다.

“그럼…… 일단 저 성의 근처로 가보겠습니다.”

하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열려져 있는 성의 천장위로 나타났다.

고개를 내려 성의 안을 바라보니 한 엘프가 혼자 어느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의 수장 같군.”

엘프를 바라본 흑월이 중얼거렸다. 몸을 둘러싼 갑주부터 손에 들린 화살과 허리춤의 검은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자세에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기습으로 죽일까.”

“……아뇨,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아래를 내려다본 하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습을 하려면 좀 더 내려가서 저 엘프의 근처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하현은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목적은 신성력의 근원이니까요. 가능하면 그것부터 해결한 다음 생각하죠.”

“음…… 알았다.

하현은 엘프를 피해 성 곳곳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신성력의 근원이라고 할 만한 물건들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선들 말이에요. 아까부터 보이지 않나요?”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던 라젤린이 입을 열었다. 성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곳곳에 보이는 크고 작은 선.

평범한 배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라젤린은 미묘하게 그것들이 거슬렸다.

“흐음…… 그럼 이 선들을 따라 가보죠.”

하현은 선의 근원지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변하고, 이윽고 세 사람의 앞으로 성의 뒤편에 있던 탑이 보였다.

“여기가 저 선들의 중심지인가…….”

자세히 보니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건물 이곳저곳에도 굵직한 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전력을 공급해 주는 발전기처럼.

“일단 저기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상하게 생각한 하현은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옮겼고.

텅!

“윽?”

보이지 않는 벽에 그대로 코를 들이박았다.

“뭐지……?”

하현은 코를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볼 때도, 지금도 뭔가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벽이 있군.”

하지만 흑월이 손을 뻗자 탑의 앞에서 멈췄다. 위아래로 쓸어내려도 일정 이상 못 나아가는 것을 보니 정말로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했다.

“이건 또 뭐야…….”

이 지역을 감싸는 방벽은 그래도 눈에 보이기는 했었다. 그런데 탑을 감싸는 방벽은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하현의 침입을 그대로 막아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나타나는 순간 인기척을 바로 느낄 겁니다.”

하현은 고개를 돌려 뒤쪽의 성을 바라봤다. 적의 수장으로 보였던 엘프.

아마도 그녀가 이전에 자신을 저격하고 방금 전 에뤼쿠스를 공격했던 자가 분명했다.

방금 전에 느낀 위압감과 앞의 행적을 보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 정도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난다면 분명 인기척을 잡아내리라.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라.”

하현의 말에 흑월은 자신의 검은 망토를 흔들어 보였다.

여태까지 써왔던 망토와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달라 보였다.

눈앞에 보이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번에 얻은 상자로 만든 아이템이다. 은신 스킬이 있으니 나가는 즉시 사용하면 될 거다.”

“음. 그럼 일단 최대한 적당히 떨어진 장소로 가죠.”

하현은 흑월과 라젤린을 데리고 성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를 옮겼다.

혹시나 해서 주변의 건물들을 확인하며 움직였지만 역시 벽이 쳐져 있는 곳은 탑밖에 없었다.

‘저 안에 뭔가 있긴 있다는 거군.’

내부에 있는 힘 때문이든, 아니면 외부적인 힘이든 경계를 막아내는 정도이니 분명 예사 물건이 아니리라.

“안쪽으로.”

하현과 라젤린은 흑월의 망토안쪽에 감싸지듯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경계의 바깥으로 나갔다.

“망각의 품.”

망토가 세 사람의 몸을 감싸며 일렁였고, 순식간에 그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바로 그때.

파칵!!

아주 간발의 차로 타드델린이 쏘아낸 화살이 하현 일행의 근처로 꽂혀 들어갔다.

아주 약간의 오차를 두고 박혀 들어간 화살에 하현 일행은 숨을 죽였다.

“……뭐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본 타드델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뭔가 밟히는 기분에 그 즉시 화살을 쏘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 인가.”

찝찝함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 신경 팔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타드델린은 다시 창문의 안으로 들어갔고, 하현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대로 움직이죠.”

세 사람은 그대로 탑을 향해 다가갔다.

경계를 가로막는 벽과 다르게 현실의 탑은 별다른 방범장치도 없었다.

그 덕에 세 사람은 수월하게 탑의 안으로 들어섰다.

“뭔가…… 생각보다 삭막하네요.”

탑을 올려다본 라젤린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탑의 내부는 층층으로 나눠진 것이 아닌 뻥 뚫린 구조였다. 벽면에는 바깥에서 보였던 선들이 촘촘하게 있었고, 위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이 크게 나있었다.

“올라가보죠.”

세 사람은 그대로 계단을 통해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살펴보며 걸음을 옮기던 라젤린은 벽면의 선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황금색 기운을 발견했다.

“이 선들을 통해 바깥쪽으로 신성력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근원은 이 위에 있단 거군요.”

하현은 탑의 위쪽을 바라봤다. 계단의 끝에 보이는 작은 문. 아마 저 안에 그 신성력의 근원이 있으리라.

세 사람은 계단을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선에서 피어오르는 신성력이 더욱 강해졌고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몸 주변을 감쌌다.

‘…… 조금 익숙한 기분이야.’

하현은 미묘한 표정으로 선에 손을 가져다 대봤다. 그에 반응하듯 신성력들이 손에 달라붙었다. 손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

‘착각인가?’

요 근래에 이레아를 사용하며 전투를 자주하다 보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현은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탑의 위를 향해 올라갔다.

“여기군.”

한참 동안 계단을 타고 올라와 드디어 문의 앞에 도착했다.

아무런 가공도 되어 있지 않은 투박한 철문. 그냥 미는 것으로 간단히 열릴 테지만, 하현은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열게요.”

하현은 철문을 조심히 밀어냈다.

매끄럽게 문이 열리며 위쪽으로 향하는 작의 계단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그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고 드디어 탑의 최상층에 있는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세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건…….”

하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방 안에는 황금색 액체가 담겨진 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화사한 금발을 흩뜨리며 눈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있었다.

문제는 그런 여인이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벽면에 나란히 서른 명이 넘도록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도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복제인가?”

“그렇다고밖에 상상이 안 가는데요.”

흑월의 말에 하현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경우를 복제 말고는 설명할 수 있을까.

한참 살펴보던 하현은 중앙에 다른 관들과 조금 다른 것을 발견했다.

관과 연결된 선들이 모두 모이는 거대한 관.

그 안의 여인은 다른 관의 여인들과 달랐다.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는, 마치 기도를 하는 모양새.

“저건…….”

“아.”

여태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라젤린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하현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은 찢어질 것처럼 커져 있었고, 몸은 시시나무처럼 떨렸다.

“라젤린 씨?”

“아……아아…….”

양손으로 얼굴을 움켜쥔 라젤린은 두 눈을 부릅뜨며 손 사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환각이길 바라며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 내렸지만 따끔한 통증과 함께 흘러내리는 피가 현실임을 말해줬다.

그 순간 라젤린의 이성이 끊어졌다.

“안 돼!!!!”

“라젤린 씨!”

괴성을 내지른 라젤린이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것을 알아차린 하현이 간신히 그녀를 붙잡았다.

망토의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인기척이 나타난다.

거기다 지금 라젤린의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이대로 나가면 큰 일이 터질 것을 직감한 하현은 이성을 잃은 라젤린을 꽉 안았다.

“라젤린 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진정하셔야 해요. 섣부르게 판단하면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안 돼!! 이건……이건 안 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하현이 설득하기 위해 계속해서 속삭였지만 라젤린의 두 눈은 계속해서 눈앞의 여인을 향해 못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이 다시금 라젤린을 불렀다.

“메이룬 씨!”

“…….!”

하현의 외침에 라젤린, 메이룬의 몸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메이룬의 얼굴은 엉망진창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두 눈은 아직도 놀랐는지 동그랗게 떠있었고,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메이룬 씨는 이 사람을 알고 있는 거야.’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 아니 소중했던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끔직한 상태에 쳐해 있다.

그렇기에 메이룬은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메이룬 씨, 지금 무작정 달려가도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조금만 더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흑……흐윽…….”

메이룬은 아무런 말없이 하현의 품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옷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오열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그 모습에 하현은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후.

메이룬은 조용히 얼굴을 떼어냈다. 얼굴을 엉망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이전과 다르게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메이룬 씨, 저 관 속에 들어있는 여자…… 아는 사람이죠?”

“……예.”

하현의 말에 메이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고른 메이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관속에 들어있는 분은 저를 교단에 거둬주셨던 전대 성녀님이세요.”

“성녀요?”

“예, 성함은…… 하이룬. 용사 오드리히의 동료였던 성녀 하이룬 님이에요.”

메이룬의 말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내 그 시선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로 향했다.

‘이 펜던트에 담긴 신성력의 주인이라고?’

그제야 하현은 밑에서 느껴진 신성력이 왜 익숙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이 의아해졌다. 성녀이자 용사의 동료였던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것인가.

“설마 이들한테 납치당해서 강제로 복제된 건…….”

“아니, 다르다.”

하현의 추측에 흑월은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속에 들어있는 저 여인들…… 비슷해 보이지만 한 명 한 명 모두 다른 인물이다.”

“그게 무슨…….”

하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관들을 바라봤다. 은은한 황금빛을 띄는 액체.

그 안에 있는 하이룬은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한 채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깐만.’

하지만 계속해서 살펴보자 아주 조금 이질감이 느껴졌다.

외모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외모가 아닌, 분위기가 달랐다.

단순한 느낌에 지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저 관 속에 들어있는 하이룬들은 복제 같은 것이 아니다. 흑월의 말대로 모두 다른 인물인 것이다.

“어쩔까요?”

“깨워보죠.”

하현의 말에 메이룬이 즉답했다.

“하이룬 님은 이런 일에 동조하실 분이 아니에요. 분명 저들이 강제로 하이룬 님을 이곳에 넣은 뒤 신성력을 착취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메이룬의 말에 하현은 하이룬의 모습을 바라봤다.

‘강제로 착취당했다…….’

당장 상황만 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보다 다른 것이 먼저 떠올랐다.

“메이룬 씨, 과거 외부세계로 도망친 페젤론 출신의 S급 토벌자 3명, 기억하세요?”

“네? 아…… 네, 기억하죠.”

“분명 검사 한 명, 그리고 더 이상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와 신성력 사용자라고 했죠.”

하현의 말에 메이룬의 얼굴이 굳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우리를 노렸던 엘프, 그리고 여태까지 모습을 보였던 어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신성력을 공급하고 있는 하이룬.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까?”

하현은 이것을 그저 기록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오히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하이룬과 동시대에 살았었던 메이룬이리라.

“그건……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용사 오드리히와…… 세 명의 동료.”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져 갔다. 어둠이 펜던트를 보고 놀란 것과 오드리히를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니레이크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도.

“그래, 정답이다.”

파캉!!

“……?!”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망토의 장막이 깨져 나갔다. 당황하는 세 사람의 앞으로 어둠이 나타났다.

“네가 가장 먼저 맞출 거라고 생각했다, 최하현.”

입가를 일그러뜨린 어둠의 둘러져있던 장막이 조금씩 걷어져 갔다.

여태까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다, 당신은…….”

메이룬은 어둠의 얼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봤다.

하현과 흑월은 몇 번 보았던 그 얼굴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봤다.

오드리히의 동료이자 니레이크의 스승이었던 남자.

대마법사 에들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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