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33화 (133/158)

# 133

총 10마리의 차원의 기둥은 대륙 전체에 골고루 소환되었고, 하현은 에뤼쿠스로 그 위치를 확인하던 도중 페젤론의 군대가 머무르는 방벽 쪽에 한 마리가 소환됐음을 깨달았다.

‘저 녀석은 포기한다.’

하현은 그 차원의 기둥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후방을 공격 당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련의 완수는 10마리를 잡기만 하면 됐기에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그 한 마리는 페젤론의 군대에게 넘기고 하현은 방벽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차원의 기둥들을 사냥해 가기 시작했다.

싸움은 매번 격렬했고,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네 번째 차원의 기둥을 때려잡은 뒤, 하현이 강철과 흑월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상대가 꽤나 까다로운 녀석이다 보니 난전으로 번져 상처가 컸었다.

“아까 잘려 나간 다리 쪽이 조금 이질감이 있군.”

“기술의 여파 때문인지 몸이 좀 쑤신다.”

강철과 흑월의 덤덤한 대답에 하현은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직 싸울 수 있단 소리죠?”

“물론.”

“당연하다.”

하현이야 불간섭 덕분에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넉살을 보였다.

“아까는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반죽음 정도네!”

사지가 날아가고 내장이 날아가는 큰 상처를 입었다가 레벨 업이나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나면 지칠 법도 했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전투를 속행했다.

하루에 최소 2마리, 많으면 3마리까지 차원의 기둥들을 죽인다.

페젤론의 역사서에 남을 강자들이 바로 차원의 기둥이었지만, 하현과 그 일행에게 걸리면 그 위상이 허무해졌다.

그렇게 5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하현의 앞으로 지옥과도 같았던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차원의 기둥 10마리를 5일 만에 모두 퇴치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보상이 50% 추가됩니다.

-차원의 틈을 안정화시키는 데 큰 이바지를 했습니다. 칭호 ‘세계의 구세주’를 획득하셨습니다.

-시련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SS급 상자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차원의 기둥들을 잡을 때에 비하면 떠오르는 알림창의 글자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얻은 보상들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안됐다.

“와…… 잠깐. 나 레벨이 20 넘게 올랐는데?”

“저, 저도 30 정도 오른 것 같은데요.”

하현과 같이 시련을 받았던 일행들 대부분이 최소 20레벨 이상 한꺼번에 올랐다.

다들 최소 400대 이상이라는 레벨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칭호도…… 어마어마하군요.”

세계의 구세주.

단순한 이름이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효과는 무지막지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스탯이 40% 상승, 조건부로는 무려 70%까지 상승했다.

“차원의 기둥 10마리 잡은 값은 하는구만. 아, 정확히는 9마리인가.”

“살면서 이리 빠르게 레벨을 올린 적은 처음이군.”

지현과 지호는 혀를 내두르며 자신의 스탯을 분배했다.

다른 일행들도 각자 자신의 스탯을 찍었고, 하현은 자신에게만 떠오른 알림창을 바라봤다.

-시련이 완수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이걸로 준비는 모두 끝인가.’

재료의 준비도, 레벨 업도, 스킬까지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현은 알림창을 지우고 상태창을 펼쳤다.

[하현]

레벨 : 543 칭호 : 세계의 구세주

생명력 : 5,530/5,530 마나 : 5,520/5,520

힘 : 3,268 민첩 : 556

체력 : 553 지력 : 552

공격력 : 578 방어력 : ???

추가 스탯 : 0

‘진짜 어마어마하게 올랐구나.’

지난 사냥을 통해 60레벨이 넘게 올랐다.

고된 만큼 높은 보상이 있겠지 하고 저지른 일이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충분한 걸까.’

차원의 기둥들과 싸우면서 강해져 간다는 것은 확실히 체감이 왔었다.

하지만 과연 그 군대들을 상대로도 싸울 수 있을 것인가. 그 점은 아직 미지수 같았다.

“이제 돌아가죠.”

텔레포트로 본진으로 되돌아오자 하현 일행은 곧장 회장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사이 전쟁을 준비하는 토벌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시간이 다됐네요.”

“우리도 돌아왔으니 빠르면 내일, 늦어도 이틀 뒤겠지.”

주변을 살펴본 강철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이제 그 정도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 말이 조금은 무겁게 다가왔다.

“얼마나 죽을까요.”

하현은 토벌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현을 흘끔 바라본 강철은 토벌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거야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지, 하지만.”

협회의 토벌자들을 살펴본 강철이 작게 중얼거렸다.

“최소한 반은 죽을지도 모르겠군.”

“…….”

강철의 말에 하현은 말없이 협회의 토벌자들을 바라봤다.

저들 중 반은 반드시 죽는다. 운이 안 좋다면 전멸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압도적으로 활약을 해야 해.’

이번 전쟁에서 피해를 줄이는 것은 자신이 얼마만큼 활약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시금 다짐을 하며 하현은 회의실의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시련의 완수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군요.”

일행의 모습을 살펴본 회장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모습. 그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시련을 완수하면서 얻은 혜택이리라.

“시련은 모두 끝났습니다. 준비도 얼추 다됐고요.”

“……그렇군요.”

하현의 말에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전쟁의 시간이 왔다. 그 사실만으로 분위기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

“협회의 준비는 얼마만큼 돼 있습니까?”

“저희도 거의 준비가 끝난 상태입니다. 다만…… 적의 병력은 이전에 차원의 기둥 때 파악한 이후로 전무합니다.”

방벽의 근처에 소환되었던 차원의 기둥.

하현은 그때 협회에게 싸움을 염탐하라고 말했고, 그 결과 대략적이나마 적의 세력을 알 수 있게 되었다.

A급 토벌자들은 수백 명이었고 S급으로 추정되는 이들만 20명, SS급 수준인 자들은 4명이나 보였다.

그 전투에서 A급 수십 명과 S급 6명을 잃었지만,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때 펼쳤던 마법이 무엇인지 도저히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으음…….”

회장의 말에 하현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차원의 기둥을 쓰러뜨린 페젤론의 군대는 조금 이상한 행동을 취했었다.

차원의 기둥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빈사상태에 이르게 한 뒤 어떤 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없애버린 것이다.

‘뭔가 술수를 부린 게 분명한데.’

분명 예사 마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이제는 시간마저 촉박했다. 하현은 찝찝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일단은…… 방법이 없군요.”

“예, 전장에서 최대한 커버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적이 알 수 없는 기술을 숨기고 있다. 하현은 그에 불안해했지만, 회장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하지만…….”

“저희들이 지닌 힘도, 하현 씨가 지닌 힘도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한 수 정도는 가볍게 압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현을 위로하기 위한 입에 발린 소리 같았지만, 회장은 진심이었다.

방금 전 하현 일행을 보면서 불리하게 보였던 전쟁의 양상에서 가능성이 보인 것이다.

‘하현 씨가 가진 힘과 드래곤들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하현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직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현 씨가 가진 힘은 생각하시는 것만큼 약한 힘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

회장의 말에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싸워 보지는 않았지만, 하현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이제 걱정은 무의미한 단계다.

그저 내일을 위해 준비해 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승리한다. 하현에게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오늘은 다들 돌아가서 쉬십시오. 제가 다른 토벌자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회장은 다른 토벌자들에게로 갔고, 하현과 일행은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 각자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 했지만, 여덟 명은 왠지 모를 분위기에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뭐…… 이렇게 쳐다본다고 딱히 할 말은 없네. 어차피 내일 또 마주볼 테고.”

한참 조용히 바라보던 지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했다. 그 말에 지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보기 싫어도 언제나 보이는 얼굴이었으니. 굳이 더 이상 말을 나누고 싶진 않군.”

“이 새끼…….”

약간 퉁명스러운 말에 지현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서 넘어갔다.

빙빙 돌려서라도 죽지 말라고 말해준 것이니 굳이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으리라.

“음…… 일이 끝나면 다시 회식 한 번 하는 거 어떨까요?”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던 아민이 입을 열었다. 그에 민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은 생각이군요.”

“흐음. 뭐 은퇴한 늙은이도 끼워준다면 가도록하지.”

“……한 번 가보겠다.”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한 긴장감을 풀기 위해 일행은 아무렇지 않게 담소를 나눴다.

하현은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이내 한 사람이 소외되었음을 깨달았다.

“……라젤린 씨?”

“네?”

하현의 부름에 라젤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시길래요.”

“아…… 하하. 그랬네요.”

하현의 말에 라젤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왜 말을 안했는지 이유는 하현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최후에 던전들과 함께 사라질 존재였기 때문이다.

조금 우울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하현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다음에 같이 가죠. 회식.”

“예?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번 전투가 끝나고 잠시 쉬는 느낌으로 열어도 되는 거구요. 회식이 한 번만 있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하현의 제안에 라젤린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하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라젤린 씨도, 회장님도 그리고 모두를 평생 기억하고 싶습니다. 부디 피하지 말아주세요.”

“…….”

하현의 말에 라젤린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현 씨는 참 사람이 좋으시네요.”

“아니 뭐…….”

“회식, 꼭 갈게요. 회장님도 함께요.”

그 말을 끝으로 라젤린은 자연스럽게 다른 일행들의 사이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본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일행에게 다가갔다.

***

지역 전체를 가로막은 거대한 검은 방벽. 그 앞으로 협회의 병력과 드래곤들이 나열해 있었다.

곧 전쟁이 시작될 텐데 그 어디에도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 모습을 안 보이는 거지...”

[저 방벽 때문이겠지.]

의아해하는 하현의 말에 브라스마티가 대답했다.

[저 방벽, 예사 방벽이 아니다. 어떤 마법 처리가 되어 있어.]

브라스마티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방벽 전체에 쳐져 있는 검은 아우라는 단순히 돌의 색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고도의 마법 같은 것이 둘러져 있는 것이다.

“복잡한 마법이야?”

[아마도. 아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저 방벽을 믿고 있어서겠지.]

당장 S급 토벌자 한 명만 있어도 성벽이 의미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여유로운 것은 저 방벽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있다는 뜻이리라.

[저 방벽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하는 데도 큰 피해가 있을 거야.]

“그 정도란 말이지…….”

하현은 아퀼로에게 잠깐 상담을 요청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막바지로 마무리하고 있는 아퀼로를 방해해봐야 좋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라면…….”

곰곰이 고민하던 하현은 이내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전쟁이든 싸움이든 가장 중요한 이른바 선빵이다.

얼마나 치명적이고 강력한 일격을 먹여주느냐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마침 적이 믿고 있는 방벽이라니 후려치기에는 딱 좋으리라.

“잠시 선빵 치고 올게요.”

[어, 어?]

“하현 씨?”

콰앙!!

당황하는 회장과 브라스마티를 뒤로하고 하현은 곧장 방벽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하현의 몸이 방벽에 가까워져 가고, 방벽을 둘러싼 어둠이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파앗!

빛이 번쩍했다고 생각한 순간, 하현의 몸을 노리고 검은색 창 수십 개가 날아왔다.

빽빽할 정도로 노리고 들어온 창. 그에 하현은 전신의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나왔다.’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공격 속에서 예지를 통한 길이 보였다. 하현은 곧장 몸을 비틀었고, 깔끔하게 창들을 피해냈다.

그 다음 저장고에 손을 쑤셔 넣어 한 아이템을 움켜쥐고, 달려 나가던 추진력을 이용해 아이템을 전방을 향해 내던졌다.

콰아아앙!!!

충격파로 주변의 땅이 갈라지고 빛살처럼 뻗어나간 아이템이 방벽에 꽂혀 들어갔다.

그리고 던지는 순간 외쳤던 시동어가 뒤늦게 울렸다.

“세계의 탄생.”

콰과과과곽!!!!

성벽에 박힌 세계수가 어둠과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커져 가기 시작했다.

하현은 아주 얼핏 성벽 뒤쪽에서 여유만만 한 표정을 짓던 적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짙은 미소를 지은 하현의 앞으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간이 갈라지고 성벽의 마나 따위는 가볍게 짓누를 거대한 존재감이 나타났다.

[맹세에 따라 소환자의 적을 섬멸시키겠다.]

세계수의 수호자, 에퀴루스의 두 손 안으로 거대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마나는 중력으로 뒤바뀌었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성벽 전체를 짓눌렀다.

콰아아아앙!!!

단 일격.

그 한 번으로 브라스마티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방벽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막대한 위력 앞에 펼쳐지는 전쟁터의 침묵.

그 앞에서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전쟁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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