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망할……인간……들…….]
쿠웅!!!
단말마와 함께 스칼렛의 거체가 땅위로 쓰러졌다. 화상으로 일그러지고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몸은 천천히 먼지로 변해 사라져 갔다.
-과부거미 스칼렛이 영원한 안식에 빠졌습니다.
-차원의 기둥이 소멸되어 차원의 틈이 안정화됩니다.
-숲의 사냥꾼을 일방적으로 죽였습니다. 칭호 ‘최강의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공헌도로 인해 과부거미 스칼렛의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스칼렛의 실낭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후우…….”
떠오르는 알림창을 본 하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칼렛이 둥지로 삼았던 숲은 이전의 모습이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 예상하지 않았던 광경에 하현은 어깨를 매만졌다.
‘조금은 쉬울 줄 알았는데…… 괜히 차원의 기둥이 아닌가.’
거미줄도 사용하지 못하고 내장에 화상으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스칼렛은 기존에 깔려져 있던 거미줄들을 활용해 하현과 대등하게 싸웠다.
특히 거미줄의 탄성을 이용해 총알처럼 날아오는 기술은 예지로 느꼈음에도 전혀 피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속도였다.
그에 하현은 브라스마티의 권능을 전력으로 사용해 거미줄들을 태우면서 겨우 스칼렛을 잡을 수 있었다.
‘거미줄이 멀쩡했으면 아마 이번에 걸린 시간보다 2배는 더 걸렸겠지.’
도중에 도망치려고 했던 것도 거미줄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잡혔지 아니었다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치열했던 전투를 다시금 곱씹은 하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얼른 가봐야겠어.’
이쪽이야 끝났지만 티거의 레이드는 어떻게 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늘로 날아오른 하현은 곧장 방어전환을 사용하고 티거가 있는 곳을 향했다.
후웅!
주변의 풍경이 변하고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티거의 토벌 예정지 위로 이동되었다.
‘끝났구나.’
티거의 발톱 자국으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고랑들이 주변의 땅에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정비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해도 그렇게 커보이진 않네.’
하현을 살짝 안도하며 경계의 밖으로 나와 스킬을 해제했다. 권능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한 하현은 곧장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왔나.”
하현이 온 것을 본 흑월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상처는 레벨 업 하면서 사라졌지만, 곳곳이 부서진 갑옷을 보면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예, 어디 크게 다치신 곳은 없으셨어요?”
“별로, 모두 스친 정도다.”
여러 가지 버프를 둘렀던 덕분에 흑월은 티거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도 제대로 맞은 적은 없었다. 다만 그 살짝 스친 정도로도 중상에 이르렀지만, 흑월에게는 그리 큰 상처가 아니었다.
“나보다는 저 녀석이 많이 다쳤지.”
“음?”
하현은 흑월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바닥에 앉아 오른팔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지현이 있었다. 그에 하현은 흑월에게 살짝 인사하고 지현에게 다가갔다.
“지현 씨.”
“아, 왔어?”
지현은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봤다. 많이 다쳤다고 하는 흑월의 말과 다르게 지현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팔을 매만지고 있었다.
“어디 다치셨다던데…….”
“아, 뭐. 레벨 업도 하고 해서 치료됐지. 근데 사알짝 기시감이 있긴 하네.”
“팔을 다치신 거예요?”
하현의 물음에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펑 하고 터졌지.”
“……예?”
지현의 별것 아니라는 말에 하현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지현은 피식 웃었다.
“흑월이 잠시 삐끗한 순간이 있어서. 그때 내가 한 3초 정도 정면에서 막아섰거든. 그때 왼팔이 반쯤 찢어지고 오른팔은 터졌어.”
이야기하면서 아까 전의 전투가 다시금 떠올랐다. 건물이나 다름없는 크기의 발, 거기에 실려 있는 무게와 힘은 산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지현은 흑월의 빈틈을 매우기 위해서 티거의 공격을 3초간, 수십 번이고 맞받아쳤다. 그 결과 한계 이상으로 힘을 낸 부작용과 티거의 공격에 양팔이 완전히 박살 난 것이다.
“이야…… 늘 싸우는 걸 지켜만 봤으니까. 차원의 기둥이라는 놈들이 이런 놈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지현의 모습에 하현은 조금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런 부상을 입으면서 치열하게 싸웠는데도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참 묘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늘 이런 녀석들이랑 혼자서 싸운 건가?”
“보통은 이런 타입이랑은 다르죠. 티거처럼 단단한 녀석들은 거의 없었어요. 거기다 저는 다치지를 않으니까.”
“뭐 어쨌든 그것도 네 힘이지. 오늘 다시 봤어.”
지현은 하현을 바라보며 씩 웃어보였다. 그 말에 하현도 미소를 지었다.
“저도 오늘 지현 씨를 다시 본 거 같은데요.”
“……나는 평소랑 같아, 인마. 이제 다른 사람들 보러가.”
손을 내저은 지현은 몸을 돌리고 자신의 오른팔을 주물렀다. 그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던 하현은 몸을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사상자는…… 없구나.’
출발할 때와 달라지지 않은 머릿수에 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없는 토벌 팀이라 많이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거의 완벽하게 차원의 기둥을 잡아낸 것이다.
‘이 정도면 다른 차원의 기둥들도 맡길 수 있겠어.’
이번의 전투로 레벨과 칭호, 아이템도 얻었으니 다음은 더 수월하리라.
“오셨으면 말을 하시지 왜 여기 서계십니까.”
하현이 한창 서 있을 때, 민철이 다가왔다. 고개를 돌린 하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흑월 씨랑 지현 씨랑 잠시 이야기 좀 한다고요.”
“그러셨군요. 다들 좀 붙어 앉아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흩어져 있는지…….”
민철은 주변을 살펴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현과 흑월뿐만 아니라 지호와 아민, 강철도 회장을 비롯한 다른 토벌자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되새김질하기 위해서임은 알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모이는 것도 좋지 않은가.
“하하하…… 아. 그것보다 이번에 좀 얻은 아이템은 있어요?”
“티거의 가죽이라는 재료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효과도 좋고 양도 많더군요.”
“양이 많다고요? 얼마나 됩니까?”
“차원의 기둥 토벌 팀 전체의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민철의 말에 하현의 눈이 커졌다. 보통 재료 아이템을 획득한다고 해도 그 양은 소량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괴물의 크기가 커질수록 많아지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도 어느 정도 선은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티거는 달랐다. 그 덩치가 워낙 무식하게 크다 보니 일정 부분만 나왔음에도 수십 명이 맞출 양이 나온 것이다.
“그건 진짜 잘 됐네요. 전력 보강도 확실하게 되겠네요.”
이걸로 차원의 기둥 토벌 팀의 장비를 맞추면 안전성이 한층 높아지리라. 이쪽의 상황을 모두 확인한 하현은 아퀼로에게 말을 걸었다.
‘아퀼로,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아. 너희들 다 끝났나보네?」
‘응. 피해 없이 전부 잘 해결됐어.’
「오…… 그건 잘됐네. 이쪽이야 뭐 문제없지. 하늘에 떠있는 드래곤들을 보고 덤빌 멍청한 괴물들이 그리 많진 않거든.」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괴물들은 드래곤들을 피해 갔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말에 하현은 조금 남아 있던 걱정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럼 합류할 필요는 없겠네?’
「응, 그냥 돌아가서 조금 쉬고 있어. 그 녀석들 멀쩡해 보여도 진이 빠져 있을 테니까.」
하현이야 이런 전투가 익숙한 데다 불간섭의 힘으로 안정화되었지만 다른 토벌자들은 달랐다. 본래 상처는 쉽게 치유되더라도 싸움의 여파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토벌자들의 모습을 살펴본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우선 본진으로 갈 테니까 문제 생기면 곧장 연락해.’
「그래, 돌아가면 너도 좀 쉬어.」
아퀼로와 대화를 마친 하현은 민철과 함께 회장에게로 갔다.
“던전 흡수 팀들도 딱히 합류할 필요는 없답니다. 돌아가서 쉬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피곤해 보였는데 다행이군요. 다들 모여 주십시오!”
회장의 부름에 흩어져 있던 동료들도 모두 한곳에 모였다. 그들의 발 아래로 텔레포트 마법진이 그려졌고 잠시 후 본진의 안으로 돌아왔다.
안전한 장소로 왔다는 사실에 몇몇 토벌자들은 완전히 진이 빠진 듯 몸이 살짝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회장은 손뼉을 쳐 이목을 모았다.
“던전 흡수 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휴식하면서 대기해 주십시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장의 말에 토벌자들은 각자 자신의 방을 향해 흩어졌다. 완전히 푹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잠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리라.
“하현.”
다른 이들과 같이 막 방으로 가려던 하현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세계수의 가지를 지고 있는 흑월이 서있었다.
“아까 주는 걸 깜빡했다. 오늘 잘 썼다.”
“아. 저도 깜빡했네요.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지팡이를 건네받으며 하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흑월은 주변을 살짝 살펴보더니 사람이 없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스칼렛 쪽은 어땠어?”
평소의 딱딱한 말투가 아닌 부드러운 말투. 하현은 그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럭저럭 할 만했어요. 처음에 기습을 잘해서 주력기를 봉인시키고 싸웠거든요. 차원의 기둥치고는 꽤 수월하게 잡은 것 같네요.”
“그렇구나.”
하현의 말에 흑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하현을 빤히 바라봤다.
“흠흠. 티거는 좀 많이 강했어.”
“예?”
갑작스러운 흑월의 말에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흑월은 짧게 헛기침하며 다시금 이야기했다.
“흠흠! 그러니까…… 티거가 매우 강했다는 뜻이야.”
“그…… 렇군요.”
“……티거가 매우 강했다고.”
거듭해서 강조하는 흑월의 모습에 하현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설마 흑월이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해서 바라보는 모습에 하현은 혹시나 싶어 입을 열었다.
“흑월 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름.”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흑월의 모습에 하현은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아. 흠흠…… 지영 씨 오늘 정말 대단하셨어요!”
“……완전 엎드려 절 받기군.”
하현의 말에 흑월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긴 했는지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빈말은 아니에요. 단지 그걸 말해달라는 건지 몰라서 그랬던 거죠.”
“흠흠…… 이번에는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쉬어.”
하현의 가슴을 툭 친 흑월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목을 매만졌다.
‘다음부터는 칭찬을 습관처럼 해야 하려나.’
어쩌면 자신이 칭찬에 너무 인색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하현은 권능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방금 전 흑월이 쉬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현은 곧장 에뤼쿠스가 있는 숲을 향해 날아갔다. 불간섭으로 결계를 무시하고 들어선 하현은 곧장 세계수의 앞으로 내려왔다.
[강력한 힘의 파동이 느껴지더군. 목적은 이뤘나?]
“예, 덕분에 수월하게 잡았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위치를 알려준 것뿐이니 도와줬다고 하기에는 미묘하지. 감사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네.]
사실 차원의 기둥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는 에뤼쿠스의 도움이 있었다. 직접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터라 에뤼쿠스가 상생의 힘으로 대신 찾아준 것이다.
[그것보다 꽤나 공격적으로 나가는 군. 어느 정도 구역을 확보하고 나서 움직일 줄 알았는데.]
“어차피 쓰러뜨려야할 존재들이니까요. 가능하면 빠르게 해결 볼 생각입니다.”
하현은 다른 3마리의 차원의 기둥들도 조만간 날을 잡아서 바로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던전들을 흡수하면서 천천히 해도 되기는 했지만, 굳이 그렇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 근래 차원의 기둥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줄었다고 했었다. 아마 차원의 틈이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차원의 틈이 안정화되면 기둥들의 등장 빈도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그때는 오히려 기둥의 출현 빈도가 더욱 늘어날 거라고 회장이 추측했었다.
여태까지는 기둥들의 힘이 너무 강해 손을 쓰지 못했던 세계가 본격적으로 개입해 기둥들을 지우려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나타나는 기둥들만 계속해서 죽이다 보면…… 그때야 말로 모든 게 끝나겠지.’
던전의 흡수는 만약을 대비한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지 하현이 노린 것은 이쪽이었다. 하현은 생각을 정리하고 에뤼쿠스를 바라봤다.
“혹시 그 사이에 나타난 차원의 기둥은 있습니까?”
[아직은 없네. 근데 조금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싶군]
하현의 다급한 모습에 에뤼쿠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했다.
[오늘만 해도 3마리를 잡았는데 조금은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않겠나?]
“……예?”
에뤼쿠스의 말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3마리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자신들이 잡은 차원의 기둥은 스칼렛과 티거, 2마리뿐이었다.
‘아퀼로 쪽에서 잡았다? 아니, 그쪽으로 갔다면 나한테 연락이 안 올 리가 없어.’
그럼 도대체 누가 차원의 기둥을 죽였다는 말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현은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하고,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실에 하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늘 죽은 차원의 기둥들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알겠네. 지도를 펼쳐보게]
하현의 다급한 모습에 무언가 이상이 있음을 알아차린 에뤼쿠스는 재빨리 지도에 세 개의 표시를 남겼다. 두 개는 오늘 하현과 일행들이 쓰러뜨린 티거와 스칼렛.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협회의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위치였다.
“……가보겠습니다.”
하현은 에뤼쿠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곧장 바닥을 박찼다. 하늘 위로 떠올라 경계로 들어선 하현은 그곳에 있던 차원의 기둥을 떠올렸다.
‘악룡 데이카른…… 5마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던 녀석이다.’
아데브에클에 의해 고위급 악마와 천사를 강제로 몸에 이식받아 폭주했던 저주받은 드래곤.
상당히 강력한 차원의 기둥이었기에 제일 뒤에 토벌할 생각으로 미뤘던 녀석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토벌 당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후웅!
하현의 몸이 데이카른이 활동하던 장소의 위로 도착했다. 스킬을 해제하고 권능으로 공중에 선 하현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듯이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화염이 이글거렸고,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녀석의 힘이다.’
영겁의 악마가 지닌 꺼지지 않는 불꽃의 권능과 대해의 천사가 가졌던 물의 권능.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분명 데이카른이 지닌 힘을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없어.’
하지만 그 어디에도 데이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방금 전 에뤼쿠스의 말대로라면 데이카른은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것이다.
‘누가?’
사실 누구냐고 의아해할 필요도 없었다. 범인은 이미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아래쪽에 남아 있는 대규모 마법진의 흔적과 다수의 부서진 병기들이 얼핏 보였다.
즉 자신들이 아닌 다수의 집단이 차원의 기둥을 죽였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단 한 곳뿐이었다.
‘페젤론의 군대…….’
방벽 안에 도사리고 있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