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26화 (126/158)

# 126

“참…… 기분이 복잡하네.”

마법진에 둘러싸인 포탈의 모습에 지현이 중얼거렸다. 세 명이 마법진을 유지하고 그 뒤에 선 아퀼로가 마나를 공급해 주었다.

“정지 한 번 시키려면 들어가서 온갖 개고생을 펼쳐야 하는 던전이 이렇게 간단하게 사라지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야.”

“좋은 일이지. 이제 시대가 바뀐다는 뜻이니.”

지현의 말에 강철은 사라져 가는 던전을 바라봤다. 시대가 바뀐다. 더 이상 던전의 존재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올 시간이 된 것이다.

“…… 너무 오래 걸렸군.”

흑월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몇천 년이 걸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분명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이리라.

우우웅!!

마법진이 발동되어 감에 따라 포탈이 조금씩 분해되어 갔다. 내부에 들어있는 S급 괴물들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휘두르지 못하고 분해되어 갔다.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조각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갔다. 몇 번이고 본 광경이었지만 하현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바라봤다.

“이제 남은 건 외부세계로군요.”

하현의 옆에 섰던 민철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슬쩍 고개를 돌린 하현은 그를 바라봤다.

사라져 가는 던전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속이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분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과거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면 아마 복잡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자신을 바라보는 하현의 시선을 알아차린 민철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제 국내에 대한 걱정을 덜어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하현의 말에 민철은 고개를 돌려 다시 던전을 바라봤다.

“저는 늘 대륙 안의 던전이 밟혔습니다. 언젠가 저와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재앙을 일으킨 원수에 대해 알게 되었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단순히 복수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같은 일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이 민철의 목표였으니.

“이제는 그럴 걱정이 필요 없어졌으니…… 이번 토벌에 제 모든 것을 걸 생각입니다.”

주먹을 꽉 움켜쥔 민철이 눈을 빛냈다. 국내 안에 핵심 던전들을 제거하면 혼돈대륙의 토벌이 시작된다.

민철은 길드장이자 토벌자로서 토벌의 선두에 설 생각이었다.

결심을 다진 그의 모습에 하현은 고개를 돌리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목숨은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 두세요. 제가 곤란하거든요.”

“음? 길드장님이 곤란하실 일이 있습니까?”

민철의 물음에 하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재산이 너무 많아서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예?”

“길드 자금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시던데 던전이 모두 사라지면 자산 관리사 해보시는 건 어때요? 분명 적성에 맞을 겁니다.”

하현의 말에 민철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그렇군요. 그때는 길드장님이 아니라 고객님이 되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런걸 보면 이러나저러나 길드장님은 제 위에 있으실 분인가 봅니다.”

“아,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후우웅!!

마법진이 발동하고 강렬한 빛이 하늘을 향해 뿜어졌다. 국내에 있던 마지막 S급 던전이 사라졌다.

***

S급 던전들의 정리가 끝나고 대륙 내부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A급 던전들도 위험도가 높은 순위대로 점차 제거해 나갔고, 시민들은 사라져 가는 던전에 다들 기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도 많고 위험도도 다소 떨어지는 낮은 등급의 던전들은 남아 있고, 차원의 틈으로 나타나는 괴물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이전보다야 조금 낫긴 하지.’

하현이 차원의 기둥들을 자주 쓰러뜨리면서 괴물의 등장이나 새로운 던전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차원의 틈이 상당히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그 덕에 국내 핵심 전력들은 대부분 외부세계의 토벌에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업적 포인트는 일시중단하고 월급제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안 그러면 당장 안전이야 둘째치고 일거리가 줄어든 이들이 반발을 보일 테니 말입니다.”

“음. 그건 그렇죠.”

민철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혼돈대륙으로 가면 이곳을 지키는 것은 일반 토벌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괜한 적대심을 품게 되면 일이 곤란해지리라.

“외부세계로 갈 토벌자들은 어떻게 모집하고 있습니까?”

“페젤론 출신의 협회 인물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가합니다. 일반 토벌자들은 실력 위주로 면접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그럼 아직은 시간이 조금 걸리겠네요.”

“예, 아마 2주에서 3주 정도는 걸릴 겁니다.”

민철의 말에 하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긴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것도 자신의 부탁에 상당히 줄인 것이었다. 아마 더 이상 시간을 줄일 수는 없으리라.

‘이건 어쩔 수 없나…….’

시간이 급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쳐들어갈 수도 없다. 다소 찝찝하더라도 참고 완벽하게 준비해 가는 것이 좋으리라.

“검은 황소는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믿을 만한 길드원들을 뽑아놨습니다. 인수인계를 진행 중이니 아마 2주안에 모두 자리 잡을 것입니다.”

“흐음…… 그동안은 저도 준비나 해야겠네요.”

“예, 아니면 쉬시는 것도 좋겠지요. 길드장님은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이 가끔 탈이니 말입니다.”

민철의 말에 하현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퀼로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주변에서 보기에는 참 힘들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럼 적당히 쉬면서 점검만 하겠습니다.”

“예, 나중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민철을 뒤로 한 하현은 사무실의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곧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하현은 잠시 생각하다 길드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콰아앙!!

대련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혹시나 했는데 예상대로 대련실에는 지현과 흑월, 강철 세 사람이 있었다.

“왔나.”

하현을 가장 먼저 발견한 흑월이 검을 내리고 바라봤다. 그에 지현과 강철도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어, 웬일로 왔어?”

“보나 마나 쉬라고 했는데 또 기어온 거겠지.”

“아, 하하하…….”

강철의 정확한 지적에 하현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흑월이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대련할 건가?”

“네, 가볍게 점검도 좀 하고 싶어서요.”

쉬라는 것도 적당히 연습하면서 쉬라는 거지 아예 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간단하게 풀었다.

“흐음~ 나는 가볍게 안 한다?”

“시작하면 제대로 해야지.”

지현과 강철이 각자 몸을 풀며 자세를 잡았다. 흑월 또한 검을 겨누며 전신의 기세를 일으켜갔다. 얼마 전과 비교해도 사뭇 달라진 그 기세에 하현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세 분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레벨? 흐음……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하네.”

자세를 푼 지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요 근래 그리 길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하현과 세 명은 서로의 레벨을 잘 몰랐다.

“나는 512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지 흑월이 검을 내리고 대답했다. 이전에 타락한 영웅을 완수한 이후로 10레벨, 평범한 토벌자라면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였다.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너도 고생하니까. 나라고 놀 순 없었지.”

S급 던전을 도는 것뿐만 아니라 시련을 이용해 제약을 두거나 난이도를 상승시키며 단련한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한 흑월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 하나는 더럽게 빠르다니까…… 나는 487이야.”

“487이요?”

“그래, 낮다고 무시하지 마.”

지현은 흑월보다 레벨이 낫다는 사실이 불만인 듯 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흑월보다 경력이 짧은 그녀가 이 정도로 차이를 좁히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했다.

‘하긴 매일같이 죽을 것처럼 싸우니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어.’

늘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지현의 사냥 방법은 혹독했지만 그만큼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하현은 새삼 지현에게 감탄하며 강철을 바라봤다.

“503이다.”

“…… 예?”

예상치 못한 수치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 이내 그 레벨에 납득했다.

‘여기서 제일 오래하셨으니까 당연한 건가.’

은퇴할 때만 해도 A급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던 데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단련에 약간 소홀하긴 했지만 멈춘 적은 없었으니 당연한 레벨이었다.

‘다들 강하구나.’

자주 대련해서 세 명의 강함을 알고 있었지만 하현은 늘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이들을 데리고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런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앞의 세 명이 보여줬다.

‘믿을 수 있어.’

이 세 명뿐만 아니라 협회의 다른 이들도 분명 믿을 수 있는 전력일 것이다. 하현은 아주 조금 남아 있던 불안감을 털어내었다.

“근데…… 그래서 니 레벨은 얼만데?”

안도하고 있는 하현의 표정을 보던 지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에 하현은 그제야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저는 473입니다.”

“…….”

“…….”

하현의 대답에 지현과 강철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흑월이야 그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알았기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둘에게는 달랐다.

그냥 빠르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 단기간 사이에 500에 가까워질 만큼 성장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아니, 하아…… 후우…… 으아!!!”

“어, 어? 지현 씨, 갑자기 왜…….”

잔뜩 분한 표정으로 다가온 지현은 그대로 하현의 목에 매달려 버렸다. 그 불만이 가득한 투정에 하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승부욕이 강한 녀석을 그렇게 짓눌러버리니 오죽하나.”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라…….”

“억울해~ 억울하다고~! 누구는 죽을 각오로 안 싸웠나~!”

지현은 원통하다 듯 이야기하며 하현의 목에 마구 매달렸다. 사실 하현이 누구보다 고생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쯤 장난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하현은 정말 자신이 자존심을 짓뭉갠 줄 알고 당황했다.

“이건 보상이 필요하겠는데.”

그 분위기를 알아차린 지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현을 바라봤다.

“보상이요?”

“그래, 이 심란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보상 말이야. 뭐 예를 들면 나중에 일이 다 끝나고 쇼핑에 어울려 준다던…….”

“거기까지.”

지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월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보다 한껏 날카로워진 분위기는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련을 시작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잡담은 그만하지.”

스르릉-

흑월의 검에 날카로운 기운이 머금어졌다.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현은 피식 웃으면서 하현의 목에 더욱 달라붙었다.

“어, 잠깐…….”

“워, 가만히 있어. 지금 버프 주고 있잖아.”

당황하는 하현의 귓가에 지현이 웃으며 속삭였다. 그 말대로 흑월의 기운은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럭무럭 피워 나와 평소보다 격렬해졌다.

“역시 경험이 없으면 저렇게 티가 나나보네~”

“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지현이 하현에게서 떨어져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강철은 피식 웃으면서도 자신도 준비했다.

“부럽구만.”

“대체 뭐가…….”

미소를 짓는 강철의 모습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흑월의 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간다.”

그 뒤로 하현은 정말 오랜만에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대련을 하게 되었다.

***

혼돈대륙의 협회 기지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평소에는 비행기를 이용해 이동하는 식이었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번에는 마법진으로 대체했다.

물론 그 긴 거리를 건너뛰는 만큼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나의 양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막대했지만,

[여기다 공급하면 되는 건가?]

“아…… 네, 네.”

하현의 부름으로 모인 브라스마티를 비롯한 수십 마리의 드래곤 덕분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라젤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들을 바라봤다.

‘하현 씨도 참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분이 되셨구나.’

이제는 과거와 비교하는 것도 우스울 정도로 강해져 버렸다. 아마 이 정도 병력이라면 자신의 시대 때 왕국들과도 대립할 수 있을 정도이리라.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사가 이런 느낌일까.’

만인의 귀감이자 마족들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했던 용사 오드리히. 만약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오드리히 님보다도…….’

지금 모습을 보면 분명 가능할지도 모르리라. 라젤린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법진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이윽고 그 안으로부터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현을 선두로 400명 가까이 되는 협회의 최정예 병력. 주변의 공간이 바뀐 것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해 보죠.”

차원의 미래가 걸린 혼돈대륙의 토벌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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