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이 빌어먹을 자식!!!】
퐈아악!!
아데브에클의 포효와 동시에 그를 옭아맨 나무뿌리들이 모조리 불타 사라졌다. 그 모습에 에뤼쿠스는 눈동자를 살짝 움직여 보였다.
푸우욱!!
【크아아아악!!!】
세계수의 뿌리들이 다시 아데브에클의 몸을 꿰뚫었고, 이번에는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둘러쌌다. 아데브에클이 어떻게든 불로 뿌리들을 태우려고 했지만, 뿌리들은 불을 머금은 채로 더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방금 전까지 마구 난동을 피우던 아데브에클이 변변히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하현은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그래.]
고개를 돌린 에뤼쿠스가 하현과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제한 시간 동안만 존재하지만 눈앞의 세계수는 가짜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데브에클에게 권능의 힘을 선사하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수인 것이다.
“어떻게 잘 알고 오셨군요.”
[멀리서 세계수의 인기척이 느껴졌으니 말일세. 자네도 그걸 노린 것 아닌가?]
에뤼쿠스는 드래곤임과 동시에 세계수 그 자체였다. 그 말은 즉 세계수가 또 하나 나타나면 갑작스럽게 손이 하나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하현은 그 점을 노리고 탄식의 세계수의 정화 효과를 노렸고, 계획은 성공적으로 들어맞았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하현을 바라보던 에뤼쿠스가 아데브에클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 완전히 둘러싸여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간간히 뒤흔들리고 새어 나오는 불꽃이 안쪽에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건 브라스마티의 권능이 아닌가. 어째서 아데브에클이 저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평온하던 에뤼쿠스의 두 눈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착각인가 했지만, 자신이 전력을 다한 뿌리를 불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브라스마티의 불꽃뿐이었다.
그런데 그 불꽃을 아데브에클이 사용하고 있다니.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아데브에클이 모든 드래곤을 흡수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신이 모든 드래곤이자 그림자가 되면서 영원히 싸움을 끝낼 거라고 합니다.”
[뭐…… 그건 법칙에…… 아니, 그런가. 그렇게 된 거였군.]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에뤼쿠스는 이내 스스로 답을 알아차렸다.
[이 세계의 느슨해진 법칙을 이용한 거군.]
“예. 알고 계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하지만 그게 이렇게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 아무리 느슨하다고 해도 법칙인 것을…….]
설마 억눌려져 있던 아데브에클의 증오가 법칙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줄은 예상도 못했다. 에뤼쿠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는 아데브에클을 죽이기 위해서인가?]
“예. 분명 이전에 세계수 앞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지만…… 지금의 아데브에클에게도 과연 통할지 의문이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 버린 아데브에클의 모습에 에뤼쿠스는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선 말은 했으니 그에 대해서 지켜야겠지. 그리고 브라스마티를 집어삼킨 것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할 것이고.]
【대가?】
아데브에클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뿌리에 붙은 불들이 꺼졌고, 아주 작은 틈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이 흘러나왔다.
【대가 좋아하는군. 대가는 오히려 네놈이 치러야 할 것이다!!!】
주변에 퍼져 있던 모든 그림자가 녹아내리면서 한곳에 모였다. 본래의 모습을 갖춘 아데브에클은 에뤼쿠스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내가 성체가 되고 단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걸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크흐흐흐…… 개소리도 분별없이 짖어대는군. 네놈은 날 이긴 적이 없다.】
몸을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린 아데브에클이 눈을 번뜩였다.
【승부가 나지 않았을 뿐이지!!!】
콰아앙!!
등 뒤의 날개가 허공을 후려치고, 아데브에클의 몸이 에뤼쿠스를 향해 돌진해 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아데브에클은 발톱을 거대화시켜 남은 거리를 단숨에 없애며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순식간에 자라나 뻗어 나온 뿌리에 아데브에클의 발톱이 붙잡혔다. 하지만 이미 이런 공방에는 익숙한 듯 아데브에클의 발톱이 녹아내려 뿌리를 통과했다.
콰아아앙!!
둘의 싸움은 거의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아데브에클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에뤼쿠스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며 반격한다. 하지만 그 반격을 맞은 아데브에클은 약간의 부상도 없이 다시 움직인다.
‘승부가 나긴 하는 건가?’
어느 한쪽도 유리해 보이지 않는 지루한 공방에 하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세계의 탄생 지속 효과는 기껏 해봐야 20분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시간이 상당히 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끌어봐야 불리한 것은 이쪽인 것이다. 그때, 아데브에클의 공격을 막아내던 에뤼쿠스가 입을 열었다.
[대강 수준을 알겠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은 모양이야.]
바닥에 무너져 있던 그림자들을 억지로 삼키기는 했지만 아직 그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에뤼쿠스의 말에 아데브에클이 이를 갈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그래 봐야 네놈은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
콰드드득!!
양쪽에서 뻗어 나온 굵직한 세계수의 줄기가 에뤼쿠스의 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몸 전체가 찌부러진 아데브에클은 아직 뭉개지지 않은 눈동자로 에뤼쿠스를 바라보았다.
【크하하하하! 이딴 짓 해봐야 소용없다……!】
에뤼쿠스를 비웃던 아데브에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태까지 하늘에 떠 있던 에뤼쿠스가 등 뒤의 세계수를 향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설마 그 세계수에서도 가능하단 거냐!!】
예상치 못한 행동에 아데브에클이 당장 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줄기들이 아데브에클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붙잡았다.
[잠시 세계수를 빌리지.]
에뤼쿠스의 몸이 세계수에 닿자 은은한 빛과 함께 강렬한 파동이 주변에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현의 귓가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에뤼쿠스가 세계수와 융합하려고 합니다. 거부할 수 있지만 에뤼쿠스가 지닌 권능 때문에 강제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융합을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한다.”
하현의 대답과 동시에 에뤼쿠스의 몸이 순식간에 세계수 안으로 녹아들어 갔다. 세계수 전체가 초록빛으로 환하게 빛을 내며 이내 작게 변해갔다.
드래곤의 비늘은 완전히 사라졌고, 얼굴과 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얽혀 있는 나무줄기로 변했다. 이제는 드래곤보다 식물에 가까운 모습.
세계수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덩치였만, 기존의 에뤼쿠스에 비교하면 두 배나 거대해졌고, 주변에 풍기는 기운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그 모습을 본 아브데에클은 더욱더 거칠게 저항하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변화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줄기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혔다.
[너의 말대로 이제 이 반복을 끝낼 때가 왔다.]
아데브에클이 부상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에뤼쿠스의 양손 안으로 마나가 조금씩 압축되어 갔다.
하현은 상생의 힘을 속성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했지만, 본래는 그런 힘이 아니었다.
색을 대표하는 드래곤들도 피할 수 없는 속성 간의 상성. 상생의 힘은 그 벽을 허물고 모든 힘을 자신의 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었다.
우우우우웅!!!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에뤼쿠스의 마나로 변해 한곳에 모여들었다. 세계수의 힘에 상생의 힘이 더해지면서 에뤼쿠스가 다룰 수 있는 마나는 무한이나 다름없었다.
「와…… 잠깐…… 영감탱이 진심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손안으로 모여들고 있는 마나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에뤼쿠스의 주변으로 대마법진들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색을 대표하는 드래곤들은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
하현은 그 말을 몇 번이고 들었지만, 지금이야말로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놔라아아!!!】
주변에 얽혀오는 줄기들에 아데브에클이 발광하면서 떨쳐 내려했다.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에뤼쿠스의 앞에서만큼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에뤼쿠스가 지닌 권능에는 생명이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칙에 얽혀 있다 해도, 불사라고 해도 우선은 살아 있는 존재고 살아 있던 존재다.
과거 현재 생명이었던 존재들은 에뤼쿠스가 지닌 생명의 힘 앞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죽어라.]
선언과 함께 에뤼쿠스의 양손과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아데브에클의 몸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으아아악…… 으어…… 아아아악!!】
단말마와 같은 비명 소리를 끝없이 터뜨리며 아데브에클의 몸이 계속해서 지워져 갔다. 빛 앞에서 그림자가 있을 수 없듯이, 아데브에클의 몸은 버티지 못하고 사그라들어 갔다.
그 광경은 아데브에클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이상했다.
‘……왜 안 죽는 거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던 아데브에클의 몸이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조금 굳어진 에뤼쿠스의 얼굴이, 계속해서 버티는 아데브에클의 모습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줬다.
‘이대로……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돼.’
하현의 본능이 계속해서 경고했고, 그 경고는 맞았다. 아데브에클은 드래곤이면서도 드래곤의 그림자라는 모순적인 존재로 변했다. 그 때문인지 생명의 권능이 약화되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탄식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완전히 죽일 수가 없다.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아데브에클은 당장 도망쳐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젠장…… 영감탱이 힘이 왜 저래? 저 녀석 점점 재생하고 있잖아!」
생명의 힘이 감소된 걸 모르는 아퀼로는 아데브에클의 모습에 초조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어전환. 힘.”
「어, 어? 너 뭐해?!」
갑자기 불간섭을 전환하는 하현의 행동에 아퀼로가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설명할 틈은 없었기에 하현은 곧장 주먹을 움켜쥐었다.
‘에뤼쿠스의 힘으로도 안 된다면 남은 건 이것뿐이야.’
평상시라면 사용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은 에뤼쿠스의 브레스가 확실하게 아데브에클을 붙잡고 있었다.
【크흐. 크흐흣……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그 브레스도 끝나겠군.】
브레스 속에서 간신히 견디던 아데브에클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과거처럼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가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생명의 힘이 약해졌고, 자신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았다. 조금 약화되기는 했지만 시간만 들인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네놈부터 저 빌어먹을 인간까지 몇천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씹어 먹……!!!】
에뤼쿠스를 바라보며 저주를 퍼붓던 아데브에클의 목이 단숨에 돌아갔다. 여태까지와 분위기가 달라진 하현의 모습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분위기에 아데브에클은 예전에 마주쳤던 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데브에클의 전신에 오한과 경고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악!!!】
[뭣…….]
괴성을 지른 아데브에클이 온 힘을 다해 브레스를 뚫으면서 하현을 향해 달려 나왔다.
「꽉 붙잡아!!!」
아퀼로가 다급하게 소리치자 에뤼쿠스는 브레스의 출력을 높여 아데브에클을 다시금 붙잡았다. 그사이 하현은 자신의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이 세계의 법칙이라면…… 그대로 추방시켜 주마!!”
주먹이 휘둘러지고.
쩌적!
아데브에클을 감싼 세계에 거대한 금이 새겨졌다.
【안…… 돼…….】
채앵!!
조각난 차원들은 구멍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아데브에클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금 전 공격이라면 충분히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젠장…… 또 어디냐.’
하지만 하현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눈앞에 아데브에클이 죽었다는 알림창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웁…….】
바닥에 남은 아주 작은, 하현의 손톱만 한 그림자로부터 희미하게 아데브에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웨에에에엑!!!】
그림자가 순식간에 넓어지고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튀어나와 바닥에 한꺼번에 쓰러졌다. 그들은 아데브에클이 여태까지 집어삼켰던 모든 드래곤이었다.
‘브라스마티 씨…….’
다른 드래곤들은 그 형체를 유지했지만, 브라스마티는 나오는 즉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이미 죽어가던 몸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하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나는 죽지 않는다…… 드래곤의 그림자…… 세계의 법칙이 바로 나란 말이다아아!!!!】
아데브에클이 끊어지는 목소리로 괴성을 내질렀다. 본신의 힘 중 9할이 차원 너머로 추방당했다. 하지만 아직 존재하고 있는 드래곤들이 아데브에클을 붙잡았고, 다시금 미약하게나마 부활시켰다.
그 경악스러울 정도의 끈질김에 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녀석은 죽일 수 없는 건가?’
도대체 세계의 법칙이 얼마나 지독한 힘이기에 에뤼쿠스의 힘과 자신의 불간섭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하현의 표정을 본 아데브에클이 입꼬리를 올렸다.
【크흐흐흣…… 멍청한 놈들…… 너희들이 나와 싸우겠다는 건 지금 이 차원 전체와 싸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거다. 내가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때야말로 너희들 모두를 죽이고 말겠다…….】
아데브에클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도망의 징조임을 알고 있는 하현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지금 놓치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뭐해, 영감탱이! 얼른 막아!」
【저 녀석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나도 막기 힘들다! 이동 범위에 한계가 있을 테니 곧장 추격을…….】
다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퀼로와 에뤼쿠스. 당장 그 둘과 의견을 나눠야 했지만, 하현은 둘의 대화보다 방금 전 아데브에클의 말이 떠올렸다.
‘이 차원과 싸운다.’
진짜 적은 아데브에클이 아닌, 그를 뒤에서 백업해 주고 있는 이 차원 전체였다. 이 차원이 아데브에클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추방되지 않았고, 절대로 죽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차원의 손아귀에서 아데브에클을 빼낸다면 되는 것 아닌가.
“방어전환. 민첩!”
주변의 세계가 변하고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아데브에클의 눈앞에 나타났다.
【뭐…….】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하현의 모습에 아데브에클이 깜짝 놀라며 바라볼 때, 하현의 몸이 아데브에클의 몸 안쪽으로 강제로 파고 들어갔다.
‘크윽!’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그림자들이 벌레처럼 하현의 몸과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불간섭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데브에클에게 소화되고 있다는 감각이 전신에 느껴졌다.
【소화되고 있다?】
본래라면 소화되지 않던 녀석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아데브에클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하현의 몸과 영혼이 소화되면서 둘의 몸이 살짝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후우웅!!
다시 한 번 더 세계의 틈이 갈라졌다.
【……!!!!】
이전의 세계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 아데브에클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존재를 묶어두던, 법칙으로서의 힘을 주던 거대한 연결선이 모조리 끊어졌다.
【법칙의 힘이…… 설마 여긴…… 차원의 경계?!】
차원과 밀접하면서도 차원에서 벗어난 장소. 그 안에서 아데브에클은 더 이상 법칙이라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한 마리의 그림자 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네…… 네놈!!! 지금 당장 소화시켜 주마!!!】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 사실에 아데브에클은 당장 뱃속에 하현을 소화하려 들었다. 지금 당장 소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고 말 것이다.
화르르륵!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이건…….】
아데브에클은 하현의 몸을 삼키면서 한 가지 힘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다뤘던,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불태우는 강렬한 불꽃을.
퍼어어엉!!!
【크아아아악!!!】
몸 안을 찢어발기며 터져 나온 불꽃에 아데브에클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몸이 재생되지 않는다. 불꽃에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려 형체가 사라진다.
【이, 이 불꽃은…… 말도 안 돼…….】
“뭐가 말도 안 돼.”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데브에클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몸 전체에 불꽃을 두른 하현이 서서 아데브에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브라스마티 씨가 내게 준, 본래 내 힘이야.”
브라스마티의 드래곤 하트는 받지 못했지만, 그가 죽음과 동시에 뜻에 따라 하현에게 권능이 계승되었었다. 불간섭 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강력한 힘이었지만, 아퀼로의 권능이 그 반발을 막아냈다.
그 결과 하현은 두 개의 권능을 거의 완벽하게 지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계승자가 된 것이다.
【아…… 아아…….】
과거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권능을 흡수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약해 빠졌었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은 달랐다.
“사자강림. 선택, 브라스마티의 권능.”
아오른의 힘이 하현을 감싸고,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이제 막 얻어 쉽게 제어할 수 없는 권능이 사자강림에 의해 브라스마티의 숙련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다면…… 이제 쉬어라.”
하현의 두 손을 휘감은 불꽃이 타올랐다. 타오르고, 또 타올라서 온도를 넘어 경계가 흔들릴 강력한 힘이 맺혀들었다. 그 모습에 아데브에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 종말의 힘…… 흐흐. 흐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브라스마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권능. 그 힘에 아데브에클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가 이성을 잡아먹었다.
“…….”
반항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아데브에클의 모습에 하현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화르륵!
아데브에클의 몸에 닿은 불꽃이 조금씩 그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단순한 불꽃처럼 보였지만 닿는 순간 상대의 영혼에 붙어 완벽하게 불태운다는 종말의 불꽃이었다.
【히히힉…… 죽는 건가. 내가, 크흐흐하하핫! 이 내가 죽는다는 말이지!!】
아데브에클은 미친 것처럼 실실 웃으면서 타오르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이제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는 영원한 죽음. 그 앞에서 한 가지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여태까지는 기억이 희미했는데…… 방금 전에 떠올랐어. 왜 네놈을 보고 마왕이 떠올랐었는지.】
“…….”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하현은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무슨 반응을 보이는 것이 그를 자극할 것 같았다.
【그 녀석도 네 녀석이과 똑같았어. 도저히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는 힘을 휘두르며……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그런 힘을 말이야.】
목 아래까지 타오른 아데브에클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서로 만나면 재밌는 싸움이 되겠군…… 크흐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아데브에클의 몸은 남김없이 모두 타올라 사라졌다.
-시련을 완수했습니다.
아데브에클의 죽음을 알려주는 단말마에 하현은 재조차 남지 않은 흔적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경계에서 하현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