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몸을 움직이면 용암이 뒤흔들리고, 숨을 내쉬면 불길이 거세진다. 붉게 변한 하늘과 용암으로 뒤덮여 버린 주변의 광경에 하현의 입술이 꽉 깨물어졌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 으흐흐흣…… 글쎄,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아데브에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하현은 이를 꽉 물었다.
‘드래곤들을 흡수해서 드래곤의 그림자로 만든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가능할 리가 없는 일 같았지만 눈앞에 있는 아데브에클의 모습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란 말인가.
“너…… 드디어 미쳤구나. 너는 드래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도대체 무슨 짓을…….”
【드래곤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지.】
아퀼로의 말에 아데브에클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빌어먹을 드래곤들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바로 나지. 모든 드래곤의 그림자, 끊임없이 감시하며 억압해야 하는 드래곤!】
아데브에클의 말에 아퀼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태까지 자신이 봐온 아데브에클은 드래곤에 대한 증오밖에 모르는 괴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달랐다. 단순히 드래곤을 증오한다기보다는, 자신을 이런 위치로 만든 드래곤들을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래는 자각하지 못했었지. 머릿속에 가득 채운 증오가, 정해진 법칙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니. 하지만 여긴 다르다.】
“여기라면…….”
【이 세계. 페젤론이 아닌 이 세계가 나를 옭아맨 법칙을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본래는 존재하지 않은 법칙들이 이세계로 옮겨 온 것이니 당연하겠지.】
드래곤이 원래부터 존재하고, 그런 드래곤을 막아내기 위해 아데브에클이 존재하는 세계. 그곳은 페젤론이었지 이 세계가 아니었다.
단지 페젤론의 기억들이 이세계에 소환 되서 어떻게 법칙이 유지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허술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색다른 증오를 느꼈다. 드래곤이 아닌, 나를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 너희들이란 존재 자체에!】
“그래서…… 먹어치우겠다는 거냐?”
아퀼로는 이제야 아데브에클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질려버린 것이다. 영원히 드래곤들을 견제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뭐 걱정하지 마라. 지금 이 생활이 증오스럽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너희를 모두 집어삼키고 나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지.】
“그건 모순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드래곤의 그림자로 존재하는 아데브에클이 드래곤들을 집어삼키고 홀로 존재한다? 그것은 모순되는 일이며,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야 할 일이었다.
【그래. 모순된 일이지. 하지만 페젤론이 아닌 이 세계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푸화아아악!!
아데브에클의 두 손이 자신의 배를 가르고, 그 안으로부터 검은 그림자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질척질척한 그림자들이 용암 위로 떨어져 조금씩 그 형태를 갖춰갔다.
【크흐흐히힉!】
【흐하하핫!!】
【쿠흐흑, 으흐흐흑! 하하하핫!!】
흐물거리는 그림자들은 녹아내린 것 같은 입으로 웃음을 마구 터뜨리며 일어섰다. 아직은 확실한 형태를 띠지 않았지만, 하현은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22명…….”
빠드득
아데브에클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느슨해진 법칙의 틈과 강력한 자신의 힘으로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모순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드래곤이 존재하기에 그림자인 아데브에클이 불사지만, 아데브에클이 곧 드래곤이기에 드래곤들은 죽지 않는다. 영원불멸에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
그것이 바로 지금의 아데브에클이었다.
【네놈의 힘도 상당했었지. 오늘에야말로 천천히 집어삼켜 주마!】
모습을 갖춘 아데브에클들이 일제히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하현은 이를 악물며 곧장 건틀렛을 착용했다.
<어이, 좋은 말 할 때 도망치는 게 좋을걸.>
《이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저런 존재가…….》
한눈에 아데브에클의 힘을 파악한 이레아와 아오른이 경고해 왔다. 그만큼 지금의 아데브에클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존재로 돌변한 것이다.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싸울 준비나 해!”
콰아아앙!!
이빨을 피한 하현은 권능을 사용해 그대로 하늘로 떠올랐다. 일반인이라면 브라스마티의 권능으로 뒤바뀐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겠지만, 하현은 무리 없이 움직였다.
【이 열기에도 변함없군. 으흐하하하핫!!!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반드시 먹어주마!!】
하현을 바라보며 아데브에클은 환희에 휩싸인 포효를 외쳤다. 집착마저 느껴지는 살벌한 모습에 하현은 이를 악물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른 드래곤들은?’
「이 정도 파동이면 곧장 느끼고 날아올 거야.」
‘당장 가서 막아. 그 녀석들이 오면 더 골치 아파져!’
「알았어.」
지금 드래곤들이 와봐야 아데브에클에게 먹혀 버릴 뿐이다. 즉 드래곤들의 도움 없이 브라스마티의 권능까지 집어삼킨 아데브에클을 상대해야만 했다.
‘빡센데…….’
이런 일을 대비해서 몇 가지 수를 준비해 두기는 했다. 하지만 과연 저 정도로 강해진 아데브에클을 상대로도 가능할까.
‘일단은 해봐야지.’
이를 악문 하현은 폭풍의 권능을 최대한 이끌어내 몸에 둘렀다. 날카로운 광풍이 하현의 몸을 보호하듯이 둘러지자 그 모습을 본 아데브에클이 씩 웃었다.
【재롱이라도 부리는 거냐!!】
콰아아아!!!
아데브에클의 포효가 울려 퍼지고, 주변의 대기가 요동쳤다. 단 한 번 포효를 내질렀을 뿐인데 몸에 둘렀던 광풍의 절반이 날아갔다.
‘큭…… 이게 상성의 차이인가.’
육지로 나온 탓에 반, 상성인 브라스마티의 영역이라서 또 반. 현재 아퀼로의 권능은 4분의 1도 채 발휘하지 못할 만큼 억눌려 있었다.
바다 위에서라면 또 모를까 지금 아퀼로의 권능은 아데브에클에게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이전처럼 간다.’
인벤토리에서 탄식의 세계수를 꺼내 든 하현은 곧장 아데브에클을 향해 가리켰다. 세 가지의 보옥이 발동하고, 이전과 같이 하현의 몸 안으로 강력한 힘이 흘러들어 왔다.
성공적으로 디버프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실실 웃고 있는 아데브에클을 바라보았다.
‘저 자식…… 일부러 안 피했어.’
이전에 경험이 있었기에 아데브에클이 마음만 먹었다면 방금 전 디버프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데브에클은 가만히 하현의 디버프를 받아주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여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본래 불사에다가 이제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힘을 가진 자신에 대한 여유인 것이다.
【저번과 같은 능력인가. 좋다, 이전처럼 나를 즐겁게 해봐라. 좀 더 즐겁게!!】
콰앙!
수십 마리의 검은 드래곤이 동시다발적으로 하현을 향해 덤벼들어 왔다. 전신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오는 드래곤들의 모습에 하현은 주먹을 움켜쥐고 폭발적으로 휘둘렀다.
콰콰과과광!!!
하현의 몸 주변으로 수천 개의 주먹이 나타나 방벽처럼 드래곤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주먹과 맞부딪친 드래곤들의 몸은 부서진 찰흙처럼 그림자를 흩뿌렸고, 그 파편들도 주먹에 맞아 튕겨져 나갔다.
“아오른, 악마의 팔이다.”
<알겠다.>
하현의 등 뒤로부터 검은색의 괴기한 팔이 돋아 나와 탄식의 세계수를 움켜쥐며 그대로 융합되었다. 어젯밤 실험해서 새롭게 알아낸 스킬의 연계 중 하나였다.
【하하하, 크핫, 으하하하핫!!!】
땅 아래로 흘러내린 파편들, 반쯤 부서진 드래곤들의 몸에 모두 입이 생겨나며 광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작은 그림자 파편 하나까지 모두 아데브에클이었고, 절대로 죽지 않았다.
다행히 흡수한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을 때는 그 드래곤의 힘만큼만 이끌어내기에 싸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불사의 능력 때문에 결판을 낼 순 없었다.
‘지금 같은 방법으로는 안 돼.’
단순히 두들겨 패는 것만으로는 절대 아데브에클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 물리적인 공격이 아닌, 좀 더 절대적인 힘이 필요했다.
‘아퀼로, 스킬 보조 부탁해.’
「알았어!」
아퀼로의 대답과 동시에 아오른과 이레아가 지닌 스킬들이 발동되었다. 찬란한 빛을 내뿜는 수십 개의 검이 생겨나고, 하현의 몸에 짙은 어둠이 서려갔다.
【또 재롱을 준비하는 거냐!】
하현의 모습에 아데브에클은 몸을 수복하면서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거기에 하현은 차분하게 주먹을 휘둘러 대응하며 버프의 준비를 기다렸다.
「세팅 완료!」
아퀼로의 외침과 동시에 준비되었던 모든 스킬이 발동되었다. 주변에 생겨났던 검들이 아데브에클의 몸에 박혀 들어갔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연달아 생겨난 마법진과 빛의 창들이 아데브에클의 모든 몸을 난도질하듯 쑤시며 마법들을 중첩시켜 갔다.
【신성력?】
자신의 몸을 꿰뚫은 마법들의 모습에 아데브에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림자와 같은 모습이 불길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데브에클이 망자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칙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성력과는 상성이 꽤 좋은 편이었다. 그 의아해하는 모습에 하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맞아봐.”
파아앙!!
하현의 몸에서 터져 나온 상생의 힘은 아데브에클의 몸 전체의 속성을 한 바퀴 돌렸다. 다시 한 번 그림자에서 드래곤으로 끌어내려졌고, 모든 마법이 뒤바뀌며 아데브에클의 모든 저항력이 대폭 감소했다.
【크흐흣, 크하하하! 재롱도 수준이 떨어져 못 지켜볼 수준이구나!!】
아무리 드래곤으로 끌어내려도 아데브에클은 이제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가 되었고, 그런 이상 저항력을 낮춘 것도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아데브에클의 비웃음에 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외쳤다.
“탄식의 세계.”
소리는 없었다. 시동어와 동시에 세계 전체가 반전되었고,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선 절대적인 죽음이 하현을 둘러싼 아데브에클에게 들이닥쳤다.
【뭐…….】
쩌적!
23마리의 드래곤 중 18마리의 몸에 거대한 금이 새겨지며 무너졌다. 거기까지는 평범했지만, 그 뒤로 펼쳐진 모습은 여태까지 봐온 것과 전혀 달랐다.
부서진 그림자들은 재생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졌고, 이전과 같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움직이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죽은 것처럼.
【방금…… 방금 그건 무슨 힘이냐!!!】
탄식의 세계를 견뎌낸 브라스마티의 몸체가 포효를 내질렀다. 여태까지 웃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던 아데브에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망자의 세계에 뿌리내려 죽음을 양분 삼아 성장한 세계수. 그 세계수가 발휘한 죽음의 힘은 아데브에클에게도 큰 타격을 줄 만큼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당장 씹어 먹어주마!!!】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죽음. 그 낯선 감각에 아데브에클은 처음으로 하현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며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고열의 불꽃이 사방에서 덮쳐오고 붉은 유성우가 하현을 노리고 비처럼 쏟아졌다. 하현은 그 공격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아가면서 아데브에클과 주먹을 맞부딪쳤다.
‘유효타를 준 것 같기는 한데…… 부족한가.’
아데브에클의 힘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고 아직까지 부서진 그림자들도 재생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면 일시적으로 죽은 것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결국 모든 힘을 발휘한 탄식의 세계조차도 아데브에클을 이기지 못했다. 하현은 이를 악물며 머리를 굴렸다.
‘아데브에클을 확실하게 상대할 수 있는 방법…….’
지금 하현이 발휘하는 힘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데브에클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데브에클과 비슷한, 절대적인 법칙과도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는 한 에뤼쿠스뿐이야.’
세계수의 수호자 에뤼쿠스. 그라면 분명 아데브에클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세계수에 묶여 이곳으로 올 수 없었고, 오더라도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에뤼쿠스의 제약을 풀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현의 눈에 휘둘러지는 지팡이가 보였다. 에뤼쿠스를 묶는 것은 그 장소에만 있는 세계수였다. 그렇다면 만약 그 세계수가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 작은 확률을 믿으며 저장고를 향해 손을 쑤셔 넣었다.
‘아퀼로, 10초만 벌어줘!’
「알았어!」
쿠우우웅!!!
하현의 앞으로 거대한 아공간이 열리고, 기동요새의 포신들이 바깥으로 뻗어 나왔다.
「처먹어라!!!」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양의 포탄들이 아데브에클을 향해 쏟아졌고, 그사이에 하현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상자, 타락한 영웅의 SS급 상자였다.
‘여기에 건다!’
몇 번이고 해본 일이었기에 헤매는 일은 없었다. 정화를 떠올리고, 눈앞에 있는 탄식의 세계수를 향해 힘을 쏟아붓는다.
-아이템에 서린 저주가 너무 강력하여 정화의 힘이 모두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저주를 해제하거나 반만 저주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선택지. 하지만 하현은 망설임 없이 곧장 선택했다.
‘일시적으로!’
화아아악!!
외침과 동시에 탄식의 세계수에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 안에서 새로운 무기가 나타났다. 이전의 말라비틀어진 모습과 다르게 일곱 개의 보옥을 품은 채 싱그럽게 자라난 작은 세계수가 하현의 손에 잡혀 있었다.
-‘탄식의 세계수’가 한 달 동안 ‘세계수의 가지’로 변경됩니다. 정화는 원할 때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의 효과가 모두 바뀝니다.
하현의 눈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세계수의 가지 효과가 순식간에 나열되었다. 하현은 재빨리 아이템의 모든 효과를 훑어보았다.
‘제발…… 제발……!’
「뚫고 들어온다!」
그사이 아데브에클은 포격을 뚫고 튀어나와 포신을 모조리 박살 내버렸다. 포탄에 뭉개진 눈을 번뜩 뜬 아데브에클이 하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죽여 버리겠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하현의 몸에 아데브에클의 이빨이 닿으려 할 때, 하현의 두 눈이 맨 아래에 있는 스킬창에 고정되었다.
“세계의 탄생.”
하현의 손으로부터 벗어난 세계수의 가지가 용암이 들끓는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그 이해 못할 행동에 아데브에클의 시선이 잠깐 아래로 향한 순간.
드드드드드득!!!!
세계수의 가지가 떨어진 곳으로부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주변의 용암들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모든 땅을 뒤덮을 것처럼 넘실거리던 용암들은 급속도로 메말라 갔고, 그곳으로부터 거대한 나무가 솟아올랐다.
-일시적으로 세계수가 피어오릅니다.
-주변의 모든 자연이 세계수의 양분이 되어 숲을 만들어냅니다. 소유자의 모든 능력이 3배 상승하고 자연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스킬의 버프가 하현의 힘을 순식간에 부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현이 노린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후우웅!!
공간이 뒤흔들린다. 그 규모가 다른 힘에 아데브에클의 두 눈이 흔들거렸다. 눈앞의 나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런 힘을 지닌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의 사실에 아데브에클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감각이 쳐들어왔다. 당장 본능에 따라 뒤로 몸을 빼려던 순간.
푸화아악!!
【끄아아아악!!!】
거대한 나뭇가지가 아데브에클의 몸을 꿰뚫고, 뿌리를 내려 움켜쥐었다. 평범한 나무로는 절대로 줄 수 없는, 머릿속을 휘젓는 것 같은 불쾌한 일격.
[아주 오랜만이군그래.]
이가 갈리는 느긋한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녹색의 거대한 동체와 등에 뿌리내린 나무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영원한 숙적이며, 모든 일이 끝나는 즉시 찢어 죽이겠다고 다짐했던 드래곤.
【에뤼쿠스으으!!!!!!】
원수에 대한 아데브에클의 서슬 퍼런 외침에 그린 드래곤 에뤼쿠스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