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25. 외부세계
하현은 회장과 아민, 지호를 따로 불러 모았다. 뛰어난 마법 실력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간추린 결과였다. 왜 불려왔는지 의아해하는 세 사람의 모습에 하현은 물건을 꺼내 보였다.
“제가 여러분을 불러 모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책상 위에 놓아진 갈색 가죽 책, 니레이크의 마법서를 세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마법서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니레이크의 마법서(레전드)
내구도 100/100 마법 저항력 220
공간의 대마법사 니레이크의 모든 마법이 담긴 책이다. 레벨에 따라 니레이크가 생전에 연구한 마법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력이 40%상승합니다.
-마나 회복량이 600%상승합니다.
-레벨에 따라 열람되는 마법의 수가 제한됩니다.
레벨 500이상 : 100%
레벨 400이상 : 70%
레벨 300이상 : 40%
니레이크의 마법서. 그 효과는 바로 공간의 대마법사인 니레이크의 모든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이번에 니레이크를 토벌하면서 얻은 아이템입니다. 효과는 보신 것과 같죠.”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회장이 놀란 표정으로 마법서를 바라봤다. 레벨 조건만 맞추면 니레이크의 마법을 익힐 수 있다. 이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어마어마한 아이템이었다.
“까다롭군. 익히기 힘들겠어.”
하지만 회장과 다르게 지호는 마법서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스킬이었다면 그냥 익히면 됐지만, 마법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스킬과 다르게 마법은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신력이 필요했다. 즉 그냥 배우고 쓰면 되는 스킬과 다르게 수준 이상의 마법을 익힐시 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설마 이 정도 경지에 오르고 나서도 습득 경고를 볼 줄이야. 감탄밖에 안 나오는군.”
습득 경고는 본인의 능력을 넘어선 마법을 익히려 할 때 나타나는 경고였다.
무시하고 배워도 되기는 하지만 큰 확률로 부작용이 나타나기에 대부분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습득 경고가 레벨이 400을 넘기고 어느 정도 마법에 통달한 지호에게 뜬 것이다.
“공간마법은 다른 마법들에 비해 엄청 까다로우니 말이죠.”
“그 정도입니까?”
지호와 아민의 반응에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마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가져오면 잘 해결되겠지, 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네. 저는 고작 40%밖에 안 되는데도 습득 경고가 뜨네요. 기초가 될 공간마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진짜 무시무시한 마법들이에요.”
“나도 40%가 겨우군. 그 이상 배우려면 부담이 가.”
“흐으음.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정적인 두 사람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돌려 회장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야 공간마법을 아는 게 크게 없었으니 그렇지만 회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이걸로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법서를 유심히 바라보던 회장이 하현에게 물었다. 그 말에 아민과 지호도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단순히 좋은 마법을 배우라고 가져온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니레이크가 사용한 것처럼 던전들을 없앨 생각입니다.”
하현의 말에 세 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 이내 진지해진 표정으로 마법서를 바라봤다.
“마법만 제대로 배워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군요.”
“하지만 그것도 공간 마법의 극에 달해야 가능할 텐데요. 어렵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이쪽에는 이미 숙달된 사람이 있지 않나.”
지호가 회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경지가 아니더라도 이 마법서가 있다면 다르다. 미래의 자신이 개척해 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회장이 이 마법서를 통해 마법을 익힌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니레이크의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지호의 생각이었다.
“그건…… 힘들겠군요.”
하지만 지호의 생각과 다르게 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알 수 없는 말에 세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알고 계시겠지만 차원의 틈으로 나타난 괴물들은 성장형이라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죠.”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페젤론의 사람들은 성장형이라는 특징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그 말은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것도, 기존의 스킬 레벨을 강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던전을 흡수하는 마법의 개발은 도울 수는 있지만, 제가 익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페젤론의 인간들이 지닌 한계였다. 회장의 말에 지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공동으로 개발을 하면서 우리가 익히는 수밖에 없나…… 어렵겠군.”
“공간마법은 영 안 맞아서 포기했던 종류인데…….”
지호와 아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애초에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공간마법을 이제 배우면서 극에 다다른 기술을 재현해야 하다니.
솔직히 말하면 적어도 수십 년은 지나야 가능할 일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안 좋은 반응에 하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설마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이라니.
「이 녀석들 번거롭네.」
세 사람을 지켜보던 아퀼로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니, 뭐. 이런 건 어쩔 수 없잖아. 배워본 적도 없는 분야의 마법을 재현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기는, 그냥 약아빠진 거지. 잠깐 기다려 봐.」
아퀼로의 말에 하현이 어리둥절해할 때, 하현의 몸에서부터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색 빛들은 하나로 뭉치고 이내 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퀼로?”
“마나생성기였나. 이거 편하네.”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 아퀼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빛의 머리카락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지막에 하현이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뭘 한 거야?”
“그냥 마나로 내 몸을 재현한 거야. 드래곤 때처럼 힘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하현을 향해 다가온 아퀼로는 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툭툭 건드려지는 볼의 감각이 눈앞에 아퀼로가 환상이 아님을 말해줬다.
“이렇게 건드릴 수는 있지. 아,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고.”
“크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져오는 아퀼로의 모습에 하현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회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현 씨, 방금 이분을 아퀼로라고?”
“아, 그게 사실은…….”
하현은 아퀼로를 죽인 다음 얻은 아이템에서 인격을 얻게 되었고 그걸 소유하게 되었다고 대충 설명했다. 그 이야기에 회장은 신기한 표정으로 아퀼로를 바라봤다.
“그렇군요. 저는 드래곤 상태의 모습밖에 본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습니다.”
“이 모습은 위엄이 안 사니까. 어지간하면 잘 안 보여주지.”
어깨를 으쓱인 아퀼로는 하현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민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싸우시면서 많이 친해지신 모양이네요.”
“아. 그, 그렇죠……?”
조금 날선 아민의 물음에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민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돌려 버렸다.
「저 애 좋은데. 이런 풋풋한 느낌 나쁘지 않아. 깨부수는 맛이 난단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해. 아민 씨가 이상하게 화내잖아.’
하현의 반응에 실실 웃은 아퀼로는 본론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지금 하려는 게 이 마법서로 던전을 흡수하는 마법을 만들려는 생각인 거지?”
“그래. 만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쓸모가 있을 테니까”
당장 국내에 위험한 던전들을 없앨 수도 있고 잘하면 외부세계에 침식된 던전들에도 쓸모 있을지 모른다. 하현의 의도를 알아챈 아퀼로는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좋아.”
결론을 내린 아퀼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 명의 마법사를 바라봤다.
“공간마법의 기초부터 저 마법서의 응용 기술까지 모조리 알려주지. 단.”
씩 웃은 아퀼로는 다리를 꼬며 세 명을 바라봤다.
“불가능하다, 안 된다 이런 짜는 소리하면 나한테 맞을 줄 알아.”
***
‘아퀼로 잘하고 있으려나.’
바다 위에 선 하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퀼로가 생각해 낸 방법, 그것은 바로 하현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너는 불간섭 때문에 마법의 부작용은 없을 거야. 그걸로 네가 기초가 되는 것들 위주로 70%를 익혀. 그러면 내가 그 지식을 토대로 저 녀석들을 가르칠게.’
아퀼로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익힌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마법을 배우는 것 자체에는 부작용이 없던 것이다.
덕분에 아민과 지호는 공간마법의 기초를 탄탄히 가르쳐 줄 드래곤과 대마법사, 두 명의 스승을 얻게 된 것이다.
‘뭐 어차피 지금은 일반적인 사람 정도니까. 두들겨 패거나 그러진 못하겠지.’
거기다 아퀼로가 말은 그렇게 해도 무작정 사람을 두들겨 패거나 그럴 것 같지도 않다. 하현은 괜한 걱정이라며 생각을 정리하고 스탯창을 바라봤다.
[하현]
레벨 : 457 칭호 : 경계의 이동자
생명력 : 4,670/4,670
마나 : 4,660/4,660
힘 : 2,752 민첩 : 470
체력 : 467 지력 : 466
공격력 : 550 방어력 : ???
추가 스탯 : 0
‘SS급 던전이랑 차원의 기둥을 잡아서 24…… 많이 올랐다고 봐야겠지.’
벌써 400레벨 후반 대,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이 상승세를 알면 뭐라 말도 안 나오리라. 스탯창을 끈 하현은 이번에 새로 얻은 칭호를 살펴봤다.
[경계의 이동자]
차원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 5%증가.
-차원의 경계로 진입하는 속도가 50% 상승합니다.
‘흠. 크게 이득이랄 것도 없는 칭호네.’
굳이 효과를 따지자면 전투 중에 차원의 경계를 좀 더 빠르게 들어갈 수 있는 정도리라. 조금 아쉬운 칭호에 하현은 입맛을 다셨다.
‘어느 정도 민첩전환의 단점을 막아준 거긴 한데…… 그래도 아쉽네.’
차원의 경계로 오가는 민첩전환은 지금 상황에서는 꽤 단점이 많았다. 당장 지난번 전투에서 공격 사이의 딜레이 때문에 니레이크에게 반격당하지 않았는가.
‘거기다 방어로 전환되는 민첩이 형편없어서 방어력도 약해. 잘못 맞으면 훅 가겠지.’
회피를 중점으로 둔 스킬이라 어쩔 수 없지만, 광범위 계열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도 상당한 약점이었다.
‘결국 불간섭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지.’
불간섭 이외에도 힘을 단련해야만 한다.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현은 발밑에 깔린 바다를 바라봤다.
‘그럼 지금은 이 힘이 최우선이야.’
눈을 지그시 감은 하현은 이전에 아퀼로가 일러준 충고를 떠올렸다. 물을 자신의 팔다리의 연장선이라고 상상한다. 그 생각에 따라 주변의 물이 뒤흔들렸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물줄기가 꿈틀거리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그 크기가 거대해져 하현의 주변으로 거대한 물기둥이 만들어 졌다.
‘좀 더!’
하현의 의지에 따라 물기둥이 더욱 세차게 회전했고, 사람 한 명은 간단하게 찢어발길 수 있을 무시무시한 흉기로 변했다.
‘간다!’
회전하는 물기둥을 들어 올린 하현은 그대로 바다를 향해 내려찍었다. 거대한 물보라를 만들어낸 물기둥은 그대로 사라졌고, 하현은 방금 전 일격을 평가해 봤다.
‘완전 쓰레기야.’
어디까지나 일반인에게 매우 위험한 정도, 괴물로 치면 C급들에게나 유효타로 들어갈 수준이었다. 가진 힘의 절반도 못 끌어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바다 위에서도 이 정도인데 힘의 절반밖에 안 되는 지상에서 더하겠지. 좀 더 힘을 정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해.’
바다에서라면 최악의 상황에는 그냥 온 힘을 다해 휘둘러도 효과가 있겠지만, 지상에서는 다르다. 그렇기에 하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퀼로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었다.
‘어차피 마법을 개발하고 외부세계로 나갈 때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다. 그사이에 최대한 강해져야 해.’
아퀼로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익숙해진다. 새로운 목표에 하현의 눈이 차갑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