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09화 (109/158)

# 109

니레이크의 등장과 죽음은 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라면 여태껏 하현이 의아해하던 회장과 그와 관련된 관리자들의 정체였다.

“이미 알고 계신 분은 있겠지만…… 저희는 페젤론의 인간입니다.”

하현을 비롯한 그 일행을 본 회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의 뒤편에는 그와 마찬가지인 페젤론 출신 관리자들이 서 있었다.

“아주 먼 과거, 저는 이 대륙의 위로 소환되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을 괴물에게 대항하지 못한 채 멸망을 눈앞에 둔 상태였고, 저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과 대항하였지요. 그게 이 협회의 시초입니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회장의 이야기에 모두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회장이 말한 내용은 어마어마한 사실이었다.

“그럼 회장님은 수백 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말입니까?”

아민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들이 토벌자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회장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이전에야 강력한 마법사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예.”

아민의 물음에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페젤론에서 떨어져 나온 기억입니다. 이 상태에서 더 이상 변하지 않지요.”

차원의 틈에서 나타난 대부분의 괴물들이 그렇듯 회장도, 관리자들도 똑같았다. 무력이 상승하지 않고, 늙지도 않는다. 사진 속의 인물처럼 그 순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민철이 회장을 바라봤다.

“이십 년 전의 대재앙…… 그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히 거기에 자신들이 모르는 사연이 더욱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번 2차 대재앙을 일으킨 어둠이 관련되어 있으리라. 그것이 민철의 생각이었다.

“그걸…… 말씀드려야겠군요.”

더 이상 숨길 수는 없다. 회장은 끝까지 비밀로 해왔던 이야기를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딱히 누군가에게 지배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가장 강했기에 대표를 했고, 다른 이들은 저의 생각에 동조하여 협조해 온 것이지요.”

물론 마냥 평화로운 협조는 아니었다. 이 대륙을 다시 한 번 지배하겠다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 살겠다며 이곳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은 모두 죽였다.

조금 거칠었지만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계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난은 감수하며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페젤론에 의해 멸망할 위험을 겪은 것도 모자라 대항할 기회도 박탈당했을 테니.”

페젤론의 주민은 시련을 생성하거나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시련을 이용한 성장 시스템은 오로지 이 차원의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시련이라는 시스템이 마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책이었기에, 회장은 그 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해 페젤론의 인간을 통제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페젤론의 인간과 현 세계 인간들의 혼혈이었습니다.”

“혼혈…….”

회장의 생각에 페젤론의 인간들이 찬성한 이유는 자신들이 이 세계에서 철저하게 외면된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아이도 낳을 수 없었고, 성장도 노화도 없다.

그 사실에 그들은 전혀 이 세계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 우연히 한 페젤론의 인간이 현 세계의 주민과 사랑에 빠졌고, 놀랍게도 아이를 출산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이십 년 전 대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세상에 겉도는 것을 질색한 이들은 그것을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회장의 생각에 반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것은 곧장 길드라는 세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협회 내부 세력에 도움을 받은 길드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동시에 서로 간의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협회와 길드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지요.”

도대체 어디까지 썩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당시의 협회는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다리고 있던 적에게 큰 기회였다.

“그때를 노린 누군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어둠이 잠시 소홀해진 던전을 습격해 폭주시켰고, 그 결과 대재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대재앙이 수습되고 회장을 비롯한 그의 측근은 강경하게 나갔다. 혈연을 만든 자들을 모두 처형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자들의 존재를 음지로 넣은 것이다.

그 이후의 처리는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비협회 세력을 흡수하여 어둠이 다시 일으킨 2차 대재앙을 보면 그때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이전의 대재앙도, 이번의 대재앙도 페젤론의 주민들 간의 의견 차이로 빚어진 사건이군요.”

“……그렇습니다.”

민철의 물음에 회장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S급 토벌자 중에 존재하는 네 명의 페젤론의 인간. 그중 세 명이 모든 사건의 용의자였다.

결국 모두 페젤론의 인간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페젤론의 인간을 대표해 대재앙에 대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회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관리가 부족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고개 숙인 그들을 바라보던 민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협회의 분들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요. 원흉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원흉은 그 3명이다. 어설프게 원한의 화살을 페젤론의 인간에게 돌릴 수는 없다. 민철의 사정을 알고 있는 회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보다 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태껏 조용히 있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것을 본 하현은 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페젤론의 주민들도 괴물들과 같은 겁니까?”

처음 그 질문에 다른 일행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윽고 하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고, 그들도 놀란 눈으로 회장을 바라봤다.

“……예.”

하현의 질문을 이해한 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질문의 의도는 단순했다. 페젤론의 기억들은 페젤론과의 연결점이 되어 침식을 앞당겼다.

그렇기에 던전도, 괴물도 없애야만 했고, 가장 큰 걸림돌인 차원의 기둥들을 죽여야만 했다. 그럼 똑같은 페젤론의 기억인 인간들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하현의 생각이었고, 정답이었다.

“협회 내부 페젤론의 인간 중에 차원의 기둥이었던 자는 아마 그 사라진 세 명을 제외하고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희의 존재가 페젤론과 연결점이 되는 것은 여전합니다.”

이 사실이 회장의 반대파들이 격렬히 반응한 이유기도 했다. 왜냐면 차원의 기둥이 모두 사라지고 최후의 시련이 완수되는 순간, 그들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회장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처음 페젤론의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의심이 먼저 들었다. 혹시 자신들을 조종하기 위해서 협회를 만든 것이 아닌가하고.

하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현 세계의 주민들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저희 나름대로의 속죄였습니다. 죄 없는 차원에 저희들의 잘못을 가져오게 된 것이니 말입니다.”

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이야기로 미묘하게 남아 있던 서로 간의 의심이 떨쳐졌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얼추 해결됐네.’

「잘하네.」

아직 싸울 적이 남았는데 서로 의심하며 분열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 됐다. 그렇기에 하현은 아퀼로와 맞대고 타파할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그럼 슬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까.’

다른 이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하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니레이크와 싸우면서 어둠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했었습니까?”

“어둠의 정체가 페젤론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하현의 말에 회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애매한 힌트였다. 니레이크가 살아오면서 도움을 받은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같이 성장했다니 비슷한 마법사를 고르면 좁혀지기는 하겠지만, 마법사인 그가 얼마나 많은 마법사를 만났겠는가.

“추려내기는…… 몇 명 가능하겠지만 거의 힘들군요.”

“무엇보다 만난 기점이 어느 순간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눈앞의 회장은 30대의 니레이크지만 차원의 기둥으로 소환된 니레이크는 최소 60대는 넘었다. 그 말은 즉 회장이 모르는 30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 공백기 사이에 만났다면 사실상 추려내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저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던전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죠.”

회장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방법은 던전을 통해 회장의 알려지지 않은 페젤론에서의 일대기를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흠.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마치고. 저도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의 진지한 표정에 다시 한 번 이목이 집중되었다. 잠시 말을 가다듬은 회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바깥에 있는 외부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흐음…….”

모든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하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은 이전에 하현이 라젤린에게 들은 것처럼 외부세계에 대한 사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하현을 제외한 모든 이가 상당히 충격을 먹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보고 배운 바로는 이 대륙이 전부였으니.

여기보다 더 큰, 거기다 괴물들에게 점령되다시피 한 던전이 있다고 하면 믿기지 않는 게 당연하리라.

‘외부세계의 토벌인가…….’

니레이크와의 싸움은 여태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위협을 줬지만, 우습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하나 있었다. 바로 니레이크에 의해 사라진 던전들이었다.

‘B급과 A급, 거기에 S급까지 섞였을 줄은.’

니레이크의 마력량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고, 그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강력한 던전이 필요했다. 때문에 니레이크는 하현과 싸우면서 고랭크의 던전들만 흡수한 것이다.

‘갑자기 여유가 생긴 상급 병력을 이용한 외부세계의 본격적인 토벌. 꽤 좋은 시도야.’

페젤론과의 융합이 진행된 외부세계는 위험한 장소이긴 했지만, 그 만큼 차원의 틈을 닫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장소이기도 했다.

점점 멸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협회의 입장에서는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위험천만하지.」

하현의 생각을 읽고 있던 아퀼로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너희들 입장이면 가는 게 맞긴 하지만 각오는 좀 해야 할 거야.」

‘흐음. 외부세계에 가본 적 있나 보네?’

여태까지 아퀼로는 대륙의 바깥쪽 바다에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한 번쯤 외부세계에 가볼 법도 했다.

「가보기는 했지. 하지만 바다 위로 올라가면 내 힘이 너무 약해져서 바깥쪽에서 살펴보기만 했어.」

‘어떤 곳이었는데?’

아퀼로 차원의 기둥만큼 강력한 드래곤이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외부세계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하현의 물음에 아퀼로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난장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

‘흐음…… 어떤 식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아퀼로가 대답했다.

「하늘에 바다가 있고 공기 중에 용암이 떠다니며 바닥은 하늘인 것 같은 장소?」

‘……뭐야, 그건.’

「비유이긴 한데, 그만큼 난장판이야.」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난장판이라니, 이미 무언가 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외부세계, 다른 대륙은 많아. 뭐 그중에서 색이 뚜렷한 건 몇 가지뿐이지만…… 어쨌든 괴상망측한 장소인데다가 괴물들이 더럽게 많단 거야.」

‘흐음. 꽤 힘들겠네.’

온갖 괴물들이 판치고 있는 장소. 거기서 자리를 잡기 위해, 차원의 기둥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이 싸워야 할까. 협회의 전력으로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까마득한 일이었다.

「아. 뭐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쪽에 적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 알았잖아. 페젤론에서 건너오는 녀석들이 괴물만 있는 게 아닌 거.」

‘아.’

하현은 그제야 아퀼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했다. 이전에 라젤린은 자신에게 사실을 숨기기 위해 괴물만 있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곳에도 페젤론의 인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이 확실히 쉬워질 수도 있겠네.’

「그런 거지. 어쩌면 나같이 쓸 만한 녀석이 도와줘서 훨씬 수월할 수도 있고.」

‘그러면 진짜 편하긴 하겠네.’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피식 웃었다. 이전에 캘시퍼가 딱딱하게 정보를 정리할 때만 생각해 보면 지금이 좀 더 좋은 느낌이었다.

「회장 녀석이 정리할 게 있다고 하니까 너는 일단 내 권능에 익숙해지기부터 해. 그게 제일 급한 일이니까.」

‘음. 그것도 그렇지만 한 가지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하현은 저장고에서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바라봤다. 낡아 보이는 갈색 가죽 책. 니레이크의 모든 마법이 담겨져 있는 마법서였다.

‘이걸로 남은 던전들도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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