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07화 (107/158)

# 107

갑작스럽게 난입한 하현의 등장에 내부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갔다. 니레이크는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다른 이들은 듬직한 아군의 등장에 반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당사자인 하현은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눈앞에 적으로 보이는 자가 보여서 일단 후려쳤다. 그런데 다시 보니 회장과 거의 비슷한 얼굴의 사내가 아닌가?

‘약간 노쇠했지만…… 동일인물이 분명해.’

그 정도로 판박인 얼굴. 거기다 방금 펼친 공간계열 마법을 보면 어느 정도 회장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일까 생각하던 하현의 귓가에 아퀼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족 관계가가 아니라 회장 본인이야. 아마 3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같은데. 추론도, 내 직감도 그래.」

아퀼로의 말에 하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지금 보이는 힘, 그리고 이전의 징조들을 생각해 보면 눈앞의 존재는 차원의 기둥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차원의 기둥이…… 미래의 회장이라고?’

도대체 어떻게 되면 미래의 회장이 차원의 기둥으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설마…….’

「그럴싸하네. 네가 평소에 가지던 의문도 해결되고.」

간혹 보이는 서구적인 외모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하현은 그에 대해서 늘 궁금하게 생각했지만, 그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페젤론의 사람들이었나.’

이제야 그들이 간혹 보이던 표정과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하현은 당황스럽던 속내를 정리하고 니레이크를 바라봤다.

“……당신이 회장입니까?”

“나는 네놈들의 수장 따위가 아니다.”

하현의 물음에 니레이크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볼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이 짜증의 주된 원인이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뭐지, 저 녀석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주변에 강렬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처럼 공간을 동결, 아니, 단절시켜 놓은 것마냥 주변과 격리된 것 같았다.

‘그래. 그 메시지에 남겨진 녀석이 저놈인가.’

도시에는 니레이크의 소환진과 어둠이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마법진이 있었다. 메시지에는 대강의 상황과 니레이크가 했으면 하는 일, 그리고 주의해야 할 것이 적혀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을 두른 남자를 조심해라…… 저놈을 말한 거였어.’

방금 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단순히 시련을 이용한 이동의 우연이었지만, 니레이크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하현을 경계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렇다면 단숨에 죽인다!’

니레이크의 마력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하현의 주변 공간이 우그러졌다. 다른 사람들이 손쓸 새도 없이 벌어진 강력하고 빠른 일격.

카앙!

“……!”

하지만 하현의 몸에 닿은 순간 공간마법은 하현의 몸을 찌그러트리지 못하고 삐그덕거렸다. 거기에 하현이 주먹을 휘두르자.

후웅!

흐트러진 마법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그 기상천외한 모습에 니레이크의 몸이 굳은 사이 하현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도약한 하현은 온 힘을 다해 니레이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터엉!

건조한 소리와 함께 하현의 주먹이 니레이크의 앞에서 멈췄다. 방어막과는 조금 다른 감각에 하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건…….’

콰아앙!!

의아해하는 사이 하현의 몸이 니레이크에 의해 밀려 건물에 처박혔다. 하지만 먼지만 살짝 묻었을 뿐, 상처를 입은 곳은 없었다.

“…….”

“…….”

서로를 바라본 니레이크와 하현은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쉽게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싸움을 회피하라고 한 이유도 이런 거였군.’

어둠은 하현을 만나면 한시도 주의를 놓치지 말고 가급적이면 싸움을 피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계책을 제안했었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했지만, 방법을 바꿀 필요성이 있는 듯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군.’

물리적으로 죽일 수 없다면 마음을 죽여야 한다. 그것은 니레이크가 이전에 몇 번이고 써온 방법이기도 했다. 잠시 동안 대치 상태가 지속되자 니레이크를 바라보던 회장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지금 이미 마력을 상당히 소모했습니다. 하현 씨도 왔으니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마력이 바닥날 겁니다.”

공간마법은 절대적인 위력만큼 상당한 마력을 소모한다. 아직까지는 SS급이라는 등급에 걸맞은 무지막지한 힘을 보여줬지만 그 대가로 마력은 반 이하로 내려갔다.

물론 그 대가로 일곱 명을 거의 탈진 직전까지 만들었으니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해서 전투가 진행됐으면 몇 명은 죽었으리라.

‘하지만 하현 씨가 합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방금 전 공방에서도 충분히 보였다. 여덟 명이 계속해서 몰아붙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허튼 생각을 하는군.”

그 생각을 읽어낸 니레이크가 피식 웃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회장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마력이 바닥난 마법사는 레벨의 의미가 사라질 정도로 나약한 존재다.

그런데 마력이 반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저런 여유를 보인단 말인가.

“뭐, 아직 네 수준에서는 그렇겠지.”

피식 웃은 니레이크가 남아 있는 오른 손을 뻗어 까딱였다.

꽈드득!!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회장의 고개가 소리 난 방향으로 돌려졌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허공에 떠오른 작은 포탈이었다.

‘포탈?’

갑자기 왜 공간을 생성한 것인가? 그 행동에 조금 의아하게 여기던 회장은 무언가 다른 것을 깨달았다.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다. 이미 있던 공간인 것이다.

“고, 공격하세요!”

회장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외쳤다. 그 말에 위험함을 느낀 일행이 모조리 니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중에 공간이 왜곡되어 길을 막았지만, 회장이 그것을 풀어냈다.

거리를 좁힌 이들이 각자의 공격을 퍼부어 니레이크의 주변을 후려쳤다. 단절된 공간이 일그러진 순간,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작정하고 너희들을 피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간마법은 그런 분야니까.”

반대편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방금 전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또 막대한 양의 마력을 소모했다. 하지만 니레이크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대신 마력이 바닥나겠지. 그렇게 싸움이 진행되면 결국 죽을 테고.”

니레이크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포탈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회장은 그제야 그 포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도시의 외곽 지역에 있는 B급 던전.

니레이크가 움직이고 있는 포탈은 그 던전의 포탈이었다.

‘어떻게?’

던전의 포탈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저걸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 설마 이전처럼 던전을 또 폭주시키려는 건가? 수많은 의문이 회장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너희들의 생각이고.”

니레이크가 입가가 일그러지면서 오른손이 움켜쥐어졌다.

빠각!

그 움직임에 따라 포탈이 뭉개지고, 폭주의 징조처럼 검은색 기운이 흘러나오려 했다. 그때 니레이크의 손이 다시 한 번 움직이면서 그 검은 기운들을 빨아들였다.

“뭐…….”

그제야 회장은 니레이크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던전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담긴 공간이었다. 니레이크는 그것을 먹어치우고, 마력을 회복한 것이다.

자신의 경지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믿길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술. 그것이 공간마법의 대가이자 인간을 멸망시킨 대마법사 니레이크의 힘이었다.

“일반적인 공간은 먹어치우기도 힘들고 그 뒤처리도 힘들지. 하지만 여기는 정말 좋군. 이런 고밀도의 공간이 여기저기 퍼져 있다니.”

피식 웃은 니레이크의 모습에 회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전국에 퍼져 있는 수많은 던전이 모두 니레이크의 마력이 될 수 있다.

그 말은 즉 니레이크가 마음만 먹는다면 마력이 바닥날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너희들은 강하다. 이렇게 왼팔도 잘렸으니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니레이크의 몸이 더욱 위로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싸우기 위한 준비와는 달랐다.

“그래서 나는 너희와 싸우지 않을 거다. 대신 너희가 싸울 수 없도록 만들어주지.”

경악한 토벌대를 바라보며 니레이크가 히죽 웃었다.

“지킬 인간들이 사라지면 싸울 생각도 들지 않을 테니.”

후웅!

니레이크의 모습이 토벌대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토벌대 전원의 몸에 오한이 들었다.

“당장 찾아!!”

지호의 외침에 토벌대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간전이를 추격하는 마법은 그 소모가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마나를 사용해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추격마법이 니레이크를 뒤쫓아 빠르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위치를 파악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최남단…….”

중부 쪽에 있던 니레이크는 순식간에 최남단으로 이동했다. 그것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위로. 회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텔레포트르 마법진을 준비하세요!”

당장 가서 막지 않으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자신들이 지금 마법진을 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 수천 명을 죽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게 마법사란 존재다.

거기다 곳곳에서 마력을 충전할 수 있는 마법사라면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도시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최악의 상대였다.

“마력을 공급하겠습니다!”

지금 모든 토벌대가 가봐야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전력이 될 S급 이상의 토벌자들만 마법진의 위로 올라섰고, 마법진이 빛을 내며 발동했다.

카앙!

하지만 그 마법진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회장은 공간마법을 발동했고, 니레이크가 전력을 다해 비틀어놓은 공간의 덫을 발견했다.

‘이 정도면 거의 남은 모든 마력을…….’

자신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마법. 이렇게까지 사용하면 공격할 마력은 남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당장 이곳 밖으로 나가서 다시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행히 물리적으로 막아두지는 않았다. 도시에서 벗어나 당장 사용하면 되리라. 그 말에 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늦는다.’

도시의 밖으로 뛰어서 벗어나고, 마법진을 다시 설치한 뒤 이동한다. 그 정도 시간이면 니레이크가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다.

압도적인 기동성의 차이. 난생처음 보는 유형의 적에 토벌대 전원이 패닉에 휩싸였다. 그 순간에 하현은 여기서 가장 마법이 뛰어난 아퀼로에게 물었다.

‘아퀼로. 어떻게 하지?’

「솔직하게 말하면 답이 없어. 당장 비슷한 기동력을 지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상황이야.」

다른 것도 아니고 공간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마법사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방법이라면 공간마법을 차단하는 일이지만, 저 정도 실력자라면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방법도 사전에 눈치채서 피할 수도 있어. 지금 녀석이 노리는 건 너희들이 아니라 지키는 인간들이니까.」

이미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아퀼로의 단언과도 같은 말에 하현의 얼굴이 굳었다.

‘기동성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니레이크의 뒤를 쫓아가는 것과 싸우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즉 비슷한 수준의 공간마법을 다루는 자가 아니라면 싸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완벽하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 하현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아퀼로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너 한번 해볼 만한 거 있잖아.」

‘뭐?’

「이번에 얻은 거 말이야. 한번 써보지 그래.」

아퀼로의 말에 도시 밖으로 달려 나가던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번뜩 떠올랐다. 이번에 얻은 능력.

‘불간섭의 민첩전환…….’

민첩은 보통 기동성과 관련된 이미지다. 그것이 만약 불간섭과 만난다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알 수는 없지만 방법이라고 하면 그것이 유일하다.

‘그것도 추론 결과야?’

「아니. 그냥 찍어보는 거야.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그 녀석 생각대로 모조리 죽을 테니까.」

만약 이성적인 캘시퍼라면 권유하지 않았을 방법. 실제로 지금 딱 필요한 능력이 나올 가능성은 20% 미만이었다. 하지만 아퀼로는 그런 확률에 굳이 매달리지 않았다.

당장 자신이 하현에게 건 것도 확률적으로 낮았지만 어디 신경을 썼던가. 어차피 망할 거라면 질러보는 것도 답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절망하는 것보다 질러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결단을 내린 하현은 도시 밖으로 달려 나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에 앞서 달려 나가던 토벌대들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현 씨?”

“방어전환.”

설명할 시간은 없다. 하현은 천천히 마음을 다잡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민첩.”

몸을 둘러싸던 하현의 방어막이 사라졌다. 알몸이 된 것 같은 오싹한 기분.

「……미쳤는데.」

하현의 힘을 알아차린 아퀼로가 어이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하현은 주변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깨달았다.

자신 주변의 세계가 완전히 변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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