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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어력 무한-104화 (104/158)

# 104

던전의 풍경이 조금 변했다. 장소는 아퀼로의 레어였지만 그 안에는 다른 자가 서 있었다.

딱 한 번 본 적 있었던 맹수와도 같은 사내.

검은 갑옷을 입은 마왕이 아퀼로와 대면하고 있었다.

“해룡 아퀼로. 다섯 색 중 푸른색을 담당하는 드래곤.”

마왕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아퀼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치 곧 자신이 도살할 가축의 번호를 읽는 것처럼, 그 말투는 무척이나 평이하고 무관심했다.

[……마왕이었나.]

마왕을 내려다보던 아퀼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퀼로는 마왕과 마주친 순간 패배를 확신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 말대로 아퀼로는 지금 마왕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저 눈앞에 평범하게 서 있을 뿐인데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아퀼로가 압도당한 것이다.

“쾌락을 탐한다더니 그 말대로 생각이 짧군.”

우드득

마왕의 두 주먹이 움켜쥐어지자 레어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공간을 억누르는 마왕의 투기에 아퀼로 또한 자신의 힘을 이끌어냈다.

심해는 해룡에게 있어 무한한 마나의 보고였고, 모든 마법이 강력해지는 절대적인 장소다. 그 안에 들어온 아퀼로가 패배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드래곤과 합류하지 않은 오만. 그것이 네놈이 죽는 이유다, 드래곤이여.”

콰앙!

마왕의 일권과 아퀼로의 마법이 맞부딪치며 강렬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던전의 풍경이 다시 한 번 뒤바뀌고, 그곳에 나타난 것은 쓰러진 아퀼로와 상처투성이인 채로 서 있는 마왕이었다.

-마왕과 해룡 아퀼로의 전투를 목격하셨습니다. 페젤론의 역사를 보셨습니다.

-던전 ‘해룡의 쉼터’의 완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풍경이 뒤바뀌고 하현은 어두컴컴한 심해 한복판에 나타났다. 다른 이였다면 큰일 날 상황이었겠지만, 하현은 별다른 문제없이 알림창들을 바라봤다.

-해룡 아퀼로의 호감을 받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칭호 ‘아퀼로의 선택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으로 ‘해룡의 쉼터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아퀼로의 선택자라…….’

새롭게 생겨난 칭호에 하현은 이번에 얻었던 칭호들을 읽어봤다.

[드래곤을 넘어선 자]

드래곤과의 힘을 겨뤄 승리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드래곤들에게 약간의 호감을 얻습니다.

[아퀼로의 선택자]

아퀼로에게 선택받은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5%상승합니다.

-아퀼로에게 높은 호감도를 받습니다.

-아퀼로와 행동할 때 추가로 전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아퀼로와 관련된 모든 것에 10% 추가 효능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 얻었던 칭호는 그저 그런 칭호였고, 이번에 얻은 칭호는 철저하게 아퀼로에게 맞춰졌었다. 그것을 본 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죽었는데 말이지.’

아퀼로가 이미 죽었기에 딱히 큰 효능을 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새삼 칭호를 보니 하현은 아퀼로가 살아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칭호의 효능 때문보다는 그저 조금 더 친하게 지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질없지.’

아퀼로에 대한 생각을 떨쳐낸 하현은 이곳에 온 목적이었던 알림창을 바라봤다.

-해룡의 쉼터의 완수 기여도가 40% 이상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공방전환 스킬이 ‘방어전환’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롭게 바뀐 스킬의 이름에 하현은 스킬 정보를 바라봤다.

방어전환(Lv.MAX) : 액티브. 체력 스탯을 다른 스탯과 수치를 바꿉니다. 각 스탯과 관련된 칭호와 아이템, 스킬의 효과는 함께 변환할지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환 가능한 스탯 : 체력->힘. 체력->민첩.

‘흐음…… 일단은 가능해졌네.’

이제 불간섭을 민첩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효과는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사 효과는 아니리라.

‘이건 나중에 보고…… 이것부터 실험해 볼까.’

하현은 저장고에 넣어뒀던 아퀼로의 드래곤 하트를 꺼냈다. 물건이 물건인지라 써보자고 하면 여러 방면에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냥 드래곤 하트를 섭취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것들도 다 나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이 강해지는 게 더 중요하지.’

장비들도 자신의 힘이라고 할 수야 있겠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 결국 슈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구력이 한정되어 있는 물건들이니.

‘……잘 써먹겠습니다.’

아퀼로의 모습을 떠올린 하현은 드래곤 하트를 가슴에 가져다 대며 살짝 눌렀다. 그러자 푸른색 보석이 푸른색 실로 변해 몸 안으로 녹아내렸다.

-상태이상 ‘드래곤 하트 과부하’에 저항하셨습니다.

-드래곤 하트를 완전히 섭취하셨습니다. 마나와 마나 재생력이 늘어납니다.

-해룡 아퀼로의 권능을 80%까지 사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 바다, 폭풍의 권능을 획득하셨습니다. 권능의 특성상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위력이 최대 50%까지 감소합니다.

알림창과 동시에 하현의 몸에서 푸른색의 은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주변의 바다가 그에 호응하듯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냈다.

‘와…… 잠깐만…… 이거 뭐 이렇게 세?’

갑작스럽게 얻은 권능이 미친 듯이 폭주하며 심해를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아마 바깥이었다면 태풍이라도 몰아닥친 것처럼 무시무시한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게…… 끄응…… 안 되는데.’

신에게 부여받아 드래곤으로서 수백, 수천 년을 단련하고 강화시킨 것이 바로 아퀼로의 권능이다. 그것을 얻은 지 단 하루밖에 안 되는 하현이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이대로라면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다. 하현이 곤란해하던 찰나.

-드래곤 하트에 아퀼로의 기억이 남겨져 있습니다. 기억을 인격이 서린 물건에 부여할 시 권능의 사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림창의 말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퀼로의 기억을 통해 권능을 조절할 수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하현은 이레아와 아오른에게 물었다.

‘너희들한테 기억 넣어도 되겠어?’

《상관은 없지만…… 잘못하면 인격끼리 뒤섞여 혼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흔들리면 기술이 소실되는 거나 다름없어. 그건 권능의 조절에도 똑같겠지. 가능하면 지능은 있되 감정은 없는, 그런 인격에 적용시키는 게 좋을 거야.>

까다로운 조건에 하현이 얼굴을 찌푸릴 때, 한 가지 적합한 대상을 떠올렸다.

‘캘시퍼.’

「말씀하십시오, 마이스터.」

‘너한테 기억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아퀼로의 기억을 넣을시 크게 문제없이 인격이 형성되리라 생각됩니다. 단 감정이 생기면서 잠시 동안은 기능이 70% 수준으로 저하될 것입니다.」

때때로 이야기하면서 캘시퍼가 감각이 있다고, 그렇게 느껴진 적이 많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하현의 착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퀼로의 기억을 부여한다면 그때는 정말 캘시퍼는 하나의 인격체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지.’

30%의 성능 하락도 결국 되돌아올 것이고 무엇보다 지금은 권능을 조절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퀼로를 다시 보고 싶은 것도 하현의 생각이었다.

‘아퀼로의 기억을 캘시퍼의 동력원에 덧씌우겠다.’

-아퀼로의 기억이 캘시퍼의 동력원에 적용됩니다.

하현의 몸에서 아주 잠시 푸른색 빛이 반짝이고, 곧 빛이 꺼지면서 잠잠해졌다.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하현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아랫배에 힘 꽉 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주변의 미쳐 날뛰는 힘들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현은 왠지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에 미소를 지으며 시키는 대로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도움을 받아 조금씩 권능의 힘들을 안쪽으로 갈무리해 갔다. 주변에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폭풍이 조금씩 잦아들며 잠잠해졌다.

「이런 형태로 살아날 줄은 몰랐는데.」

캘시퍼, 아퀼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새겨진 기억은 의식이 끊기기 전까지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캘시퍼에 담긴 기록을 이어받았기에 아퀼로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섞이면서 부작용 같은 건 없어요?

「있다면…… 널 마이스터라고 부르고 싶어지거나 존대하고 싶어지는 것 정도?」

보아하니 아퀼로와 캘시퍼의 인격은 성공적으로 융합된 모양이다. 하현은 조금 기묘한 기분에 어색하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단순히 아퀼로라고 부르기에는 섞여 있는 캘시퍼의 기억이 애매했다.

「흐음…… 아퀼로라고 불러. 그편이 더 좋아.」

캘시퍼는 감정이 없는 단순한 인공지능이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자아는 아퀼로가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캘시퍼보다는 아퀼로에 더 가까웠다.

‘음…… 그러면 아퀼로 씨라고…….’

「아니, 아퀼로라고 불러. 일단은 캘시퍼가 섞여서 그런지 존대는 좀 그래.」

‘그럼…… 아퀼로라고 부를게.’

「좋아. 딱 적당하네.」

하현의 말에 아퀼로는 웃음기 머금은 말투로 대답했다. 평소에는 무뚝뚝한 캘시퍼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하현은 상당히 어색하면서도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보다 이제 위로 좀 올라가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래?」

‘아아, 그렇지.’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잠재워진 권능의 힘을 다시금 끌어 올렸다. 이전처럼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현은 기운을 조금씩 끌어냈다.

「너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야. 원래 권능이란 게 이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드래곤들이 지닌 권능은 마법 같은 것보다는 자연현상에 가까웠다. 아퀼로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주변에 습기가 차오르면서 비와 폭풍이 몰아치기 쉽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재앙과도 같아서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관계 없이 나타났다. 하지만 하현은 그런 부작용을 불간섭으로 완전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밖으로 내뿜어져야 할 권능의 힘이 네가 지닌 그 불간섭이라는 힘에 막히는 거지. 일상생활도 못할 걸 막아준 거니까 운 좋다고 생각해.」

‘그건 다행이네.’

「뭐 불간섭이 없었다면 힘의 20% 정도밖에 못 얻어서 이런 일도 없었겠지만. 오~ 이거 추론기인가 뭐신가 편하네. 생각이 훅훅 돌아가는데?」

캘시퍼의 성능에 아퀼로는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이 싱글벙글 거리며 이야기했다. 그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하현은 피식 웃으며 권능의 힘을 조절했다.

‘내가 가진 권능의 힘은 80% 정도…… 거기다 칭호 효과까지 적용되면 거의 본래 능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한마디로 바다 위에서는 거의 아퀼로에 가까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은 익숙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위력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힘이다.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 되겠지.’

하현은 아주 작게 끌어 올린 권능의 힘을 이용해 몸을 위로 띄우기 시작했다. 소량의 힘이었지만 하현의 몸은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푸화아악!!!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고, 하현은 다시 수면의 밖으로 나왔다. 아퀼로의 힘 없이 수면 위를 자연스럽게 밟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하현은 어색함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야.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는데.」

‘음?’

「아까 전에 말이지…….」

강렬한 공간의 일그러짐을 느꼈다는 아퀼로의 말에 하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원의 기둥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징조라니.

‘아니지. 라젤린 씨 말대로라면 외부세계에서는 자주 나타난다고 하니까…… 거기일 수도 있어.’

하지만 미묘하게 불길함이 증폭된다. 차원의 기둥이 그렇게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자가 저 대륙의 안에 있다.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증폭된 불안감에 하현은 곧장 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가 가는가 싶더니 곧장 진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현 씨?! 지금 살아계시는 겁니까? 여태까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만 습격당하신 줄 알고…….”

다급한 목소리. 그에 하현은 자신이 초열지옥 안에 있는 동안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입니까. 최대한 빨리 말해주세요.”

“……차원의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회장님과 검은 황소의 간부분들이 합류한 추격대가 있습니다.”

“현재 상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연락과 접근이 모두 차단된 터라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 하현은 표정을 굳히며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위치를 알려주세요.”

진한에게 위치를 전해 들은 하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일이 제대로 터진 모양이네.」

‘지금 당장 가야 해. 잘못하면 큰 사상자가 나올 거야.’

권능을 통해 바다를 건너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해안가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있다. 하현은 곧장 시련을 생성했다.

[폐허가 된 도시로의 이동]

폐허가 된 도시에는 공간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다. 그 법칙을 깨고 도착하기에 위해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난이도 : 없음

보상 : 도시로의 이동

-시련을 수락하는 즉시 ‘하이룬의 펜던트’ 또는 저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장비들이 소멸됩니다.

“뭐…….”

시련의 내용을 본 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 도시로의 이동으로 이 정도 대가를 필요로 하다니.

‘아니…… 아니다. 요구하는 게 많다는 건 그만큼 사건이 더 크다는 거야.’

단순히 거리의 이동으로 이 정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저 일그러진 공간의 상태라는 것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이리라.

‘아까워할 시간은 없다!’

어차피 그깟 장비들로는 캘시퍼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돈을 조금 만질 뿐이다. 하현은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시련을 수락한다!”

하현의 외침과 동시에 저장고에 있던 종족말살전쟁에서 얻은 장비들이 사라졌다.

후웅!!

그리고 하현의 모습이 바다 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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