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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어력 무한-103화 (103/158)

# 103

“22시간…… 생각보다 잘 버티네.”

시간을 확인한 아퀼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정된 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의외야.’

하현의 몸을 감싼 힘이 강력하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속 시간도 없는 그런 힘일 줄은 몰랐다.

‘좀 더 절대적인 힘인가.’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절대로 깰 수 없는 절대적인 방어력. 그것이 하현의 주변을 두른 힘의 정체라고 아퀼로는 예상했다.

‘그렇다면 정말 최고인데.’

아퀼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깰 수 없는 절대적인 방어력. 그만큼 말이 필요 없는 힘이 있을까. 자신이 고른 패의 강함에 아퀼로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죽겠네.’

사실상 하현은 이미 자신의 모든 조건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하현이 밖으로 나오면 자결하고 자신의 근원인 던전은 사라지게 되리라.

남기는 것도 없이 완전히 죽어버린다는 사실에 아퀼로는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자신은 이미 죽은 존재. 그 껍데기 같은 것이었기에 큰 미련은 없었다.

‘저쪽에서의 나도 분명히 죽었겠지.’

마왕과 마주친 것이 아퀼로가 지닌 기억의 끝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펼쳐질 일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마왕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

‘저 녀석은 마왕을 죽일 수 있을까.’

절대적인 방어력과 꽤 괜찮은 공격력. 거기다 아직까지 성장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아퀼로는 좀처럼 하현의 승리라고 단언을 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은 그런 느낌이었으니…….’

해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심해의 바다. 마왕은 아퀼로를 상대하기 위해 그곳을 향해 정면으로 왔었다. 누가 보아도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태였지만, 아퀼로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것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 그것이 아퀼로가 본 마왕의 느낌이었다.

‘뭐…… 답을 구할 수는 없겠지.’

아퀼로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확답을 낼 수 있다면 도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왕에게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를 지켜낼 것인가.

자신은 이겼을 때 가장 짜릿할 수 있도록, 승률이 낮은 후자에 모든 것을 걸었을 뿐이다.

파지직!

“음?”

흔들리는 포탈의 모습에 아퀼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마나의 공급은 아직도 안정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인가.

‘차원에 문제가 생겼다?’

주변에 감지가 안 되는 걸 보면 정말 먼 곳에서 일어났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영향이 미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큰 현상이리라.

‘차원의 기둥…… 이라고 했던가.’

예상 가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안쪽 대륙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깥 대륙. 나타난 곳은 과연 어느 쪽일까.

‘내 알 바는 아닌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깨를 으쓱인 아퀼로는 포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2시간 뒤 나올 하현을 기다리며.

***

‘음…… 으음.’

바닥에 누워 있던 하현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좁은 공간뿐.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캘시퍼, 시간 얼마나 됐어?’

「이 안으로 들어온 지 23시간 57분이 지났습니다.」

‘거의 다 돼가네.’

몸을 일으킨 하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 들어와서 안을 봤을 때는 무시무시한 광경에 거의 압도되었다. 눈앞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데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막상 느낀 것은 이전에 아주 가끔 찾아갔던 찜질방 같은 느낌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느낌의 따뜻함.

‘덕분에 오래 잤네.’

그냥 되는대로 자보자고 누웠는데 20시간 가까이를 그냥 한 방에 자버렸다. 따뜻함 때문에 조금 긴장이 풀려 버린 모양이었다.

‘이걸로 시험도 끝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하현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제 아퀼로에게 던전을 깨는 방법만 들으면 스킬을 획득하고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네.’

조금 귀찮았을 뿐. 타락한 영웅 때와 비교해 보면 더 쉬운 편이었다. 하현은 생각 이상으로 쉽게 풀린 일에 미소를 지었다.

「24시간이 지났습니다.」

후웅!

캘시퍼와 말과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방금까지 타오르던 공간은 어느새 사라졌고, 하현은 다시 아퀼로가 서 있는 바다 위로 나타났다.

“그을린 자국이 하나도 없네.”

하현의 얼굴을 본 아퀼로가 피식 웃었다. 조금은 다쳤을까 했더니 역시 상처는 없었고, 피로함은커녕 푹 쉬고 온 느낌이었다. 어깨를 살짝 풀어본 하현은 씩 웃었다.

“이걸로 끝이죠?”

“그래. 끝이야.”

주변으로 고개를 돌린 아퀼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끝이구나…….”

후련하면서도 허탈해하는 것 같은 복잡한 목소리. 그 복잡한 모습에 하현은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미묘해졌다.

“신경 쓰게 한 모양이네.”

하현의 표정을 본 아퀼로는 피식 웃더니 자리에 앉았다.

“앉아. 잠시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시키는 대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현을 빤히 바라보던 아퀼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해둘 게 있어.”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뭐긴. 이 바다의 괴물들이지.”

바다를 내려다 본 아퀼로는 가볍게 한 손으로 물을 뜨며 이야기했다.

“협약 이후 수백 년 동안 괴물들 간의 밸런스를 맞춰뒀어. 영역이 확실해진 녀석들은 이제 서로의 영역에서만 지내게 될 거야. 지형도 조금 손봤으니 대륙으로 거슬러 올라갈 일도 없을 거고.”

“뭐…….”

아퀼로의 말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은 아퀼로를 죽이면 괴물들이 어떻게 될지,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해결되어 있었다.

단순히 변태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아퀼로가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그걸로 속을 좀 썩인 모양이네.”

“하하…… 조금은 그랬죠.”

아퀼로의 물음에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손에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던 아퀼로는 그것을 다시 아래로 흘려냈다.

“그러니까 너는 괜한 데 신경 쓰지 말고 강해져라. 강해지고 강해져서 마왕을 죽이고, 내가 이겼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증명해라. 해룡 아퀼로가 세상의 미래를 내다봤다고 오늘의 도박을 이야기하는 거야!”

아퀼로는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세상을 상대로 홀로 목숨을 걸고 진행하는 도박.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쾌락이 여기 있었다.

“…….”

쾌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다 버리는 아퀼로의 모습에 하현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내용만 보면 미쳤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도박의 결과는 수백만 명의 사람을 살린다. 곰곰이 생각하던 하현은 이내 아퀼로와 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퀼로 씨는 이미 이기셨습니다.”

“뭐?”

“왜냐면 제가 아퀼로 님의 베팅을 받은 말이니까요. 거기서 이미 승리가 정해진 겁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하현의 모습에 아퀼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대로 이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일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던 그 감각이 자신을 덮쳐왔다.

그 느낌에 아퀼로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생애 마지막. 그녀는 세상을 상대로 한 도박에서 자신이 승리했음을 직감했고, 수천 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너…… 최고네.”

진심으로 기쁜 듯 아퀼로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칭찬에 하현은 멋쩍어 목을 쓰다듬었다.

“자, 받아.”

아퀼로는 하현을 향해 작은 푸른색 수정을 던져주었다.

“내 기억이 담긴 수정이야. 아마 내게 보여주면 뭔지 바로 알아차리겠지. 그리고 곧장 던전 완수에 협력할거야.”

“아아.”

하현이 신기한 눈으로 수정을 바라보는 사이 아퀼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한 번 더 주변의 바다를 살펴본 아퀼로는 방금 전 쾌락의 여운을 곱씹으며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후우우웅!!!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 막대한 힘에 하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다.

“읏…….”

아퀼로의 가슴에서 빠져나온 푸른색 기운들이 양손에 조금씩 뭉쳐갔다. 마나의 파동이 멎었을 때, 아퀼로의 손안에는 두 주먹만 한 푸른색 보석이 생겨났다.

“이건…… 내 선물이야. 방금 전 쾌락과 나를 승리로 이끌어준 답례라고 생각해.”

아퀼로가 던져준 두 번째 보석을 잡아 든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석을 바라봤다.

‘뭐하는 물건이지?’

「드래곤 하트입니다.」

‘……뭐?’

캘시퍼의 말에 하현이 경악스러운 눈으로 보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장 확인하기 위해 정보창을 펼쳤다.

드래곤 하트(레전드)

내구도 500/500 마법 저항력 110

드래곤의 심장이자 모든 권능의 힘이 모인 핵. 드래곤에게 직접 양도받았기에 권능의 편린이 아직 남아 있다.

-손에 쥐고 있을 시 마나가 5,000, 마나 회복량이 600%. 섭취 시 마나가 6,000, 마나 회복량이 700%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해룡 아퀼로의 권능인 물, 바다, 폭풍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섭취 시 권능의 힘을 견디지 못해 사망할 가능성이 있으며 최대 80%까지밖에 얻지 못합니다.

‘뭐…….’

드래곤의 모든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드래곤 하트. 아퀼로는 그것을 직접 뽑아내 자신에게 양도한 것이었다. 하현은 놀란 표정으로 아퀼로를 바라봤다.

“아, 아퀼로 씨…… 이, 이거 제가 받아도 되는 게……?”

“……푸하하핫!”

당황해하는 하현의 모습에 아퀼로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전에 자신의 호의를 받고 선택한 인간 중에 저렇게 거절하는 녀석이 있었는가.

‘없었지.’

잠시 과거를 회상한 아퀼로는 웃음으로 더욱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손을 휘둘렀다.

후우웅!!

아주 미약하게 남아 있던 마나가 하현의 발 아래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던전 바로 앞으로 이동되는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신경 꺼라. 내가 선물이라고 했잖아.”

“……그러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하현의 인사에 아퀼로는 씩 웃어 보였다.

“열심히 해라.”

후웅!

마법진이 발동되고 하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홀로 바다 위에 남은 아퀼로는 그대로 수면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첨벙!

물에 젖지도, 가라앉지도 않던 아퀼로의 몸이 아주 얕게 물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면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아퀼로는 방금 전 하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리버리한 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아퀼로의 모습은 물에 녹아내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그렇게 된 건가.]

수정으로 기억을 건네받은 아퀼로가 중얼거렸다. 밖으로 나갔던 자신이 겪은 수백 년의 기억을 이어받았다. 인간이라면 미쳤을지도 모를 만큼 방대한 기억이었지만, 드래곤이었기에 깔끔하게 받아냈다.

[이번에 점찍은 인간은 너였구나.]

자신이 직접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아퀼로의 갑작스러운 말에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예?”

[나는 마음에 드는 인간이 있으면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거든. 그럴 만한 대상이 이번엔 너였었다는 거지. 뭐 결국 네가 해야 할 일과 도박 때문에 관둔 것 같지만.]

“…….”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유형이었기에 적응은 안 되었지만 자신도 아퀼로가 그리 나쁘진 않았다.

[이미 끝난 일이지. 그보다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아, 예.”

고민하고 있던 하현의 모습에 아퀼로는 피식 웃었다. 죽은 자신을 잠시라도 생각해 준 것 같으니 그리 나쁜 죽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본 아퀼로는 던전의 내부에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힘, 시련을 느꼈다.

[던전의 완수 시련이라…… 음…… 이렇게인가.]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잠시 후 하현의 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시련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해룡과의 혈투]

해룡 아퀼로는 드래곤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강자였다. 아퀼로의 본거지인 레어 안에서 아퀼로를 쓰러뜨려라.

난이도 : SS

보상 : 던전의 완수

“시련 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이제 됐네.]

하현이 시련을 수락했음을 알아차린 아퀼로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하현은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이제…… 제가 죽여야 하는 걸까요?”

아퀼로를 쓰러뜨리면 드래곤을 쓰러뜨렸다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현은 굳이 칭호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하현의 물음에 아퀼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자신을 향해 덤벼왔다면 진심을 다해 싸울 생각이었다. 기억을 건네받았다고 해도 이건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죽이기 망설여 하는 하현의 모습이 아퀼로의 그런 생각을 말끔히 지웠다.

[너는 썩 괜찮은 녀석이야. 그러니까 그 너무 강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마음가짐을 잊지 마. 적당히 밸런스 잡힌 것이 때로는 좋은 법이니까.]

중얼거리듯 충고한 아퀼로의 두 눈이 감겼다. 스스로 파괴한 드래곤 하트의 마나가 충격파처럼 레어에 울려 퍼졌고.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알림창이 하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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