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23. 해룡 아퀼로
거대한 공동 위로 마법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검은색 기운이 안개처럼 넘실거리며 떠다니는 모습은 마치 악마를 소환할 것처럼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에너지의 양은?”
마법진을 조정하던 어둠이 조용히 물었다. 그에 마법진을 살펴보던 성운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100%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군. 준비가 드디어 끝났나…….”
어둠은 공동에 가득 찬 에너지를 바라봤다. 여태까지 여유롭게 굴기는 했지만, 이번이 자신의 승부수였다. 만약 이번 계획마저 실패하면 본거지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면 또 일이 늦춰지겠지. 그래선 곤란해.’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처리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고작 첫 단계에서 이렇게 늦춰지다니, 어둠은 짜증 나기도 했지만 미묘하게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뭐…… 이제는 그럴 일도 없겠지.’
불길하게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본 어둠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그럴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이번에는 그 하현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강하든지 관련이 없을 테니.
‘조금은 궁금하구나. 비슷한 일에 처했을 때…… 너도 그와 같이 행동할 수 있는지.’
이것 또한 상당한 재미가 될 것이다. 비틀린 웃음을 터뜨린 어둠이 조용히 마법진을 응시했다.
***
연락이 오고 다음 날. 하현은 회장을 따라 한 바닷가로 이동했다. 사방에 거대한 산들이 둘러싸여 노출이 되지 않는 해안가. 접견 장소로는 제격인 곳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퀼로 님이 오실 겁니다. 그럼.”
“가시려고요?”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회장의 모습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옆에서 대화에 도움이라도 주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겠다니.
하현의 물음에 회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퀼로 님과의 협정에는 여러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을 만날 때는 대표인 한 사람만 나올 것이었죠.”
일이 수틀리면 대처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여러 명을 마주하는 것이 불쾌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현은 왠지 영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흔히 아는 이미지처럼 거칠고 광폭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약간 곤란한 성격이지요.”
“곤란한 성격이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회장의 모습에 하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회장은 만나보면 안다는 말을 남기고 마법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지…….”
클리페우스는 점잖고 눈치가 빠른 드래곤이었다. 약간 호기심이 많았던 것을 보면 실제로는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전쟁에서의 그의 성격은 그랬다.
‘내가 이미지를 잘 만들어서 그런 걸지는 몰라도…… 싸가지 없다는 느낌은 없었지.’
흔히 하현이 접한 드래곤은 대부분 이전 세계의 소설이었다. 싸가지 없고 거만해서 주인공한테 죽는 역할이거나 착하고 진지해서 주인공의 스승이 되는 역할.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만나본 드래곤의 이미지를 보자면 그냥 세고 똑똑한데다 드래곤으로 변하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뭐 경우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지.’
「전방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해안가에 쭈그려 앉아 있던 하현은 캘시퍼의 경고음에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저 멀리 바다에서 푸른색의 거대한 뱀 같은 것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오고 있었다.
‘저게…….드래곤인가?’
「뿜어내는 힘의 크기를 분석해 본 결과 그런 것으로 판단됩니다.」
클리페우스가 도마뱀에 날개가 달린 전형적인 서양풍의 드래곤이었다면, 해룡인 아퀼로는 동양풍 같은 느낌이었다. 푸른색의 뱀 같은 몸체에 날개까지 없는 게 딱 비슷했다.
‘덩치는…… 역시 크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아퀼로의 덩치가 점점 체감되기 시작했다. 클리페우스보다 얼굴 같은 것은 작았지만 몸체의 길이는 비교가 안 되었다.
머리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저기서 흔들거리는 꼬리를 보면 300m는 거뜬하리라.
촤아악!!
아퀼로의 몸체가 하현이 있는 해안가까지 오자 거대한 해일이 하현을 향해 거칠게 덮쳐왔다. 하지만 파도는 하현의 눈앞에서 바로 멈췄고, 아퀼로는 천천히 머리를 치켜들어 하현을 내려다봤다.
날카로운 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 딱히 부담이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드래곤이구나, 라는 느낌은 확연하게 들었다.
‘어떻게 말해오려나.’
이전의 클리페우스는 조금 격식이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그렇다면 아퀼로는 어떨까. 어쩌면 자신이 생각해 왔던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를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현이 은근한 기대를 품으며 아퀼로를 올려다보며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때.
[아, 미안미안, 좀 늦었지? 오랜만에 변신하려니까 시간이 좀 걸려서 말이야!]
예상치도 못할 만큼 경쾌하고 가벼운 말투가 하현의 귓가를 때렸다.
“……음?”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퀼로를 올려다봤다.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하현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음?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
“아니…… 뭔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의아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아퀼로의 모습에 하현은 그제야 클리페우스에 대한 감상을 다시금 떠올렸다. 드래곤도 결국 인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이런…… 성격이었나.’
하현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아퀼로를 올려다봤다. 개구쟁이보다는 그냥 가볍다는 느낌이 딱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사교성이 좋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흐음…… 근데 너…… 조금 미묘한 느낌인데.]
하현이 한창 아퀼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퀼로 또한 하현을 내려다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잘 자각을 못 했는데 거듭해서 볼수록 미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새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너 드래곤이야?]
“예?”
아퀼로의 물음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왜 이런 반응이 나왔는지 알아차렸다.
‘이전에 받았던 드래곤의 은인 때문이구나.’
클리페우스에게 감사를 받으며 생겨난 칭호. 그것이 이번에 아퀼로와 만나면서 발동된 것이다.
“드래곤은 아닙니다만…….”
[흐음…… 그런가. 그러면…… 그래,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칭호라는 힘인가?]
칭호를 담담하게 언급하는 아퀼로의 모습에 하현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 대해서 파악했다고 들은 순간 이 정도는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 칭호의 힘입니다.”
[드래곤에게도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칭호인가. 어떤 칭호야?]
“드래곤의 은인이라는 칭호입니다.”
드래곤 살해자같이 흉흉한 칭호라면 모를까 이런 종류의 칭호라면 알려줘도 딱히 해가 될 것은 없으리라. 하현의 대답에 아퀼로의 두 눈에 흥미가 떠올랐다.
[드래곤의 은인…… 이라. 누구를 도와줬나 보네. 누구를 도와준 거야?]
“골드 드래곤인 클리페우스입니다.”
[뭐?]
하현의 말에 아퀼로는 조금 놀란 어투로 되물었다. 클리페우스도 상당히 강했으니 아마 아퀼로처럼 어느 정도 손꼽히는 드래곤이었으리라.
여태까지 적당한 흥미만 보이던 아퀼로가 사뭇 진지한 눈으로 하현을 내려다봤다.
[흐음. 신경이 미묘하게 쓰였는데…… 그럴 만도 했네.]
무언가 혼자서 납득한 듯 아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찾아온 목적이 내 던전의 완수랬지?]
“예.”
어떻게 보면 자신을 죽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퀼로는 하현의 말에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날 따라와.]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레어로. 껄끄럽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아퀼로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퀼로의 레어라면 분명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만약이라도 아퀼로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손도 쓸 수 없는 장소.
“가죠.”
하지만 하현은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퀼로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 본 아퀼로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의 일부분을 하현의 앞으로 가져다 댔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계단을 타고 하현은 아퀼로의 위로 올라탔다.
[텔레포트 가능 지점까지만 갈 테니까 잘 매달려 있어.]
아퀼로는 하현을 위에 태우고 바다 위를 가르며 움직였다. 이전에 아퀼로가 나타났던 지점까지 도착했다 싶었던 순간, 거대한 마나가 하현의 몸 주변을 감쌌다.
후웅!!
주변의 풍경이 어느새 바다 위에서 동굴의 입구 부분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돌려 동굴 입구를 보니 그 너머로 검은색이 가로막고 있었다.
‘저거…… 물이겠지.’
빛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깊은 심해. 그곳이 아퀼로가 자리 잡은 레어의 위치였다.
후웅!
하현이 고개를 돌린 사이 반대편에서 번쩍이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물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아퀼로가 있던 곳에 나타났다.
“이쪽이 이야기하기는 쉽겠지? 덜 불편하고 말이야.”
“아, 음. 그거야 그런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퀼로의 모습에 하현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당당하게 여자의 알몸을 볼 수 있을 만큼 대범한 성격은 아니었다.
하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퀼로는 이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 미안. 배려가 없었네. 이게 편하다 보니까.”
아퀼로가 손을 휘젓자 새하얀 나신 위로 옷이 생겨났다. 푸른색의 나풀거리는 긴 원피스가 생겨나자 그제야 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따라와.”
하현은 아퀼로를 따라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인간일 때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크기는 계속해서 작아졌다.
‘평소에도 저것과 비슷한 상태로 지내나 보네.’
드래곤이니까 드래곤인 상태가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하현은 조금 의아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참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동굴의 외형이 한 번에 변했다.
‘원룸……?’
하늘색 벽지에 두 명이 누워도 충분한 넓은 침대. 거기에 커다란 TV와 컴퓨터가 침대로부터 움직임을 최소화하도록 놓여 있었다.
거기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과 담배꽁초까지 있으니 마치 살판 난 백수의 원룸 같았다.
“…….”
“아, 손님 데리고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거든.”
아퀼로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지럽던 방이 깔끔히 치워졌고, 아퀼로는 그대로 바닥에 앉아 침대에 몸을 기댔다.
“너도 앉아.”
“아…… 예.”
드래곤 레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원룸의 모습에 하현은 어리둥절해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하현을 빤히 바라보던 아퀼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목표가 던전의 완수, 즉 나를 죽였으면 한다는 거지?”
“예.”
꽤나 노골적인 질문이었지만 하현은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아퀼로는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충 시기가 온다고 생각은 했으니까.”
“…….”
농담기 없는 아퀼로의 대답에 하현은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지금의 그가 진짜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엄연히 살아 있는 존재다.
그런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다니, 자신에게는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현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 시선을 느낀 아퀼로가 피식 웃었다.
“처음 협약을 맺기 전부터 결정했었던 일이야. 괴물들 족치면서 몇백 년을 고민해 낸 대답인데 이제 와서 번복하거나 그러진 않아.”
“……던전에서 나오신 지 백 년이 넘으신 거예요?”
아퀼로의 대답에 하현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협약을 맺을 때 쯤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몇백 년이라니. 그렇다면 아퀼로는 아주 먼 예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 오래됐지. 그동안 상황 파악하고…… 아주 오랫동안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지. 너희들을 다 죽여볼까 생각도 했었고, 자살할까 생각도 했었고.”
턱을 괸 아퀼로는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그것을 모두 털어내고 다시 하현을 바라봤다.
“너 내가 어떤 드래곤인 줄 알아?”
“대강은 압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하현은 캘시퍼를 통해 대략적으로 아퀼로에 대해 알아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아퀼로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자입니다. 싸움을 특히 즐겨 보기에 해적들을 보호하며 해적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악룡이라 불려왔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자에 악룡. 그것이 페젤론 역사에 남아 있는 아퀼로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눈앞의 아퀼로는 그 전설과는 전혀 달랐다.
방의 구조를 보면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삐뚤어진 쾌락주의자 같기는 하지만 앞서 알아낸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 그럼 조금 다르다는 건 알았겠네.”
턱을 괸 아퀼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의 기억, 그러니까 저 던전에 속해 있는 나는 싸움을 앞둔 상태였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마왕과 싸우기 직전, 처음으로 쾌락이 아닌 두려움을 느꼈던 시점이었지.”
싸움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수천 년을 살아온 아퀼로 자신을 부정하게 된 순간이었고, 자존심이 철저하게 박살 난 순간이었다.
“던전에 나오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처음은 미쳐 날뛰었었어. 바다에서 군림하던 괴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기면서 화를 풀었었지.”
화풀이가 될 괴물들은 폭주된 던전에서 몇 번이고 나왔다. 그렇기에 아퀼로는 자신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십 년이고 계속해서 괴물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근데…… 다 부질없었어. 한번 부서진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지.”
과거의 자신을 뒤집어보면서 아퀼로는 한 가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자아의 성찰 같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닌 새로운 쾌락에 대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전투를 겪어도, 구경을 해도 단 한 번도 쾌락을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 중에서 싸움에 관한 쾌락이 가장 컸던 아퀼로는 그에 곤란함을 느꼈었다.
“…….”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조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뭔가 깨닫게 되면서 개과천선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결국 생각한 게 다른 쾌락이라니.
‘진짜 뼛속까지 쾌락주의자인가.’
하현이 어이없어 하는 동안 아퀼로는 생기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고민해서 나는 대답을 낼 수 있었지. 정말 장난 아닌 규모의 도박을 해보자고!”
“……도박 말입니까?”
“그래. 곧 이곳으로 오게 될 마왕을 너희들이 과연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나는 너희들한테 배팅을 한 상태지.”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차원 하나의 운명이 걸린 도박. 확실히 규모가 장난 아니기는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으로부터 너희들의 대륙을 보호했지. 그런데 이제는 자리에서 비켜달라…… 그렇다면 나한테 거기에 상응하는 가치를 보여야 해.”
“가치라면…….”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이길 수밖에 없는 패를 뽑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압도적인 가치. 너는 그것을 증명해야 해.”
아퀼로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며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나를 제압해 봐. 그러면 나는 내 목숨을 끊고, 던전을 손쉽게 완수할 수 있는 물건도 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