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22. 새로운 무기
“지금!”
흑월의 검이 날카롭게 오드리히의 검을 걷어냈다. 그 타이밍에 맞춰 쏟아져 나간 하현의 몸이 그대로 오드리히의 몸과 부딪쳤다.
키이잉! 콰앙!!
스킬의 발동 소리와 함께 오드리히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 상태로 하현은 두 다리를 꼬아 오드리히를 감쌌다.
“대력난탄!!”
화신화로 타오르는 하현의 주먹이 무서운 속도로 오드리히를 향해 휘둘러졌다. 두 번째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고, 오드리히의 몸이 들썩 거렸다.
카카캉!!
흑월은 하현을 떨쳐내기 위해 휘둘러지는 검은 기운들을 깔끔하게 쳐냈다. 오드리히는 두 사람의 협공에 압도당해 두들겨 맞았다.
콰직! 빠득!!
투구가 박살 나고 흉갑이 부서진다. 적중만 한다면 하현의 공격력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오드리히의 전신이 순식간에 박살 났다.
푸콱!!
수십 번이고 두들긴 주먹에 오드리히의 머리통이 박살 나고, 천천히 먼지로 변해 사라져 갔다.
-타락한 영웅 오드리히가 영원한 안식에 빠졌습니다.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부서졌던 오두막 안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
이미 이성을 상실한 오드리히는 오두막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순간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의 신형이 나타났다.
“비참한 모습이군.”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모습. 오드리히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전에 호르호이의 동굴 완수 후 보았던 마법사, 에들렌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니…… 물러도 너무 물러.”
에들렌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드리히의 발 아래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후웅!!
장소가 변한다. 오드리히가 떨어진 곳은 마족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터의 한복판. 중간계 측 군대가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
주변의 생명체를 느낀 오드리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에들렌이 크게 소리쳤다.
“이 녀석한테 죽기 싫으면 뒤로 빠져라!”
에들렌의 외침과 동시에 중간계의 군대들이 재빨리 뒤로 빠졌다. 오드리히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마족의 군대들을 바라봤다.
콰아아아아!!
전신에서 검은 기운들이 뿜어져 나왔다. 검을 움켜쥔 오드리히의 몸이 마족들을 향해 쏘아졌다.
-타락한 영웅 오드리히의 활약을 목격하였습니다. 페젤론의 역사를 보셨습니다.
-던전 ‘타락한 영웅’의 완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몸이 던전의 밖으로 나오면서 포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알림창들이 나타났다.
-타락한 영웅 오드리히를 물리쳤습니다. 칭호 ‘영웅 살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에서 가장 높은 기여도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으로 ‘타락한 영웅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마검 아오른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보상들을 하나둘 살펴본 하현은 맨아래에 가장 중요한 알림창을 바라봤다.
-타락한 영웅의 완수 기여도가 40% 이상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반은 완료인가.’
알림창이 모두 사라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하현은 흑월을 바라봤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흑월은 자신의 검을 갈무리했다.
“진짜 엄청 쉬워졌네요.”
흑월을 본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둘이서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오드리히를 잡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쉬워졌다.
이 모든 것이 저번 일로 흑월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기 때문이리라.
“다 알게 되었으니까. 보조랑 견제는 쉽지.”
하현의 눈길을 받은 흑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난번 혈투로 인해 흑월은 단신으로 오드리히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만큼 큰 성장을 했다.
그런 흑월이 철저하게 공격의 보조를 해주면서 하현은 손쉽게 오드리히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감각이 있을 때는 아프군.”
조금 얼굴을 찡그린 흑월이 전신에 꽂았던 검기들을 걷어냈다. 이전 전투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전투 방식.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이게는 해주었지만 그만큼 무리가 많이 갔다.
“괜찮으세요?”
흑월의 말에 하현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에 흑월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괜찮다. 그보다 시련은?”
“아, 시련은 말끔히 완수됐습니다.”
시련을 완수한 것뿐만 아니라 기여도가 높은 탓에 상자까지 받았다. 하현은 조금 찝찝함에 흑월을 바라봤다.
“이거 상자는…….”
“네가 얻은 거니까 네 것이다.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현의 말에 흑월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흑월의 도움 덕분에 얻은 상자를 그냥 혼자서 꿀꺽하기란 그랬다.
“음. 그래도 약간은 대신할 값을…… 으읍?!”
막 무어라 말하려는 하현의 입술을 흑월이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됐다. 그걸로 끝이야. 알겠나?”
“…….”
흑월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흑월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때냈다.
“그보다 역시 SS급 던전은 어마어마하군. 단숨에 레벨이 502가 됐어.”
“SS급 던전이 좀 대단하기…… 는…… 예?”
고개를 끄덕이던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흑월을 바라봤다. 그에 흑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니. 방금 레벨이 502라고…….”
“그래. 방금 전 던전을 깨면서 500을 돌파했다.”
흑월의 담담한 말에 하현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암묵적으로 흑월이 S급 토벌자 중에서 거의 손에 꼽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레벨 500, SS급 토벌자가 될 줄이야. 하현은 벙찐 표정으로 흑월을 바라봤다.
“뭐. 레벨은 그렇게 큰 지표는 못 된다. 더 중요한 건 칭호와 아이템, 스킬이지.”
흑월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레벨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걸로 난리 나겠군…….’
안 그래도 분위기가 암울해진 상황 속에서 최초의 SS급 토벌자가 나왔다고 하면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지리라.
“나는 잠시 스탯 좀 찍으마.”
“아. 예.”
담담한 흑월의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자신도 스탯창을 켜 분배를 시작했다.
[하현]
레벨 : 433 칭호 : 영웅 살해자
생명력 : 4,430/4,430
마나 : 4,420/4,420
힘 : 2,608 민첩 : 446
체력 : 443 지력 : 442
공격력 : 521 방어력 : ???
추가 스탯 : 0
‘겨우 430대…… 라고 하기에는 그런가?’
400대를 넘긴 기간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였지만, 하현이 물리친 괴물과 완수한 던전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느려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400대가 필요한 경험치가 더 많다는 뜻이리라.
‘뭐, 이 속도면 나도 조만간 500대 찍겠지.’
그사이에 차원의 기둥을 몇 마리나 잡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먼 일은 아니리라. 하현은 스탯에서 최근에 얻은 칭호들을 살펴봤다.
[드래곤의 은인]
드래곤에게 큰 도움을 베푼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모든 드래곤이 호의를 가지게 됩니다.
[세계수의 구원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세계수를 구원한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15% 상승합니다.
-모든 자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스킬 ‘세계수의 축복’이 사용 가능합니다.
[전쟁의 종결자]
단신으로 큰 전쟁을 끝낸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15% 상승합니다.
-전쟁터에서 스탯이 최대 40%까지 추가로 상승합니다.
-전쟁터에서 모든 발언이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영웅 살해자]
영웅으로 칭송받던 자를 죽인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전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페젤론의 영웅들에게 20%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확실히 칭호가 중요하긴 하지.’
칭호 목록을 살펴본 하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마 이 정도 칭호들을 여러 개 들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리라.
‘그나저나 페젤론의 영웅들이라…… 그 기준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오드리히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영웅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저렇게 망가진 상태에서도 친구에게 부탁해 마족과 싸우다니, 영웅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뭐…… 유명한 업적이 있으면 영웅이겠지.’
대충 때려서 추가 데미지를 주면 그게 영웅 아니겠는가. 칭호창을 끈 하현은 이번에 새로 얻은 무기를 꺼내봤다.
마검 아오른(레전드)
내구도 300/300 공격력 220
과거 오드리히가 사용했던 성검 이레아가 함께 타락하여 변질된 검이다. 신성력 대신 지독한 죽음의 힘을 머금고 있으며 오염된 에고가 깃들어 있다.
-모든 공격에 50%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전 스탯이 20% 상승합니다.
-오염된 에고를 지배하지 못할 시 모든 성능의 50%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아오른]
-현재 복종하지 않았기에 모든 기술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에고?’
어디선가 비슷한 단어를 들어본 것 같았다.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오른을 살펴보고 있을 때.
<뭐야, 오드리히가 아닌 다른 녀석인가.>
캘시퍼와는 다른 걸걸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캘시퍼, 혹시 이번에 흡수하면서 목소리 바꾼 거야?’
「아닙니다. 아마 검에 새겨져 있는 영혼이라고 판단됩니다, 마이스터.」
조금 심통 난 것 같은 캘시퍼의 말투에 하현은 아오른을 바라봤다.
<호오…… 이놈 봐라. 아직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오드리히처럼 죽음의 힘을 가지고 있네?>
얌전하고 딱딱한 캘시퍼와 다르게 아오른은 조금 시건방진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약간 양아치 같은 느낌이 타락했다는 표현과 어울렸다.
<이거 괜찮군. 오드리히가 미치고 나서는 대화도 안 돼서 답답했는데 말이야. 새로운 주인으로 삼아도 될지 모르겠어.>
거만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아오른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던 하현은 대답하지 않고 흑월을 바라봤다.
“흑월 씨. 이전에 얻었다는 무기 말이에요, 막 뭔가 떠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하현의 물음에 흑월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건 없었다. 대신 성능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기존에 쓰던 검과 같이 녹여 새 검으로 만들어냈지.”
흑월은 새롭게 뽑아낸 자신의 검은색 검을 보였다. 그 말은 즉 부러진 아오른에는 없었지만 완제품인 이 아오른에는 에고가 멀쩡히 있다는 것이다.
<자, 얼른 나를 무기로 받아들이겠다고 맹세해라. 그러면 많이 덜떨어진 너를 주인으로 인정해 주지.>
‘흐음…….’
거만하게 떠들고 있는 아오른을 무시한 하현은 자신의 건틀렛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전투를 치른 탓에 여기저기 작은 흠집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서 무기가 나온 건 정말 좋단 말이야.’
하현은 이전의 캘시퍼와의 전투에서 호르호이의 결정석을 처음으로 사용했었다. 그 능력은 상당히 위력적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큰 부담을 주었다.
못쓰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독 때문에 전체적인 성능이 일시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그 덕분에 전투 지속 시간도 짧아지고 데미지도 조금 낮아져서 영 시원치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레전드급의 새로운 무기는 하현의 입장에서도 환영할 입장이었지만.
‘문제는 검이란 말이지.’
쓰라면 쓰겠지만 스킬이 연동이 안 되다 보니 단점이 너무 많았다. 하현은 찝찝한 표정으로 아오른을 바라봤다.
<허, 주인으로 삼아주겠다는데 표정 봐라. 아주 그냥 간이 부었네, 부었어. 그리고 어? 왜 아까부터 대답이 없어? 지금 내 말 씹냐?>
호전적인 아오른의 물음에 하현은 곰곰이 고민해 보다가 물었다.
‘너 건틀렛으로도 변할 수 있냐?’
<뭐?>
하현의 질문에 아오른은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검인 상태에서 완벽하다. 설마 했는데 권사였나…… 쯧. 너랑은 인연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옆에 저 검사한테나 넘겨줘라.>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검으로도 써먹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기는 꼭 필요했다.
‘흐음…… 뭔가 좋은 방법이…….’
하현이 머리를 굴리면서 흑월을 바라본 순간. 그녀가 쥐고 있는 검이 보였다.
‘아!’
하현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벼락처럼 떠올랐다. 그 생각이 워낙 컸던 탓에 캘시퍼와 아오른 둘 모두 알게 되었다.
<어…… 자, 잠깐. 농담이지?>
처음으로 아오른이 조금 기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은 그 물음을 깔끔히 무시하고 캘시퍼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내가 생각한 방법 어때?’
「아오른은 타락한 마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약간의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 얻었던 레전드급 상자 중 하나를 정화로 사용해 적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캘시퍼의 깔끔한 제안에 하현이 감탄을 터뜨렸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거라면 확실히 더 좋겠어.’
<잠깐, 야. 대, 대화로 풀자. 지금 너 너무 성급해. 주인으로 인정해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쭉쭉 진행되어 가는 이야기에 아오른이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하현은 이번에도 깔끔하게 무시하고 흑월을 바라봤다.
“흑월 씨, 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음?”
돌아보는 흑월에게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무기 어디서 갈아치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