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95화 (95/158)

# 95

콰아앙!!

캘시퍼의 포탄에 걸레짝인 된 빌딩이 무너졌다.

건물의 파편들은 도시 아래로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렸고, 대피하는 시민들을 덮쳤다.

“그만 좀 해! 이 빌어먹을 새끼야!”

콰앙!!

지현이 시민들 위로 떨어져 내리는 파편을 주먹으로 깨부수며 소리쳤다.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파편 여러 개를 제거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파편들이 사람들 위로 떨어졌다.

‘아직도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시련으로 인한 긴급 대피가 불가능해지면서 도심 곳곳에는 아직 시민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건물을 가볍게 박살 낼 수 있는 캘시퍼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시민들을 본 지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개 같은…….”

과거의 기억이 지현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섣불리 덤벼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흔들렸다. 당장 달려 나가서 지금 이 원흉인 캘시퍼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었다.

“그만둬라.”

그런 지현의 생각을 읽은 듯 지호가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저번보다 스펙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SS등급 수준이다. 섣불리 덤벼서 네가 죽으면 그때야말로 답도 없어.”

“하지만……!”

“……여전히 예전 일로 깨달은 게 없나 보군.”

지호의 담담한 말에 지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이전에 건드렸던 역린을, 지호는 다시 한 번 건드리고 있었다.

“너…….”

“눈앞의 1명을 살리겠다고 100명을 죽일 거냐?”

“…….”

지현은 입술을 씹으며 지호를 바라봤다.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두 사람이 깨달은 바는 틀렸다. 둘 다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지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재 마법으로 자신보다 몇 배나 많은 시민의 대피를 돕고 있는 것이 지호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작게 곱씹은 지현은 이를 갈며 캘시퍼를 바라봤다. 캘시퍼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시민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서 기운을 재배열시켰다. 그때.

“어?”

캘시퍼의 반대편에서 익숙한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캘시퍼를 향해 달려드는 그 모습은 자살 시도처럼 보였지만, 엄연히 달랐다.

“야! 저 녀석 지금 달려오고 있어!”

지현의 외침에 뒤늦게 지호가 달려오는 남자, 하현의 모습을 확인했다. 둘만이라면 모르겠지만 하현이 끼어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전에 캘시퍼를 쓰러뜨렸던 것도 모두 하현의 활약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해주…….”

멀리서 하현의 외침이 흐릿하게 들려왔다. 그에 지호는 다급하게 청각강화 마법을 사용해 하현의 외침을 들어냈다.

“저 좀 캘시퍼 머리 위로 띄워 올려주세요!”

“뭐…….”

하현의 말에 지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처럼 태클을 이용해 넘어트릴 것이 아니란 말인가? 약간 의아하기는 했지만 지호는 하현의 부탁대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투웅!!

부유 마법진을 밟은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디펜스 태클을 푼 하현이 자신의 아래에 있는 캘시퍼를 바라봤다.

‘아직도 보고 있어?’

「예. 현재 각종 공성무기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이전처럼 디펜스 태클로 넘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 미완성 캘시퍼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고 캘시퍼가 경고해 왔다.

‘아마 그 녀석이 이전의 전투에 대해서 알려줬겠지.’

디펜스 태클은 일차원적인 전법이다. 온갖 기술의 보고인 캘시퍼라면 알기만 하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든 있었다. 그렇기에 하현은 망설임 없이 전법을 바꿨다.

‘늦어질수록 흑월 씨의 목숨이 위험하다. 그렇다면…… 뭐든지 써주겠어.’

이를 악문 하현이 다시 한 번 지호를 향해 외쳤다.

“가능한 멀리 도망치세요!!”

하현의 경고와 동시에 지호가 재빠르게 마법을 통해 시민들의 대피를 가속시키며 자리를 옮겨갔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캘시퍼에게 속삭여 저장고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같은 SS급에…… 질도 더 높으면 다르겠지.”

눈을 번뜩인 하현은 오른손 위로 나타난 녹색 구슬, 호르호이의 결정석을 양손으로 잡았다.

“속성석 장착!”

-호르호이의 결정석을 장착합니다.

호르호이의 결정석이 천천히 입자로 변하며 양쪽 건틀렛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녹색 선이 건틀렛 전체에 실금처럼 퍼졌고, 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매우 강력한 맹독의 속성석을 장착했습니다. 5분 이상 사용할 시 건틀렛의 유지를 위해 자동 해제됩니다.

제한 시간은 5분. 캘시퍼를 무찌르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현은 이를 악물며 건틀렛 안에서 꿈틀거리는 호르호이의 힘을 끌어냈다.

“그 안에 끝낸다!”

콰아앙!!

하현을 노린 공성무기들이 불을 뿜으며 쏟아졌다. 하나하나가 강대한 마력을 지닌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다. 그에 하현은 독을 머금은 양 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푸화아악!!!!

짙은 독무가 캘시퍼를 향해 분사되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포탄들이 느려지다가 이내 분해되며 사라졌다.

콰앙!!

독무를 휘감은 하현의 몸이 캘시퍼의 위로 곧장 떨어졌다. 이제 이대로 캘시퍼의 던전을 다시 한 번 뚫어야 한다.

“캘시퍼, 동력원이 있는 장소의 바로 위를 가르쳐 줘.”

하지만 지금 그런 쓸데없는 데 시간을 투자할 여유는 없었다.

「이쪽입니다.」

캘시퍼가 알려준 장소를 향해 달려간 하현은 자신을 향해 오는 골렘들을 무시하고 건틀렛을 치켜들었다.

쿠구구궁!!

-맹독의 힘에 건틀렛의 코어가 오염됩니다. 이 이상 힘을 끌어낼 시 코어의 복원하기 힘든 피해가 생겨납니다.

삐걱거리는 건틀렛으로부터 이전의 독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진한 독이 맺혀갔다. 하현은 떠오른 알림창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독을 끌어냈다.

‘간다!’

독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건틀렛조차 녹아버리는 강력한 맹독. 그 독을 휘감은 하현의 손이 지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푸화아악!!

건틀렛에 닿은 바닥이 본래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아래로 꺼져갔다. 녹아내린 바닥도 강한 독극물이 되어 동력원으로 향하는 캘시퍼의 모든 구조물을 녹여갔다.

하현은 그 독극물들과 함께 매우 빠른 속도로 캘시퍼의 안쪽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바로 아래층입니다.」

캘시퍼의 말과 동시에 하현은 바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자세를 다잡은 하현의 눈앞에는 이전에 본 것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동력원이 나타났다.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도 손쉬울 정도로 간단한 침입. 그만큼 하현이 매우 강력해졌다는 뜻이겠지만, 하현에게는 거기에 감탄할 시간조차 없었다.

‘캘시퍼, 준비해!’

「알겠습니다.」

이미 퇴치의 방법에 대해서는 정해뒀다. 호르호이의 결정석을 해제한 하현은 재빠르게 동력원과의 거리를 좁히고, 건틀렛을 내뻗어 동력원에 접촉시켰다.

“3번!”

건틀렛과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푸른 선들이 나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동력원 전체를 휘감았다.

우웅!!!

자신의 시스템이 해킹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동력원이 거세게 울렸다. 둘 다 같은 캘시퍼였기에 기술력이 비슷했지만, 하현이 쓰러뜨렸던 캘시퍼가 더욱 진화되어 있었다.

「보안해제 완료했습니다.」

해킹이 완료된 것을 들은 하현이 무한저장고에서 자신의 캘시퍼를 꺼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동력원을 향해 쑤셔 넣었다.

「제어 시스템을 강탈하겠습니다.」

우우웅!!!

조종권이 빼앗기기 시작하자 동력원이 거칠게 반응해 왔다. 몸체를 움직이던 에너지원을 모조리 돌려 하현의 몸을 밀어내기 위해 내뿜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 새끼야!!”

이를 꽉 문 하현이 동력원을 바스러져라 움켜쥐고 계속해서 동력원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비록 하현의 캘시퍼가 약화된 상태긴 했지만, 건틀렛의 백업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어 시스템을 일부분 확보했습니다. 에너지 공급로를 차단하겠습니다.」

사지를 잘라내듯 동력원으로 향하던 에너지 보급로들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동력원은 방이 부서지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고 더욱 거세게 에너지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것이 동력원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제어권 획득 완료. 기존의 프로그램을 삭제합니다.」

미친 듯이 에너지를 내뿜던 동력원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무언가 감각이 변한 것을 느낀 하현이 조심스럽게 동력원 안으로 쑤셔 넣었던 손을 빼냈다.

‘없다.’

방금 전까지 하현의 손에 움켜쥐어 있었던 캘시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미완성 기동요새 캘시퍼를 장악하셨습니다.

-캘시퍼에 담겨 있는 기술들이 대량 해금되었습니다.

미완성 캘시퍼를 통째로 흡수하면서 대량의 기술들이 단번에 해금되었다. 당장 펄쩍 뛰며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하현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이 몸을 압축할 수 있어?”

「무한저장고를 활용하면 기존의 동력원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당장 해!”

하현의 명령에 따라 캘시퍼의 몸에서 옅은 빛이 나는가 싶더니 이전의 동력원 형태로 되돌아왔다. 하현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잽싸게 동력원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것들도 미리 처리해 둔다.’

하현은 호르호이의 결정석을 다시 장착해 독기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이로써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 사라졌다. 바닥에 착지한 하현이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 괴물들의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지호에게 외친 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달렸다. 홀로 싸우고 있을 흑월을 돕기 위해서.

***

한창 괴물로 도심이 난장판이 되어 있을 때. 아민과 민철은 시민들을 돕는 대신 다른 곳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부길드장님…… 그냥 도시로 돌아가 시민들을 돕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난장판이 되어가던 도시의 모습을 떠올린 아민이 걱정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이 불확실한 일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시민들을 돕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 아민의 생각이었다.

“안 돼.”

하지만 그런 아민의 물음에 민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당장 시민의 피해도 치명적이지만 이번 실마리를 놓치면 또 상대의 정체를 놓친다는 걸 명심해라.”

민철의 말에 아민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말대로 이번에 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그냥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그건 분명히…….’

던전들이 막 폭주를 시작했을 때, 아민과 민철은 시민들의 구조보다 연락을 취한 뒤 주변에 폭주할 가능성이 있는 던전을 향해 달려갔었다.

그렇게 몇 개의 던전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아민과 민철은 볼 수 있었다. 던전의 안으로 들어가는 로브를 입은 자들과 그들을 그냥 들여보내 주는 관리자의 모습을.

‘협회 내부에 배신자가 있어.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던전의 폭주도 그거라면 설명이 돼.’

20개가 넘는 던전이 동시에 폭주한다. 적의 세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축약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던전을 지키는 관리자들은 협회가 소유하고 있는 뛰어난 실력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죽었다? 그것도 수십 개 던전의 관리자들이?

‘뭔가 틀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해도 민철은 뭔가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었고, 결국 그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 위치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어요. 협회 쪽도 현재 그 주변으로 포위하고 있다고 연락 왔고요.”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협회의 최고 실력자들이 포위망을 갖추고 있다. 아마 정보가 새어 나갈 일도 없을 것이고, 놓칠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쿠우웅!!

아민과 민철이 달려가던 곳 앞에서 막대한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같은 마법사인 아민은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공간을 저 정도로 조종할 수 있다니. 회장님은 도대체 정체가…….”

도망치던 관리자를 포획하기 위해 쓰인 마법으로 보이는데 그 위력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아민은 새삼 저런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회장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저기 있군.”

앞쪽에 모여 있는 협회의 인물들과 회장을 본 민철이 속도를 더 높여 그들의 근처에 도착했다. 마법진 안에 가둬진 것은 아민과 민철이 보았던 세 명의 관리자였다.

“어째서…… 이런 일에 동조한 거지?”

“…….”

마법진 안에 가둬진 관리자를 본 회장이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물음에 관리자들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런가.”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이 대답이 되었다. 회장이 손을 휘젓자 마법진 안에 있는 세 명의 몸이 완벽하게 포박되었다. 아마 이대로 데려가 누구와 협조했는지 심문을 하게 되리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사건은 대재앙과 비슷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과거의 대재앙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거의 끝나가는 줄 알았던 자신의 복수도 계속 될지도 모른다. 민철이 날카로운 눈으로 마법진 안쪽을 바라보던 그때.

콰아아앙!!!

마법진의 안쪽으로 검은 벼락이 휘몰아쳤다.

“뭐…….”

자신의 마법진이 꿰뚫렸다는 사실에 회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의 사용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회장은 공중에 떠 있는 어둠을 발견했다.

“정말 여기저기서 피곤하게 하는군.”

음침한 목소리에 전원이 긴장된 표정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가 지닌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신은 대체…….”

“그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하지. 아무래도 저쪽도 끝난 것 같으니.”

간단하게 일축한 어둠은 흐릿해지며 사라지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회장이 다급하게 마법을 사용해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럼 잘 찾아보게, 회장.”

그보다 먼저 어둠이 몸을 감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