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으으음…… 시련 취소!”
-시련을 취소합니다.
시련창을 한참 바라보던 하현은 스킬 생성의 시련을 취소했다. 그다음 곧장 같은 목적으로 시련을 다시 생성해 냈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한다. SS급 던전 ‘해룡의 레어’와 ‘타락한 용사’를 완수하라.
난이도 : 스킬 생성
보상 : 전환스킬의 확장
-던전 완수에 관여하지 않았을 시 다른 SS급 던전으로 대체됩니다.
-기여도가 40%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
하지만 다시 생겨난 시련은 이전과 한 글자도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즉 이 스킬을 만들려면 무조건 저 두 개의 던전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
“하아…….”
“뭐 나왔냐?”
하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자 강철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던전을 두 개 완수하라네요.”
“어떤 던전?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너는 던전 완수는 전문가 아니냐?”
강철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하현은 살짝 고민하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SS급 던전 두 개. 기여도는 40% 이상으로…….”
“…….”
하현의 말을 들은 강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지도 힘든 SS급 던전을 두 개나 완수. 거기다 기여도를 40% 이상? 그건 그냥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그만…… 아니. 으음…….”
때려치우라고 말하려 했던 강철은 말을 멈추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면 될 것 같은데?’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시련이었지만, 눈앞의 녀석은 더 말도 안 되는 녀석이다. SS급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큰 활약을 하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거의 혼자서 SS급 던전 하나를 완수했었다.
하현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일단은 알아보는 게 어떠냐?”
“으음…… 그럴까요.”
처음 봤을 때는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시련이라고 단칼에 일축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해 보니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차피 SS급이든 뭐든 죽지도 않을 테고 한 번 깨본 적도 있지. 충분히 해볼 만해.’
개고생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 깰 만한 것들은 아니다. 결정을 내린 하현은 속으로 캘시퍼를 불렀다.
‘캘시퍼, 두 던전 중에 협회가 제공한 정보와 일치하는 게 있는지 찾아봐.
「알겠습니다.」
협회의 던전 리스트를 훑는 것은 캘시퍼에게 일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작업을 끝낸 캘시퍼의 대답이 들려왔다.
「한 가지 일치하는 던전이 존재합니다.」
‘정말? 어느 쪽인데.’
「타락한 영웅 던전입니다.」
캘시퍼의 대답에 하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름 어렵다고 했으니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그런 위치에 있는 던전들일까 했더니 아닌 것이다.
“하나 있네요.”
“그럼 한번 시험 삼아 가봐라. 가서 될지, 안 될지 견적을 뽑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알겠습니다.”
강철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하현은 캘시퍼가 펼쳐준 타락한 영웅 던전의 정보를 살펴봤다.
타락한 영웅(SS) : 비공개
‘비공개 던전이라…….’
협회는 여태껏 자신들이 숨겨왔던 던전들의 정보들을 모두 공개했다. 그런데도 아직 정보가 비공개되어 있는 던전. 보통 이런 부류는 한 가지였다.
‘업적 포인트를 이용해서 누군가 소유한 던전이란 거지.’
길드가 개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던전의 경우 이렇게 이름만 공개될 뿐, 나머지 상세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SS급 던전을 개인으로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가?’
S급 던전을 소유하고 있는 길드도 없는데 SS급 던전을 소유한 길드라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길드가 어떤 곳일지 하현은 감이 잡히자 않았다.
‘일단 물어볼까.’
하현은 휴대폰을 꺼내 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잠깐 가는가 싶더니 바로 진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하현 씨.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혹시 던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하현의 말에 진한은 조금 의아한 말투로 대답했다.
“던전 소유자와의 연락 말씀이십니까? 가능은 합니다만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저희 쪽에서 대신 연락을 드립니다. 그다음은 그쪽에서 대화하기를 원해야만 하구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그러면 해당되는 던전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진한은 빠르게 대답해 주었다.
“SS급 던전인 타락한 영웅 던전입니다.”
“아…….”
하현의 말에 진한이 놀란 듯 잠시 말을 멈췄다.
“타락한 영웅 던전 말씀이시군요. 음…… 알겠습니다. 던전의 소유자에게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진한의 전화가 끊어지고 휴대폰을 집어넣은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있나?’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는데 던전의 이름을 들으니 진한의 태도가 조금 어색해졌었다. 던전의 난이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달랐다.
‘흐음…… 마지막 남은 SS급 던전이라 그런가?’
기존에 있던 종족말살전쟁이 완수되면서 이제 이 타락한 영웅을 제외하고는 SS급 던전은 없었다. 물론 해룡의 쉼터처럼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곳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따지고 보면 이 던전의 소유자는 협회와 관련된 토벌자들이라는 건가.’
타락한 영웅은 종족말살전쟁과 함께 비밀리에 관리되던 곳이다. 과연 어떤 자들이 이 던전을 소유한 것일까. 하현이 궁금함에 이것저것 생각해 보던 그때.
우우웅.
하현의 휴대폰이 다시 한 번 울렸다. 혹시 진한으로부터의 답변일까 싶어 하현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봤다.
‘모르는 번호?’
난생 본 적이라고는 없는 번호. 하현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 아니, 많이 익숙했다. 그렇기에 하현은 당혹스러웠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가 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흑월 씨?”
“……응.”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흑월의 목소리. 정말로 전화를 건 사람이 흑월이라는 사실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아니, 그것보다 제 전화번호는…….”
당황하며 말하던 도중 하현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올 일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타락한 영웅의 던전…… 흑월 씨가 소유한 던전이에요?”
개인이 던전을 소유한다. 시도한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협회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패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 던전이 SS급의 던전이라면? 그건 그냥 불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응. 내가 그 던전의 소유자야.”
흑월의 대답이 그런 하현의 생각을 부정했다.
“으음…… 그게 어떻게…….”
“잘 이해가 안 가겠지. 우선 만날까?”
당혹스러워하는 하현의 말투에 흑월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에 하현은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예. 어디로 갈까요?”
“협회 내부의 카페 앞으로 와.”
“알겠습니다.”
흑월의 대답을 들은 하현은 협회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카페 앞에는 평상복을 입고 있는 흑월이 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구나.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하현을 본 흑월은 몸을 돌려 카페의 안으로 들어갔다. 개인룸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먼저 물어볼까.’
안에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흑월은 커피가 나온 이후로도 말을 하지 않았다. 흑월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눈치를 보던 하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비밀리에 길드를 만들고 계셨던 거예요?”
하현이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흑월이 어떻게 SS급 던전을 소유했냐는 것이다. S급이 6명쯤 되거나 그에 맞먹는 전력을 지닌 길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하지만 그런 하현의 생각과 달리 흑월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길드는 없어. 그냥 나 혼자서 가지고 있는 거야.”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협회의 힘을 빌려서 소유하고 있는 거야. 벌어들이는 업적 포인트의 절반은 그 던전의 정지 때 협회에게 지불하지.”
협회를 용병 삼아 던전을 소유하고 있다. 어지간히 좋은 아이템을 주는 던전이 아니라면 손해밖에 못 보는 구조였다.
“뭐. 경험치나 좋은 아이템이라도 주는 건가요?”
“아니. 얻는 아이템은 없고, 괴물도 한 마리뿐이라 경험치도 크게 의미는 없어.”
하현의 질문에 흑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하현은 더더욱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던전을 소유한다는 말인가.
“복수.”
하현의 의아한 얼굴을 본 흑월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하현의 머릿속에 무언가 하나 번뜩이며 지나갔다.
‘꼭 쓰러뜨려야 할 적이 있다.’
하현은 흑월의 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에 보이는 행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청초한 모습. 그 모습이 지금은 차갑게 가라앉아 마치 한 자루의 검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던전에 나오는 괴물이 내가 복수해야 하는 대상이야.”
“아…… 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던 하현은 입을 다물었다. 개인적인 일처럼 보였기에 물어보기는 조금 그랬다. 하지만 흑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20년 전에 일어난 대재앙. 알아?”
“네.”
괴물들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지금의 민철을 만들어냈다던 대재앙. 그 이야기가 여기서도 나왔다는 사실에 하현은 조금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 내가…… 9살이었나. 당시 방랑자라는 길드에 소속되어 C급 토벌자로 활동하고 있었지.”
“음…… 아?”
진지하게 흑월의 이야기를 듣고자 자세를 잡고 있었던 하현의 입에서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나왔다.
‘9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어안이 벙벙한 하현의 모습을 흘깃 본 흑월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캔슬러 출신이다. 초성장이라는 패시브를 지니고 있어서 신체 능력 자체가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강하지. 그래서 이미 그때 몸도 정신도 성인에 가까웠어.”
“아…… 그런 거군요.”
남들보다 훨씬 더 빨리 신체의 절정기에 도달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것이 초성장이 지닌 효능 중 하나였다. 흑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현이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20년 전에 9살이면 지금 흑월 씨의 나이가…….”
“그만.”
평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흑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태까지 모르던 흑월의 나이를 안 게 기뻐서 이야기하던 하현은 그대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어. 길드원들과 던전의 사냥을 앞둔 참이었지. 의지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었지.”
씁쓸한 감정이 묻어나는 흑월의 말에 하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좋은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는 좋다.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대재앙 때 모두 죽어버렸어. 폭주된 던전 중 하나였던 타락한 영웅의 괴물한테 말이야.”
“…….”
하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흑월은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본래 거기서 죽었어야 했지만…… 괴물의 특성이 발동되어 자살하면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 길드원이 전원 몰살당한 사고 속에서 홀로 말이야.”
흑월은 씁쓸한 표정도, 화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힘을 기르고 자격을 갖춘 뒤 타락한 영웅의 던전을 소유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길드원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계속해서 던전을 돌고 있지. 이걸로 이유는 알겠지?”
오직 복수만을 위해 손해밖에 보지 못하는 던전을 계속해서 돌고 있다. 담담한 흑월의 말에 하현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대체 그 대재앙은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후우. 당시의 길드는 정말 더럽기 그지없었군요.”
하현은 대재앙의 원흉이었다는 길드들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흑월이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런 건 아냐.”
“예?”
흑월이 자신처럼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때 협회는 길드 간의 다툼으로 방치되었던 던전들이 폭주했다고 이야기했었지. 그것도 이유긴 했어.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지.”
흑월의 말을 듣던 하현이 표정을 찡그렸다. 이전에 캘시퍼를 통해 들었을 때는 이상한 것이 없었지만, 지금 들어보니 왠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다.
“몇 개의 도시가 공황 상태에 빠지고 길드가 곧장 손을 못 쓸 정도의 괴물들이 같은 시기에 터져 나왔다…….”
담담하게 이야기한 흑월이 하현을 바라봤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흑월의 말은 하현이 느끼는 부자연스러움에 정곡을 찔렀다. 협회가 공개한 자료대로라면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타락한 영웅도 함께 폭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뭔가 이상했다.
‘타락한 영웅은 협회가 소유했던 던전이야. 그런데 왜 대재앙 때 함께 폭주했었고, 협회는 그 사실을 숨긴 거지?’
뭔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끼어들어 있다. 얼굴을 찌푸린 하현은 흑월을 바라봤다.
“설마…….”
“그래. 대재앙은 그냥 일어났던 게 아니야.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일으켜졌던 거지. 그중 하나였던 타락한 영웅은 그자들이 꺼낸 승부수였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재앙 당시 협회의 전력은 반 이상 소모되었다. 그것은 대군의 괴물을 잡으면서 일어났던 것이 아닌, 단 한 마리의 괴물을 잡으면서 입은 피해였던 것이다.
‘설마 대재앙을 일으킨 녀석들은…….’
두 사건에 연관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저지를 집단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되었다.
하현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있을 때, 흑월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네게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을 지금 이렇게 털어놓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흑월은 고개를 똑바로 들어 하현과 눈을 마주쳤다.
“아직 너는 내 힘을 쓰지 않았지만, 이번에 허락해 준다면 내가 먼저 부탁을 하고 싶다.”
“부탁이라면…….”
진중한 표정을 지은 흑월은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복수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