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21. 타락한 영웅
검은 황소의 길드장실. 하현은 민철에게서 부탁받은 서류들을 빠르게 훑어보며 물었다.
“그쪽에서는 여전히 반응 없나요?”
맞은편 탁자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상하게도…… 그 뒤로 반응이 없군요.”
검은 황소와 협회가 연합 길드의 비리를 조사한 지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연합 길드는 그로 인해 성장세가 꺾이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연합 길드가 그 뒤로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이 조용히 지낸다는 것이다.
“저항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격을 준비하는 기세도 없더군요.”
민철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민철이 알고 있는 성운의 성격상 길드가 모두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덤벼들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다르게 성운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민철의 신경을 건드렸다.
“주제 파악을 하고 포기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이유는 알 수 없다. 결국 검은 황소가 할 일은 길드를 안정화시키면서 연합 길드를 마저 정리할 기회를 엿보는 것뿐이었다.
‘그럼 지금 주시해야 하는 건 연합 길드보다 그 녀석들인가.’
저번 종족말살전쟁의 침식을 일으키고 자신을 저격한 정체불명의 집단. 이제 집중해야 할 것은 그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잡히는 게 너무 없어.’
이번의 저격으로 한 가지 실마리는 잡았다. SS급에 가까울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지닌 자가 최소 두 명이라는 것과 그중에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도 함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큰 실마리는 되지 않았다.
‘협회에 등록된 토벌자 중에 그 정도 경지가 되는 사람들은 없었어. 신성력을 구사하는 사람 중에서 제일 강한 것도 S급인 라젤린 씨였고.’
결국 실마리를 잡아도 연결시킬 만한 것이 너무 적었다. 서류를 내려다보던 하현의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
그때 자신을 저격했던 자는 너무나도 강했다. 물론 그 강력한 힘도 불간섭 앞에서는 허무하게 막혔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앞으로는 모든 행동에 저격을 염두에 둬야 해.’
그 정도 저격 거리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저격을 맞을 수 있다. 즉 공개된 장소에서는 불간섭을 한시라도 풀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기둥을 잡는 데 꼭 필요한 게 공방전환이야.’
아오르근 때처럼 쓰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해 버리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언제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하현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습에도 대항할 수 있을 만큼 더욱 강력하게.
‘지금 배울 만한 거라고 하면 선생님의 남은 스킬 하나인데…… 그거랑 별개로 좀 더 필요하단 말이야.’
이제 대력타와 대력난탄의 레벨도 각각 10레벨과 5레벨을 찍기 직전이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격보다는 방어였다.
‘방어 쪽이면 예지랑 혈화광권, 그리고 캘시퍼의 기술 해금 정도인가.’
예지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공격을 감지하는 시간이 빨라진다. 화살이 날아오기도 전에 적의를 파악하고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공격이 적중되기 전에 즉시 발동되는 혈화광권도 레벨이 오르면 공방전환 때 불완전해진 방어력을 받쳐줄 것이고, 캘시퍼의 기술도 아직 쓸 만한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저것들만 다 강화해도 어느 정도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운데.’
기존에 가진 스킬만 강화시키는 것은 뭔가 부족했다. 뭔가 좀 더 이 상황을 확실하게 타파할 수 있을, 결전기 같은 그런 스킬이 없을까 하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하현의 모습에 민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에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갑자기 할 일이 떠올라서요. 이거 금방 해결하고 가볼게요.”
“아, 예. 알겠습니다.”
하현은 산만해졌던 정신을 되돌리고 서류를 바라봤다. 만약 방금 전 자신의 생각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끝장이지.’
아마 자신의 힘은 여러 방향으로, 그것도 무한대로 강해질 수 있으리라.
***
“스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현의 갑작스러운 말에 강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만의 스킬을 좀 만들어보려고요.”
“흐음…… 스킬 만들기 엄청 까다로운데. 네가 찾는 거랑 비슷한 효과의 스킬은 없더냐?”
“다 찾아봤는데 없었어요.”
하현의 말에 강철은 곤란한 표정을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만의 스킬을 만든다. 그건 어느 정도 수준이 오른 토벌자라면 몇 번 도전하는 일이었다.
초기에는 주변에서 필요한 걸로 배워 쓰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전투 방법이 확립된다. 그때 자신에게 딱 맞는 스킬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만들려고 한 놈들 중에 성공한 놈은 드물지만.”
기존의 스킬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과 자신만의 스킬을 만드는 것은 궤를 달리한다. 강철만 해도 지금의 스킬을 만들어내는 데 5년이 넘도록 걸렸었다.
만들려고 해도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스킬인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가르쳐 준 스킬로 안 되냐?”
“스킬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할 스킬 같아서 그렇습니다.”
단호한 하현의 말에 강철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꼭 만들어야겠다면야…… 생성 방법은 두 가지. 어려운 방법과 뒈질 정도로 어려운 방법이 있지.”
쉬운 길은 절대 없다. 강철의 단호한 말에 하현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렵기만 한 방법은 반복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스킬의 모양과 효과를 떠올리면서 반복하는 거지.”
“…….”
“그러니까 대충 비유하자면 내 손에서 에너지파 같은 게 나간다고 상상하면서 계속 시도하다 보면 생긴다는 거다.”
강철의 말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가능한 겁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아, 물론 그 생각한 스킬의 기본이 되는 것 정도는 알아야지. 재료도 없이 건물은 만들 순 없잖냐.”
기본이 되는 스킬을 몇 가지 배워두고, 그 요령들을 이용해서 원하는 스킬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스킬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 이게 그냥 어렵기만 하다고?’
그럼 도대체 뒈질 정도로 어려운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현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시련이다. 시련한테 만들어달라고 해.”
“예?”
단순 명료한 강철의 말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강철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거 있냐. 시련은 뭐 해달라고 하면 해주긴 하잖아. 그걸 이용해서 만들고 싶은 스킬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시련한테 직접적인 요구를 하면…….”
“그래. 직접 하느니만 못하는 걸 대가로 시켜 버리지. 그래서 뒈질 정도로 어렵단 거다.”
스킬을 단련하는 과정 대신 시련에게 요청해 원하는 스킬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로 안 하느니만 못한 방법이었다.
“일례로 이런 게 있었지. 어떤 녀석이 한 번에 여덟 지점을 공격하는 스킬을 시련으로 만들려고 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스킬이다 보니 그렇게밖에 시도하지 못했지.”
한 번에 여덟 지점을 공격한다. 확실히 단신으로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허황된 스킬이었다.
“그래서 대가로 요구된 게 뭔지 아냐? 드래곤 모가지를 가져오라고 하더라고. 이제 막 B급이 된 녀석에게.”
“…….”
강철의 말에 하현의 얼굴이 멍해졌다. 드래곤? 설마 종족말살전쟁에서 보았던 클리페우스 같은 드래곤을 말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여태까지 나타난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S급 이상이었어. 종 자체가 사기적인 녀석들이지. 근데 스킬 하나 만들겠다고 그 녀석을 단신으로 잡아? B급이? 자살이지 그건.”
하현은 그제야 왜 강철이 두 번째 방법을 추천하지 않는지 알았다.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대가를 원하니 그냥 미친 듯이 단련하는 게 더 빠른 것이다.
“뭐 결국 녀석은 첫 번째 방법으로 스킬을 완성했지. 그러니까 너도 만들 생각이면 그냥 첫 번째 방법으로 해.”
강철의 조언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자신도 첫 번째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만들려는 스킬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뜬구름 잡기였고, 몇 년이고 단련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그래. 지금 당장 익힐 것부터 충실해야지.”
하현의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시련을 통해 목각인형을 만들어냈다. 대력타와 대력난탄이 각 10레벨과 5레벨이 된 하현에게 새로운 스킬을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스킬은 나답지 않게 조금 테크니컬하다. 뭐 그래서 쓸모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어라.”
목각인형을 바라본 강철은 두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왼 주먹을 휘둘러 목각인형을 툭 쳤다.
퉁.
강철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일격. 그 모습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안 어울리는데?’
하현이 생각한 강철의 이미지는 일단 때리면 반은 죽여 버리는, 그런 강력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보인 모습은 거의 장난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첫 타로 밑밥을 깐다. 그다음은.”
강철은 이번에도 무심하게 오른손으로 가볍게 목각인형을 후려쳤다.
콰앙!!
그리고 목각인형의 상체가 폭발했다.
“어?”
두 번 모두 가벼운 공격이었지만 방금 보인 위력은 강철이 전력을 다한 대력타와 비슷할 정도로 강력했다. 깜짝 놀란 하현의 머릿속에 문득 저번의 싸움이 떠올랐다.
“아, 이거 혹시.”
“그래. 아오르근 때 한 번 썼었지. 이게 내가 만든 가장 강력한 스킬이다.”
일격필살을 모티브로 삼는 강철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번의 연속 공격. 하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뒤로 갈수록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녀석은 극히 드물어. 너처럼 미친 척하고 올힘에 쏟아부은 녀석들도 버거워지지.”
S급이 된 토벌자도 강하지만, 괴물들의 강함은 더더욱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렇기에 강철도 어쩔 수 없이 그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스킬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만든 게 나의 최종 스킬…… 이격폭타다!”
“…….”
강철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두 번 때리고 터진다. 참으로 강철과 어울리는 단순한 이름이었다.
“처음에 때린 공격과 뒤에 때린 공격의 위력이 서로 맞물려서 더 살인적인 위력을 만들어내지. 이것도 뭐 단순하지만 내 나름대로 테크니컬한 기술이야.”
방금 전 가볍게 후려친 공격들임에도 불구하고 위력은 상당했다.
그 뜻은 전력을 다한 두 번의 공격 뒤 터지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이격폭타의 효력을 곰곰이 생각하던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이거 설마 대력타나 대력난탄에도 섞어서 쓸 수 있어요?”
하현의 질문에 강철은 씩 웃었다.
“물론이지.”
“…….”
강철의 말에 하현의 얼굴에 경악스러움이 서렸다.
일반적이 공격이 아닌 스킬에도 효능이 일어난다. 그럼 정말로 사기적인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대력타랑 하면 맞추기가 조금 힘들고 대력난탄은 마나랑 체력 소모가 너무 많아. 그때 못 끝내면 내 목숨이 위험해지지.”
이 악물고 쓰면 말 그대로 결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현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스킬의 위력에 반짝이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꼭 가르쳐 주십쇼.”
“그래. 뭐 한번 잘 써봐라.”
-스킬 ‘이격폭타’의 습득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습득.”
-스킬 ‘이격폭타’를 습득하셨습니다.
이격폭타(Lv.1) : 액티브. 처음 공격 이후 10초 안에 추가타를 적중 시 두 공격의 피해량을 각각 200% 적용합니다. 체력과 마나가 동시에 소모됩니다.
‘각각 두 배라…… 1레벨에도 두 번 공격해서 네 번 때린 격이니 어마어마할 만도 하구나.’
이후로 레벨이 올라 피해량이 올라갈수록 더더욱 무시무시해지리라. 하현은 혀를 내두르며 스킬의 정보를 껐다.
“자주 사용하게 될 스킬이니까 당분간은 이격폭타를 무조건 섞어서 써라.
자주 쉬게 될 테니까 경험치 많이 얻으려면 가급적 강한 녀석들하고 싸우고.”
“예. 알겠습니다.”
엄청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이격폭타의 내용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만 제대로 익혀도 공격 면에서는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없으리라.
“그런데 아까 만들겠다던 스킬은 무슨 종류냐?”
스킬의 전수가 끝나자 강철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직접 공격계열? 아니면 패시브나 버프 쪽이냐?”
“버프 쪽이요.”
“버프라…… 그러면 단순 수련으로는 만들기 까다로운데.”
버프는 없던 힘을 이끌어내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단련으로 만들기에는 까다로운 쪽이었다.
강철의 말에 하현은 골똘히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일단 시련으로 요청이나 해볼까요? 어차피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요.”
“그것도 그렇긴 하지. 근데 아마 너도 보면 질색할걸.”
“어이없는 게 나오면 단련의 원동력이 될 테니 더 좋겠죠.”
미소를 지은 하현은 머릿속으로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배우고 싶은 스킬의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렸다.
‘내가 배우고 싶은 스킬은…… 공방전환의 민첩 버전!’
공격도 할 수 있고 회피도 할 수 있는 민첩.
거기에 사기적인 스킬인 불간섭이 적용된다면 분명 공방전환에 버금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킬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현이 생각한 새로운 결전기였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런 하현의 강한 바람을 따라 시련이 생성되었다. 혹시 의외로 쉬운 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현은 그런 기대를 하며 시련창을 바라봤다.
[새로운 스킬]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한다. SS급 던전 ‘해룡의 레어’와 ‘타락한 용사’를 완수하라.
난이도 : 스킬 생성
보상 : 전환스킬의 확장
-던전 완수에 관여하지 않았을 시 다른 SS급 던전으로 대체됩니다.
-기여도가 40%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
얼빠진 표정으로 시련창을 바라보던 하현은 한 가지 깨달았다.
예부터 경험자의 조언은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