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88화 (88/158)

# 88

종족말살전쟁 첫 던전 완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하현은 방해를 안 받아도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핵심인 마법진을 없앨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하현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확실한 성공 키를 가지고 던전으로 돌아왔다.

“그대가 대리자라면…… 옆의 그들은 누군가?”

설명을 듣고 이전과 같이 납득한 클리페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그에 하현은 옆에 서 있는 검은 황소의 간부진과 라젤린을 바라봤다.

[이쪽은 이번 일을 도와줄 자들이다.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 안심해라.]

하현은 짐짓 무게를 잡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일행은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흠.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찾아온 이들이 하나같이 대륙에서 손꼽힐 강자라니…… 창조신의 농간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겠군.”

다른 이들은 S급 토벌자고 유일한 A급인 아민도 거의 S급에 가까운 실력자였다. 하현의 일행을 보며 감탄을 뱉은 클리페우스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인과의 통찰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

넌지시 이야기한 하현의 말에 클리페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실례를 끼쳤군.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나도 안다. 창조신께서 그리 만들었겠지. 하지만 참아줬으면 좋겠군.]

“알겠다. 미안하군.”

클리페우스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며 물러섰다. 골드 드래곤이 지닌 인과의 권능은 대상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나야 불간섭이 저항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겠지. 순식간에 전후 사정을 다 파악해 버릴 거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클리페우스가 게르바처럼 호의적이리란 보장은 없었다. 클리페우스의 변수를 미리 차단한 하현은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장비들을 몽땅 모았다.

‘되려나…….’

하현은 기대되는 눈으로 장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캘시퍼를 통해 빨아들였다.

‘정상적으로 흡수돼?’

「예. 모두 정상적으로 흡수됩니다.」

던전에서 얻은 같은 무기들도 별다른 문제없이 개별적으로 적용된다. 즉 무기들이 왕창 나오는 던전이라면 캘시퍼의 기술 해금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 말고 하나 더 던전을 좀 알아봐야겠네.’

하현은 무기의 흡수를 잠깐 멈추고 오기 전에 결정했던 캘시퍼의 기술을 해금했다.

「무한 저장고의 기술을 해금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제한된 인벤토리가 아닌 한계가 없는 저장고. 캘시퍼가 가진 기술 중에서도 상당한 고급 기술이었기에 종족말살전쟁이 없었다면 한참 걸렸을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 이 장비들을 모두 저장해.’

「알겠습니다.」

하현의 명령에 따라 캘시퍼는 반 정도 남은 무기를 모조리 저장고 안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것도 모두 흡수해서 기술을 해금할 수 있겠지만, 하현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이 정도 장비를 모조리 처리하면 분명 상당한 양의 자금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길드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은 꼭 필요했다.

‘개인적인 돈은…… 이미 평생 쓸 수준이 되었으니까.’

저번에 통장의 잔고를 확인했을 때 하현은 확신했다. 세계 멸망을 막고 범죄만 안 저지르고 산다면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다고. 아마 주식을 한두 번 정도는 말아먹어도 괜찮으리라.

[됐군. 세계수로 가자.]

클리페우스의 도움을 받아 세계수의 밑동으로 온 일행은 모두 놀란 눈으로 세계수를 바라봤다.

“이건…… 정말 세계수군요.”

세계수를 올려다보는 라젤린의 눈동자에는 조금 아련함이 담겨져 있었다. 그녀를 흘끔 본 하현은 고개를 돌려 일행을 바라봤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

하현이 모두에게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그에 지호와 라젤린, 클리페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마력과 신성력을 모아라. 조절은 클리페우스 네가 한다.]

권위의 대천사인 아멤론의 마법진은 드래곤인 클리페우스도 쉽사리 없앨 수 없는 힘이다. 덕분에 하현도 해결 방법 때문에 골치를 썩였지만, 이전의 방해 공작 덕분에 알게 되었다.

우우웅!!

라젤린의 신성력과 지호의 마법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조화롭게 섞일 수 없는 힘이지만, 클리페우스가 지닌 흐름의 권능이 두 힘을 섞었다.

‘현재 진행률은?’

「이전에 일어난 경우를 대입하여 결과를 추론한 결과 신성력의 출력을 15% 낮춰야 합니다.」

저번에 있었던 공격을 분석하여 마법진의 붕괴 없이 깔끔하게 해제시킬 수 있는 힘으로 조율해 낸다. 캘시퍼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후우웅!

캘시퍼의 백업 아래에 세 사람의 조율이 계속되자 뒤섞인 힘들이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힘을 본 클리페우스는 감탄을 내뱉었다.

“이건…… 놀라운 힘이군. 인과를 끊어내다니.”

대리자의 도움하에 조율하지 않았다면 곧장 풀려 버릴 만큼 두 힘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조율되고 나니 무엇과 비교조차 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거라면 확실히 마법진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확신이 담긴 클리페우스의 말에 하현은 속으로 캘시퍼에게 물었다.

‘조율의 정도는?’

「마법진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맞추었습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붕괴는 없을 것입니다.」

하현은 고개를 돌려 클리페우스를 바라봤다.

[세계수를 향해 날려라.]

하현의 신호에 세 사람이 조율한 기운을 세계수를 향해 날렸다. 은색 빛을 띤 기운은 세계수에 닿자 이전과 다르게 부드럽게 퍼졌다.

파직!

세계수를 둘러싼 마법진이 떠오르고, 옅은 금이 새겨졌다. 조각난 마법진이 천천히 희미해지며 사라져 갔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사라지는 마법진을 바라보던 클리페우스는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봤다.

“마법진이 사라졌군. 그대의 임무는 모두 끝났나?”

[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하현은 아주 자연스럽게 의사 증폭기를 끄면서 육성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을 변화라고 받아들인 클리페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그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멸망을 막아준 것에 대해 중간계의 조율자로서 감사를 표한다.”

클리페우스는 고개를 숙이며 하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드래곤의 감사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칭호 ‘드래곤의 은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머지 일은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지. 협조하겠나?”

클리페우스의 말에 주변의 다섯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망설임이 서려 있던 이멜도 이제는 각오를 다졌는지 굳은 얼굴이었다.

“그럼…….”

[고맙습니다…….]

클리페우스가 몸을 돌린 순간, 하현의 뒤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하현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왔던 세계수 쪽을 봤지만, 던전의 풍경이 흔들리며 일그러졌다. 대신하여 나타난 광경은 여전히 살벌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터였다.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치러라!!!]

분노가 극에 달한 클리페우스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주변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드래곤의 권능에 따라 모아지는 힘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뭣?]

전력을 다해 기운을 빨아들이던 클리페우스의 눈에 당혹함이 서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수를 향했다.

[저건……!]

클리페우스가 전력으로 기운을 빨아들이자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진이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법진의 정체를 파악한 클리페우스가 결단을 내렸다.

어떤 의도든 간에 저것을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클리페우스가 자신의 생명력까지 끌어모으며 극한으로 압축한 힘, 브레스가 세계수를 향해 덮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법진의 주변이 일그러졌다. 그다음 찾아온 것은 이전에 하현이 겪었던 어마어마한 대폭발이었다.

[쿨럭!]

수명이 반은 깎일 만큼 무리한 클리페우스는 지상을 향해 내려갔다. 막대한 폭발에 전쟁은 멈췄고, 모든 이의 시선이 클리페우스를 향했다.

“대체 무슨 짓이냐!!”

세계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본 토르른이 파리한 얼굴로 소리쳤다. 세계를 유지하는 기둥 역할인 세계수가 사라지면 재앙이 온다. 그것이 아이아스 왕국의 오랜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놈들! 내가 막지 않았다면 세계가 그 순간 멸망했음을 모르는 것이냐!]

세계수가 사라지고, 마법진의 정체를 인과의 통찰로 알아냈다.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클리페우스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권위의 대천사 아멤론이 타락했다! 전쟁을 멈춰라!!!]

클리페우스의 포효가 전쟁터에 울려 퍼졌다.

-종족말살전쟁의 아이아스 대전쟁이 끝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페젤론의 역사를 보셨습니다.

-던전 ‘종족말살전쟁’의 완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던전의 침식이 사라집니다.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도시를 집어삼켰던 어둠들이 천천히 분해되며 사라졌고, 포탈도 천천히 줄어들었다.

-고통에 휩싸이던 세계수를 구원하셨습니다. 칭호 ‘세계수의 구원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무의미한 대전쟁을 종식시키셨습니다. 칭호 ‘전쟁의 종결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에게 가장 높은 기여도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으로 ‘종족말살전쟁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여러 명이 던전을 완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얻은 경험치는 다소 적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보상인 상자는 그대로 받았기에 큰 손해는 없었다.

“오…… 오랜만에 칭호네. 드래곤에게 인정받은 자라.”

“아. 그 칭호 저도 받았어요.”

“그 외 보상은 경험치 조금이지만 뭐…… 호위로 와서 한 것도 없으니 적당한 걸지도 모르겠네.”

지현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보아하니 호위로 와서 결국 아무것도 못 했던 지현과 아민, 민철은 칭호와 경험치만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칭호와 아이템 하나군.”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에 비해 마법진을 부수는 데 활약을 했던 지호와 라젤린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았다.

‘여럿이서 완수를 하면 이렇게 되네.’

대강 상황이 정리되는 것을 본 하현은 민철에게 다가갔다.

“이거 대대적으로 보도할 거죠?”

“물론입니다. 그것보다 연합 길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첫 시도에서 자신을 습격해 왔던 정체불명의 암살자들. 폭발에 모조리 죽어버려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민희가 그들이 연합 길드의 암살단임을 알려주었다.

‘어느 정도 더러운 수를 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이대로 시간을 두면 분명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하현은 그에 대해 철저하게 보복해 주리라 결심했고, 그 기회가 함께 왔다.

“어떻게 하긴요. 완전히 개박살을 내야죠.”

기회가 잡혔으니 놓아줄 생각은 없다. 끈질기게 붙잡아 마구 두들겨 패서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현은 씩 웃으며 머리를 굴렸다.

***

“…….”

연합 길드장 5명이 모인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휩싸였다. 조용히 탁자를 내려다보던 성운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번에 비리 조사에서 빠져나온다고 우리 전력이 얼마나 깎였는지 알아?”

“…….”

그에 대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는 껄끄러운 사실이었다.

검은 황소의 종족말살전쟁 완수 발표와 협회에서 돌발적으로 발표한 연합 길드의 비리 조사. 조금 올라갈 기세를 보였던 연합 길드는 그 두 가지 발표로 완전히 박살 났다.

담담하게 조사를 받아들이고 징계를 받은 블랑코 드라곤과 다르게 다른 다섯 개의 길드는 필사적으로 조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꼬리를 잘랐다.

하지만 꼬리만 자르고 빠져나오기에는 검은 황소의 공격이 너무나도 집요했다.

“자그마치 40%가 넘게 날아갔어. 거기다 줄 갈아탄 토벌자들만 일만 명은 넘어.”

계속해서 자르고 자르다 보니 꼬리뿐만 아니라 다리마저 잘라 버렸다.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이제는 검은 황소에 대항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런 개…… 후우. 아니지. 너희들이 실수한 건 아니니까.”

연합 길드는 자신들의 더러운 일들을 철저하게 숨겼다.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문제라면 그 안에 속해 있던 블랑코 드라곤이 배신을 했다는 것이겠지만.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냐?”

여태까지 한순간도 자신감을 잃어본 적이 없었던 성운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이제 정말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검은 황소에게 다른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기어 다니는 것 말고는.

“끝났네…….”

아무런 말도 없는 길드장들의 모습에 성운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그시 눈을 감은 성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끝났는데…… 나 혼자는 못 가겠다.”

성운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이미 잃은 건 다 잃었다. 비루먹은 개새끼마냥 빌빌거리면서 살 바에야 민희와 검은 황소의 간부진들을 모두 죽인 다음 뒈져 버리는 것이 나으리라.

그런 성운의 생각을 알아차린 네 명의 길드장이 움찔거렸다. 자신들도 저기에 동참해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자존심은 상했지만 그다지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고개만 숙이면 여전히 콩고물은 주워 먹을 수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을 알아차린 성운이 얼굴을 왈칵 찡그렸다.

“됐어. 이 등신새끼들아! 할 생각 없으면 꺼져!”

신경질적인 성운의 외침에 길드장들이 눈치를 보더니 주섬주섬 일어섰다.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성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 계획에 훼방 놓으면 니들 모가지부터 딸 줄 알아.”

성운의 말에 길드장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대로 연합은 해체된다. 더 이상 검은 황소를 막을 수 있는 자들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성운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악착같이 달려들어 한쪽 다리라도 뜯어내리라.

“마인드가 좋군. 합격이야.”

콰아아앙!!!

검은색 번개가 회의실의 안에 내려쳤다. S급도 섞여 있었던 길드장들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갑작스러운 모습에 성운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구?!’

괴물인가? 아니,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성운은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어둠을 발견했다.

“싸우길 포기한 사냥개는 쓸모가 없지. 하지만 너는 다른 것 같군.”

어둠 속에서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어둠의 주변으로 방금 죽었던 길드장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고 무언가 경직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주 찰나였지만 눈앞의 존재가 어떤 자인지 깨달았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죽는다.’

그만큼의 압도적인 차이다. 성운은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거만하고 자존심은 강하지만 확실한 적이 아닌 경우는 주제 파악이 빠르군. 아주 좋아. 훌륭하게 자랐어.”

즐거운 듯 웃음을 흘린 어둠이 성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검은 황소를 죽일 수 있는 힘을 빌려주지. 대신 내 장기말이 되어라.”

자존심을 짓뭉개는, 거만한 말. 하지만 그에 성운은 고개를 숙였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성운의 입가가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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