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87화 (87/158)

# 87

자신들의 병장기를 모조리 챙긴 병사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한 명의 병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왜 무기를 다 가져오라는 거야?”

“장군님이 가져오라잖아. 별수 있어?”

대답을 해준 병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던 병사는 조금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이 습격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 말에 다른 병사들도 동감했다. 이곳은 전쟁터다. 병장기가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물건인데 그것을 내놓는다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녀석들도 낸대.”

“뭐?”

“다른 세력 녀석들도 모조리 낸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내.”

병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정말로 자신들 말고도 여태까지 싸웠던 적병들이 모여서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서로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던 천사와 악마, 드워프와 엘프가 사이좋게 자신들의 무기를 한데 모으고 있는 모습은 안 어울리다 못해 꿈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까?”

잠자코 그 광경을 바라보던 토르른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한껏 무게를 잡으며 내려다보던 하현이 고개를 돌렸다.

[대가 없이 권능을 발휘할 수는 없으니. 지금 같은 경우는 기술에 대한 대가다.]

“그렇지만 저 무기들 모두가 국가의 재산이거늘…….”

[국가가 없어지면 그 재산도 무의미한 거지.]

하현의 말에 토르른은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뒤로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돌프핸드가 피식 웃었다.

“허공에 망치질한다고 뭐가 나오나. 재료가 있어야 물건이 나오는 법이지.”

[드워프라 그런지 잘 아는군.]

돌프핸드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인 하현은 고개를 돌려 쌓여가는 장비들을 바라봤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 모이는 장비들은 마법진과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기에 이야기한 것이다.

‘던전에 나오는 장비들을 캘시퍼에게 모두 적용할 수 있는가지.’

지금 쌓여가는 무기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양도받은 무기. 즉 하현이 취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만약 이 방법이 가능하다면 여태까지 골치 아팠던 캘시퍼의 해금이 쉬워질 수도 있었다.

‘반복했을 때 적용되는가는…… 이번엔 실험 못 하겠군.’

침식 중인 종족말살전쟁은 곧바로 없애 버려야 할 던전이다. 실험 좀 해보겠다고 이걸 방치해 두기에는 변수도 많고, 그에 따르는 위험도 많았다.

‘반복 실험은 다른 곳에서 하고 여기선 그냥 최대한 많이 얻는다.’

지금 쌓인 물량만 해도 저번에 협회에게 받은 장비보다 더 많았고, 더 좋은 무기들도 섞여 있었다. 하현은 느긋하게 장비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렸다.

“재료인가…….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돌프핸드와 하현의 말을 들으면서 무기들이 쌓이는 것을 바라보던 클리페우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정도 장비들은 줄 수 있지.”

콰과과과!

클리페우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장비들이 쌓인 곳 위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무기들이 폭포처럼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그 막대한 물량을 본 하현은 떡 벌어지려는 입을 참은 채 놀란 눈으로 클리페우스를 바라봤다.

“세계 멸망 막는데 이 정도 무기들을 푸는 걸로 된다면 협조 못할 것도 없지.”

[그…… 렇군.]

클리페우수의 마법 이후 마침내 병사들의 무기가 모두 모였다. 수십만 명의 병사들의 무기들이 쌓인 모습은 마치 병장기로 이뤄진 산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다엘린의 물음에 하현은 무기들을 향해 다가갔다.

[대가를 바치고 답을 구해내는 것이지.]

거짓말이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씩 웃은 하현은 아주 오랜만에 얻어낸 무기의 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맛있게 먹어라. 캘시퍼.’

「감사합니다, 마이스터.」

무덤덤한 캘시퍼의 음성이 왠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

우우웅!!!

하현의 손 앞으로 나타난 동력원이 무서운 속도로 눈앞의 무기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바닥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사라지는 장비들의 모습에 주변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술의 해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몇 가지 기술을 해금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를 흡수하자 캘시퍼가 물어왔다. 하현은 이전에 기억해 뒀던 기술들의 목록을 떠올려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축적해 뒀다가 나중에 해금하는 것도 가능해?’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선 에너지들을 축적해 둘까요?」

‘그래. 그렇게 해줘.’

하현의 명령에 캘시퍼는 뒷걱정 없이 장비들을 마구 흡수했다. 본격적으로 흡수하자 산더미처럼 쌓였던 장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대…… 단하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리페우스가 질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몸을 돌린 하현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이제 마법진을 없애러 가볼까.]

***

세계수 밑동 바로 근처의 뿌리 아래. 연합에서 파견한 암살단들이 숨을 죽이며 밑동을 향해 가는 하현과 여섯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 정말 이걸 해야 합니까?”

대장의 근처에 있던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물음에 대장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현만 해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데 그와 함께 있는 여섯 명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강자다. 그런데 저들을 상대로 암습을 해야 한다니.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이건 정말 무의미한 행동입니다.”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물었다. 대장은 입술을 꾹 깨물 뿐.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

푸슉!

다시 입을 열려던 대원의 미간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꿰뚫렸다. 울컥하며 흘러나오는 피를 본 대장의 얼굴이 파리하게 변했다.

“참 쓸모없는 새끼네. 그렇지?”

그런 대장을 비웃듯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없었지만 뜻한 것은 하나다. 만약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한 놈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대장은 두려움에 얼굴이 창백해진 대원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달려들어서 놈들을 죽여라.”

그 말을 신호로 그들의 모습이 주변에 녹아들듯이 천천히 사라졌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이 씩 웃었다.

“진작부터 할 것이지.”

이제 조금 있으면 저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것이다. 버티는 시간은 10초…… 아니, 30초는 될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후우…….”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울창한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자연과 동화된 채로 모습을 숨긴 여인은 눈동자에 힘을 넣었다.

‘하루도 안 돼서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저 녀석은 너무 위험하다. 종족말살전쟁의 완수를 단 하루 만에 이뤄내기 직전까지 오다니. 저 녀석이 살아 있다면 앞으로 계획이 얼마나 막힐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반드시 죽여야 해.’

여인의 몸에 기운이 돌면서 시야가 더욱 확장되었다. 조금 놀란 것 같은 일곱 명과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암살단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해 면역이라고 했나…….’

난생처음 맡아보는 표적이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이 있었다. 여태껏 절대로 뚫리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녀석들도 결국 그 끝에는 자신의 화살에 꿰뚫렸으니까.

끼기기긱-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주변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여인이 자리 잡은 숲은 이 던전에서 가장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는 장소다.

우우웅!!

그 막대한 마나들이 여인의 의지에 따라 활에 걸린 화살을 향해 모였다. 빛을 깎아 만든 것 같은 황금색 화살.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은 모여드는 마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마나를 흡수할수록 은은하게 빛나던 화살의 빛이 더욱 강해져 갔고, 활시위를 당기는 여인의 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작은 폭풍이 여인의 화살에 깃들어 휘몰아쳤다. 계속해서 응축되어가는 힘에 활이 비명을 질렀다. 떨리는 팔을 잠재우며 여인은 하현을 향해 활 끝을 겨눴다.

“준비.”

후웅!

시동어에 맞춰 화살 앞으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이 화살 앞에 나열되어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냈다.

‘역시 마법 실력 하나는 빌어먹을 만큼 좋다니까.’

눈앞의 마법진들에 여인은 혀를 차며 떨리는 팔을 잠재워 갔다. 자신 혼자만의 힘이 아닌 세 사람의 힘이 모두 합쳐진 공격이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면 표적에서 빗나가리라.

‘이걸 막아낼 수 있을 리는 없겠지.’

막대한 신성력과 마력을 자신의 힘으로 조정하고 압축한 일격이다. 이전에 나타난 아오르근조차도 이 공격을 맞는다면 존재의 50% 이상은 소멸되리라.

‘미안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위해서 사라져 줘야겠어.’

크게 원한은 없었다고, 곱씹듯이 중얼거린 여인의 차가운 눈동자가 하현을 향했다. 손의 떨림이 마침내 완전히 멎었고.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놓아졌다.

“……!!!”

가장 먼저, 아니, 유일하게 눈치챈 것은 클리페우스였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담긴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전력을 다한 방어를 펼쳐도 박살 내고 자신을 즉사시킬 압도적인 힘. 등골이 오싹해진 클리페우스는 암살자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방어마법을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콰득!

그보다 먼저 화살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거리를 좁혔다.

‘이런!’

화살을 막아낼 수는 없다. 클리페우스는 후폭풍이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 화살이 누구를 노린 것인지 바라봤다.

주변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강력한 힘을, 오직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극한으로 압축한 일격. 그 압축된 일격이 하현의 몸에 닿았다.

“……!!!”

폭발음은 없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렬한 섬광이 뿜어졌고, 그 뒤로 터져 나온 충격파가 클리페우스가 펼친 마법을 박살 냈다.

클리페우스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충격파의 위력은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들의 몸은 흔적도 없이 터져 사라졌고, 뒤늦게 반응해 방어를 펼쳤던 여섯 명은 주변의 뿌리로 날아가 부딪치며 중상에서 그쳤다.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하현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세계수의 밑동을 향해 날아가 부딪쳤고.

콰드드드득!!!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세계수 전체가 뒤흔들리고 거대한 뿌리가 땅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야말로 천지를 뒤흔드는 강력한 공격.

하현의 몸을 후려친 공격은 거의 하나의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 공격을 맞고 멀쩡할 존재는 없다고 여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뭐…… 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던 여인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력을 한계까지 강화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쪽으로 움푹 파인 세계수의 밑동 안에서 상처 하나 없이 배를 쓰다듬고 있는 하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뭐…… 뭐야?”

하현은 아찔한 눈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방금 전 자신의 배에 부딪쳤던 공격. 그것은 단언컨대 여태껏 맞아본 공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일격이었다.

“누구지?”

「공격이 날아온 지점은 이곳으로부터 7㎞가량 떨어진 곳으로 추정됩니다, 마이스터.」

켈시퍼의 말해준 위치에 하현은 어딘가 싶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 서서 하현을 바라보던 여인은 하현과 눈을 마주쳤다.

“……!!”

이쪽이 보일 리가 없다. 그저 아주 우연히 이쪽을 본 것을 눈이 마주쳤다고 착각한 것이리라. 하지만 여인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간 공포를 참지 못했다.

‘이, 이 녀석은…… 정말로 위험해.’

방금 그 공격을 막아낸 것은, 아니, 설령 막아내더라도 상처 하나 없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스킬인지는 모르지만 어지간한 스킬이라면 저 안에 담긴 힘에 무너졌어야 정상이다.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해.’

창백하게 질린 여인의 모습이 순식간에 숲에서 사라졌다. 적이 사라진 걸 모르는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공격에 대한 정보는?’

「마력과 신성력이 결합된 힘으로 추측됩니다. 희석되어 남아 있는 양을 통해 분석한 결과 SS급에 가까운 자들이 지닌 힘으로 보입니다.」

‘SS급에 가깝다고……?’

그 정도로 강한 인물이라면 기껏 해봐야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던 클리페우스 정도다. 하지만 본래 역사상 그런 인물들은 이곳에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설마 바깥의?’

결국 자신을 방금 습격한 자는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SS급에 가까운 힘을 지닌 자들에 대한 정보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건 좀 알아봐야겠는데.’

방금 전 날아온 화살은 이전에 포탈을 꿰뚫었던 화살과도 얼추 비슷해 보였다.

흑막의 꼬리를 찾아낸 것 같다고 하현이 막 생각하고 있을 때.

빠직.

세계수의 주변으로 거대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어?”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진이 거대한 금이 새겨진 채로 나타났다. 방금 전 여인이 쏜 화살은 스킬들의 효과를 끊어버릴 수 있는 특수한 힘이 서렸었다.

그런 힘이 하현과 부딪친 뒤 세계수 전체에 퍼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답은 간단했다.

-마법진이 붕괴됩니다.

이번에도 폭음은 없었다.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고, 세계수 주변 일대가 완벽하게 소멸했다.

SS급에 가까운 클리페우스도 소멸시켜 버린 강력한 폭발. 그것은 시련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고, 던전이 초기화된다는 것을 말했다.

“…….”

폭발로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에 앉은 하현은 하늘을 바라봤다. 폭발로 인해 조각난 하늘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시련을 실패하셨습니다.

알림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던전이 고정된 시간대의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상태이상 ‘초기화’에 저항하셨습니다.

본래라면 이 순간 하현은 죽어야 했지만, 불간섭이 그 효과에 저항한 덕분에 되돌아가는 던전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던전에 도전해야 한다. 분해서 마구 이를 갈며 흑막에게 복수하겠다고 소리칠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하현의 입가에는 분노 대신 짙은 미소가 맺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고맙게 잘 쓰지.”

그 흑막의 암습 덕분에 유일하게 알 수 없었던 던전 완수의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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