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83화 (83/158)

# 83

“그럼 지금부터 토벌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는 길드 간의 대화로 진행되며 최종 결정은 나눠진 대화를 통해 협회에서 승인하겠습니다.”

이전과 같이 회의를 시작함과 동시에 협회의 중재자가 뒤로 빠졌다. 시작된 회의에 하현은 내부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린 스콜피온이 없다는 것 빼고는 이전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마치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뉜 것처럼 검은 황소와 다른 길드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종족말살전쟁 던전은 기존의 던전과는 체계 자체가 다른 새로운 던전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유사 인종들이 괴물로 나타나고, 그들을 죽여야만 정지되는 던전이지요.”

먼저 운을 뗀 것은 민철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상대 길드장들을 바라본 민철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기에 이번 토벌에 가담할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무력은 그다음의 문제지요.”

“심리적 준비?”

성운은 미소를 지으면서 민철을 비웃듯이 입을 열었다.

“괴물들을 잡는데 심리적 준비라고 할 게 뭐 있어. 그냥 가서 머리통을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그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닙니다.”

민철이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성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니. 단순한 괴물이야. 설마 검은 황소는 그들을 단순한 괴물로 치부하지 못한다는 건가?”

공격할 건수를 제대로 잡았는지 성운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 말을 들은 민철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여태까지 이와 비슷한 경우는 많았어. A급 던전 중 하나인 거울 숲에는 침입자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도플갱어들이 나왔지. 그들도 겉모습은 우리를 따라 해서 인간이나 다름없었지만, 우리는 어쨌지?”

거울 숲은 공개된 던전이었다. 그 말은 즉 그곳을 찾아간 토벌자들은 모두 도플갱어들을 한 번씩은 죽였다는 것이다.

“던전에 나오는 것은 모두 괴물들이야. 인류에 해를 끼치는 녀석들이지. 그런데 지금 검은 황소는 그들에게 이입해서 함부로 죽일 수 없다, 뭐 그렇다는 거야?”

틈이 보이자마자 매섭게 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저 말로 인해 상황이 얼마나 불리해졌는지 알고 있는 아민은 초조한 눈으로 민철을 바라봤다.

하지만 민철은 처음과 같이 차분한 표정을 유지할 뿐, 변화는 없었다.

“이거 반대로 검은 황소 쪽에서 준비가 덜된 것 아니야? 토벌권을 맡아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어깨를 으쓱인 성운은 검은 황소의 간부진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봤다. 아민은 초조해했고, 지호와 지현은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눈동자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드의 길드장인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눈으로 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거슬리는데.’

민철이야 회의 때마다 평정심을 잘 유지하기로 유명했으니 별 상관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길드장인 하현은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입을 열 때마다 폭탄 발언 같은 것을 마구 던지고, 그것들을 모조리 성공시켰다는 것 정도.

‘그래도 이걸 놓칠 수는 없지.’

자신들의 논리에 틀린 것은 없었고, 하현의 존재가 거슬린다고 해도 이제 와서 뺄 수는 없다. 사실상 토벌의 기회를 완전히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왜 빼겠는가.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선발은 우리에게 맡기지. 어차피 이미 길드에게 몇 번 토벌된 곳이니까 쉽지 않겠어?”

전력상으로 두 길드는 비등했다. 아니, 정확하게 추측이 되지 않는 하현의 힘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쪽이 훨씬 밀리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마음가짐 쪽을 마구 찌른다.

‘최소한 이 부분을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게 안 통한다고 해도 그 외에 더러운 공작은 얼마든지 준비해 뒀다. 그것을 위해서 이전에 길드장들을 모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네놈이 아무리 희한한 놈이더라도 이번 건 그냥 못 넘어갈 거다.’

곧 자신에 의해 뭉개질 하현의 모습에 성운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검은 황소의 반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성운이 한창 즐겁게 생각하고 있을 때.

“좋습니다.”

민철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수락했다.

“뭐…….”

민철의 대답에 성운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확 떠졌다. 그 모습을 본 민철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선 토벌권은 르 죤 라팡을 비롯한 다른 길드들에게 양보하지요. 저희 검은 황소는 좀 더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짜냐?”

성운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하현에게 물었다. 민철이 대답했지만 결정은 길드장이 내리는 것이다. 그의 시선을 느낀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미소를 지었다.

“네. 맞습니다. 검은 황소는 이번 종족말살전쟁의 우선 토벌권을 양보하겠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성운은 계속해서 다른 간부진들을 바라보았지만.

“뭐. 나 말단 길드원이야. 딴 놈 봐.”

“나한테 발언권은 없군.”

“길드장님이 그, 그렇다고 하시네요.”

다른 세 명 역시 그 결정에 반발은 없었다. 주변 길드장들의 멍한 얼굴을 바라본 하현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뭐 저희는 빠졌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하세요. 그럼 이만.”

하현이 일어나자 다른 검은 황소의 길드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성운을 비롯한 길드장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 이거 괜찮은 건가요?”

협회의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 아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현이나 지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이번 결정에 대해서 궁금한 듯 보였다.

“괜찮죠. 문제가 될 게 뭡니까.”

“그치만…… 던전 침식이라는 현상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어요. 먼저 저 현상을 잠재우면 큰 인지도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완수까지 한 다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아민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하현도 그 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네……?”

하현의 말에 아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 하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저희는 저희대로 준비하면 됩니다.”

***

“모두 준비해라!”

침식된 던전 앞으로 6개의 길드의 정예 부대들이 나열해 있었다. 그 수는 총 600명. 길드에서 엄선하고 엄선해서 골라낸 실력자들이었다.

“침식 던전은 정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던전의 침식을 멈추고 폭주를 막을 뿐, 한시도 빠짐없이 괴물들이 리젠한다.”

어떻게 보면 매일같이 사냥할 수 있는 좋은 던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말한다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전 요소였다.

분석이 그렇게 되었을 뿐, 처음 경험하는 침식 던전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어찌 알겠는가.

“그렇기에 목표치를 달성하는 즉시 던전 밖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빼앗아라. 알겠나?”

“예!”

600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6명의 길드장과 그 휘하의 정예 600명이다.

‘못 깰 리가 없지.’

SS급이라 지정받은 이유도 저 어마어마한 규모의 던전이라 그럴 뿐, 실질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곳은 아니리라

“간다!”

성운의 외침에 600명의 연합 길드원이 일제히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적을 죽여라!!!”

“목을 취해라! 심장을 갈라라! 사지를 토막 내라!!”

[크아아아악!!!]

바깥 세계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유혈이 낭자하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전쟁의 모습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 전투 준비해!”

그 광경에 압도되어 있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성운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길드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잡고 싸울 준비를 마쳤다.

“으…… 으…….”

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완전히 꺾여 버렸다. 전쟁터에서는 수십만 명의 유사 인종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바닥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하늘에는 드래곤과 악마, 천사로 보이는 이들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던전은 이름 그대로 종족말살전쟁이었다. 모든 종족이 자신 이외의 종족들은 남김없이 죽여 버리겠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살의를 보이고 있는 끔찍한 장소였다.

“죽여!”

성운이 가장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S급 토벌자 중 손에 꼽히는 속도를 자랑하는 성운의 몸이 눈앞의 병사들을 스쳐 지나갔다.

서걱!

“어, 어…….”

성운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는 무기를 잡고 있던 엘프, 드워프, 인간 등 가릴 것 없이 모두 전신에 혈선이 그어지며 몸이 어긋났다. 핏물이 튀고 난자된 고깃덩어리가 사방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약하다.’

혹시나 했던 걱정이 방금 전 손맛으로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수만 많았을 뿐, 병사들의 질은 SS급은커녕 C급 수준인 녀석도 많았다.

‘이번에야말로 그 검은 황소 녀석들을 뭉개 버릴 수 있겠군.’

입가를 비튼 성운은 자신의 쌍검을 고쳐 잡았다. 혹시 위험이 될 장소는 피하면서 학살만 벌이면 된다. 이렇게 쉬운 던전을 양보하다니, 성운은 하현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아악!! 파, 팔이…… 팔!!!”

한 인간 병사가 잘려 나간 팔에 비명을 질렀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괴물들의 비명 소리가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이건…….”

토벌자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덜덜 떨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들어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이었다. 상대 병사의 팔은 종이처럼 베였고, 지금은 피를 뿜으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누군가 이 녀석을 대신 죽여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죽이면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토벌자는 도움을 구하듯이 주변을 바라봤다.

“뭐……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보고만 있는 거야!!”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동자들. 길드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앞에 있는,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인간 병사 한 명을 못 죽이고 있었다.

“죽어라!!”

“사지를 토막 내주마!!”

망설이는 토벌자들을 향해 병사들이 노도와 같이 쏟아진다. 뒤로 물러날 길은 없다. 설령 도망치려고 해도 나가기 위해선 30분을 버텨야 한다. 하지만 과연 저 많은 이를 죽이지 않고 그것이 가능할까?

“으, 으윽…… 으아아악!!!”

결론을 내린 한 토벌자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손에 들린 검을 휘둘러 눈앞에 달려오는 병사를 죽인다. 그가 가진 힘은 20명의 병사가 한 번에 덤벼도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다.

푸확!!

검이 휘둘러지자 병사들의 몸뚱이가 조각났다. 마치 인형을 자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쉬웠다. 단지 그들이 죽어가는 와중 지르는 비명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비릿하게 풍겨오는 피의 냄새가 토벌자들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죽기 전에 죽여 버려!”

“목표치만 채우면 나갈 수 있어. 움직이라고 등신들아!”

그것은 신호로 머뭇거리던 토벌자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산불이 번져가는 숲처럼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 피가 흩날리고 시체가 땅을 덮었다.

처음처럼 두려움은 없었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살인을 강요하는 상황이 그들 머릿속의 무언가를 무너뜨렸다. 더 이상 그들에게 페젤론의 주민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태껏 던전에 나타났던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던전의 침식이 잠시 중지됩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의 머리통을 베어 날린 성운이 미소를 지었다. 전쟁을 휩쓸고 다녔던 그의 몸에는 피에 절여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벌써 끝인가?’

조금 더 죽이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성운은 전쟁터를 바라봤다. 협회의 길드원들은 진영을 갖춘 채 떨어지지 않고 서로 모여 대응하고 있었다.

“후퇴!”

성운의 외침에 검을 휘두르던 토벌자들이 모두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전의 밖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토벌자들의 모습에 성운의 눈이 일그러졌다. 분명 챙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챙기라고 했을 텐데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무구들을 하나 챙기지 않았다.

‘나가서 한 소리 해야겠군.’

혀를 찬 성운은 포탈을 타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온 토벌자들은 피가 묻은 몸 그대로 서 있었다. 몇몇은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고, 몇몇은 구석에서 구토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무기를 떨어뜨린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몸을 떨고 있는 자도 있었다.

‘분위기가 뭐 이래?’

괴물들을 죽인 것뿐인데 이게 무슨 호들갑인가? 성운은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혀를 찼다.

여기서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협회의 길드장들. 흔히 더러운 일을 자행한 그들 중 몇 명은 살인을 지시한 경험도, 직접 해본 경험도 있었다.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자들을 제거했었다.

괴물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어도 그런 일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즉 길드장들은 그 몇 없는 일을 경험해 본 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있는 600명의 정예 대다수는 달랐다.

“피, 피가…… 안 벗겨져.”

“으그윽…… 어쩔 수 없었다고…… 죽이려고 드니까…….”

그들이 죽여온 것은 인간과 비슷한 유사 인종이 아닌 괴물들이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흉측한 모습에 말이 통하는 경우도 적은, 괴물들만을 죽인 자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과도 비슷하게 보였던 병사들을 죽이게 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정신 안 차려?! 뭘 얼빠져 있는 거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성운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 외침에 토벌자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모였다. 전신에 피를 칠갑한 채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 성운의 모습.

성운의 모습을 본 토벌자들은 이전에 전쟁터에서 그가 벌였던 학살의 순간이 떠올렸다. 그는 자신보다 약하고, 인간과 비슷한 병사들을 도륙하면서 웃고 있었다.

“…….”

그들 사이로 싸한 분위기가 스쳐 지나갔다. 상황이 미묘하게 돌아간 것을 깨달은 성운의 얼굴이 굳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이건…….’

성운이 상황의 이상함을 깨달았을 때,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다음 날 600명의 정예 중 절반 이상의 길드원이 길드를 탈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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