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82화 (82/158)

# 82

던전의 침식.

외부세계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었지만, 이 대륙에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미지의 상황.

그것을 맞이하고 목격하게 된 시민들은 당연히 불안에 떨게 되었다.

“현재 침식된 던전은 협회에 의해 분석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침식된 던전 주변으로 접근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뉴스에서 주의를 주는 아나운서의 모습을 본 하현은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은 흑월은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회장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하현의 물음에 회장은 테이블을 향하던 시선을 올렸다.

“여태까지와 같이 정보를 통제한 뒤 묻을까 싶군요.”

종족말살전쟁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순간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를 폭탄이나 다름없다. 회장은 절대 그것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현은 회장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협회가 지닌 힘이라면 매스컴을 통제하고 빠르게 묻을 수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부분. 기억을 지우지 않는 한 사람들은 불안에 떨 것이다.

난생처음 보았던 현상이 협회에 의해 묻히고 숨겨졌다. 그것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고, 그것은 곧장 혼란으로 이어진다.

“후우…… 그렇겠군요.”

하현의 말에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다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입술을 살짝 깨문 회장은 한탄하듯이 이야기했다.

“종족말살전쟁은 이번 기회에 공개해야겠지요. 침식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나오는 것은 처음 나타난 이례적인 던전으로 공개할까 싶습니다.”

굳이 이전에 숨겨뒀던 던전들을 모조리 공개할 이유는 없다. 침식된 던전의 완수 방법을 찾아내 없앤 뒤 지금처럼 운용한다. 회장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건…… 그들에게 맡길 짐이 아니야.’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다른 토벌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하현은 회장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번처럼 포탈을 강제로 이동시킨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에 대해서는 철저한 방비를 갖춘다면…….”

“평소에도 방비는 갖췄겠지. 하지만 뚫렸다.”

회장의 말을 자르고 흑월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말에 회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냉철하지 못하군. 신중하게 판단해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은 협회가 특히 더 엄중하게 지키고 있던 종족말살전쟁을 습격해왔다. 즉 다른 던전들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처럼 비밀을 안고 가다가 그들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면? 그때는 대중에게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지간하면 이 던전을 일반 토벌자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던전들이 조금 민감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하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까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군.’

어쩌면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현의 모습을 바라보던 회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욕심이었습니다. 고집이 너무 심했군요.”

“공개할 것인가?”

흑월의 물음에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던전의 침식 자체는 외부세계에서 얻은 정보로 금방 분석이 끝날 것입니다. 그동안 여태까지 숨겨온 던전과 그 이유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던전에 다른 길드들이 접근하겠군요.”

종족말살전쟁은 공개된다면 다른 길드들이 군침을 흘릴 만큼 어마어마한 던전이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아이아스 전쟁이 그 배경이었으니 당시의 모든 힘이 모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거기서 나오는 일반 지휘관급만 잡아도 장난 아닌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좋은 던전의 조건은 간단하다. 괴물이 많고, 그 괴물이 좋은 아이템을 지니고 있을 것. 종족말살전쟁은 그 괴물이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였다.

“아마 던전의 토벌권을 주장하겠지요. 막을 방법은 없을 겁니다.”

협회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모습을 취했기에 대중들에게 존중받았고 토벌자들이 따라주었다. 그런데 만약 별다른 이유 없이 어느 한쪽을 밀어준다면? 그렇다면 여태껏 쌓아온 이미지가 뒤틀릴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세력을 지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했다.

“아마 이틀 안에 모든 것이 정리될 겁니다. 회의가 준비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흑월과 하현은 같이 회장실의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잠시 서로 아무런 말이 없던 도중, 흑월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될 것 같나.”

“앞으로의 상황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현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전에 회장과 대화하면서 계속해서 캘시퍼로 추론을 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 결과는 정리되었다.

“사회는 잠시 혼란스러워하겠지만…… 크게 반발은 없을 겁니다. 회장이 그 던전들을 숨기고자 했던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할 테니까요.”

“그건 그렇겠지.”

“다른 거라면…… 앞으로 다른 토벌자들에게 그 던전의 입장 제한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리고 다른 토벌자들이 이 던전들을 어찌 볼 것인가죠.”

협회가 숨기고 있는 던전들의 특징은 사람이 나오거나 사람이 괴물처럼 나타나 죽여야 하는 것들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던전은 무한하게 변한다.

이전에 하현이 벨포트 수성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소통이 가능해지면 여러 가지 조건의 정지 조건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 점 하나만으로도 던전이 확 변하지.’

던전 내부에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자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들을 괴물처럼 생각하며 죽이다가 인간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 그린 스콜피온이 그랬던 것처럼 던전을 소유한 길드가 그 안에서 어떤 실험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협회가 강하게 타협점을 잡아내야겠죠. 아마 잘 잡아낼 겁니다.”

회장이 망설이기는 했지만 시작한다면 어설프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맞으리라. 이제 중요한 것은 이다음의 문제였다.

“나는 본래 하던 대로 할 거다. 나는 무소속이니까.”

이제 1층에 거의 다 내려온 층수를 본 흑월이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너는 거대 길드의 길드장. 네 판단하에 많은 게 바뀌겠지.”

“저도 잘 압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검은 황소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에 따라서 앞으로의 상황이 크게 변할 것이다.

“실수가 없도록 잘해야죠.”

하현의 모습을 바라본 흑월은 열린 엘리베이터 밖으로 먼저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걸은 하현은 조용히 그녀와 함께 협회 밖으로 나갔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행동에 중립이다. 내가 목표로 삼는 것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였지.”

흑월은 S급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토벌자였지만 그 어떤 길드도 흑월을 견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하현을 도와주거나 몇 개의 던전을 같이 돌면서 친분을 쌓은 것처럼 보여도 변함은 없었다.

왜냐면 그렇게 행동해도 그녀는 언제나 중립. 이득을 앞둔 길드와의 싸움은 철저하게 방관하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를 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하현을 흘끔 본 흑월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말에 하현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내가 다른 녀석들과 협조하지 않은 건…… 그 녀석들 개인이 내게 전혀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흑월이 목표로 하는 것에 길드는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압도적으로 강하고, 올곧은 한 사람. 그리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흑월이 보기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 힘이 필요하다면 불러라. 온 힘을 다해 도와주지. 대신 다음에 한 번만 날 도와다오.”

하현은 흑월을 바라봤다. 마스크와 후드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저희 길드의 힘이 필요한 건가요?”

흑월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하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니. 내게 필요한 건 너다. 너 한 명만 있으면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굳이 그녀의 도움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근데 다소 흠…… 말이 그러네.’

흑월을 흘끔 본 하현은 목을 쓰다듬었다. 분명 자기 혼자만 도와주면 충분하다는 이야기겠지만 어째서일까. 미묘하게 대사가 그런 쪽으로도 해석돼서 조금 부끄러웠다.

‘흠흠. 어디까지니 협력 측 이야기니까.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 실례를 끼칠 순 없지.’

붉어질 것 같은 얼굴을 진정시키며 하현은 흑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이쪽을 바라보던 흑월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음…… 흑월 씨?”

“왜 그러나.”

흑월은 여태까지 말을 할 때 보통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면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내고 좀 더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째서인지 갑자기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이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 흑월 씨?”

“부르지 말고 말을 해라.”

왜 이쪽을 안 보시나요, 라고 묻기에는 뭔가 그랬다. 하현은 곤란함에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돌린 흑월을 바라봤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말씀하신대로 흑월 씨의 힘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뭔가 어색하게 느끼고 있다면 자리를 피해주는 게 상책이다. 하현의 인사에 다시 고개를 돌린 흑월은 잠시 하현을 흘깃흘깃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하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하현은 그 길로 길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흑월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유일하게 드러난 눈매를 손가락으로 짓눌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조용히 중얼거리는 흑월의 목소리는 평소의 덤덤한 말투보다는 소녀의 말투와 비슷했다.

***

“이번에 토벌권 무조건 따야 돼.”

회의실에 모인 성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했다. 그 말에 모여 있던 5개 길드의 길드장들이 모두 성운을 바라봤다.

“사람이 나오는 던전이야. 내가 굳이 설명 안 해도 얻을 수 있는 메리트는 알겠지?”

약간 무시하는 듯한 성운의 말투에 길드장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 그린 스콜피온은 길드 내에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길드였다. 그것은 그의 인성을 둘째 치고 길드가 가진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검은 황소가 공동의 적이 된 상황 속에서 그들 사이에 성운은 그린 스콜피온과 같았다. 그의 힘이 빠진 연합은 사실상 검은 황소에 대항할 수 없다.

즉 그가 이 연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세인 것이다.

“그 녀석들을 잘 구슬리기만 하면 당시에 가진 기술력들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던전의 내부에 있는 물건들은 게임 속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 그저 그런 오브젝트가 아니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면 그 사연이 고스란히 깃든, 그 시대의 물건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냥 들고 오지는 못하지만 내부의 괴물들이나 사람들에게 물건의 소유를 인정받으면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말한 그 종족말살전쟁의 토벌권은 무조건 따낸다. 그리고 그 외에 협회가 소유하고 있다는 던전에 대한 소유권 양도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해.”

이번에 던전이 침식한 이유가 협회의 관리 부실이라고, 그렇게 사회의 분위기를 조장해야만 한다. 그래야 토벌자들이 그 던전들을 양도받을 수 있으리라.

“솔직히 까고 말해서 우리가 깨끗한 사람들은 아니잖아? 털면 먼지도 많이 나오고~ 이제 와서 씻으려고 해도 걸어온 길에 떨어진 먼지가 많아서 걸리고.”

이죽거리는 성운의 말에 길드장들은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다. 그들 모두 이미 이 안에서 발을 빼고 검은 황소와 함께 가기엔 멀리 온 이가 대다수였다.

“그러니까 좀 더러운 수를 쓰더라도 원하는 거 얻어보자고.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서 말이야. 알겠지?”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그들의 침묵 속에서 대답을 들은 성운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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