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80화 (80/158)

# 80

19. 종족말살전쟁

“그린 스콜피온의 배후는 알아냈습니까?”

회장의 물음에 진한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혀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당사자인 강훈이 죽어 버린 탓에…….”

진한의 말에 회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번 일은 절대로 강훈이 단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분명 그 뒤에 자신들이 모르는 누군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협회가 그에 대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상대의 목적은…… 현 체제에 대한 반발을 가진 자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협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진행할 때 주의를 강화하도록 하십시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의 말에 진한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는 회장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대비해달라고 해주십시오.”

“예, 그럼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린 스콜피온에 대한 안건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 서류로 넘긴 회장은 그 안에 적힌 제목을 읽었다.

“벌써…… 주기가 돌아왔군요.”

종족말살전쟁.

그다지 유쾌하지 않는 그 울림에 회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보고서를 하나둘 씩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불참자가 꽤 많군요.”

“예, 조금 지치신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반드시 정지시켜야만 하는 던전이지만 지쳤다고 하는 이들을 억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 자체가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니.

종족말살전쟁의 던전은 그런 장소였다.

“그럼 조금 불안한데…… 아무래도 검은 황소의 영입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봐야겠군요.”

“처음부터 그들에게 이것을 부탁하실 생각입니까? 자칫 잘못하면 큰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음…….”

진한의 의견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회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차선책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우선은 최하현 씨에게 부탁하지요.”

“……괜찮을까요?”

회장의 말에 진한이 걱정된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하현이 이 일을 거절할 까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하현이 받아들이고,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확실하게 말해 주십시오. 적어도 제가 본 하현 씨는 강인했습니다. 저희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부탁드리면 아마 잘 해내실겁니다.”

이전에 강훈을 상대로 망설임 없이 싸웠던 하현의 모습을 떠올린 회장이 이야기했다.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본 하현도 그런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나중에 최하현 씨에게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요.”

믿음직한 진한의 모습을 본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처리된 서류를 책상 옆으로 치웠다.

***

“후우우…….”

소파에 드러누운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58분. 속으로 정한 휴식 시간이 2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던전 쉬어버릴까.’

요 근래 길드장으로서 일도 잘했고 토벌자로서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좀 편안하게 집에서 빈둥거리며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남은 2분의 휴식 시간이 그런 하현의 게으름을 마구잡이로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쉬기는 개뿔.’

금방 떠오른 해야 할 일들에 하현은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쉬고 싶지만, 그건 차원의 기둥을 물리치고 세상이 평화로워진 뒤에 해도 충분하다.

세계 멸망이 가깝다는 것은 상당히 우울한 이야기지만 반대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열심히 막아서 성공하면 남은 시간은 편안히 보낼 수 있다.

‘그래, 뭐든지 치워놓고 쉬어야지. 지금 쉬면 나중에 못 쉬게 될 뿐이야.’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절제력을 발휘하며 하현은 시계가 2시를 가리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눕는 시간은 끝났다. 던전에 가서 괴물들의 머리통을 박살 낼 시간이다.

“끄아아악.”

괴성에 가까운 기지개를 핀 하현은 집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격증을 꺼낸 하현은 오늘 다시 바뀐 S급 던전의 로테이션을 확인했다.

‘흠, 이번에 추가 된 던전은 타락한 군단장이고 정지 예정 던전은 폐허의 악마의 심연의 구멍인가.’

매 시대마다 S급 토벌자들은 몇 없지만 S급 던전은 완수되는 것보다 쌓이는 것이 더 많았다.

그 결과 현재 S급 던전은 평균적인 S급 토벌자의 수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협회는 그래서 S급 던전의 같은 경우는 로테이션을 돌려 던전을 관리한다.

정지 기간이 길다는 점을 노려 성장할 수 있도록 몇 개만 남기고 다른 모든 S급 던전들은 정지시키는 것이다.

‘타락한 군단장이면 괜찮지.’

타락한 군단장을 필두로 나타나는 타락한 기사들은 모두 상당한 실력을 지닌 괴물이다.

전투를 단련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히 쓸 만한 곳이 바로 타락한 군단장이었다.

‘이쪽으로 옮기는 게 좋겠네.’

기존의 가던 S급 던전은 너무 거대 괴물을 중심으로 나와서 조금 귀찮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현은 쉬워질 사냥에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우우웅!

그때 하현의 휴대폰에 작은 진동이 울려 퍼졌다. 요 근래 자주 통화한 민철일까 싶어 휴대폰을 바라본 하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협회네?’

요 근래 연락이 온 적이 없는 곳이었기에 하현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하현 씨.

진한의 평온한 인사를 보니 급한 일은 없는 모양이다. 하현은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며 전화를 받았다.

-여태껏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자주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 뭐. 저희 사이는 연락이 없는 편이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죄송할 일은 아니시죠.”

협회에서 하현한테 자주 연락이 와봐야 비상사태가 연달아 터지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오히려 이렇게 연락이 자주 안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현의 말에 진한은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그렇군요. 아.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지금 바쁘십니까?

“음…… 아뇨. 던전 가는 길이긴 한데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닙니다.”

협회와는 연을 자주 맺어주는 편이 좋다.

“어디로 갈까요?”

-아. 계신 곳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하현은 진한에게 지금 있는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저번처럼 진한이 보낸 협회의 마법사가 하현을 텔레포트로 진한이 있는 장소로 옮겨주었다.

협회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카페로 온 하현은 진한과 개인실로 들어가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가볍게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눈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현 씨는…… 사람을 죽이는 데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갑작스러운 진한의 물음에 하현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토벌자는 괴물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물어본다는 말인가.

“글쎄요.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모르겠네요.”

변명 같았지만 실제로 그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최근에 죽인 그린 스콜피온의 길드원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다.

하현은 그것들로 사람으로 쳐줄 생각은 없었다.

‘굳이 비슷한 경우라면…… 저번에 역병의 마을인가.’

욕심에 눈이 먼 그린 스콜피온들과 다르게 그들은 달랐다.

몸은 괴물이었지만 정신은 사람인채로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죄책감보다는 안쓰러움이었지.’

결국 진한이 물어보는 그런 류의 상황을 아직 하현은 겪지 못했다.

하현의 대답에 진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은 그리 흔하지 않죠. 그런데…… 만약 꼭 해야만 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혹시 농담이 아닌 걸까 했지만 진한의 표정은 진지했다. 필요를 위해 살인을 할 수 있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런 돌아가는 식의 대화는 별로다. 하현의 물음에 진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원의 기둥이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SS급인, 매우 위험한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진한의 말에 하현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차원의 기둥이 없는데도 SS급이라니. 그런 판정을 받을 수 있는 던전이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S급이지만…… 다르게 보면 SS급인 조금 복잡한 던전입니다. 그 덕분에 협회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지요.”

“그 던전의 정지나 완수를 도와달라는 것이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진한의 모습에 하현은 순간적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앞에 진한이 한 질문이 만약 이번 던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진짜 골 때리는 곳이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 던전이다. 하현이 대강 알아차렸음을 눈치챈 진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던전의 이름은 종족말살전쟁. 그 내용은…… 예상하셨다시피 페젤론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을 배경으로 둔 던전입니다.”

종족과 왕국, 배우는 검술과 마법의 학파 그리고 섬기는 신까지. 편을 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대립하고, 서로를 증오하면서 일어났던 유례없는 대전쟁.

그것이 바로 페젤론에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인 종족말살전쟁이었다.

“종족말살전쟁은 어떤 던전보다 거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의 도시 한 지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던전이지요.”

아무리 커도 어지간한 던전들은 도시보다 거대하지는 않았다.

지하계는 그래도 그에 맞먹을 만큼 거대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나아가야 할 길은 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종족말살전쟁은 도시보다 거대하면서 그런 제시되는 길도 없다.

그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겠다는 듯 그저 전쟁의 한 모습을 옮겨놓기만 한 모습.

“여태까지 수십 년이고 완수 시도를 해봤지만…… 그 불편한 구조 때문에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요.”

“그렇다는 건…….”

여태까지 정지만 시켰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정지의 방법은……단 하나뿐이었다. 하현의 모습을 본 진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죽였습니다.”

서로를 향해 전쟁을 벌이는 페젤론의 주민들. 종족말살전쟁은 그들을 향해 대학살을 벌여야만 정지시킬 수 있는 끔찍한 던전이었다.

“……그렇군요.”

경멸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정지시키지 않으면 던전은 결국 폭주할 것이다.

그러면 펼쳐지는 것은 그 던전보다도 더 끔찍한 지옥이다.

‘역시…… 하현 씨는 이번 일에 적합하신 분이군.’

단순히 살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가진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한 배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말살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토벌자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했다.

“참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던전의 특성상 강요할 수야 없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한의 진지한 모습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런 던전이라면 사람 손이 부족하겠지.’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도 어느 쪽이든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야지. 저건 꼭 정지시켜야만 하는 던전이야.’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현은 왠지 저 던전을, 저 안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을 겪어 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던전으로써 존재한다면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해야 한다.’

나중에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쳐도 망설이지 않을 수 있도록. 하현은 속으로 몇 번이고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진한을 바라봤다.

“종족말살전쟁. 참여하겠습니다.”

***

“장치의 설치는?”

방 안의 목소리가 수정구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수정구로부터 여인은 짜증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끝냈어. 신호만 보내면 발동 될 거야.”

“그래, 잘했다.”

“어투가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게 아주 거지같네.”

평탄한 방 안의 목소리에 여인은 불쾌한 듯 이야기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다. 이렇게 부하 다뤄지듯 연결되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 뒤에 그자의 저격 준비는 되어가고 있나.”

하지만 여인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방 안의 목소리는 태연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여인은 이를 갈며 분노를 표했지만, 이내 그것을 억눌렀다.

고작 이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일을 그르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 그런데…… 그 녀석이 들어갈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거야?”

“그래, 그자는 들어간다. 그 성격에 나올 수밖에 없겠지.”

그는 자신이 필요한 일이라면 반드시 나선다. 마치 그럴 일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옳은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

이미 한 번 본적 있는 경우였기에 이해하기 쉬웠다.

“너도 이미 비슷한 경우를 봐서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전에…….”

“그만.”

수정으로부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상 말하면…… 먼저 뚫리는 건 녀석의 머리통이 아니라 네 머리통일 거야.”

분명 멀리 떨어져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바로 머리를 겨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 안의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예정대로 일이나 진행하지.”

“그래.”

불쾌한 목소리와 함께 수정구의 빛이 사라졌다. 방 안의 어둠에 파묻힌 수정구를 바라보던 목소리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과연……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일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갑자기 생겨난 변수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지난번처럼 실수는 없을 테지만 만약에라도 실패한다면 뒤의 일들도 분명 꼬일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딱히 화를 내지 않았다.

“그건 그것대로 즐겁겠군.”

오히려 새로 생겨난 변수에, 아주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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