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79화 (79/158)

# 79

그린 스콜피온에 의한 협회 점거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하현의 주먹으로 날아갔던 지역은 빠르게 복원되어 갔고, 당연하게도 그린 스콜피온은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협회는 결국 갑자기 나타난 괴물을 잡다가 그린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죽은 것으로 발표했지만,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내막을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토벌자들 간의 분위기가 미묘합니다. 서로 의심하고 있는 느낌이지요.”

확실히 의심이 나올 만큼 이번 사건은 상당히 컸다.

조금 욕심이 많기는 했어도 강훈이 인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왔었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제가 저쪽 세력에 은연중에 의심을 받고 있다는 거죠?”

어이가 없다는 하현의 말에 민철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은 현재 길드장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적견, 블라우 슈랑에, 그린 스콜피온이 사라지면서 이제 대표되는 거대 길드는 총 7개가 남았다.

그리고 현재 지금 상황은 검은 황소 하나의 길드와 남은 길드 6개의 연합처럼 대립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연합의 안에서 1년도 안 된 시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한 하현에 대한 의심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 뭐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하현의 성장 속도는 궤를 달리하다 못해 정도가 심한 수준이었다.

몇 달 사이에 최하 등급에서 최상위인 S급까지 도달했는데 오죽하겠는가.

물론 하현이 쓰러뜨린 괴물과 완수한 던전의 갯수들을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의심받고 있었다.

“흠. 아직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죠?”

“예, 현재 길드장님의 인망이 시민들에게 워낙 두터워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대로 역풍이 될 테니 말입니다.”

이번 사건을 종결짓고, 역대 최고의 포인트를 벌어들인 하현의 인지도는 농담이 아니라 영웅 그 자체였다.

그 덕분에 다른 길드들에게 눈에 가시처럼 되었지만, 그 덕분에 쉽사리 건들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만약 하현이나 하현이 속한 검은 황소를 잘못 건드리는 순간 그들은 이익만 쫓는 속물적인 길드로 매도당한다.

민철이 의도했던 상황이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면 토벌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부상을 입은 자들 중에는 길드에 속하지 않은 이들도 많았으니…….”

당시 강당으로 도망치지 못했던 다른 토벌자들은 훨씬 심각한 중독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그리 많진 않았지만, 시련을 이용한 치료도 버거운 상태가 많았었다.

그 덕분에 현재 토벌자들 사이에서는 이 소재가 매우 민감한 사항이었다.

“흐음…… 일단은 놔두세요. 어차피 저는 결백하니까요.”

민철의 말에 하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자신은 결백하다.

불간섭의 효과는 몸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니 아무리 검사를 해봐야 나올 것도 없다.

‘하지만 또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단 말이지.’

가끔은 본인이 결백하더라도 다른 이에 의해 사실이 뒤바뀔 수도 있다. 과거에 약자였던 하현은 그런 일을 자주 겪어 보았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모인 그 녀석들 말입니다. 깨끗합니까?”

“음…… 확언을 드리기는 힘들지만 털면 아마 안 나오는 녀석들이 드물 겁니다. 요 근래 길드의 분위기는 안 빼돌려 먹는 자가 바보 같은 세상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한다면 흔들리게 마련이다.

물론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문제가 없다고 착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그 부분을 한 번 파고들어 가보죠. 협회 쪽에서도 적극 협조해 준다고 했으니까 이번에 공격적으로 나가야죠.”

“알겠습니다. 관련 서류는 전처럼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민철은 그대로 방의 밖으로 나갔다.

홀로 길드장실에 남은 하현은 의자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과는 어울리지는 않는 깔끔한 사무실.

‘이런 방 그다지 필요 없는데…….’

솔직히 하현의 취향을 따지자면 자택 근무 쪽이 더 좋았다.

하지만 다른 길드원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는 민철의 설득에 아주 잠깐씩 이렇게 들르기로 했다.

‘문제는 그 잠깐을 위해서 자기 사무실을 통째로 나한테 내줬다는 거지만.’

민철의 과한 호의에 하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책상 위에 쌓인 문서들을 바라봤다.

모두 민철에게 따로 부탁해서 받은 문서들이었다.

‘살면서 공부는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시작해 볼까, 캘시퍼.’

「알겠습니다. 마이스터.」

하현은 문서들을 하나씩 빠르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읽어버리니 기억은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점은 캘시퍼가 커버해 줬다.

「남부 지역에 토벌자들의 증원을 15% 늘리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부족한 인원은 중부 지역에서 채운다면 괜찮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캘시퍼의 주 기능은 기록을 통해 하현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추론기 역할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성능이 있었는데 바로 학습 능력이었다.

한마디로 어떤 일이든 추론을 반복할수록 추론을 내는 것에 효율이 높아지고, 더 나은 대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세 파악에 효율 증가, 거기다 길드에 도움까지 되니 안 할 이유가 없지.’

던전을 도는 시간 중에 1시간에서 2시간만 투자하면 될 일이다.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었기에 하현은 민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을 고집한 것이었다.

“후우…….”

책상 위에 있는 모든 서류를 읽고 정리한 하현은 의자에 기대며 한 숨을 내쉬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일이라 그런지 약간 피로감이 몰려왔다.

‘정세는 잘 흘러가는 것 같네. 적어도 지금 이 기세를 타면 나머지 6개의 길드가 정말로 합쳐도 상대가 안 될 거야.’

무너진 3개의 길드를 대량으로 흡수하고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입은 검은 황소는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었다.

아마 그들이 정말 작정한 견제가 아니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

‘그쪽의 수장이 분명 한성운…… 르 죤 라팡의 길드장이었지.’

지난 번 지하계 던전 모임 때 유들유들한 모습으로 다른 길드장인 안길훈을 도발했던 남자.

그때는 마음에 안 들던 사람을 깔아뭉개줘서 속이 시원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조금 거슬려. 생각보다 유능한 사람이야.’

그린 스콜피온과 가장 먼저 관계를 끊은 뒤 그들의 구역을 가장 많이 흡수하고 현재 연합길드를 주도하는 남자.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일단은 지켜본다.’

준비가 갖춰지는 동안 괜한 짓을 벌였다가 다 말아먹을 수는 없다.

기회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하현은 문서들을 모두 정리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문서들 나중에 민철…… 아니, 부길드장한테 전달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부탁한 하현은 협회의 건물을 나와 이전에 자신이 입원했었던 특수병원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하현은 문득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을 떠올랐다.

‘아. 캘시퍼, 호르호이의 결정에 대한 분석은 어때?’

이전에 호르호이를 죽이고 얻었던 녹색의 구슬, 호르호이의 결정은 상당히 기묘한 아이템이었다.

호르호이의 결정(레전드)

내구도 9,999/9,999

맹독의 신수 호르호이의 독의 근원이 뭉쳐 이뤄진 결정체다. 상당히 강력한 강도를 지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공할 수 없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결정은 뿜어져 나오는 독기도, 그렇다고 특수한 효과가 같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재료 아이템인가 싶어 제작자에게 가져가봤지만.

‘이, 이건 가공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오신 겁니까?’

제작자들의 애꿎은 가공 장비들만 망가졌을 뿐, 호르호이의 결정은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어디에도 쓸 수 없는 호르호이의 결정은 인벤토리 속에서 그 쓰임새를 찾기 위해 캘시퍼에게 분석되고 있었다.

「아직 정확한 용도는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속성석의 일종으로 건틀렛에는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틀렛에?’

예상 못한 캘시퍼에 대답에 하현의 걸음이 멈췄다.

「예, 호르호이의 결정은 결국 그 독에 대한 속성석이나 다름없습니다. 건틀렛에 착용할 시 호르호이의 독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강훈이 내뿜었던 독보다도 더욱 강력한 호르호이의 독.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지간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이거…… 이젠 거대 길드랑 싸워도 이기는 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네.’

탄식의 세계수부터 호르호이의 독. 거친 방법을 사용하면 정말 하루 만에 거대 길드의 싹을 모조리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아의 구분은 불가능하겠지?’

「호르호이의 독이 워낙 분석이 불가능한 영역이 많기에 좀 더 분석을 해야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독을 사용할 때마다 독에 대해서 분석해줘.’

「알겠습니다. 마이스터.」

아마 독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는 순간 차원의 기둥을 사냥하는 데 좀 더 수월해지리라. 미소를 지은 하현은 병원을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병원의 내부는 지난 사건으로 인해 토벌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북적이는 병실의 복도를 지나 하현은 안쪽에 있는 1인실의 앞으로 도착했다.

김아민이라고 적힌 명패를 슬쩍 본 하현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민 씨, 하현입니다.”

가볍게 이름을 말하고 하현이 문고리를 잡은 순간.

“아, 아! 자, 잠깐만요!”

병실의 문 안쪽에서 아민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리던 문고리를 놓은 하현은 문의 앞에 서서 아민의 허락을 기다렸다.

“드, 들어오세요.”

아민의 목소리에 하현은 병실의 안으로 들어섰다. 이전에 하현이 지냈던 병실.

그 안에는 희미한 약품 냄새가 퍼져 있었다.

“매일 병문안 오실 필요는 없는데…….”

기대어 앉아 있는 아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단정하게 땋아 올렸던 검은색 머리가 지금은 어깨 너머로 살랑이고 있었다.

“음…… 하하, 상사니까 이 정도야 당연한 거죠.”

조금 미안해하는 아민의 모습에 하현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그렇죠.”

하지만 그 대답에 아민은 묘하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뭐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민의 표정에 하현은 볼을 긁적이다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흠흠. 그보다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

“네, 길드장…… 아니, 하현 씨가 빌려주신 펜던트에 실린 힘 덕분에 상처의 치유가 빠르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민은 자신에 목에 걸린 하이룬의 펜던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 잠시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건네주었던 것인데 도움이 된다기에 계속 빌려주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이게 다 하현 씨 덕분이에요. 그때 와주시지 않았으면…… 분명 크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라요.”

당시 아민의 상태는 강당 내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멀쩡한 것은 모두 하현 덕분이었다.

‘정말…… 무심하신 것 같은데 약점을 치고 들어오시니까 주체가 안 되잖아.’

무심하지 않게 약점을 찔러주면 좋을 텐데. 아민은 입술을 삐죽이며 하현의 모습을 바라봤다.

하현은 아민의 감사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 지금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에 아민은 답답하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으음?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갑자기 자기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리는 아민의 모습에 하현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그에 아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보고 있자니 좋아……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아민의 말이 멈추면서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한 아민이 떨리는 눈동자로 하현을 바라봤다.

“어…… 음. 흠흠.”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는 하현. 그 모습에 자신이 방금 전 내뱉은 말이 착각이 아니라 사실임을 깨달은 아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그, 그게…… 그러니까. 이건 그런 게 아니라…….”

말을 더듬으며 아민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부인하려 했다. 사실 부인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는 편이 더 좋았겠지만, 난생 처음 맞이한 감정에 여유라고는 없는 아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보니까 열이 있으신 것 같네요. 쉬세요!”

“잠깐…….”

하현은 말실수한 아민을 배려해서 잽싸게 병실의 밖으로 나왔다.

손을 뻗어 자신을 불러 세우는 아민의 모습을 보며 문을 닫은 하현은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분명 평소에는 유능한 사람인데…….’

요 근래 아민은 하현의 앞에서 어벙한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다.

과거 첫 만남에서 보였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였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혹시 그때가 연기일까 했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아민의 모습은 여전히 그때와 같았다.

다만 어째서인지 자신의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쉬운 문제였지만.

‘……친해져서 그런 건가?’

감정에 서툰 하현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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