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강훈이 일으킨 사건들은 하현의 활약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그 일의 내막은 붙잡은 특공대원을 통해 모두 밝혀졌다.
“저, 저는 그저 던전 속에서 심장을 먹고 힘을 얻은 것밖에 없습니다. 일반 대원이었기에 자세한 정보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은 정보뿐이었고, 결국 강훈이 어떻게 이 던전을 몰래 소유하게 되었는지.
또 이런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협회는 이 일을 갑작스럽게 나타난 S급 괴물로 인해 나타난 사건으로 발표하고, 사건을 빠르게 묻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여기란 말이지…….”
하현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장소를 바라봤다. 특공대원을 심문해 알아낸 그린 스콜피온의 불법 소유 던전, 호르호이의 동굴이었다.
‘확실히 똑같은 독이네. 거기다 강훈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야.’
확실하게 레벨 500대를 넘겼던 강훈을 뛰어넘는 독. 이 정도 수준이라면 분명 차원의 기둥에 속하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던전의 형태로 존재하는 차원의 기둥은 페젤론과의 연결점을 강하게 만듭니다. 거기다…… 그 던전의 활용성은 너무 위험합니다. 보상은 무엇이든지 드릴 테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당히 피곤해 보였던 회장은 하현에게 위치를 알려주며 간곡히 부탁했다. 하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부탁을 수락했다.
‘얼마나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완수 보상 말고도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은 되겠지.’
이번에 일어난 일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현의 활약 덕분이었다.
회장이 갑자기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니고서야 하현에 대한 보상을 소홀히 할 리가 없다.
하현은 던전의 완수의 조건을 찾기 위해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오오오…….
동굴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울음소리.
점점 강력해지는 독연을 헤치며 걸음을 옮기던 하현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괴물, 호르호이를 바라봤다.
‘상태가 안 좋네.’
몸을 눕힌 채 꿈쩍도 안 하는 호르호이의 상태는 한눈에 보아도 좋지 않아 보였다.
던전의 배경이 대체 어떤 배경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원의 기둥쯤 되는 괴물이 큰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오싹했다.
‘이번 던전은…… 꼭 완수를 해봐야겠는데.’
하현이 본 SS급 강자였던 자들은 용사인 오드리히와 캘시퍼와 겨뤘던 그 마왕밖에 없었다.
‘또 그런 괴물 같은 강자가 있으려나.’
이전에 보았던 오드리히와 마왕의 힘을 떠올리던 하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녀석들이 소환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전에야 괴물들만 나타나는 거니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던전과 괴물의 등장은 오르지 페젤론에 있어났던 일들이 일부분 잘려와 고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 명이 던전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드리히야 성격이 그럭저럭 좋았지만…… 그 마왕이라는 녀석은 아무래도 불길한데.’
페젤론에 수많은 마왕이 있으니 차원을 붕괴시킨 마왕이 그 마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마왕이 맞고, 그때 그 기억이 이곳에 소환된다면.
‘그야말로 진짜 재앙이지.’
게임에 최종보스가 난데없이 나타나는 격이나 다름없다.
하현은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재앙에 혀를 내두르며 그 생각을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자신도 이렇게 떠올린다면 회장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방비는 해뒀으리라.
‘설마 나타나면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같은 얼빠진 생각은 아닐 테고 말이지.’
생각을 정리한 하현은 눈앞에 호르호이를 바라봤다.
그린 스콜피온이 만들어낸 상처에는 피가 계속해서 흐르면서 독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단독 보스 던전인 경우 어느 정도 부상을 입힌 것만으로도 던전의 폭주가 저지 가능하다. 그걸 이용해서 이 상태로 계속 고정시켜 둔다니…… 참 끔찍한 방법이군.’
그 말은 즉 호르호이는 약 9년 동안 이 상태로 계속해서 심장을 파먹혔다는 뜻이다. 괴물이라는 존재를 떠나 듣기만 해도 절로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심장을 부숴버리는 건 이미 완수가 안 된다는 게 밝혀졌었지. 그러면…….’
훤히 드러난 호르호이의 배를 바라보던 하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태까지 강훈이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호르호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캘시퍼, 이 녀석 저번에 말한 전설 속의 호르호이 맞아?’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대조는 불가능하지만 독이 지닌 힘과 설화들을 비교하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하현은 신기한 표정으로 호르호이를 바라봤다. 설마 진짜일까 했지만 실존했다.
여태까지는 페젤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그냥 넘겼었지만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오오오오……
얼굴에 가까워지자 울음소리 또한 더더욱 크게 들려왔다. 하현은 고개를 들어 수십 미터나 되는 호르호이의 거대한 얼굴을 바라봤다.
‘음…… 기운이 없을 법도 했군.’
동굴의 그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호르호이의 얼굴은 반 정도가 날아간 상태였다.
10개의 눈 중 6개가 사라져 있었고 그에 맞게 뇌 또한 크게 손상된 듯했다.
여태까지 그린 스콜피온의 만행을 참아줬던 것이 아니라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죽이는 건 방법이 아냐. 뭔가 다른 필요한 게…….’
하현은 호르호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희미한 빛을 띄고 있는 녹색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하현을 바라봤다.
그오오오…….
‘방금…… 눈 마주친 거지?’
「그런 것으로 분석됩니다.」
우연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신을 보고 난 다음 울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현은 호르호이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 등산을 하듯이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캘시퍼, 호르호이의 말을 해석할 수는 있나?’
「언어의 해석은 바탕이 될 언어가 없기에 불가능하지만 신체의 신호들을 분석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분석을 원하신다면 최대한 뇌와 가까운 곳으로 가주십시오.」
하현은 미동도 하지 않는 호르호이의 얼굴을 타고 올라가 거대한 눈동자의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몸보다도 더욱 거대한 호르호이의 눈동자.
희미한 빛을 띠고 있는 눈동자는 죽은 듯했지만 명백히 살아 있었다. 하현은 거대한 동공을 바라보다가 눈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후우웅-
하현의 손에서 뻗어 나온 선들은 호르호이의 눈동자에 천천히 퍼지면서 전신에 파고들어 갔다.
그오오오-
호르호이는 구슬픈 울음소리로 몇 번이고 하현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 했다. 그렇게 1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호르호이의 뜻이 모두 해석되었습니다.」
‘말해줘.’
하현에게 대답하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검토를 한 캘시퍼는 천천히 여태껏 호르호이가 끝없이 외쳐왔던 말을 해석했다.
「죽음을 허락해 주소서.」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저주의 해주]
수십 개의 마을을 남김없이 녹여버린 신수 호르호이는 마법사 에들렌과의 혈투 끝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호르호이의 편안한 죽음을 용납하지 못한 에들렌은 한 가지 저주를 내렸다.
빈사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되며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을 허락받기 전에는 죽지 못하는 참회의 저주. 호르호이의 저주를 해주하고 안식을 선사하라.
난이도 : 없음
보상 : 던전 완수.
단순히 호르호이의 말만 알아들으면 완수할 수 있는 던전. SS급 괴물인 호르호이가 존재하는 던전치고는 상당히 허무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캘시퍼가 없었더라면 무슨 짓을 해도 깰 수 없었던 던전인 것은 확실했다.
“수락한다.”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시련을 받아들인 하현은 호르호이의 간절한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음을 허락한다.”
쿠구구구궁!!!
하현의 말과 동시에 호르호이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거대한 마법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금이 간 마법진은 조금씩 사라져 갔고, 호르호이의 몸이 먼지로 변해 갔다.
그오오오오-
이전보다 한층 편안한 울음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맹독의 신수 호르호이가 영원한 안식에 잠들었습니다.
알림창의 이후 하현의 눈앞에 방금 전 동굴의 모습이 색다르게 펼쳐졌다.
그오오오…….
맹독을 뿜어내며 구슬프게 우는 호르호이. 다른 이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죽을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내뿜는 맹독이 그것을 방해했다.
영원히 빈사 상태인 채로 고통 속에 지내야만 하던 그때. 백색 갑옷을 입은 사내가 맹독을 정화하며 호르호이에게 다가왔다.
“저질렀던 죄에 대한 값을 치루고 있구나.”
호르호이의 몸을 쓰다듬는 남자, 청년에서 듬직한 사내가 된 오드리히는 조금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히 호르호이에게 희생된 인간들은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 호르호이가 인간에게 악의를 지니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밖으로 나오고 적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독을 내뿜었을 뿐.
[이 정도면 죗값을 충분히 갚았겠지. 이제 죽어서 남은 죗값을 마저 갚아라.]
오드리히의 말에 저주가 풀리자 천천히 호르호이의 몸이 녹아내리면서 거대한 녹색 구슬이 나타났다.
안타까운 눈으로 호르호이를 바라보던 오드리히는 천천히 구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너는 여전히 나약하구나, 오드리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드리히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로브를 걸친 중년의 마법사.
과거 호르호이를 제압했던 에들렌이 서 있었다.
-맹독의 신수 호르호이의 죽음. 그리고 오드리히와 에들렌의 재회를 목격하셨습니다. 페젤론의 역사를 보셨습니다.
-던전 ‘호르호이의 동굴’의 완수 조건을 충족 하셨습니다.
눈앞의 환영이 사라지고 장소는 지하실로 돌아왔다. 점점 줄어드는 포탈의 모습을 바라본 하현은 방금 전 만남을 떠올렸다.
‘오드리히랑 에들렌이 동시대 인물이라.’
오드리히는 아오르근을, 에들렌은 호르호이를 쓰러뜨렸으니 둘 모두 SS급에 필적하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강자들이 같은 시대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제발 저 둘이랑 만나는 던전은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에라도 잡으라고 하면 정말 온갖 고생은 다할 것이다.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완수 후 다가오는 달콤한 보상들이 떠올랐다.
-맹독의 신수 호르호이의 언어를 해석하셨습니다. 칭호 ‘신수의 언어’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으로 ‘호르호이의 동굴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호르호이의 결정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상대할 것이 독밖에 없었기에 호르호이의 동굴의 난이도는 S급. 난이도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보상이었기에 하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아이템 확인은 나중에 하고…… 정산부터 하러 가볼까.’
과연 이번 정산 포인트는 얼마나 될까. 조금 거슬렸던 던전도 완수해 뒀으니 걸릴 건 없다.
하현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정산을 위해 협회로 향했고.
개인 랭킹
1위 [최하현 S급-2,958,000Pt]
2위 [흑월 S급-820,000Pt]
“…….”
토벌자 업계 역사상 다시는 깨지지 않을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버렸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 안. 그 중심에는 수정구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마치 수정구에 나오는 빛이 곧장 잡아먹히는 것처럼.
“그쪽에서 한 번 연락하더니 바로 행동을 취했어.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고.”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까칠한 여인의 목소리. 어두운 방 안에 울려 퍼진 그 목소리에 방 어디선가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이 우리의 명령에 제대로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으니.”
“하지만 9년이나 들인 계획이잖아? 이번에 그 던전이 완수돼서 똑같은 방법으로 양성도 못해.”
여인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강훈이 보여준 상상 이상의 힘을 보면 그 던전은 쉽사리 포기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9년이란 시간만 들이면 그 정도로 강력하고 범용성이 뛰어난 군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방 속의 인물은 단호했다.
“변이를 거치면 이성이 사라진다. 초기에는 조금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지지. 그 녀석들은 쉽게 만들고 쉽게 다룰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다.”
“뭐? 그러면 그 녀석들이랑 우리한테는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건데. 강해지는 대가로 일을 시킬 거라면서.”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에 여인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그 말에 방 속의 인물은 입가를 비틀며 이야기했다.
“그 사실을 알면 그 녀석이 잘도 내 제안을 받아들였겠군.”
“…….”
“어차피 녀석들은 의의는 지금처럼 한 번 큰 사건을 터뜨려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조금 일찍 터지긴 했지만 예정했던 대로 쓰였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의문은 가지지 마라.”
선언을 하듯이 이야기하는 말에 수정구 너머로 여인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여태까지의 짜증이 아닌,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착각하는 가 본데. 너와 함께하는 건 오직 목적이 같아서 같이 그럴 뿐이야. 그 태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여인이 경멸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 최하현이라는 놈 때문에 네 예상이 틀렸고, 계획이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그래. 정말 보기 추하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의 불빛이 사라졌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방. 그 이후로 그 어떤 소리도 안에서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