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커헉…… 컥!!”
목을 부여잡은 특공대장이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본 하현은 덤덤하게 골렘을 향해 명령했다.
“밟아.”
콰아앙!!
골렘의 묵직한 발에 짓밟힌 특공대장은 녹색 피를 터뜨리며 찌부러졌다.
잔혹한 참상 속에서 하현은 덤덤한 눈빛으로 캘시퍼에게 명령했다.
‘분석해줘.’
「알겠습니다. 마이스터.」
하현의 명령에 따라 빛의 선들이 피를 훑고 찌부러진 시체들을 조사했다.
「분석이 끝났습니다.」
총 11개의 시체를 조사한 캘시퍼는 최대한 변수를 제거한 대답을 만들어냈다.
하현은 지팡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기면서 캘시퍼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괴물은 어떤 괴물의 힘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화하면서 만들어진 돌연변이입니다. 이 독 또한 괴물의 특성으로 추측됩니다.」
‘흠. 근데 이 독을 가진 괴물은 기록에 없단 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뭔데?’
「현재 조사한 바로는 변이된 신체는 34%밖에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그들이 보이는 힘들은 대부분 뛰어났다. 그런데 이게 더욱 강해진다? 이러나저러나 그렇게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까 특히 강해 보이던 두 녀석…… 그거 아무리 낮게 잡아도 S급보다 조금 못한 수준인데.’
그게 반도 활성화가 안 된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심각해진다. 몇 명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수준의 괴물들이 득실득실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 건 아닌가.’
이런 녀석들이 5마리만 있어도 당장 토벌자 업계의 밸런스가 붕괴한다. 여태까지 강훈은 그런 무기들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매사에 불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였나.’
힘이 없는 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과 힘을 가졌음에도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 개차반인 성격으로 여태까지 참아왔다는 사실에 하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래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네.’
하현은 앞을 바라봤다. 연기에 휩싸여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협회의 건물. 평소라면 그냥 거대한 건물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도 던전의 장소처럼 보였다.
지팡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하현은 협회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협회의 건물 내부 바닥에는 옅은 핏자국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독에 당한 토벌자들이 내뱉은 피인가.’
평소라면 북적거렸을 협회의 홀이 핏자국만 흩뿌려진 채 조용하다.
마치 다른 세계와도 같은 모습에 하현은 주먹을 움켜쥐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거기까지.”
하현의 앞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기저기에 앞서 보았던 괴물, 그린 스콜피온의 특공대원들이 서 있었다.
‘한 30명 정도 되나.’
하나같이 A급 이상의 기백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이들만으로도 어지간한 거대 길드 하나만큼의 전력은 될 것이다.
그들을 훑어보던 하현은 아직 변이하지 않은 태호를 바라봤다.
“너네 길드장은 어디 있어?”
“거기에 내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나?”
하현의 맥없는 질문에 태호는 피식 웃으면서 무시했다. 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현은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이어갔다.
“뭐…… 성깔을 보아하니 어중간한 곳에 있을 것 같진 않고. 저기 위쪽에 있으려나?”
“계속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태호는 표정 관리를 완벽하게 해내며 하현의 질문에 응수했다. 아무리 하현이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캘시퍼는 달랐다.
「약간의 동요가 포착되었습니다. 강훈이 위층에 있을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으음.’
하현은 머리를 쥐어짜네 강훈이 있을 법한 위치를 떠올렸다. 협회의 건물에는 노릴 만한 물건들이 많았다.
던전에 관한 각종 정보와 온갖 희귀한 장비들도 많이 있다.
과연 강훈은 어디를 노리고 움직였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이야기 들어보니 회장님이 아직 잘 버티고 계시나 있나 보네. 잘 잡아 두고 계시니 다행이야.”
“……!”
태호의 얼굴이 하현에게 보일 만큼 확실하게 흔들렸다. 그 동요를 파악한 캘시퍼의 분석이 들려왔다.
「강훈이 회장실에 있을 가능성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답변 고마워.”
방향은 정해졌다. 태호를 보며 입가를 비튼 하현의 몸이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막아!”
강훈의 위치가 노출됐음을 깨달은 태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 명령에 다른 특공대원들이 하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엘프의 축복!”
버프의 효과로 하현의 모든 속도가 두 배 빨라졌다. 평소에도 자신보다 빠르고 강한 괴물들을 상대로 싸우는 하현이다. 그런데 두 배나 더 빨라졌다면?
빠악!
“커헉!”
그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뭐해 이 등신들아!”
20명이 넘는 특공대원들이 하현하나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모습에 태호가 소리쳤다.
모든 공격 경로를 파악하는 하현은 자신을 찍어 누르려는 공격을 피하며 괴력을 사용한 주먹으로 후려쳤다.
‘약하다.’
이전에 아오르근과의 전투는 하현에게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확신과 극한까지 몰리면서 강철에게 배워온 움직임들이 모두 완전하게 녹아들었다.
변이된 자신의 몸들을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특공대원들은 하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콰득 빠작!
옆에서 내질러온 팔을 붙잡아 부러트리고 전면에 머리를 주먹으로 함몰시킨다.
굳이 한 사람의 빈틈을 몰아붙이며 싸울 필요는 없었다.
범위 내부에 들어온 특공대원들의 사지를 확실하게 분질러버리고 치명타를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개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상대로 싸워나가는 것이다.
“이…… 이런 등신 같은!”
계속해서 밀리는 모습에 다급함을 느낀 태호가 이를 악물었다. 변이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해서 꼭 변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변이하지 않으면 하현에게 일방적으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태호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체내의 힘을 끌어올렸다.
꽈드득!
다른 특공대원들과 다르게 태호의 몸이 크게 팽창했다. 전신의 근육이 새롭게 재조립되었고 단단한 껍질이 자리 잡았다.
흉흉하게 빛나는 8개의 눈동자에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쿠아아아악!!!”
채앵!!
체내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태호, 괴물은 그대로 괴성을 내지르며 내뿜었다. 협회의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고 한창 진행되던 전투가 멈췄다.
“당장 가서 강당을 뚫고 모조리 죽여라! 그동안 내가 이 녀석을 잡고 있겠다!”
태호의 외침에 부상을 입은 특공대원들이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하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회장실이 아닌 강당…… 그렇다면 토벌자들이 거기 있다는 뜻이다.’
협회 내부에 생존자들이 있는 장소들을 모두 알았다. 하현은 당장 특공대원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콰아아앙!!
하현의 앞을 가로막듯이 나타난 태호가 사납게 주먹을 휘둘렀다.
울티노를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공격. 하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하현에게는 큰 부담이 없었다.
후웅!!!
몸을 숙이는 것으로 피한 하현은 태호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훤하게 드러난 무릎을 주먹으로 후려쳐 뒤흔들고 다리 사이로 지나가 오금을 발로 걷어찼다.
쿵!
“이, 이 개자식!!”
순식간에 자신이 무릎 꿇게 되었다는 사실에 태호가 격노하며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갑자기 비대해진 자신의 몸에 적응하지 못한 공격들은 모두 허점투성이였다.
‘30초.’
건틀렛의 피스톤 기능을 작동시킨 하현이 속으로 최대 차지시간을 세었다.
광풍처럼 휘둘러지는 태호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하현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갔다.
“이익! 이이익!!”
자신의 거센 공격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접근하는 하현의 모습에 태호의 이성이 끊어졌다.
본래 변이하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차분하게 뒤로 물러서서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괴물로 변해 버린 태호에게 그런 토벌자로서의 냉철한 판단력은 없었다.
“괴력. 대력타!”
빠아아아악!!
완전하게 드러난 태호의 복부를 향해 하현의 주먹이 작렬했다. 충격파를 동반한 하현의 주먹은 근육과 장기를 뒤틀며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커어억…….”
피를 토해내는 태호의 모습에 하현은 더욱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대력난탄!”
빠악!!
폭탄처럼 터져나간 주먹에 얻어맞은 태호의 가슴이 함몰되었다. 연이어 휘둘러진 주먹들은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으며 한계를 초월했던 태호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어, 어째서! 왜 녀석에게 지는 거지!’
태호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훈보다는 못하지만 평균적인 S급은 훌쩍 뛰어넘는 힘을 가진 자신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맥도 못 추리고 진단 말인가.
아마 태호는 그 이유를 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퍼엉!!
스펙 차이가 무의미한, 그저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쿠웅!!
-레벨 업 하였습니다.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전신이 걸레짝으로 변한 태호가 쓰러졌다.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에 피식 웃은 하현은 특공대원들이 향했던 곳을 봤다.
‘버프도 거의 끝나가네. 얼른 처리해야겠다.’
바닥을 박찬 하현은 빠른 속도로 협회를 가로지르며 강당을 향해 달려갔다.
콰앙!! 콰아아앙!!
앞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에 하현이 앞을 바라봤다. 특공대원들이 두드리는 강당의 벽들은 이제 한계가 왔는지 금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만약 저 벽이 무너지는 순간 이 안을 가득 채운 독이 또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콰아앙!!
강당의 문이 박살 나면서 그 안으로부터 S급 토벌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특공대원을 가운데에 두고 눈을 마주친 하현과 S급 토벌자들.
아주 잠깐의 눈빛이 마주친 것이지만 그 뒤의 방침은 자연스럽게 짜여졌다.
콰앙! 빠악!
두 집단의 사이에 끼인 특공대원들은 순식간에 개 박살났다. 독기에 주춤거리는 S급 토벌자들은 상대하기 쉬웠지만 전차처럼 그냥 밀고 들어오는 하현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사, 살려줘…… 뭐, 뭐든지 할 테니까.”
변이된 이후로 자만에 빠졌던 특공대원이 공포에 질린 채 이야기했다.
자신 말고는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없다. 변이한다면 모든 인류의 정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 강훈의 말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살려달라고?”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자신의 눈앞에 선 남자. 하현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뭐 못 해줄 건 없지.”
우드득!!
“끄아아악!!”
하현은 도망을 저항을 방지하기 위해 특공대원의 사지를 비틀어 뜯어냈다.
장내의 모든 상황이 종결되어갈 때, 민철이 다급하게 하현을 향해 다가왔다.
“어, 민철…….”
“길드장님, 지금 아민의 상태가 위독합니다.”
“……어디 있어요?”
민철의 다급한 목소리에 하현이 곧장 물었다. 강당의 내부로 들어선 하현은 수많은 환자 사이에 누워 있는 아민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아…… 하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아민의 상태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민철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습격 당시에 입은 부상입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제대로 된 치료를 못해 현재 상태가 악화되어 있습니다.”
민철의 대답에 하현은 말없이 아민을 향해 다가갔다. 손을 뻗어 아민의 이마에 얹은 하현은 캘시퍼에 물었다.
‘아민 씨의 상태를 분석하고 최선의 치료방법을 찾아내 줘.’
「알겠습니다. 마이스터.」
하현의 몸에서 나온 빛의 선들은 다급한 마음을 대변하듯이 빠르게 아민의 몸을 훑었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게 답을 추론해낸 캘시퍼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민 씨의 몸에 잠식된 살혼독은 현재 이 공간 안에서 강화되어 있기에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선의 수는 마이스터가 소유한 하이룬의 펜던트에 있는 신성력으로 면역을 높이고 빠르게 지역 바깥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캘시퍼의 말에 하현은 망설임 없이 펜던트를 벗어 아민의 목에 걸었다.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아민의 몸을 감싸면서 상태를 조금 호전시켰다.
“민철 씨, 저기 그린 스콜피온 길드원 녀석 데리고 곧장 바깥으로 나가주세요. 이제는 탈출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특공대원들 대부분이 전멸된 덕분에 이 주변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던 독연은 거의 옅어진 상태였다.
하현의 명령에 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길드장님은 그를 쫓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죠. 아마 이번에 못 잡으면 골치 아파질 거예요.”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강훈이 살아남으면 일은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이유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곱게는 안 죽인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하현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
“…….”
밑의 상황을 보고 도망쳐온 특공대원의 보고에 강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했냐.”
“아, 아래에 있는 특공대원들이 하현이라는 놈에게 모조리 전멸했습니다. 그, 그 녀석은 진짜 괴물입니다!”
자신들이 지닌 독을 최강의 무기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공포 그 자체였다. 겁에 질린 특공대원의 보고에 강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그걸 보고 겁에 질려서 여기까지 왔다는 거냐?”
“그, 그게 아니라 이 위험을 길드장님께…….”
퍼억!!
특공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머리가 터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특공대원을 죽인 강훈은 천천히 쓰러지는 시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다 필요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이라면 이 불가능할 것 같은 계획도 분명히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성사될 뻔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은 하현 때문에 부서졌다.
“…….”
강훈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회장실을 바라봤다. 반 이상 깎여나간 마법진과 창백한 회장의 얼굴은 정말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평화적인 방법은 끝났다. 더 이상 자신에게 인간으로서 군림할 방법은 없어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강훈은 체념하고, 살의를 일으켰다.
“그럼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괴물이 돼서라도 인간인 모든 녀석들을…….”
변이를 망설이던 그의 마지막 울타리가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