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18. 그린 스콜피온
“쿠아아아악!!”
A급 던전 광전사의 군단. 살육에 미친 각종 괴물들이 나타나는 이 던전은 적어도 10인 이상의 파티사냥을 권장하는 던전이었다.
“흐음. 많네.”
하지만 하현은 그런 권유는 무시하고 여유롭게 눈앞의 괴물들을 바라봤다.
던전 내부를 뺑뺑이 돌면서 모은 수백 마리의 괴물이 달려오는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슬슬 해볼까.’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하현은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일곱 개의 보옥이 박힌 말라비틀어진 지팡이, 탄식의 세계수가 손에 잡히자 하현의 기세가 바뀌었다.
쿠우우웅
“쿠…… 쿠어억…….”
단순히 장비를 장착했을 뿐인데 검은 기운이 하현의 발치에서 뿜어져 나왔다.
광기에 잠긴 괴물들도 그 힘 앞에서는 주춤거리며 멈췄다.
‘이건…… 예상치 못한 부가 효과네.’
자신의 발치에 흘러나오는 힘이 죽음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하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단순히 슈트와 지팡이의 성능을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예상 못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쿠…… 쿠아아악!”
잠시 주춤거리던 광전사들의 눈이 더욱 붉게 물들더니 재차 달려들었다.
던전의 보스인 광폭의 주술사가 주술을 강화하면서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단 실험할 거나 해봐야겠다.’
달려오는 광전사들을 무심하게 바라본 하현은 지팡이를 아래로 내려찍으며 실험해 볼 스킬의 시동어를 외쳤다.
“탄식의 세계.”
퉁-
지팡이의 끝이 지면을 때리고, 그로부터 세계수의 뿌리가 순식간에 지면 아래로 파고들며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사정거리를 구축된 순간.
털썩!
그 안에 들어온 괴물들 절반이 한 번에 쓰러졌다. 본래부터 그렇게 죽어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없이, 거창한 효과도 없이 쓰러져 죽었다.
“쿠, 쿠어억…….”
하지만 살아남은 괴물들은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온 끔찍한 원념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어마어마한 물건이네.’
괴물들의 레벨이 낮아 발동 확률이 높았던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했다.
마나 소모도 없고 재사용 대기시간도 30분밖에 안 되는 스킬이 정말로 즉사효과를 보였다.
‘단순한 위력만으로 따지면 다른 스킬에 비하면 별로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강자에게도 확률에 따라 즉사가 먹힌다는 게 중요해.’
물론 너무 강한 힘을 지닌 상대라면 0%라 불가능하며 시동어를 외치게끔 놔두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강력한 스킬인 것은 확실했다.
주인만 잘못 만나면 수만 명은 우습게 학살할 수 있는 스킬인 것이다.
‘파는 건 절대 안 되겠다.’
탄식의 세계수는 평생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하현은 쓰러진 괴물들을 바라봤다.
이제 다음으로 실험해 볼 것은 슈트의 힘이었다.
“망자화!”
하현의 외침에 따라 슈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향해 스며들었다.
본래 일어날 리가 없던 괴물들은 이윽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빠드득 뿌득 꽈드득!
일어난 괴물들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몸이 비틀려 변했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망자였다.
‘흐음. 잘 먹히네.’
성공적으로 스킬이 적용된 것을 본 하현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확인해 볼 것은 전투 능력이다. 하현은 아직 살아남은 채 당황하고 있는 괴물들을 가리켰다.
“죽여.”
하현의 말에 망자들은 대꾸하는 것도 없이 곧장 괴물들에게 달려들었다.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원망과 하현의 명령이 더해지자 망자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공격했다.
‘이번에 얻은 슈트 능력은 진짜 무시무시하네.’
싸우는 괴물들의 모습을 바라본 하현은 망자의 원석을 얻으면서 향상된 슈트의 기능을 떠올랐다.
방어력은 전과 같이 10 증가하고 경험치는 1.6배, 그리고 저주에 대한 저항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생겨난 스킬이었다.
[죽음의 권능]
망자의 왕이 지니고 있던 죽음에 대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 거둬들인 생명의 수에 따라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이전에 얻은 진노의 불꽃과 다르게 이번에 생긴 스킬은 일종의 성장형 스킬이었다.
하현이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을 죽이냐에 따라 강력해지는 상당히 살벌한 스킬인 것이다.
‘아직은 죽인 놈들이 없어서 망자화 효과나 지휘 능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예전에 얻었던 칭호들이 커버해 주니까 딱히 문제는 없구만.’
과거 벨포트 수성전을 통해 얻었던 칭호인 역전의 용사.
지휘력을 40% 상승시켜주고 병력의 전 스탯을 5% 상승시켜주는 효과와 진정한 죽음 효과 덕분에 그럭저럭 망자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 얻은 소득들을 정리하면…… 탄식의 세계수와 상자를 제외하고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정도네.’
지금 당장은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성장하다 보면 아오르근처럼 흉악한 기운을 마구 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강해지는 힘이었다.
하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슈트 아래에 달린 효과를 바라봤다.
‘처음에 잡은 악탈론과 아오르근하고 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스킬 차이가 좀 심하네.’
이제는 그다지 쓰지도 않는 진노의 불꽃을 보며 하현은 쓰게 웃었다.
성장의 과정에서 겪은 일에 따라 성능이 나오니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대충 실험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나가볼까.’
괴물들 간의 전투가 끝난 것을 본 하현은 지팡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가볍게 성능만 실험해 볼 생각이었지 제대로 사냥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전투를 마무리한 하현은 던전의 밖으로 나왔다. 아직 오전 11시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는 토벌자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정산 날은 일종의 휴일인 모양이야.’
오늘은 아오르근의 등장으로 잠시 미뤄졌었던 협회의 정산 날.
길가에는 살벌하게 던전으로 향하는 토벌자가 아닌 정산으로 받은 월급에 미소가 만연한 토벌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을 지나치며 걸음을 옮기는 하현도 걸음을 옮기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아오르근도 잡았고, 캘시퍼 잡는데 큰 활약도 한 데다 S급 던전도 하나 완수했었으니…… 이건 뭐 상상이 안 가네.’
짧은 기간 동안 차원의 기둥을 두 마리나 잡았다. 유례없는 토벌 기록에 하현은 과연 포인트가 얼마나 나올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역대 포인트 중에서 가장 높은 포인트가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민철 씨한테 받은 돈도 합하면 이건 뭐 거의…… 음?’
살벌하기 짝이 없을 통장 속의 금액에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기던 하현은 강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벤치에 앉은 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었다.
‘…….’
예상치도 못한 만남에 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벤치에 앉아 있던 여인, 흑월은 하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인사 후 찾아오는 정적. 그냥 지나가 버릴까 고민하던 하현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렇…… 응, 잠깐 이야기나 할까 하고.”
입을 우물쭈물하면서 평범한 말투를 구사하는 흑월의 모습은 언제 봐도 이상했고, 귀여웠다.
웃음을 참지 못한 하현은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죄, 죄송합니다. 잠시 웃긴 게 떠올라서…….”
대충 얼버무린 하현은 흑월을 바라봤다. 이제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어려 보이는 외모와 청순한 얼굴.
무장하고 싸우던 그 살벌한 모습과는 역시 괴리감이 너무 컸다.
‘실제로 20대 초반이려나? 직접 물어보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성별은 알았지만 이름도, 나이도 하현은 흑월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하현은 본인이 밝히지 않는다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직접 밝히지 않는다면 그에 다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셨어요?”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앉아서 이야기해도 될까?”
“물론이죠.”
흑월의 부탁에 하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산이야 오늘 중에만 가면 되니까 어차피 급할 것도 없었다.
이야기를 위해 흑월의 옆자리에 앉자 갑작스럽게 그에게도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질투와 시기심이 가득한 시선에 하현은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흑월을 바라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흑월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네 정신을 알고 싶어.”
“정신이요?”
조금 미묘한 흑월의 말에 하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신이라니, 뭐 불굴의 정신 그런 걸 배우고 싶단 건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현의 모습에 흑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전에 지하계 던전 기억해?”
“예, 기억하죠.”
잊을 수 없는 독특한 괴물인 게르바와의 만났던 던전.
하현은 그때를 떠올리다가 문득 흑월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강 알아차렸다.
“3관문의 문 앞에서 시련을 받았을 때…… 너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했었지.”
“음…….”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하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흑월은 자신이 아주 굳건한 정신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음…… 흑월 씨, 그게 사실…….”
“그리고 이번에 아오르근과 싸울 때도 그래.”
불간섭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기에 운이 좋았다고 하현이 둘러대려던 찰나, 흑월이 이어서 이야기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괴물과 마주쳤을 때,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어떻게든 견뎌서 싸우긴 했지만 일대일로 계속 싸워야만 했다면…… 견딜 자신이 없었어.”
“그건…….”
본래 말투로 돌아온 흑월은 분하다 듯이 말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S급 토벌자도 그녀와 똑같이 생각했고, 불간섭이 사라졌던 하현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오르근의 앞에서 그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런 하현의 생각과 흑월의 생각은 달랐다.
“공포를 느낀 것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르게 너는 그 공포를 겪고, 자신의 목숨을 건 채로 아오르근과 맞서 싸웠다는 거지.”
“아니, 그건 뭐…….”
누구든지 해야 한다면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라는 말이 하현의 목구멍에서 멈췄다.
자신을 바라보는 흑월의 눈빛에서 정말로 자신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질투심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상황이 닥친다면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아오르근 그 존재의 앞에서 그럴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오르근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은, 근본 자체가 다른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공포에 맞서 싸웠던 것은 오직 하현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 거냐. 내게는…… 꼭 쓰러뜨려야 할 적이 있다. 그 녀석을 이기기 위해선 그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해.”
흑월은 간절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부탁했다. 그 모습에 하현은 곤란함을 느꼈다.
‘딱히 비법이고 자시고도 없는데…….’
그냥 그 상황에서 해야만 했기에 하현은 이를 악물고 했을 뿐이다.
굳건한 정신력을 만들어낸 비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대충 상상해서라도 말해줄까 고민하던 하현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대답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비법은 없어요. 그저 저밖에 할 수 없었고, 그걸 해야만 했기에 했을 뿐이에요.”
정말 단지 그것뿐이다. 하현의 대답을 들은 흑월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그녀의 미모와 어우러지자 그 모습은 지나가던 행인들의 가슴마저 쓰릴 만큼 안타깝게 보였다.
“……그래,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나보군. 실례를 끼쳤다.”
흑월은 그대로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현은 우울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뭔가 직감 같은 느낌으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현은 손을 뻗어 가려는 흑월의 손을 잡았다.
“…….”
자신의 손을 잡은 하현의 손을 본 흑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당황한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하현은 머리를 최대한 굴리면서 이야기했다.
“사실 제가 흑월 씨의 사정을 모두 알지 못하니 함부로 말은 못 드리겠어요. 하지만 너무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우지 마세요.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할 수밖에 없기에 억지로 하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날거예요.”
사냥하는 것이 돈을 벌어먹고 이곳에서 명성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더라면 하현은 큰 피로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큰 기쁨을 느꼈기에 피로를 이겨내며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하현이 생각하기에 저런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지금 흑월의 모습만 봐도 사명감에 휘둘려 마음고생이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알겠다. 충고 고맙다.”
하현을 바라보던 흑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침울했던 표정이 침착하게 변한 것을 보니 약간의 위로는 된 듯했다.
“으음…….”
“음?”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흑월의 모습에 하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흑월이 어디를 흘끔흘끔 보는 것을 깨달은 하현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대체 뭘…… 윽!’
흑월이 보던 것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임을 알아차린 하현은 재빨리 손을 뗐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흑월은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잡혔던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았다.
“흠…… 그, 그럼 이만 가보마.”
조금 얼굴을 붉힌 흑월은 급하게 인사하고 재빨리 걸어 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현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
정산이 한창 진행되는 협회의 내부는 수많은 토벌자로 시끌벅적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이미 자신들의 정산을 마친 자들이었지만 모두 갱신표를 보기 위해 남은 자들이었다.
“아…… 최하현은 언제 오는 거야?”
“빨리 좀 오지.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 죽겠는데.”
SS급 괴물 두 마리를 쓰러뜨리는 데 큰 활약을 했다는 하현의 포인트는 토벌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였다.
암암리에 배팅마저 있었다니 아마 말 다 했으리라.
“으음…… 뭐지?”
북적거리는 홀에서 갱신표를 바라보던 한 토벌자가 자신의 눈을 문질렀다. 잠은 충분히 잤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그것도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하고 불쾌한 피로감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뭔가…… 콜록콜록!”
아리송한 감각에 토벌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입가를 손으로 막은 토벌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피?”
가래나 묻지 않았을까 했던 손에는 검은색의 덩어리진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토벌자는 주변을 바라봤다.
“콜록! 콜록!”
“야, 약 가지고 있는 사람 없어?!”
“뭐, 뭐야 이…… 크헉!”
청각에 문제가 생겨서 들리지 않았을 뿐, 주변에는 이미 자신과 같이 피를 토하며 괴로움에 떠는 토벌자들이 많았다.
눈, 코, 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발버둥 치는 그 모습들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대체…….”
토벌자는 피를 흘리며 흐릿해진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다른 이들과 달리 멀쩡하게 서 있는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버러지 같은 놈들.”
녹색의 눈빛을 빛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린 스콜피온 길드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