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72화 (72/158)

# 72

“기, 길드장이요?”

민철의 제안에 하현은 머리에 김이 나는 것 같았다.

앞에 어마어마한 거금을 준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길드장 제안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차분히 생각하면 몰라도 하현은 바로바로 답을 내는 것에는 약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지려던 바로 그때.

「하민철은 현재 마이스터의 명성을 이용하여 검은 황소의 결속력을 키울 생각입니다.」

덤덤한 캘시퍼의 목소리가 하현의 귓가에 대신하여 답을 추론해 주었다. 그 목소리에 하현은 깜짝 놀라며 속으로 되물었다.

‘내 명성을 이용한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장기말보다는 동료로서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평소에 그가 마이스터에게 보인 감정을 분석해 보면 그쪽이 확실합니다.」

캘시퍼의 대답에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민철이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20년 전의 대재앙에서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

조금 생소한 단어에 하현이 의아해할 때, 머릿속으로 캘시퍼의 말이 뇌에 직접 녹아들듯이 빠르게 들어왔다.

「20년 전 대재앙은 지금은 사라진 큰 규모의 길드가 소유권을 가지고 쟁탈을 벌이다 일어난 사건입니다. 길드 간의 싸움이 규모가 커지고 협회가 중재하지 못하면서 던전이 동시 폭주, 괴물들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가장 많이 났던 큰 사건입니다.」

‘어마어마하네…….’

토벌자들에 대한 협회의 강한 영향력과 대중들에게 10년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겨주게 된 참극.

그것이 20년 전의 대재앙이었다.

“그 재앙이 단순히 이익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나더군요. 제가 전해 듣고, 꿈꿔왔던 토벌자는 그런 더러운 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민철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당시 놀라울 정도로 토벌자에 관한 재능이 가졌던 민철에게 그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민철을 만들게 된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날부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토벌자들을 제가 꿈꿔왔던, 본래 그들이 지녀야 할 모습으로 되돌리겠다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여태까지 달려왔습니다.”

유명 길드의 스카우트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할 이들을 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검은 황소였다.

“하지만 길드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면 이익을 쫓아야 했습니다. 그 모순 속에서 저는 상당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지요. 바로 그때. 하현 씨를 만난 겁니다.”

민철은 하현을 빤히 바라봤다. 이번 전투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오르근과 사투를 벌이던 그의 무모하고 용맹했던 모습은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 내가 생각했던 토벌자는 바로 그런 모습이었어.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토벌자인거야.’

자신보다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그런 자야말로 토벌자로서 칭송받아야만 했고, 길드장으로서 자신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민철은 생각했다.

“하현 씨라면 분명 다른 토벌자들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길드장으로서 일은 모두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이끌 지표가 되어주십시오.”

“……잠시만요.”

민철의 진중한 부탁에 하현은 손을 내밀어 저지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래저래 쉽게 결론을 내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기에 캘시퍼와 논의할 생각이었다.

‘민철 씨의 행동에 숨겨진 의미는 없나?’

「수집되는 감정과 평소에 행실, 그리고 하민철의 과거 행적을 대조했을 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마이스터에 대한 동경과 존경을 담아 제안한 것으로 추론됩니다.」

‘저 부탁을 받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적 길드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길드를 탈퇴하더라도 이미 검은 황소와의 인연이 있고 그린 스콜피온에게는 적대적인 경력이 남아 있기에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캘시퍼의 말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검은 황소와 함께 계속 가는 것과 길드를 탈퇴하고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것.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자는 아니야.’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당장은 평화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가 검은 황소 쪽이 패배하게 된다면? 토벌자 업계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좀 아니지.’

하현은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은 지금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지내면서 알게 된 사람이 괴물에게 죽게 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당장 조금 귀찮다고 해서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

결론을 내린 하현은 민철을 바라봤다. 어느 대답이든 겸허히 듣겠다는 듯 그는 조용히 하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다만 길드에 관한 일은 우선 저와도 논의하죠. 그래도 길드장인데 상황은 알아야죠.”

그냥 얼굴마담만 되는 길드장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하현의 대답에 민철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는 민철의 진지한 모습에 하현은 목을 쓰다듬었다.

조금 낯간지러운 것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흐음. 그럼 이제 오늘부터 제가 검은 황소의 길드장이 된 거죠?”

“예, 그렇습니다.”

민철의 대답에 하현은 무언가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길드의 길드장이 되셨으니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민철의 깍듯한 대우에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만간 제가 길드장이 되었다고 발표할 거죠?”

“예, 그때는 저희의 포부를 더욱 확실하게 발표할 겁니다. 아마 그날이 진짜 전쟁의 시작이겠지요.”

적의가 활활 타오르는 민철의 눈을 본 하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날 발표에 한 가지 추가할 수 있습니까?”

“예?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민철의 질문에 하현이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뭐. 가장 큰 적에 대한 견제 정도요?”

***

-아, 글쎄. 그쪽이랑 손잡을 생각 없다니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무관심한 목소리에 강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과 같아서는 당장 휴대폰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이보게, 성운 길드장.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 검은 황소랑 협회가 손잡고 날뛰는 순간 우리 밥줄 다 날아가는 거야. 알면서도 그러는 건가?”

검은 황소의 발표로 토벌자 업계에는 두 가지의 큰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첫 번째로 구심점을 잃어버린 블라우 슈랑에와 적견이 사실상 해체되고 그것을 검은 황소가 흡수했다.

길드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이들은 대거 정리되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10대 길드 두 개다.

검은 황소의 힘은 8대 길드 안에서 다른 길드들을 압도할 만큼 거대해진 것이다.

-그래, 알기야 알지. 견제도 할 거야. 근데 그쪽이랑은 안 한다니까? 입장을 좀 바꿔봐. 그쪽이 내 입장이면 손잡겠어?

빠드득.

이제는 귀찮음까지 묻어나는 성운의 목소리.

이미 마음을 돌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훈이 이를 갈았다.

토벌자 업계에 나타난 두 번째 변화. 그것은 바로 검은 황소의 노골적인 그린 스콜피온에 대한 전쟁 선포였다.

“토벌자들은 변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변하고 반성해야 하는 곳은 바로 그린 스콜피온이 될 것입니다.”

발표회장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이야기하던 하현의 모습.

딱 한 번 봤을 뿐인데 강훈은 그날 이후로 발작처럼 하현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솔직히 적당히 해 처먹었어야지. 댁은 절제란 걸 몰라? 덩치 믿고 까불다가 더 큰 덩치가 오니까 이렇게 멱살을 잡히잖아. 진짜 등신도 아니고.

빈정거리는 성운의 목소리에 강훈은 머릿속에 무언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보아하니 협회도 이번에 칼을 뽑았던데. 조심해서 잘 가라고. 뭐 그쪽 구역은 내가 대신해서 돌봐줄 테니까 걱정…….

파작!

강훈의 손에 쥔 휴대폰이 완전히 박살 났다. 이제는 들려오지 않는 성운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조심해서 잘 가라고?’

강훈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이 저런 열등한 놈들의 눈치를 보고 멸시를 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제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기회를 노리기 위해 웅크리며 비위를 맞춰주던 것도 이제 한계다. 강훈은 구석에서 벌벌 떨며 기다리고 있던 태호를 노려봤다.

“태호.”

“예, 예!”

“그놈들한테 연락은?”

“아직 없습니다…….”

태호의 대답에 강훈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여기까지 자신을 키워준 것은 그들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 이상 함께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공장으로 간다.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강훈의 말에 태호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잠시 후 사무실의 가운데에 길드원이 나타났다.

“가자.”

두 사람은 마법진을 통해 한 지하실로 이동했다.

주변에 그린 스콜피온의 정예 길드원들로 철통 보안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 있는 것은 바로 포탈이었다.

후우웅.

다른 포탈과 다를 것 없는 모습. 강훈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의 배경은 그냥 매우 거대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닥에 자욱하게 맺힌 녹빛 연기였다.

보기에는 별거 없는 그 녹빛 연기의 정체는 바로 과거 태현이 사용했던 살혼독이었다.

“후우…… 역시 이곳에 오면 마음에 편안해지는군.”

즉사할 수 있을 정도의 독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강훈은 한층 진정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죽음의 장소겠지만 강훈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장소였다.

그오오오옥---!!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저편에서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린 강훈은 그 소리를 내뱉은 것을 바라봤다.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녹빛의 거대한 괴물.

상당히 힘이 빠진 울음소리였지만 그럼에도 강훈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역시…… 이놈들은 지랄 맞게 강한 녀석들이란 말이지.’

이미 수백 번은 마주 본 존재지만 만날 때마다 전신의 몸이 경고한다. 당장 이 괴물에게서 달아나라고 필사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하지만 강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 신호를 무시했다. 이 괴물은 자신들을 죽일 수 없었고,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강훈의 방문을 알아차린 남자 한 명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공장의 총책임자였고 태호가 죽으면 대신해서 부길드장을 맡을 예비 부길드장이기도 했다.

“작업의 진행 정도를 말해라.”

“예, 현재 A급은 60명. S급은 7명 정도입니다.”

책임자의 말에서 나온 단어들은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강훈은 그 말에 별다른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서 변이를 백퍼센트 해낼 수 있는 녀석들은 얼마나 되지?”

“아마…… 60~70%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보다는 적군.”

강훈은 조금 아쉬운 듯이 이야기했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에서 아쉬울 뿐, 결코 가볍게 볼 정도가 아니었다.

“모두 안쪽으로 불러 모아라.”

“예!”

강훈의 말에 책임자는 동굴의 구석을 향해 달려갔다. 강훈은 걸음을 옮겨 괴물을 향해 다가갔다.

그오오오…….

누운 채 미동도 하지 못하는 녹빛의 괴물, 호르호이는 미약한 신음을 내뱉을 뿐, 공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호르호이에 다가간 강훈과 태호는 배 쪽에 갈라져 열려 있는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바닥에 깔린 것보다 더한 독기가 풍겨 왔지만 둘 다 여유롭게 버텨냈다.

쿠웅!

육벽을 밟으며 안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자 거대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목표로 했던 장소가 가까워짐을 알아차린 강훈이 씩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쿠웅!! 쿠웅!!

강훈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물체를 바라봤다. 진한 녹색 빛을 띤 채 강하게 맥동하는 심장.

주변에 깔린 독기들은 어지간한 물체도 단숨에 녹일 만큼 맹독이었다.

“정말 오랜만이군…….”

하지만 강훈은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심장에게 다가갔다. 수십 미터는 돼 보이는 심장 앞에 선 강훈은 자신의 손날을 세웠다.

푸욱!!

그리고 망설임 없이 심장을 향해 손을 쑤셔 넣었다.

그오오오옥!!!

바깥쪽에서 호르호이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훈은 그 소리를 개의치 않고 손을 움켜쥐어 심장 조각을 떼어냈다.

푸시이익.

녹빛의 피를 뚝뚝 흘리는 심장 조각은 누가 봐도 맹독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강훈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가로 가져가 익숙한 것처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부르르!

전신에 들어오는 맹독이 전신을 헤집자 강훈의 몸이 떨렸다. 심장 조각과 함께 들어온 맹독은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강훈의 몸속에 달라붙으며 그 힘을 녹여들었다.

“정말 황홀하단 말이야. 이걸 먹으면 내가 얼마만큼 강한지…… 그리고 그놈들이 얼마나 버러지 같이 약한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돼.”

잔뜩 도취한 강훈의 중얼거림에 태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호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그것을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길드장님, 모두 데려왔습니다!”

한참 호르호이의 힘을 만끽하던 강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책임자를 비롯한 그린 스콜피온의 길드원, 특공대들이 질서 있게 서 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길드원들과 다를 것 없는 특공대.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모두 동일하게 녹색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래, 모두 잘 왔다.”

강훈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그들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로 9년간 공들여 만들어낸 특공대원들은 강훈이 만족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바깥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그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느라 정말로 고생 많았다.”

담담하게 이야기한 강훈의 말에 특공대원들의 녹빛의 눈이 이채가 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강훈은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필요는 없다.”

특공대원들보다 더욱 진하고, 불길한 녹빛이 일렁거리는 강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세상은 우리가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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