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그쪽 마법진 제대로 설치된 거 맞아?!”
“예! 시험 기동 모두 완료했습니다!”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도시 위로 수많은 토벌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도시 전체에 아우르는 거대한 마법진을 만드는 작업이었기에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 마법진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발동의 중심지, 빌딩의 옥상 끝에 선 라젤린이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저쪽 42번째 포인트가 조금 미숙하네요. 하위 마법진들을 좀 더 다듬고 연결고리 확인해 주세요.”
“예.”
라젤린의 말에 진한은 통신기를 통해 아래쪽 협회의 관리자들에게 전달했다.
벌써 일주일째 계속되는 작업이었지만 좀처럼 그 조정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5개의 대마법진을 연동시켜 놓은 거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이번 작전에서 실패하는 순간 초당 최소 몇백 명의 시민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그렇다 보니 한 번의 실수도 나지 않도록 모두 빈틈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포격 쪽은 준비가 다 되어가나요?”
“예, 우지호 님 덕분에 5개의 포격 지점도 모두 완료된 상태입니다. 현재는 포격 이후에 발동될 최종 마법진의 점검 중이라고 하십니다.”
진한의 말에 마법진의 흐름을 탐색하던 라젤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면 휴식을 포함해서 내일쯤 토벌이 시작되겠군요.”
“내일 오전 11시로 잡고 있습니다.”
“참전하는 S급 토벌자들의 수는 어떻게 되나요?”
라젤린의 물음에 진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 분을 제외하고 모두 참가하셨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또 안 왔군요.”
화라고는 낼 것 같지 않던 라젤린의 눈가가 조금 찌푸려졌다. 평소에도 소집을 무시하기는 했지만 이런 일에도 빠질 줄은 몰랐다.
“후우…….”
그들에 대한 실망감에 라젤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라젤린이 진한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죠.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한다고 해도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을 테니까요. 아이템 코팅은 어떻게 돼 가고 있죠?”
“현재 전투에 참가하는 근접 토벌자들 전원에게 완료했습니다. 당일 날 라젤린 님이 축복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근접에 가담하는 토벌자들이 8명…….”
조용히 중얼거린 라젤린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는지 진한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최하현 씨는 어떻게 하기로 했죠?”
“소환 직후 바로 싸움에 가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축복은 못 걸겠군요.”
아무리 라젤린의 축복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아오르근이 나타날 때 터져 나오는 힘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해봐야 충격을 해소시켜 주는 정도일 텐데 피해면역인 하현에게는 그다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아무리 피해면역이라고 해도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데…….”
“절대 문제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진한의 말에 라젤린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이 섞인 표정으로 진한을 바라봤다.
“여태까지 최하현 씨가 다쳤다는 기록은 없었나요?”
“음…… 예, 부상을 입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더군요. 병원을 이용한 기록도, 약을 산 기록도 없었습니다.”
정말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하현의 기록에 라젤린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피해면역의 지속시간이 무한이거나 전투 시간을 정말 칼같이 지키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사람일지도 모르지.’
하현에 대한 생각으로 이리저리 고민하던 라젤린은 도시를 내려다봤다.
“지금 하현 씨도 저기 아래에 있는 건가요?”
“예, 요즘 토벌 준비 과정을 틈틈이 지켜보고 계신답니다. 뭔가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는걸 보니 생각하시는 게 있는 것 같더군요.”
“흐음…….”
진한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라젤린은 진한을 바라봤다.
“그러면 나중에 하현 씨가 뭔가 이야기하시면 곧장 제게 말해주세요.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한은 통신기를 통해 라젤린이 말한 내용을 전달했다.
도시를 바라보던 라젤린은 완성되어가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마법진이 유효했었다고 했지…… 하지만 과연 지금 이 상황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그들의 힘이 그만큼 될 수 있을까?’
수만 명의 목숨이 달린 물음.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
‘가능성은?’
「아오르근 토벌 가능성 1.4%.」
‘……정확도는?’
「72%입니다. 변수는 S급 토벌자들이 숨기고 있는 스킬들의 힘입니다.」
이번에도 절망적인 캘시퍼의 답변에 하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토벌이 준비되어 가는 과정을 족족 기록에 추가하면서 계속해서 추론을 했는데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성공 확률이 낮은 거야?’
「페젤론의 역사에 나타난 아오르근의 힘은 기존의 법칙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다른 세계의 존재입니다. 죽음 그자체인 아오르근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가능한 인물도 드뭅니다.」
‘그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뭐지?’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에 추론할 수 없습니다.」
‘끙…….’
토벌에 불가능한 것은 기록이 있어 추론이 가능하지만 막상 잡을 방법은 기록이 없어 추론이 불가능하다.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운만 빠지게 만드는 상황에 하현은 한 숨을 내쉬었다.
‘토벌을 미루자고 해볼까?’
곰곰이 고민해본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캘시퍼를 통해 얻은 정보는 어디까지나 외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로 내린 결론에 불과하다.
아직 자신이나 캘시퍼가 파악하지 못한 마법진의 숨겨진 힘이 있다면 얼마든지 결과가 바뀔지 모른다. 그 정도로 빈약한 정보로는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지.’
뭔가 텁텁한 입맛에 하현은 표정을 찡그리며 도시를 내려다봤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쉽지 않은 법이었다.
“하현 씨?”
한참 고민을 하던 그때, 하현의 뒤로 아민이 다가왔다. 건물 옥상에서 갑자기 만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아민의 등장에 하현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지호 님이 지시한대로 마법진을 점검하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마법진이 커서 부유마법으로 살펴보고 있었는데…… 여기 하현 씨가 계셔서요.”
“아아. 그런 거군요.”
고개를 끄덕인 하현은 아민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 밑에 자욱한 다크서클이나 어두운 인상은 요 근래 그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요새 많이 힘드신가 봐요?”
“엄청 힘들죠!”
하현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호 님이 저한테 일을 시킨다는 게 제 실력을 인정하는 뜻인 건 알겠지만……그래도……그래도 너무 시키신다고요!”
마법사는 토벌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극히 드문 스타일이었다.
마법이 위력적이기는 했지만 워낙 사용이 까다로워 다른 것보다 재능의 벽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A급 토벌자이면서 순수마법사인 아민은 S급인 지호와 마찬가지로 매우 보기 드문 타입의 토벌자였다.
그러니 지호가 아민을 이렇게 혹사시키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하…… 힘내세요.”
어떻게 위로해줄까 고민하던 하현은 아민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는 것도 좋았겠지만 별 다른 사이도 아닌 여성에게 했다가는 뺨맞기 십상이다.
“아! 네, 네, 힘낼게요.”
하현이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준다는 것을 깨달은 아민이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토닥인 것도 심했나 싶은 하현은 재빨리 손을 때냈다.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에 머뭇거리던 두 사람은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건물 아래로 쳐져 있는 마법진을 살펴보던 하현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아민을 바라봤다.
“아민 씨, 혹시 여기 근방에 쳐져 있는 마법진들의 효과 알 수 있을까요?”
“마법진의 효과요?”
“네,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그런 정확한 정보요.”
“음…… 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아민의 대답에 하현의 눈이 번뜩였다.
“그럼 혹시 저한테도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흠…… 잠시만요. 지호 님한테 물어 볼게요.”
귀를 만진 아민은 지호에게 연락을 보내 하현의 부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잠시 몇 번의 대화가 오간 후 아민이 하현을 바라봤다.
“말씀드려도 된데요. 그럼 설명해 드릴게요…….”
하현은 아민이 설명해 주는 마법진에 대해서 귀담아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목적은 캘시퍼가 마법진의 효과를 자세히 알게 되면 추론의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하네요.”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내는 위력에 하현은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이곳에 설치된 마법진들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네, 충분해요.”
이미 들은 기록을 바탕으로 캘시퍼의 추론이 진행 중이었다. 하현은 아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어차피 하현 씨도 알아야 할 내용이었고……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하현의 미소를 정면으로 받던 아민은 우물쭈물 거리다가 바닥을 박차고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아민의 행동에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민을 바라봤다.
“그럼 내일 싸우기 전에 다시 봬요!”
“예, 조심히 가세요!”
아민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다시 마법진의 확인을 위해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조금 긴장하며 캘시퍼의 대답을 기다렸다.
「추론 완료 했습니다」
‘……결과는?’
「아오르근 토벌 가능성…….」
아민에게 들은 마법진의 위력이라면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그런 기대를 품은 하현의 귓가로 대답이 들려왔다.
「53.4%.」
***
마법진을 준비하던 토벌자들도 사라지고 전투 인원만 남은 도시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라젤린은 자신의 앞에 선 9명을 바라봤다.
‘이 아홉 명이 아오르근과 맞서 싸워야 하는 구나…….’
모든 상황을 주도한 라젤린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오르근을 물리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어.’
차원의 틈은 점차 한계에 이르고 있고, 여기서 시간을 더 투자해 봐야 그 가능성이 갑자기 높아질 가능성도 없다.
결국 부딪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이 위험한 상황에 동참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찾아와주신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조용히 읊조린 라젤린읜 자신의 가슴에 손을 모았다.
황금빛의 광채가 두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하늘 위로 거대한 기둥이 되어 솟구쳤다.
“여러분들 중 한 사람만 죽어도 아오르근과 다시 싸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그러니 불리해지면 꼭 살아서 돌아와 주세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라젤린은 가슴에 모은 손을 9명을 향해 펼쳤다. 금빛의 거대한 기둥은 9명에게 나눠지며 작은 기둥을 만들어냈다.
-신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라젤린이 9명에게 걸어준 버프는 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강력했다.
‘전체 능력치가 거의 2배 가까이 오르고…… 저항력은 4배 가까이 올랐네. 대체 이건…….’
하현은 버프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며 라젤린을 바라봤다.
역시 이 정도 힘은 S급인 그녀에게도 버거웠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8명을 찬찬히 바라보던 라젤린은 마법진의 발동을 위해 진한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로 향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했고 그중에서 홀로 하현은 마법진의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8차선 교차로의 한 가운데. 하현은 차도 없는 도로의 한 가운데 서서 망자의 원석을 꺼내들었다.
‘캘시퍼의 추론이 맞았다면…… 할만 해.’
정확도는 82.3%. 그렇게 낮은 수치도 아니었으니 충분히 믿을 만했다. 하현은 이전보다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석을 바라봤다.
검은색 기운을 교차로 전체에 퍼뜨리는 망자의 원석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실수만 없으면 잡는다!’
속으로 다짐을 내린 하현은 원석을 움켜쥐었다.
“아오르근 소환!”
하현의 외침이 교차로에 크게 울려 퍼졌고.
콰아아아아앙!!!!
손에 움켜쥔 망자의 원석으로부터 검은색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방금 라젤린이 보여준 황금색 기둥과 대비되는 검은색의 거대한 기둥.
모든 기운을 토해낸 망자의 원석 본래대로 되돌아왔고, 기둥의 안쪽에 있는 하현의 주변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휩싸였다.
그때.
쩌저적. 쩌적!!
검은색 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부터 검은색의 불길한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 나왔다.
「경고.」
‘뭐?’
갑자기 귀에서 들려온 캘시퍼의 목소리에 하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경고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챙!!
그러던 사이 빠르게 금이 확장된 기둥으로부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완전히 깨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본래 없었던 존재가 나타나 있었다.
낡고 해진 검은색 망토와 말라비틀어진 지팡이를 든 해골. 망자의 왕 아오르근이 소환되었다.
[여기는.]
나지막하게 이야기한 아오르근이 아래를 향했던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푸화아아아악!!!
그 순간 그의 주변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죽었다. 아스팔트, 신호등, 벽돌 등 하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모래로 변해 바람에 휩쓸렸다.
[역겹구나.]
언어로 들려오지만 언어가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목소리.
하현은 아오르근의 힘을 본 순간 캘시퍼가 내지른 경고의 의미를 몸소 느꼈다.
‘이건……말도 안 되잖아.’
여태까지 불간섭의 힘을 사용하면서 하현은 자신이 꽤 대담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변화로 인해 초기에 비하면 괴물들과 만나도 감정의 저항이 생겨나지 않았다.
-상태이상 ‘즉사’에 저항하셨습니다.
-상태이상 ‘공포’에 저항하셨습니다.
-상태이상 ‘굴복’에 저항하셨습니다.
-상태이상 ‘광화’에 저항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떠오르는 수십 개의 알림창에 자신이 안이했음을 깨달았다.
이 괴물은 정말 근본부터가 틀려먹었다.
이렇게 쉽사리 덤벼서는 안 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자신은 제외한 이 자리에 모두가 죽을지도 모를 만큼 터무니없는 존재였다.
‘아니…… 하지만 마법진이라면…….’
그런 하현의 머릿속에 아민이 말해줬던 마법진의 존재와 캘시퍼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오르근의 직접 기록 획득. 추론 값 수정. 아오르근 토벌 가능성 0.2%. 즉시 대피해 주십시오, 마이스터.」
귓가에 들려오는 캘시퍼의 목소리는 냉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