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63화 (63/158)

# 63

“우와아아아!!!!”

승리의 함성이 넓은 평원에 넓게 울려 퍼졌다. 그 열띤 광경에서 홀로 동떨어진 하현은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봤다.

‘이상하네, 왜 정지가 안 되지.’

망자의 기억을 채울 단서가 보이지 않았기에 애들이나 잡아서 채우는 느낌으로 열심히 사냥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수성에 성공해 정지 조건을 만족시켜버렸다.

그런데 정지의 조건을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알림창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하현이 의아해하는 사이 한 사람이 다가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백마를 이끌고 다가온 남자, 오드리히는 하현을 내려다봤다. 다른 병사들은 대부분 빛 때문에 눈을 감았지만 그 활약상을 모두 보았던 하현은 감탄이 담긴 눈으로 오드리히를 바라봤다.

‘무기가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아마 최소 S급은 되겠지.’

방금 전과 같은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고도 지친 구석도 하나 없어 보이는 걸 보면 SS급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현은 조금 긴장된 눈으로 바라봤다.

“아, 이런 실례…….”

하현의 시선을 받던 오드리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재빨리 말에서 내려왔다. 그 모습에 하현은 조금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실례라고 생각한 건가…… 착한 사람이네.’

말에서 내려 하현에게 다가온 오드리히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이야기했다.

“내 이름은 오드리히. 변변치 않지만 용사라는 직위를 맡고 있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비교적 가볍고 활기찬 말투.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어려 보였다. 기껏 해봐야 20대 초반 정도.

‘그런데도 그렇게 강하다고?’

하현을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오드리히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시련이 남았던가, 숨겨진 무언가가 발동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이 흐름을 타야 할 것 같았기에 하현은 오드리히의 물음에 대답했다.

“최하현, 간단하게 하현이라고 부르세요.”

“흐음…… 하현이라. 조금 독특한 이름이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본 오드리히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의 특이함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싸우는 걸 잠시 봤었어. 병사들의 사기도 그렇고 네 덕분에 성벽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네.”

“그다지 큰 활약은 안 한 것 같은데…….”

오드리히의 말에 하현은 성벽의 위를 바라봤다. 오드리히를 향한 시선이 많긴 했지만 그 못지않게 자신에게 경외심이 담긴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은근히 많았다.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사기가 바닥나면 질수밖에 없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싸운 네 행동이 지금의 이 승리를 만들어낸 거야.”

진지하게 이야기한 오드리히는 자신의 손을 뻗었다. 저 멀리 땅에 꽂혀 있었던 성검은 부드럽게 날아와 순식간에 오드리히의 손에 잡혔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너에게 감사를 표할게, 하현.”

성검을 역수로 잡아 바닥에 꽂은 오드리히는 무릎을 꿇으며 하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전에 알레이온이 보여준 기사로써 극상의 예를 표하는 자세였다.

-용사 오드리히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공적치 80,000을 획득하셨습니다.

여태까지 괴물들을 잡으면서 얻었던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공적치. 하현이 깜짝 놀라는 사이 다른 창이 떠올랐다.

-벨포트 수성전을 역사에 거의 근접한 수준으로 재현하셨습니다. 던전 완수의 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뭐?”

갑자기 던전 완수라는 말에 하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오드리히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현을 바라봤다.

“망자들과의 전투도 이제 끝을 볼 때가 왔네. 병사들과 함께 대피해줘. 마무리는 내가 짓겠어.”

“……!”

오드리히의 말을 들은 하현의 눈이 확 커졌다. 그 말 그대로라면 지금 이 시간대는 침묵의 하수도보다 뒤의 시간대일 가능성이 높다.

“잠깐, 혹시 아오르근이 직접 나서서 초토화 시켰던 장소들 알아?”

“음?”

하현의 물음에 오드리히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만약 아오르근의 이동 경로를 안다면 다른 던전들을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현의 눈동자에 떠오른 다급함을 눈치챈 오드리히는 머릿속을 뒤져 대답했다.

“아오르근은 메르센에서 벨포트까지 쭉 왔어. 사이에 큰 영지는 없어서 대부분 이름도 알기 힘든 작은 영지나 마을들이 다야.”

“……그런가.”

오드리히의 대답에 하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던전을 찾는 데 조금 고생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안돼서 미안해. 그럼 이제 가볼게. 저쪽에서 오면 이 일대가 죽어버릴 테니 내가 가야 해.”

고개를 돌린 오드리히는 평원의 너머를 바라봤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를 알리듯이 성역선포로 밝아졌던 하늘이 저 아주 먼 곳에서부터 황폐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하현도 본 적 있는 하늘. 아오르근의 힘에 인해 죽어버린 하늘의 모습이었다.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보자.”

아오르근과 싸우기 위해 오드리히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볼모지로 변해 버린 땅의 위로 아오르근과 오드리히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물을 죽여 버리는 아오르근의 힘.

오드리히는 갑옷과 검, 자신의 힘으로 아오르근의 힘을 가볍게 저항했다.

[생명이여. 이제 너희들의 시대는 끝날 것이다.]

“아니, 끝나지 않아.”

전신을 짓누르는 위압감을 맞서 싸우며 오드리히는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오르근은 공허한 동공으로 흔들림 없이 바라봤다.

[아니, 너희들의 시대는 반드시 끝날 것이다. 나에 의해, 다른 이에 의해서]

“우리의 끝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다. 네 뜻대로 선택되지는 않을 거다, 아오르근.”

자신의 성검을 겨눈 오드리히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며 그를 노려봤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이 아오르근의 힘에 대응하듯 부딪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오르근은 천천히 읊조리듯이 이야기했다.

[그런 알량한 이유가 모든 시대를 종결시키는 걸 합리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의 끝에 순응해라.]

그것으로 끝이라는 듯 아오르근은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모래폭풍이 더욱 강해졌고 오드리히는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망자의 왕 아오르근과 용사 오드리히의 결투를 보셨습니다. 페젤론 대륙에서 벌어진 역사의 일부분을 보셨습니다.

-벨포트 수성전의 던전 완수 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차원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하현의 몸이 던전의 밖으로 나왔고 포탈을 지키고 있던 관리자들이 놀란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최근에도 본 그 시선에 하현은 능숙하게 넘기며 알림창들을 바라봤다.

-꺾일 것 같던 병사들의 사기를 지탱하고 그들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역전의 용사’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 ‘벨포트 수성전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시 오는 익숙한 알림창 뒤에 조금 독특한 알림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전투에서 획득한 공적치를 소모해 나열된 아이템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공적치가 100,000을 넘었기에 숨겨진 아이템 ‘오드리히의 반지’가 공개됩니다.

공적치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은 쓸 만한 효과의 아이템들이 상당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하현은 곧장 뒤로 쭉쭉 넘겨 숨겨진 아이템이라는 오드리히의 반지를 바라봤다.

오드리히의 반지(에픽)

내구도 40/40 마법 방어력 65

용사 오드리히가 엘프 부족을 구하고 선물 받은 반지이다. 엘프들의 마법이 깃들어져 있는 반지로 강력한 힘 대신 착용자의 신체를 활성화 시킨다.

-착용자의 모든 스탯이 5% 오릅니다.

-마나량 2,500증가. 마나 회복량 300%증가.

-반지를 착용하고 있을 시 청각이 상승하고 강력한 자연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드리히의 반지 효과를 본 하현의 입가가 떡 벌어졌다. 그것을 구매하는 순간 다른 아이템은 못 사게 되지만 하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곧장 반지를 골랐다.

‘망자의 기억은 많이 못 얻었지만 다른 소득이 있네.’

본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해서 얻은 반지의 효능은 어마어마했다. 하현은 깜짝 놀라 있는 관리자들과 함께 협회로 복귀했다.

“더, 던전을 또 완수하셨다고요?”

하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진한이 놀란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하루에 던전을 하나씩 완수하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제 기사의 무덤은 망자의 원석 때문에 고생도 안하고 쉽게 깬 거니까 같이 치기는 그렇다.

오늘도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 할 수 있으니 정말로 완수했냐 하면 미묘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던전 두 개를 연달아 완수했다는 것이니 놀라운 것은 변함없었다.

하현을 바라보던 진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쪽에서 얻으신 정보들을 저희들과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페젤론 역사요?”

하현의 말에 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있어 페젤론의 역사는 중요한 정보였고 던전 완수 시 나오는 영상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다.

‘흐음…… 공개해도 딱히 상관은 없나.’

칭호처럼 특수한 힘을 주는 것들도 아니고 굳이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냥 알려주기에는 고생한 것이 있었기에 하현은 진한에게 제안했다.

“제가 얻는 정보들은 공유하겠습니다. 다만 그에 관한 공적치를 좀 주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제가 던전에서 목숨을 걸고 얻어낸 거니까요.”

하현의 제안에 진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정보에 따라 모두 합당한 수준의 업적 포인트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제가 얻은 정보들을 공유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진한은 토벌자 자격증을 내밀어 이번에 하현에게만 추가된 기능을 시현해 보였다.

“이렇게 페젤론의 역사 정보들을 자격증을 통해 갱신해 주시면 됩니다. 하현 씨도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이 정보창을 통해 알아보시면 됩니다.”

“예, 그럼 오늘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현의 대답에 화색을 띈 진한은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보에 따라 들어간 보수는 문자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진한과 인사를 나눈 하현은 텔레포트 룸의 밖으로 나와 협회 건물 뒤편에 있는 휴게소로 나왔다.

그늘 아래 설치되어 있는 벤치로 가 앉은 하현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에 오드리히의 말이 맞으면…… 아무래도 망자의 기억을 대량으로 받기는 힘들겠는데.’

지금까지만 보자면 아오르근과 좀 직접적으로 관련된 던전을 완수했을 때만 망자의 기억이 대량으로 흡수된다.

하지만 오드리히의 말대로 큰 도시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왔다면 아오르근이 들렀을 장소들을 알기 힘들었다.

‘망자들이 나오는 던전들을 다 가봐야 하나?’

이제 방법이라면 그것뿐이다. 시중에 공개된 던전들은 어지간히 유명한 것은 다 가봤으니 남은 방법은 협회가 비공개로 돌려 둔 던전밖에 없었다.

‘간다고 해서 완수가 되는 건 또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목록을 한 번 봐볼까.’

자격증을 통해 하현은 협회가 소유한 던전의 정보들을 하나둘씩 살펴봤다.

카테고리로 구별할 수 있었기에 하현은 망자들이 등장하는 던전들을 고르고 살폈다.

‘C급 던전…… 역병마을? 주의 요망이라.’

C급 던전인데 주의 요망이라니. 하현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던전의 정보를 바라봤다.

배경은 갑작스럽게 역병 같은 것이 돌았는지 망자화 된 괴물들이 나오는 마을이었다.

‘조금 징그러워서 그런 건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수상한 느낌이 났다.

한 번 살펴보자고 생각한 하현은 텔레포트 룸으로 다시 향했다.

아직 새벽이 아니기도 하고 C급이니 잠시 보기에는 충분했다.

“……들어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던전은 좀 잔인한 장면이 많습니다.”

하현이 들어가려하자 관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A급 토벌자가 C급 던전을 들어가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광경은 상당히 독특했다.

‘얼마나 잔인하면 이래?’

이제는 궁금해지기까지 한 하현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습니다.”

“……그럼.”

관리자들은 옆으로 비켜주었고 하현은 포탈을 타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갈색으로 황폐하게 변한 하늘의 풍경이었다.

‘……이거 당첨인데?’

얼추 제대로 찾아왔다 싶은 하현은 주변을 살펴봤다. 아직 아오르근이 근처까지 오지 않았는지 마을은 조금 을씨년스러울 뿐, 모래로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럼…… 이제 완수 조건을 찾는 게 문제겠지.’

어쩌면 이곳도 망자의 원석이 완수의 키워드일지 모른다. 하현이 막 주변을 돌아다녀보려는 순간.

“……줘…….”

마을의 안, 어디선가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은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저 멀리에서 느린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오는 10개의 인영이 보였다.

‘좀비인가? 그런데 방금 좀비치고는 또렷한 목소리가…….’

좀비들 중에도 강력한 녀석들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런 녀석들은 대부분 목소리가 듣기 안 좋았다.

하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이쪽을 향해 오는 자들을 바라봤다.

“……이런.”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하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쪽을 향해 오는 그들의 정체는 좀비가 맞았다.

팔다리는 비틀어져 있었고, 안면은 기괴하게 뒤틀려져 있었으니 그것은 차마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죽여……줘…….”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망자화가 되면서도 이성은 남아 있던, 괴물로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 찰나의 순간.

“제발……죽여주……세요…….”

참극이나 다름없는 그 순간이 고정된 장소가 바로 던전 역병마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