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갔냐?”
지현이 떠나고 다시 마당으로 나온 강철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잠깐 만났으면서 이 정도로 기피하는 걸보면 지현과 어지간히도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 가르치다 보니 자극받았다고 던전 좀 돌다가 다시 찾아오겠다는 데요.”
왠지 모르게 웃긴 이 상황에 하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강철은 얼굴을 일그러졌다.
“제길, 요상한 녀석이 달라붙었군.”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같던데요.”
“안 겪어봤으면 말을 마라. 아마 네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나처럼 시달렸을 거다.”
강철의 말에 하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스킬을 가르쳐주는 와중에 번뜩이던 지현의 눈길은 기름에 들어가기 직전인 생닭을 보는 눈빛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얻은 스킬은 괜찮은 것 같냐?”
“예, 좋은 스킬 배운 것 같아요.”
하현은 자신의 스킬창에 새로 생긴 스킬을 바라봤다.
혈화광권(Lv.2)
액티브. 기공을 운공할 시 힘, 민첩을 1.5배, 체력을 1.2배 증폭시킵니다. 초당 체력과 마나 20씩을 소모합니다.
패시브. 기공을 운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받았을 때, 생명력의 1%를 소모해 기공을 강제 발동시킵니다.
혈화광권은 공격 위주의 기공이었기에 힘과 민첩을 주로 올려주는 스킬이었다.
그 자체는 그렇게 특색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패시브였다.
기공을 사용하는 토벌자들의 약점은 기공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 기습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혈화광권은 패시브로 인해 공격을 받는 순간 자동으로 스킬이 발동된다.
‘생명력을 소모하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발동이 안 되면 그냥 죽어버리니까.’
기공이 발동되면 방어력과 반사 신경이 상승되니 기습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지현이 말한 그대로 기공이 가진 단점이 보완된 스킬이었다.
“나사는 좀 빠진 것 같지만 실력은 상당한 녀석이야. 밸런스도 잘 잡혔고 스타일도 확실하지.”
성격이 조금 개판일 뿐, 토벌자로서 실력은 강철도 인정할 만큼 지현은 실력 있는 토벌자였다.
기공을 배운 토벌자들은 A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유일하게 넘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내 차례구만.”
어깨를 매만진 강철은 하현을 바라봤다. 이전에 대력난탄 이후 처음으로 배우는 스킬이었기에 하현은 조금 기대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흠. 근데 대력타랑 대력난탄 스킬은 레벨 몇이냐?”
“대력타는 9레벨, 대력난탄은 아직 4레벨입니다.”
스킬창을 본 하현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 스킬의 조건을 채우기에는 각각 1레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뭐 원래 뒤로 갈수록 레벨이 잘 안 오르지. 걱정 마라. 이번에 가르쳐줄 스킬은 두 개랑 관련 없는 스킬이니까.”
“예?”
분명히 다음 연계 스킬일 것이라고 생각한 하현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강철은 씩 웃으면서 하현을 바라봤다.
“내가 아직 약할 때 자주 쓰던 스킬인데…… 최근에 스킬 정보를 읽으면서 확신했다. 네가 배운다면 강력한 필살기가 될 수 있다고!”
“필살기…….”
조금 낯간지럽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름에 하현은 기대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
“안 써요!!”
스킬의 전수가 끝나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하현이 강철을 향해 소리쳤다.
싸가지 없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하현은 패닉 상태였다.
“으음, 이상하구만.”
하현이 사용한 스킬의 흔적을 본 강철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먹 모양으로 깔끔하게 뚫린 허수아비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풍경이었다.
“조금 달랐던 건가……? 야, 한 번 만 더…….”
“안 합니다!”
“에잉…….”
하현의 단호한 대답에 강철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반대로 하현은 창백한 표정으로 스킬창의 스킬을 바라봤다.
‘이 스킬은 다시는 안 쓴다. 무조건 봉인이야.’
하현은 오늘 이 스킬을 배웠던 것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스킬창을 닫았다.
“아쉽군…… 생각대로만 됐으면 정말 필살기였을 텐데 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알겠지만 실패했으니까 깔끔하게 미련을 떨쳐내세요.”
“어쩔 수 없지. 그냥 다음에 대력난탄 다음 스킬이나 가르쳐주마.”
강철에게 인사한 하현은 주택의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미 지난 일임에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후우…… 기사의 무덤이나 가야겠다.”
가슴을 진정시킨 하현은 원래 가기로 했던 기사의 무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의 안쪽에는 다른 토벌자들도 몇몇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한두 명씩 휴식을 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됐네.”
멀찍이 떨어져 데스 나이트들로 회피를 연습하던 하현은 정리하고 중앙의 고목을 향해 다가갔다.
후웅.
나무 앞에 있는 흙을 대충 발로 차자 투명한 기사가 올라왔다.
데스 나이트 알레이온.
이미 몇 차례 본 괴물이었기에 하현은 바닥에서 완전히 나오기를 기다렸다.
[…….]
땅에서 완전히 나온 알레이온은 노곤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잠시 아무런 말없이 서 있더니 이전에 강철과 마주했을 때처럼 고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온다.’
곧 올 전투를 대비해 하현은 자세를 잡았다.
고목에서 투명한 검을 꺼낸 알레이온은 역수로 검을 쥐었다. 그 모습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역수로 잡았다고?’
무언가 스킬을 쓰려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하현이 의아해하는 사이 알레이온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망자의 왕이시여…… 어찌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이전의 노곤함은 온데간데없이 또렷한 목소리와 정중한 말투.
그 갑작스러운 모습에 하현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현은 인벤토리 안에 있는 망자의 원석을 꺼냈다. 그 원석을 바라본 알레이온은 더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찌하여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는 저의 얕은 지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감히 간청할 것이 있습니다.]
알레이온은 대답을 기다리듯이 고개를 조아린 채 말을 멈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말해봐라.”
[죽음을 갈망하며 이 고목의 앞을 떠돌기를 이천 년이 넘었습니다. 죽음 그 자체이신 왕께서 보시기에는 아주 찰나에 비롯한 시간이지만 필멸자인 제게는 너무나도 잔혹한 시간이었습니다.]
알레이온의 목소리에는 피로함과 절망이 함께 묻어났다.
무덤에 내려진 저주로 인해 죽지도 못하고 수천 년간 살아온 그에게 삶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부디 저의 목숨을 거둬 영원한 안식을 주십시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영원한 안식]
수천 년간 살아온 알레이온은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무덤가를 배회하였습니다. 망자의 원석을 이용해 알레이온을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십시오.
난이도 : A
보상 : 던전 완수. 망자의 기억.
-구슬을 알레이온의 몸에 가져다대면 시련이 완수됩니다.
‘……이거다.’
시련의 정보를 읽어본 하현의 눈이 커졌다. 아직 아오르근이 기둥인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를 추적할 수 있는 시련은 확실하게 나온 것이다.
‘그것보다…… 던전의 완수 방법이 무조건 던전 안에 있는 건 아니었구나.’
침묵의 하수도를 완수해야 얻을 수 있는 망자의 원석이 필요한 완수 방법이라니.
만약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얽혀 있다면 던전의 완수가 어려운 것도 일리가 있었다.
“좋다.”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일단 본래 목표로 했던 목적과 같았기에 하현은 시련을 수락했다.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는 알레이온을 향해 다가간 하현은 손을 뻗어 망자의 원석을 가져다 댔다.
우우웅!!
망자의 원석 안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알레이온의 몸이 조금씩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 알레이온은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망자의 왕이시여…….]
-데스 나이트 알레이온이 영원한 안식에 잠들었습니다.
알레이온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이 으스스하고 삭막한 기사의 무덤. 던전과 다르게 몇몇 데스 나이트가 무덤을 배회하고 있었다.
파스슥.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무덤의 경계 부분이 조금씩 흙으로 변하며 풍화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갉아먹듯이 무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흙으로 변해 흩날렸다.
무덤을 배회하는 데스 나이트들은 그 변화에 당황하다가 조금씩 비틀거리더니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죽은 자가 모이는 장소가 바로 무덤이다.
하지만 그 광경은 진정한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이건…… 그 녀석이군.’
이미 본 적 있는 광경이었기에 하현은 천천히 기다렸다. 무덤은 이미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의 사막이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앙에 있던 고목과 알레이온, 그 둘뿐이었다.
후우웅.
모래바람의 중심지, 망자의 왕 아오르근이 천천히 고목과 알레이온을 향해 다가왔다.
알레이온은 방금 전 하현에게 그랬듯이 검을 꼽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찌 이런 곳을 찾아오셨습니까. 망자의 왕이시여.]
[너를 찾은 것이 아니다. 너의 그 뒤, 죽었음에도 죽지 않은 고목을 찾아온 것이다.]
비교적 사람의 목소리 같은 알레이온과 다르게 아오르근은 기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말로써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뜻이 쑤셔 넣어지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꽈드드득-
아오르근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여태껏 꿈쩍이지도 않던 고목이 땅에서 뽑혀 나왔다.
거기에 손을 움켜쥐자 거대한 고목이 천천히 비틀어지고 압축되며 하나의 지팡이처럼 변했다.
‘저건…… 그때 영상에서 봤던 지팡이.’
안에 구슬들은 없는 것을 보면 침묵의 하수도 때 보았던 영상보다 과거의 일인 듯했다.
고목을 손으로 거둬들인 아오르근은 텅 빈 공동으로 알레이온을 바라봤다.
[망자가 되었음에도 너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고목의 근처에서 살아남았구나. 시간이 지났으니 묻겠다. 너는 아직도 살고 싶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시여. 부디 제게 안식을 주십시오.]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아오르근의 지팡이가 알레이온을 가리켰다. 그러자 알레이온의 몸이 다른 데스 나이트와 같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준비는 끝났다…… 다음은 페젤론의…….]
조용히 중얼거린 아오르근이 다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망자의 왕 아오르근이 데스 나이트 알레이온에게 안식을 안겨주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망자의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의 일부분을 보셨습니다.
-기사의 무덤 던전 완수 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차원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후우웅!!
익숙한 느낌과 함께 하현의 몸이 밖으로 나왔다. 포탈이 사라지고 그것을 발견한 관리자들이 놀랐을 때, 하현은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을 바라봤다.
-던전 완수 보상 ‘기사의 무덤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망자의 기억이 12% 차올랐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터무니없이 작게 오르는 망자의 기억이 왜 그랬는지 하현은 드디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오르근과 관련된 던전들을 완수하면서 망자의 기억을 흡수해야 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방법이 야매에 가까운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효율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아오르근과 관련된 던전들을 완수하면 망자의 기억들이 확 차오른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그것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바로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자격증을 바라본 하현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