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15. 망자의 원석
“------!!”
던전의 배경인 공원의 중심지에 도달하자 검은색의 거대한 스켈레톤이 포효를 내질렀다.
타락한 공원묘지의 보스인 킹스켈레톤. 165레벨로 동 레벨 구간에서는 조금 까다로운 괴물로 불렸다.
파아앙!!
하지만 무심하게 휘두른 하현의 대력타의 한 방에 뼈마디가 모조리 분해되면서 흩어졌다.
무너진 뼈마디는 먼지로 변해 사라져갔고 그로부터 검은색 기운이 하현을 향해 흘러왔다.
-킹 스켈레톤을 처치하셨습니다. 325의 망자의 기억을 흡수합니다.
쏠쏠하게 들어오는 망자의 기억에 하현의 씩 웃으며 아이템들을 수습했다.
정리를 끝낸 하현은 리젠되는 괴물들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수고하세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던전의 관리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친 하현은 새벽 4시의 어두컴컴한 길가를 걸었다.
적당히 걷다가 공원의 벤치가 보이자 하현은 곧장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보자…….”
하현은 인벤토리에서 망자의 원석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처음처럼 하현의 몸에서 검은 기운들이 빠져나와 망자의 원석을 향해 흡수되었다.
-망자의 기억이 차올랐습니다. 망자의 기억 : 11%
처음 3%에 비해 어느 정도 오른 수치였지만 하현은 조금 탐탁지 않은 눈으로 원석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안 오르는 것 같은데.’
망자의 원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주일.
그동안 하현은 언데드가 나오는 B~E급 던전들을 계속해서 순회하면서 망자의 기억들을 모으고 있었다.
망자의 기억은 레벨과 관련 없이 괴물들의 탄생 배경에 달라졌기에 하현은 빠르게 기운들을 모았다.
하지만 문제는 모이는 기운과 달리 필요한 양이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도 언젠가 다 모이기는 하겠지만…….’
3개월 정도만 모으면 되겠지만 또 사람 마음이 더 빠른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빠르게 모을 수 있을지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흠…… 역시 뭔가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단 말이지.’
여태까지 던전을 돌면서 알아낸 것은 망자의 기억은 죽은 사람 한 명의 기억이었다.
예로 방금 전 쓰러뜨린 킹 스켈레톤은 수백 마리의 스켈레톤이 뭉쳐져 만들어진 보스였다.
그 덕분에 한 마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300이 넘는 망자의 기억이 들어온 것이었다.
‘무조건 이런 방법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 이런 방법밖에 없으면 그때는 정말 3개월 동안 노가다만 해야 되는 거다.
좀 효율 좋은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하현은 머리를 굴려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기사의 무덤이 조금 이상하다고 했던가?’
몇 번이고 보스를 잡아도 드랍 아이템이 없는 기묘한 던전.
거기다 마침 언데드 계열. 연결점이 많다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없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정도였다.
‘한 번 가볼 만은 하겠지.’
어차피 시간을 낭비한다 쳐도 하루 정도밖에 안 됐고, 요 근래 약한 괴물들만 잡다 보니 몸도 근질근질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대충 자고 내일 가야겠다.’
방침을 정한 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으음.”
오전 9시.
그다지 오래 자지는 못했지만 불간섭 덕분에 피로는 모두 날아간 하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단호하게 떨쳐냈다.
‘여기로 오면서 참 많이 변했어.’
예전 같았으면 한 번쯤 유혹에 져서 잤을 법도 하지만 이곳에서 온 뒤로 하현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새삼스럽게 확 변한 자신의 모습이 하현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잠으로 도피하고 싶은 현실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냉장고에 사다둔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하현은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그대로 막 집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우우웅!
주머니 넣어 뒀던 하현의 휴대폰이 대차게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싶어 휴대폰을 바라본 하현은 강철 선생님이라고 적힌 화면에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웬일로 전화를 다 거셨지.’
보통 전화보다는 짧은 메시지를 선호하던 사람이 강철이었다.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온 전화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하현은 전화를 받았다.
“뭐 하고 있냐?”
심드렁한 강철의 목소리.
그다지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아보였기에 하현은 살짝 마음을 풀고 편하게 답했다.
“지금 던전 갈 채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뭐 좀 바쁜 일이냐?”
“아뇨, 그렇게 바쁜 일은 아니에요.”
하현의 이야기를 듣던 강철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현이 의아해하던 때, 강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러면 잠시 좀 올 수 있냐? 너를 좀 만나보고 싶다는 녀석이 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요?”
강철이 아는 사람 중에 자신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니. 조금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하현은 어리둥절했다.
“음. 너도 좀 아는 녀석인데…….”
“어이! 애송이!”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
자신을 저렇게 부른 사람은 최근에 한 명뿐이었기에 하현은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지현 씨?”
“그래, 오랜만…….”
“통화하는데 시끄럽다. 자꾸 얼굴 들이밀지 마라 이 녀석아!”
계속 이야기하려는 지현을 밀쳐낸 것인지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한숨을 내쉰 강철은 다시 이야기했다.
“대충 이렇게 된 거다. 저번에 스킬 가르쳐준다는 약속 지키려고 왔다는데…… 검은 황소에 부길드장이 조금 불안했는지 나한테 양해를 구하고 보내더군.”
싸웠던 순간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그 뒤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관계다.
아마 강철의 중재하라면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보낸 모양이었다.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던가.
“그렇게 급한 일만 아니면 좀 와라. 나도 마침 가르쳐줄 것도 생겼고.”
“음…… 알겠습니다.”
어차피 망자의 원석을 활성화시키는 일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다.
거기다 S급 토벌자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상당한 이득이었기에 하현은 던전행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와라. 시끄러워 죽겠으니.”
전화를 끊은 하현은 강철의 집을 향해 택시를 타고 곧장 갔다.
주택 가까이 다 와가자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냐! 다 늙은 노인네 혹사시키지 말고 나중에 젊은 놈 오면 걔 데리고 놀아!”
상당히 귀찮아하는 강철의 목소리에 하현은 재빨리 주택 앞까지 향했다.
마당에는 강철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지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반면 지현은 활발한 표정으로 강철을 보고 있었다.
“저기 왔네. 얼른 와서 이 녀석 좀 어떻게 해봐라!”
“오, 왔네!”
질렸다는 표정의 강철과 반가운 표정의 지현. 그 오묘한 모습에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 일주일 만이네. 잘 지냈어?”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거침없이 다가오는 지현은 여자보다는 친근한 동네 형 같은 느낌이었다.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어색한 표정을 지우고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저야 뭐 문제없이 잘 지냈습니다.”
“사실 좀 일찍 오려고 했었는데 요즘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사냥에 집중하다 보니 좀 늦었네.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어.”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는 지현의 모습에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배우는 입장인데 뭐 아무래도 좋죠.”
“그래? 그럼 다행이네!”
하현의 대답에 지현은 씩 웃었다. 두 사람이 한창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철이 얼굴을 찌푸렸다.
“얼른 스킬이나 가르쳐주고 가라. 귀찮은 녀석 같으니…….”
“아, 정말 쩨쩨하게 구네. 가진 게 있으면 나누고 그래야지.”
“……두 분, 근데 왜 다투고 있었습니까?”
툴툴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강철은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녀석이 아까부터 대련 한 번만 해보자고 계속 보채고 있다. 살기고 투기고 마구 뿜어내는 녀석이 하자는 대련이 그냥 대련일 리가 있나…….”
“우리 정도 되면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할 수 있잖아. 잘 아는 사람이 자꾸 그래.”
강철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이야기하는 지현. 그 모습에 하현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진짜 싸움광인가보네…… 선생님이 조심하라고 했던 게 이런 귀찮은 일을 염두에 두신 건가.’
강철은 수련은 하지만 싸움은 즐겨하지 않는 쪽이었다.
지현과 딱 정반대의 성향이었으니 단 둘이 있었을 때 얼마나 티격태격했을지 눈에 훤했다.
“흠흠. 뭐 일단 이제 스킬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떤 스킬을 가르쳐주실지 너무 궁금해서요.”
조금 노골적이기는 했지만 하현은 지현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이야기했다. 그 말에 강철을 흘겨보던 지현이 고개를 돌렸다.
“음, 그렇지. 본래 온 목적은 그거였으니까. 대련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네.”
“으윽, 다 끝나면 불러라.”
지현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을 흘낏 보자 강철은 질린 표정을 하며 거실로 들어갔다. 단둘이 남자 하현과 지현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뭐 시작할까?”
“예, 시작하죠.”
“일단은…… 너 저 영감한테 좀 배우고 있는 거지?”
강철이 들어간 창문을 본 지현이 하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 그건 좀 아쉽네.”
하현의 대답에 지현은 입맛을 다셨다. 여태까지 전투를 보면서 하현이 마음에 쏙 들었기에 기회만 된다면 자신이 직접 가르쳐 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기본 매너는 있으니까 말이지. 일단 오늘 배워보고 좀 쓸 만하다 싶으면 저 영감 버리고 나한테 와. 알겠지?”
“다 들린다, 이 녀석아!”
집안에서 들려오는 강철의 호통에 지현은 씩 웃으며 하현을 바라봤다.
“가르쳐줄 스킬의 이름은 ‘혈화광권’. 내 전투 방법의 핵심이 되는 스킬이지.”
지현은 자신의 한 손을 들어 올려보였다. 생각보다 곱고 가느다란 손이었지만 곳곳에 있는 생채기가 그런 생각을 고치게끔 만들었다.
“잘 봐, 대충 이런 스킬이야.”
주먹이 움켜쥐어지자 이전과 같이 붉은색 기운이 지현의 주먹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소설 속에 나오는 무공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이런 스킬을 보통 기공이라고 불러. 육체를 극한까지 이끄는 저 영감과 다르게 마나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힘이지.”
근접형 토벌자들의 유형은 강철처럼 육체만을 단련하는 스타일, 마력에도 투자해 기공을 이용하는 스타일, 두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지현은 후자인 기공의 달인이었다.
“기공의 효능은 힘도 쌔지고, 몸도 빨라지고, 튼튼해지기까지 하니 거의 만능이라 해도 좋아. 대신 마나랑 체력,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아먹으니까 조심해야 해.”
육체를 단련한 토벌자보다 강한 힘을 내는 기공의 단점은 체력만 소모하는 그들과 달리 마나까지 소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공은 조금 까다로운 조정을 요구한다.
“보통 기공은 온오프 형식으로 오프일 때는 좀 위험천만한 건데…… 내가 개량한 혈화광권은 그 단점을 완전히 보완한 완전판이지!”
붉은색 기운을 크게 일렁거린 지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현의 표정에 흥미로움이 떠올랐다.
“어때, 흥미가 막 오냐?”
“네, 엄청 끌립니다.”
흥미로움으로 반짝거리는 눈과 솔직한 대답에 지현이 씩 웃었다.
“좋아, 그럼 한 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