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56화 (56/158)

# 56

시련을 본 하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자신만 이런 걸 받은 건가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모두 같은 걸 받은 모양이다.

“이건…… 뭐야?”

아리송한 시련의 내용에 지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이 어떤 방법인지 정도는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일단은……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정신적인 시험인가.”

민철의 말에 곰곰이 고민하고 있던 지호가 대답했다.

대게 난이도가 없는 시련의 경우 목숨의 위협을 가하는 일은 없다.

대신 정신적인 것과 관련되는 시련이 많은 것이다.

“……그런 건 싫은데.”

지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문을 바라봤다. 정신적으로 어떤 시험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종류는 대부분 내키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민철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괜찮겠나?”

“예,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강철의 물음에 민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시험의 조건은 문에 손을 대는 것. 민철은 천천히 손을 내뻗었다.

펑!

그 순간 작은 폭발이 손바닥에 일어나 민철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갑작스러운 일에 일행은 놀란 눈으로 엉덩방아를 찧은 민철을 바라봤다.

“허억…… 허억…….”

불과 1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민철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나?!”

강철의 물음에 민철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신호임을 알아차린 강철은 민철이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후우…… 후.”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민철이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방금 전에 비하면 나아진 편이었다.

“……자신을 진정으로 극복하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마주보게 하더군요.”

정신적인 상처를 자극해 극복하는 시험. 참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시험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일행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난이도가 SS가 될 수도 있겠군.”

강철의 중얼거림은 과장이 아니었다. 때로는 절대로 깰 수 없을 것 같은 물리적인 시련보다 이런 간단한 정신적 시련이 더 힘든 법이다.

민철의 말 이후로 일행들 사이에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섣불리 문에 손을 대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일단 한 번씩은 해봐야겠지.”

강철의 말에 일행들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한 명씩 해보자고. 보니까 정신적으로 몰리는 거 같은데 혹시 모를 전투는 유의해야지.”

지현의 말에 일행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민철 다음으로 앞으로 나선 지호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엉!!

“……젠장.”

하지만 그 결과는 민철과 다를 것 없었다. 왈칵 일그러진 얼굴로 식은땀을 훔쳐낸 지호는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그다음 사람은 지현.

퍼엉!

“이런 씨…….”

콰앙!!

그녀의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기억이라도 떠올렸는지 지현은 곧장 옆의 장식물을 발로 걷어차며 화를 풀었다.

남은 사람은 강철과 흑월, 하현.

“……내가 먼저 하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흑월의 모습에 강철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문의 앞에서 빤히 바라보던 강철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내밀었다.

퍼엉!

여태까지와 같은 작은 폭발. 뒤로 휘청거린 강철은 다른 이들과 달리 넘어지지 않고 자세를 다잡았다.

천천히 숨을 몰아쉰 강철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

다른 이들에 비하면 식은땀도 없었고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철의 눈동자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나도 안 됐군.”

“……내가 가지.”

강철이 뒤로 물러서자 바톤을 터치하듯이 흑월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아서 먼저 나서려고 했었던 하현은 억지로 걸어 나간 흑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뭔가 있는데.’

본래 흑월의 성격을 보면 분명 맨 먼저 나가고도 남았다. 그런데 여태까지 기다렸다는, 아니, 망설였다는 것은 무언가 거슬리는 게 있다는 뜻이리라.

“…….”

문의 앞에선 흑월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손은 여태까지 그녀가 보인 모습 중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퍼엉!!

문에 닿은 흑월의 손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폭발을 일으켰고, 흑월은 여태까지 나온 이들보다 더 크게 뒤로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

흑월의 손은 이전보다 더욱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지만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흑월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돌린 흑월의 얼굴은 가려진 두건 탓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손 잡아드릴게요.”

하현이 내민 손에 흑월은 고개를 끄덕이고 맞잡았다. 떨리는 손을 지탱하며 흑월을 일으킨 하현은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저만 남았죠?”

“그렇게…… 됐군.”

“흠, 이제 혼자서 서실 수 있죠?”

“그래…….”

흑월의 손을 놓아준 하현은 문의 앞으로 다가갔다.

‘흠…… 대충 예상은 가는데.’

일단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현은 조심스레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직!

-상태이상 ‘3관문의 시련’을 저항하셨습니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쿠구구궁.

알림음과 함께 열리는 거대한 문. 그 모습에 일행들의 눈이 커졌다.

‘……역시.’

여태까지 정신적 혼란을 모조리 저항해서 이런 결과는 예상했었다. 하현은 열린 문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돌아봤다.

“열렸네요.”

“…….”

일행들은 복잡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녀석이면 자신들이 엄두도 못낸 시련을 단번에 깼는지, 그걸 하고나서도 저렇게 태연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과정을 모조리 저항했다는 것은 아마 하현이 말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음, 일단 들어가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일행들의 눈을 무시하고 하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문안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말에 일행들은 하현의 뒤를 따라 문을 향해 다가갔다.

텅!

“어?”

앞서 걸음을 옮기던 지현은 발에 닿은 투명한 벽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문은 열렸지만 문지방의 위로 지나갈 수가 없다. 마치 그곳에 보이지 않는 문이 있는 것처럼.

“……설마 시련을 통과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손을 뻗어 투명한 벽을 만져본 지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의 마법으로도 분석이 안 되는 것이라면 시련의 힘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현 씨 혼자만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민철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문지방 위에 선 하현을 바라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음…… 그래도 혼자 보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개죽음일 가능성이 크지.”

지현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하현이 지속력이 뛰어난 피해면역 스킬과 레벨에 맞지 않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것뿐.

극단적으로 분포된 특성 때문에 S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금 미묘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하현만 통과 가능하다고 해서 하현만 보내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던전의 정보는 어느 정도 모았으니.”

“저도 하현 씨 혼자서 가는 것보다는 그 방법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현, 지호, 민철이 하현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탐색도 살아 돌아와야 탐색이지 가서 보고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 명을 바라본 강철이 하현을 바라봤다.

“어쩔래?”

“갈래요.”

망설임 없는 즉답. 그 말에 앞서 반대했던 세 명이 놀란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뭐?!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

“으음.”

당황하며 이야기하는 지현과 다르게 지호와 민철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할 수 있겠냐?”

세 명과 다르게 크게 당황하지 않은 강철이 하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놀라서 말릴 거면 캘시퍼 때도 말렸을 것이다. 하현은 자신감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죽지는 않습니다.”

죽으려 해도 죽을 수가 없다. 하현의 말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겠지. 원대로 해라.”

“자, 잠깐.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강철의 시원시원한 수락에 오히려 지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평소 싸울 때는 시원시원하던 사람이 오히려 당황하니 하현은 신기한 기분이었다.

“본인이 그렇다니 문제는 없겠지. 자살하려고 갈 녀석도 아니고 캘시퍼 때도 그렇지 않았나.”

“그런…… 가.”

강철의 말에 지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현을 바라봤다.

“허세 아니지?”

“물론이죠.”

“……그럼 됐어.”

더 이상 말릴 의사가 없는 듯 지현은 뒤로 물러섰다. 흥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붙잡고 막을 수는 없다.

앞서 반대했던 지호와 민철을 바라보자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저번과 같이 생각이 있겠지.”

“저도 믿습니다.”

“흠.”

마지막 한 사람인 흑월을 향해 바라보자 흑월은 가만히 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녀와라.”

그 말로 끝이었다. 어떻게 보면 흑월답다는 대답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바라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한 이틀 지나도 안 온다 싶으면 그냥 나가세요.”

하현은 문지방에 걸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열렸던 문이 천천히 닫히며 하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

“흐음.”

문의 안은 이전에 보였던 복도와 비슷한 수준의 화려한 복도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붉은색 카펫 위에서 걸음을 옮긴 하현은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더럽게 넓네.’

벌써 10분은 걸은 것 같은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현이 슬슬 지겨움을 느끼려고 할 때, 저 너머로 또 다른 거대한 문이 보였다.

‘저거 혹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전의 문보다는 작지만 훨씬 더 화려해 보이는 문. 그 옆으로는 문의 두 배쯤 돼 보이는 산양머리의 거대한 괴물이 서 있었다.

[왕의 문지기]

레벨 : 498

왕의 문을 지키는 마지막 문지기다. 수많은 악마와 왕의 마력을 통해 만들어진 문지기는 강력한 힘을 가졌으며 허락받지 않은 자에게만 무기를 휘두른다.

특징 : 신성력 약화. 전 능력치 최상. 모든 마법, 기술에 능통.

‘……흉악하구만.’

신성력 약화 말고는 모조리 잘하는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 수준인 문지기의 능력치. 하현은 혀를 내두르며 문지기를 향해 다가갔다.

쿠웅-

석상처럼 서 있던 문지기들은 다가온 하현을 보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창을 잡고 있던 양손 중 하나씩을 떼어 문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쿠구구궁.

들어가라는 듯 문을 열어준 문지기들은 그 이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현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성…… 인가.’

앞으로 펼쳐진 카펫의 끝에는 하현의 3분의 1만 한 3개의 거대한 계단이 놓여 있었다.

그 위를 향해 시선을 올린 하현은 옥좌에 앉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은 생명체라고 말하기에는 미묘했다. 검은색 연기가 사람의 모양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머리 쪽에 솟아오른 거대한 검은색 뿔은 형체를 갖추고 있었고 눈으로 보이는 붉은색의 빛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하계의 악마 게르바]

레벨 : 499

지하계를 지배하는 왕, 지하계를 이루는 근원과도 같은 존재다. 상대가 상상하고 있는 최악, 최강의 모습을 이루며 그에 따라 특성도 변한다.

특징 : 없음

‘……얘가 더 미쳤네.’

설명을 읽어본 하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되면 말이 레벨이 499지 사실상 레벨의 의미가 없어진다.

상대가 상상하는 최악, 최강이라는 건 얼마든지 강력해질 수 있는 무한대라는 뜻이니.

‘아니지, 나는 상대적으로 약하니깐 좀 덜 하려나……?’

어쩌면 도리어 쉽게 잡을 수 있다. 기대와도 같은 시선으로 하현이 바라보고 있을 때, 하현의 등장을 알아차린 게르바가 천천히 입으로 보이는 부분의 연기를 뻐끔거렸다.

“잘도 여기까ㅈ…….”

막 말을 하려던 게르바는 멈칫하더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어?”

“…….”

자신의 몸인데도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찬 목소리.

바싹 긴장하고 있었던 하현은 그 실없는 반응과 목소리에 맥이 탁 풀렸다.

‘뭐지.’

게르바는 이리저리 자신의 손을 움직여보거나 뿔을 매만졌다. 그 모습에 하현이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때, 대충 몸을 다 만져본 게르바가 다시 하현을 바라봤다.

“너, 대체 뭐냐?”

그리고 하현이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