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55화 (55/158)

# 55

“……6명 모두 들어갔나?”

“예, 방금 들어갔다고 합니다.”

부길드장 태호의 보고를 받은 강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이 짜둔 계획이 또 같은 사람에 의해 뭉개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협회도 드디어 미쳤군. 그런 녀석들에게 공략권을 주다니…….”

이를 갈며 이야기하는 강훈의 살벌한 모습에 태호는 조용히 그의 눈치를 봤다. 이때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아부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부를 실수하는 순간 달아나는 것이 자신의 목이었기에 태호는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았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게 이럴 때는 무섭군.’

쉽게 올라온 자리인 만큼 또 쉽게 내려갈 수 있다.

역대 부길드장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태호는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후…… 그래, 크게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그놈들이 던전을 깰 수 있을 리가 없으니.”

6명이 S급 던전을 깨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강훈은 숨을 고르며 화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있던 태호를 바라봤다.

“어차피 다음 차례는 우리다. 이번 기회에 다른 길드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확실히 짓밟을 필요성이 있어.”

“……특공대들을 준비시키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모두 준비시켜.”

태호의 말에 강훈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하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그 기고만장한 애송이 새끼 기를 확 죽여줘야지.”

***

다음 지역으로 넘어온 6명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전의 들끓는 용암 지대는 어디 가고 회색의 벽면으로 이뤄진 거대한 통로가 나타났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지하계 2관문]

2관문은 중간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든 영향력을 집결시켜 만들어낸 미로이다. 미로의 끝에 있는 3관문을 찾아라.

난이도 : S

보상 : 3관문으로의 진입.

‘이번 던전은 참 다양하네.’

웬 이상한 룰을 가진 관문이 나오나 싶더니 이번에는 미로다. 하현은 질린 표정으로 시련의 창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우리 법사님께서 활약을 해주셔야겠네~”

“……시끄럽다.”

능글맞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해오는 지현의 모습을 본 지호는 혀를 찼다.

이런 미궁은 확실히 마법사의 실력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된다.

시련을 수락하고 앞으로 걸어 나간 지호는 벽면에 손을 짚었다.

“탐색.”

후웅-

시동어와 동시에 지호의 손으로부터 푸른색의 선들이 순식간에 미로의 벽을 타고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손을 뗀 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거지 같은 장소가 걸려서는…….”

“왜? 왜? 뭐 문제 있어?”

지현의 시끄러운 물음에 눈살을 찌푸린 지호는 미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다. 그냥 막힌 길을 15번 정도 만나면 자동으로 문을 향해 이어지는군. 다만 문제는…… 막힌 길에서 특정 마법이 발동되는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마법인지 모르겠다. 어떤 것을 구현화하는 것 같은데…… 거지 같은 건 확실하다.”

지호의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도 조금 찌푸려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S급인 지호가 저렇게 단언하면서 거지 같다고 한다면 까다로운 것이 틀림없다.

“음, 뭐, 대비해야 하거나 그런 없죠?”

“……그런 건 없다. 어느 쪽으로 가던 막다른 길이 맞아주는 형식이니까. 미로는 거짓말이고 그냥 미로의 형태를 한 시험장이 맞다.”

“음음, 그럼 일단 이동하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현의 제안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거지 같다고 툴툴거리고 있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후~ 성격도 화끈하고. 아주 좋아.”

“하하.”

어깨동무를 해오는 지현의 모습에 하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래저래 마구 닿는 몸들이 참 무안하게 만드는데 당사자인 지현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얼른 가지.”

“아, 예.”

하현을 바라보던 흑월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조금 미묘하게 느껴진 흑월의 모습에 하현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을 선두로 걸음을 옮긴 일행은 미로의 안으로 들어섰다.

미로는 기본적으로 회색 벽으로 이뤄진 복도였지만 벽들에 수많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벽화…… 인가?’

그림들은 무척이나 다양한 내용을 품고 있었다. 농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괴물들의 목을 쳐내는 기사, 인간의 사지를 찢는 괴물, 사랑을 나누는 연인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까 시련에 중간계에서 오는 영향력이라고 적혀 있었던 거 같은데…… 그쪽의 역사 같은 건가?’

역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묘한 것들도 많았지만 하나로 묶으면 그렇게 말해도 충분해 보였다.

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벽에 새겨진 벽화들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괴물들은 안 나오네.”

그림만 잔뜩 새겨진 미로의 풍경을 바라본 지현이 심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흘끔 바라본 지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미로의 구조상 막다른 길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싸울 생각이라면 접고 있어라.”

“쳇. 시시하네.”

투덜거린 지현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로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벽화를 유심히 바라보던 민철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저 괴물 어디서 본 적이 있군요.”

“예?”

민철의 말에 하현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그 시선을 따라가 봤다.

천장의 한구석에 그려진 벽화에는 사막의 모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거대한 석상이 그려져 있었다.

“분명 기억대로라면…… B급 던전인 ‘사막의 영광’의 보스인 사막 관리자입니다.”

“진짜요?”

“예, 저 보스가 주는 아이템이 필요해서 수백 번이고 잡아서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민철의 말에 관심이 생겼는지 다른 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다가왔다.

“오, 정말이네. 나도 저 녀석 한 번 잡아본 적 있었지. 한 방에 머리가 안 부서져서 좀 독특한 녀석이었어.”

“흐음, 저기는 C급 던전의 보스가 있군.”

“저기는…… 던전에 나오던 마탑인데.”

강철과 하현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벽화에서 전에 본 적 있는 괴물들이나 배경을 찾아냈다.

‘음…… 중간계라는 게 혹시 페젤론인가?’

던전을 깨고 그 배경에 대한 설명에는 무조건 페젤론 대륙이라는 설명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던전에서 본 것들이 중간계에서 온 것이라면 그 중간계는 페젤론이라는 것이다.

‘……뭐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네.’

중간계가 페젤론이고 지하계가 그쪽과 연관이 있는 장소라는 건 알았지만 그것뿐이다. 딱히 큰 발견은 아니었기에 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거는 C급일 때 찢어버렸던…….”

“자자, 이제 다시 가요.”

어느새 과거 추억으로 아련한 눈빛이 되려는 일행들을 다시 재촉한 하현은 미로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러 갈림길을 지나친 뒤, 일행들의 앞으로 첫 번째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후우우웅-

일행을 맞이한 벽은 갑작스럽게 미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퍼져 있던 벽화들이 아무것도 없는 벽을 향해 빨려들었다.

한데 모여서 헝클어진 벽화들은 이제 그림이 아니라 소용돌이치고 있는 먹물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하현은 마치 괴물들이 나타나는 포탈 같다고 생각했다.

“……포탈?”

생각이 미친 순간, 먹물 속에서 말을 몰고 있는 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나타난 기사들은 어느새 200에 가까워졌고 무장한 그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벽화 ‘루아르 정복전쟁 선봉군단’이 재현되었습니다. 평균 레벨 : 380.

“……이런 게 15번이나 있단 거군.”

기사들의 모습을 본 지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싸우겠다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주변의 마나들이 거칠게 요동치며 지호의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버텨라.”

“같이 휩쓸리지나 말라고!”

지호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지현이었다. 붉은색 섬광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재빠르게 튀어나간 지현은 막 달리려고 했던 기사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하하핫!”

비틀거리는 기사의 몸통을 발로 걷어차 터뜨린 지현은 말의 안장을 걷어차 다른 기사들의 멱을 따러 달려들었다.

광전사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 하현은 눈을 반짝였지만 강철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전투광…… 피곤한 녀석이군. 가까이하지 마라.”

“왜요? 저는 마음에 드는데.”

“……지금이야 눈에 안 들었으니 그렇겠지. 나중에 강해지면 아마 전투광이 왜 귀찮은지 너도 알게 될 거다.”

딱히 설명할 생각이 없는 강철은 지호를 노리고 오는 기사를 향해 달려가 주먹을 날렸다.

권풍이 휘몰아치면서 말과 기사의 몸이 터졌다.

“저희도 가죠.”

“예.”

마법사인 지호를 보호하는 식으로 전투가 진행되었고 그 수가 4분의 1정도가 남았을 때.

“간다.”

지호의 덤덤한 음성과 함께 등 뒤로 거대한 마법진 하나가 생겨났다.

일행은 순식간에 기사들로부터 거리를 벌렸고, 그 뒤를 이어 지호의 강력한 마법이 기사들을 향해 퍼부어졌다.

콰아아앙!!!

피할 장소를 주지 않겠다는 듯 통로 전체를 메운 강력한 에너지는 기사들을 모조리 휩쓸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기사들이 모두 사라지자 앞을 가로막았던 벽은 일렁거리면서 사라졌고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흠, 고작 이 정도 마법 쓴다고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야?”

차지한 시간에 비하면 조금 낮은 위력에 지현은 지호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그 모습을 본 지호는 피식 웃었다.

“마법 14개를 준비하는 시간치고는 좀 느렸나보군.”

“……뭐?”

“앞으로 남은 14개의 던전을 빠르게 돌기 위해서 준비했지. 설마 매번 캐스팅해서 마법을 준비하리란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라고 묻는 것 같은 지호의 태도에 미소를 짓고 있는 지현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순식간에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지…….’

어차피 저렇게 으르렁거려도 매번 신경만 긁는 선에서 끝난다.

두 사람을 이끌고 다시 안으로 걸음을 옮긴 일행들은 빠르게 미궁을 돌파했다.

[바바리노 약탈부대]

[벨린 공성부대]

[가른 마법군단]

매번 막다른 길에 도달할 때마다 나오는 괴물들은 대부분 전쟁사와 관련된 벽화들이 나왔다.

머릿수는 많았지만 전체적인 질은 낮았기에 지호의 마법들을 활용해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흐음. 그렇게 주먹으로 때려잡아 봐야 얼마나 잡는다고. 혈기 넘치게 나서는 것치고 딱히 도움도 안 되는군그래.”

“하하하…….”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는 지호의 말에 지현의 목에 핏대가 섰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끼어들어 거리를 벌린 일행은 마지막 막다른 길을 마주했다.

후우웅

이전과 같이 주변의 벽화를 빨아들인 벽에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여태까지 포탈을 통해 나타난 것은 적어도 50명 이상의 군대였다.

철커덕.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는 데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기묘한 갑옷을 입은 사내.

-벽화 ‘절망한 영웅’이 재현되었습니다. 레벨 : 485.

‘뭐지……?’

여태까지 나온 벽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괴물. 그 모습에 일행들이 모두 긴장하고 있을 때.

빠드득.

어디선가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튀어나간 흑월의 검이 영웅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기운이 빠져 있는 것 같았던 영웅은 반 토막 난 검으로 흑월의 검을 막았다.

콰아아앙!!

맞부딪친 검에서 막대한 파동이 터져 나왔고 당사자인 두 사람의 신형이 뒤흔들렸다.

둘의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의 벽면에 짐승의 발톱 자국 같은 것이 깊이 새겨졌다.

평소에 침착했던 흑월의 모습과 다르게 살기를 풍기며 거칠게 공방을 주고받는 그 모습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걱!

20초도 채 되지 않는 검격의 끝에 영웅의 오른팔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연이어 휘둘러진 검이 왼 손목을 썰고, 목을 쳐냈다.

그 이후로도 쏟아진 무수한 참격이 영웅의 몸을 난자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벽화 ‘절망한 영웅’이 사라졌습니다.

“가봐라.”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철이 하현에게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하현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흑월을 향해 다가갔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몰아쉬는 흑월은 여전히 검을 움켜쥔 채 난자된 영웅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 모습은 여태껏 감정이라고 보이지 않았던 흑월에게서 광기와 분노 두 가지를 느끼게 하였다.

“괜찮으세요?”

“…….”

거친 숨을 몰아내신 흑월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레벨 485라면 분명히 가볍게 볼 레벨이 아니다.

그런데도 흑월이 그것을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무리했다는 뜻이다.

“……너무 흥분했다. 미안하군.”

숨을 고른 흑월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잘 해결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흑월이 다치거나 죽었더라면 큰 차질이 생겼으리라.

“저 말고 저 다른 분들한테도 가서 말씀해 주세요.”

“……그래.”

하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흑월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하현의 눈앞으로 수십 개의 공격 경로가 나타났다.

“……!”

이미 본 순간,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건틀렛으로 움켜쥔 하현은 조각난 채로 일어난 영웅을 바라봤다.

갑옷의 안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기운은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전신을 난자하겠다는 듯 나타나는 공격 경로.

“대력타!”

하현은 그 경로들을 무시한 채 주먹을 기운의 중심부를 향해 후려쳤다.

카카카캉!!

전신에 부딪히는 칼날들을 허무하게 몸을 두들겼고, 하현의 주먹은 기운의 중심부를 완전히 꿰뚫었다.

천천히 녹아내리듯이 무너진 기운은 이번에야말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벽화 ‘절망한 영웅’이 사라졌습니다. 미로의 길이 열립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거의 오르기 직전이었던 레벨이 영웅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올랐다.

먼지가 모두 사라지고 막혔던 벽이 사라지자 하현은 뒤를 돌아 영웅에게 노려졌던 흑월을 바라봤다.

“……미안하다.”

이전보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와 침울해 보이는 분위기.

‘뭔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건 확실하네.’

방금 나타난 영웅이 흑월과 뭔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뭐라고 물어보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그렇게 깊은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일단 가죠.”

하현은 흑월을 데리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흑월은 일행들 한 명 한 명에게 돌발 행동에 대해 사과했고 모두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은 그 누구라도 허점을 찔릴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토벌자들에게 있어 알림음은 의심할 이유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라졌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던 절망한 영웅은 한 번 더 움직였다.

그건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가 조금 이상한 거나…… 아니면 무언가 변화가 생겼거나.’

하현은 기묘한 던전의 풍경을 보니 왠지 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른 일행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솔직히 말하면……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고개 숙인 사과를 받은 강철이 흑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마주하겠다고 생각했으면 빠르게 떨쳐내라.”

“…….”

아리송한 강철의 말에 흑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서로간의 동질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강 사태가 정리된 것을 본 하현은 열린 길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가죠.”

걸음을 옮긴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점점 미로가 끝이 나는지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회색의 벽면에서 거대한 왕성의 복도 같은 화려한 장소로 변하는 것이다.

‘보스 나올 때라도 됐나?’

이 정도 거창함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보스를 경계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일행의 앞으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어지간한 2층 건물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흑색 문에는 기묘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문 가운데에 있는 보석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악취미네.’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문의 모습. 이다음에 보스가 있다고 광고를 하는 것 같은 문에 일행이 다가간 순간.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지하계 3관문]

자신을 진정으로 극복한 자만이 왕을 알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을 잡아 그 자격을 증명해 보여라.

난이도 : 없음

보상 : 왕의 알현.

‘난이도가…… 없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