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52화 (52/158)

# 52

13. 지하계의 악마, 게르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요.”

보고서를 가져온 진한이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협회에서 일했지만 이런 현상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차원의 기둥을 잡은 것이 처음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진한의 말에 회장은 조금 자조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협회가 창립된 지 몇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차원의 기둥을 한 번밖에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웃긴 이야기다.

자신들이 설립된 목적이 차원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인데 여태껏 그것을 단 한 번도 이룬 적이 없게 되는 것이니.

‘그마저도 최하현…… 그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이번 토벌도 하현이 없었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회장은 하현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접촉해 볼 필요가 있겠어.’

여태까지는 조금 지켜보자고 생각했지만 회장은 이번 일로 깨달았다.

하현이야말로 지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열쇠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 이번 일은 어떻게 할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회장을 깨우듯이 진한이 조심스레 물었다.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회장은 하현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

“이미 10대 길드 쪽에서는 다 알아차렸습니까?”

“예, 나타난 장소도 장소고 방송에 잠시 나왔다고 합니다. 숨기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차원의 균열 쪽은 어떻습니까?”

“일을 만들긴 했지만 회복은 됐습니다.”

진한의 말에 회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던전은 숨겨야 할 종류였다.

하지만 이렇게 다 알려진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취한다면 역효과가 날 것이다.

“10대 길드에게 공략권에 대한 소식을 보내세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죠.”

“예, 그럼.”

고개를 숙인 진한은 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보고서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 회장은 의자에 기대었다.

‘검은 황소가 공략권을 따낸다면…… 최하현이 던전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군. 만약 그렇게 되면…….’

회장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

“흐음, 이건…… 당장 알아보긴 힘들겠네.”

한참이나 동력원의 정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하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은 동력원, 하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기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캘시퍼를 만들어낸 장인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던 모든 기술이 이 안에 들어가 있다.

그걸 아이템을 먹여서 경험치를 축적시키다 보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한없이 사기적인 물건이었지만 딱 한 가지. 명확한 단점이 있었다.

‘얼마나 먹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겠지.’

필요한 아이템의 양에 대해서는 정확한 표기가 없었다. 이전에 캘시퍼가 보여준 거체라던가 설명을 보면 아무리 아이템으로 간소화 되었다 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돈 먹는 기계. 그게 동력원의 정체였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는 있단 말이야.’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 중에 쓸 만한 것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서 하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바로 기록 추론기였다.

기록 추론기 : 저장된 정보들을 분석, 조합하여 알려지지 않은 정보에 대한 추측을 만들어냅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하현이 보기에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기술 중 하나였다.

잘만 이용하면 던전의 완수 조건 같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어차피 돈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사서 한 번 넣어봐야겠다.’

동력원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하현은 다시 손에 올려져 있는 건틀렛을 향했다.

나가는 김에 아이템을 사러 협회에는 가겠지만 우선은 이거다.

‘이것부터 써야지.’

하현은 새로 얻은 무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숨을 고른 하현은 흥분으로 가득한 콧김을 내뿜으며 집 밖으로 나와 던전으로 향했다.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던 하현은 이내 강철과 수련했던 기사의 무덤을 향해 가기로 결정했다.

망자의 원석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었고 난이도나 거리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 A급이었기에 하현은 자격증을 보여주고 막힘없이 던전으로 들어갔다.

비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던전을 바라본 하현이 건틀렛을 착용했다.

‘간다!’

눈을 번뜩인 하현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가 눈앞에 있는 비석들을 모조리 발로 걷어찼다.

쿠구구궁!!!

수십 개의 묘비가 뒤흔들렸고 지면에서 데스 나이트들이 튀어나왔다.

데스 나이트가 수십 마리나 나타나 있는 광경은 무서울 법도 했지만 하현은 오히려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단 한 방 데미지부터!’

데스 나이트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간 하현은 4번 기술인 피스톤을 기동시켰다.

끼끼끽-

피스톤이 뒤로 당겨지면서 건틀렛이 비명을 내질렀다. 느낌만으로도 묵직한 한 방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에 하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빠악! 퍽!

충전을 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싼 데스 나이트들은 하현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마구 맞아주던 하현은 공격 대상으로 정한 눈앞의 데스 나이트를 노려봤다.

“괴력. 대력타!”

빈틈을 노려 정확하게 내질러진 주먹.

건틀렛과 데스 나이트의 몸이 맞닿은 순간 한계까지 끌어당겨졌던 피스톤이 앞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며 하현의 몸이 반동으로 뒤로 밀려났다.

5배나 뻥튀기 된 공격을 맞은 데스 나이트는 상체가 완전히 날아가 그대로 죽어버렸다.

“…….”

그 광경을 본 데스 나이트들의 눈에는 당혹감이, 하현의 얼굴에는 환희가 서렸다.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일반 데스 나이트들이었지만 한 방에 죽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눈을 반짝거리며 빛낸 하현은 아직 남아 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몇 대만 더 때려보자!!”

그 뒤로 펼쳐진 광경은 거의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강철과의 훈련에서 익힌 패턴들을 기억하며 예지를 사용한 하현은 완벽하게 데스 나이트들을 압도했고, 피스톤을 이용한 공격으로 모두 일격에 죽여 버렸다.

“허억…… 허억…….”

잔뜩 흥분한 채 날뛰다 보니 어느새 하현의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하지만 하현의 모습은 지쳐 보이기보다는 기뻐서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저 녀석도 한 번 해볼 만한데.’

하현의 눈이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향했다. 강철이 굳이 시키지 않았기에 여태까지 잡아본 적 없었지만 데스 나이트들이 쉽게 죽는 걸 보면 가능할 것 같았다.

‘해볼까.’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잡아볼 생각이었다. 결정을 내린 하현이 고목을 향해 다가가려하던 그때.

“하현 씨!”

뒤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하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아민을 바라봤다.

못 만날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만날 일이 없었기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민 씨?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게 조금 급하게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잠시 밖에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 까요?”

하현을 향해 다가온 아민은 가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태까지 일을 보면 이런 경우 대부분 일은 두 가지였다.

‘대박 건수가 잡혔거나 아니면 위험한 일이 터졌거나.’

대개 위험한 일도 하현에게는 그저 대박 건수에 지나지 않았으니 뭐든지 좋은 일이다.

하현은 아민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던전에서 나가야 하는데…… 방금 들어오셨으니 못 나가겠네요.”

“여기 보스는 잡은 적 있으니까 바로 잡고 나가죠. 조금만 도와주시겠어요?”

“예, 그러면 마법 센 걸로 한 방 날려주세요. 징벌로 바로 때릴게요.”

“네.”

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잡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하현은 건틀렛의 피스톤을 충전하면서 나무의 아래로 향했다.

“준비 다 됐어요?”

“조금만 더요!”

힐끔 뒤를 바라보자 서른 개가 넘는 마법진이 사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한 방에 끝내고 바로 밖으로 나갈 생각인 듯했다.

“됐어요!”

아민의 신호와 동시에 하현은 바닥의 흙덩어리를 걷어찼다.

이전과 같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부터 기사의 무덤 보스인 알레이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괴력!”

알레이온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면서 하현은 혹시 모를 쳐내기에 대비하며 예지를 사용했다.

‘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알레이온으로부터 공격 경로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발사!”

콰아아아앙!!!

뒤로부터 아민의 마법이 쏟아지자 하현은 의문을 떨쳐 내고 주먹을 마저 휘둘렀다.

온 힘을 다해 휘둘러진 하현의 주먹과 아민의 마법, 거기에 징벌까지 합쳐지자 알레이온은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자, 나가죠.”

“……네.”

아민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지 곧장 옆에 생겨난 포탈로 걸어갔다.

하현은 이제 먼지로 변해 사라진 알레이온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대처가 느렸다…… 라고 하기에는 좀 미묘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알레이온의 모습에 하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민과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왔다.

“가는 길에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편한 대로 하세요.”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아민이 앞장서서 가면 뒤를 따르기 위해 걸음을 옮길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아민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 가세요?”

“네? 아. 앞장서서 가시면 뒤따라서 걸으려고요.”

“…….”

하현의 말에 아민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니까요. 나란히 걸어가죠.”

“음, 그래요?”

“그, 그렇죠.”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아민의 태도에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무안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태도를 보아하니 그렇게 느낀 듯했다.

“그럼 가죠.”

“네.”

하현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아민도 그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잠시 하현의 눈치를 흘끔흘끔 바라보던 아민은 다시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캘시퍼가 터졌던 자리 기억하시죠?”

“예? 뭐, 물론 기억하죠.”

만들어지는 광경을 즉석에서 보기도 했고 방금 전에 뉴스를 통해 보기도 했다.

아민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방금 전에 그곳에 던전이 하나 생겼어요. 그것도 S급 던전으로요.”

“……진짜요?”

엎친 데 덮쳤다는 말이 딱 좋은 상황. 믿기지 않는다는 하현의 표정에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연…… 이지는 않겠죠. 아마 캘시퍼의 죽음과 관련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그 던전에 대한 공략권이 문제죠.”

“공략권…….”

새로운 던전이 나타나면 협회는 실력 있는 토벌자들에게 그 공략을 공략할 수 있는 공략권을 준다.

하지만 그 과정이 보통 그렇게 쉽지는 않다.

미공략 던전의 위험도는 보통 한 단계 높은 등급으로 잡는다.

그 말은 즉 이번에 생겨난 던전은 SS급에 준하는 위험도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그 공략권을 10대 길드를 모아 회의를 거친 뒤 부여하겠다고 협회가 말했어요. 조금 있으며 그에 대한 회의가 시작될 거예요.”

“아.”

하현은 아민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것을 대강 알아챈 아민도 이야기를 곧장 이어나갔다.

“하현 씨가 같이 참가해 주시면 저희가 공략권을 따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져요. 이번 공략에서 하현 씨의 활약이 대단했으니까요.”

이번 공략으로 인해 하현의 입지는 사실상 S급 수준으로 상승했다.

하현이 검은 황소 쪽에 가담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S급 토벌자가 두 명이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흐음…….”

아민의 말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당장 급한 일들은 없다.

거기다 10대 길드라고 하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린 스콜피온도 참가하죠?”

“네.”

아민의 대답에 하현은 씩 웃었다.

“그럼 바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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