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캘시퍼의 사태가 마무리되고 이틀이 지났다. 몇 개의 도시가 초토화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인명 피해는 전무했다.
그 기적과도 같은 결과에 언론은 협회에 대한 극찬으로 떠들썩했고, 토벌에 참가했던 토벌자들의 인지도 또한 급상승했다.
그중에서 단신으로 캘시퍼를 넘어뜨리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했다는 하현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이젠 폭발할 수준이었다.
“으아아…….”
현관에 운동화를 가져다 놓은 하현은 시체처럼 소파에 드러누웠다.
본래라면 자신의 집이니 거리낌 없이 현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와야만 했다.
‘그걸 보고 그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만…….’
하지만 입구 앞에 대기하고 있는 기자 무리를 보면 그럴 생각도 싹 달아났었다.
요 이틀간 또 기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였던 순간들을 생각하니 하현은 절로 피로해졌다.
‘이거…… 생각만큼 좋지도 않구나.’
대중들에게 호의에 찬 관심을 받는 게 좋기야 하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피로함이 더 크다.
과거 스타들을 부러워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은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젠 다 처리했으니…… 좀 쉬자.’
꼭 필요한 인터뷰나 그런 건 다 했으니 이젠 휴식을 좀 취할 때다. 리모콘을 움켜쥔 하현은 TV의 전원을 켰다.
‘저기는 벌써 저만큼 복구가 됐네.’
캘시퍼가 만들어낸 거대한 크레이터는 이틀 만에 깔끔하게 매워져 있었다.
물론 그 크기가 크기인지라 도시까지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지나가면서 초토화시켰던 도시들은 대부분 복원이 마친 상태니 이제 저곳만 다 고치면 이제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빠른 복원 속도에 하현은 혀를 내둘렀다.
‘하긴 이렇게라도 안 되면 이 난리가 나는 세상이 잘 돌아갈 수가 없지.’
크레이터가 있었던 장소를 바라본 하현은 TV 전원을 끄려 했다.
아주 잠깐 화면 속에 장소가 뒤흔들린 것 같았지만 TV에 관심이 사라졌던 하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후. 그럼 이제 슬슬 정산이나 할까.’
TV 전원을 끈 하현은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상태창을 켰다.
[하현]
레벨 : 338 칭호 : 위대한 영웅
생명력 : 3,480/3,480
마나 : 3,470/3,470
힘 : 2,038 민첩 : 349
체력 : 348 지력 : 347
공격력 : 407 방어력 : ???
추가 스탯 : 0
캘시퍼를 쓰러뜨린 것으로 하현의 레벨은 20이 넘게 올랐다.
SS급이라는 등급을 생각해 보면 조금 미묘한 수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서 한 것도 아니고 이게 300대라는 거겠지.’
캘시퍼를 잡을 때 큰 활약은 했다지만 다른 토벌자들의 도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거기다 필요한 경험치가 확 늘어나는 게 300대니 이만큼 오른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다른 건 칭호인데…… 요즘 영웅이라는 칭호 많이 받네.’
조금 낯간지러운 기분을 느끼며 하현은 이번에 얻은 칭호의 정보를 확인했다.
[위대한 영웅]
인류의 존속을 위협한 차원의 기둥을 물리치는 데 큰 공헌을 한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모든 스탯 10% 증가.
-차원의 기둥 상대 시 모든 스탯 20% 증가.
“차원의 기둥?”
조금 낯선 단어에 하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잡은 것은 분명히 캘시퍼다.
그렇다면 차원의 기둥이란 캘시퍼를 지칭하는 단어가 틀림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현은 인터넷에 차원의 기둥을 검색해 봤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SS급 괴물과 엮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차원의 기둥을 시발점으로 하현은 상념에 빠졌다.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나오는 차원에 관한 알림음도 그중 하나였다.
‘일반적인 토벌자들은 모르는 숨겨진 뭔가가 있어.’
뭔지 알고 싶지만 공개된 정보가 없는 이상 당장 알 수는 없다. 검은 황소에게 물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칭호의 조건을 보니 이번에 이걸 얻은 건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원의 기둥에 대한 정보는 자신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떤 정보일지 모르는 이상 미리 발설할 이유는 없지.’
일단은 머릿속에 저장해 두자고 생각한 하현은 관심사를 돌려 인벤토리를 켰다. 그 안에는 캘시퍼에게서 얻은 두 가지의 아이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톱니바퀴들이 얽혀 있는 기계 상자와 캘시퍼의 동력원을 한 손 크기로 줄인 동력원. 이 두 가지가 이번에 얻은 아이템이었다.
움직이는 요새 캘시퍼의 상자(레전드)
움직이는 요새 캘시퍼를 처지한 자에게 지급되는 보상 상자이다. 원하는 부위나 성능을 지정하여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성능의 지정이 자세할수록 아이템의 전체적인 등급이 낮아집니다. 반대로 부위만 선택하고 랜덤으로 진행할 시 아이템의 등급이 높게 나옵니다.
“……으으윽!”
상자의 정보창을 살펴보던 하현은 몸을 마구 비틀었다. 아주 잠깐 잊고 있었던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 것이다.
‘진짜 스위칭만 떠올리고 있었으면……!’
홀로 남아 동력원을 부수던 그때, 하현은 장비들을 인벤토리에 넣는 것을 깜빡했었다.
덕분에 폭발에 휩쓸렸던 아이템들은 슈트를 제외하고 모조리 내구도가 닳아 공중분해 됐다.
여태까지 잘 써왔던 에리슨의 펜던트와 진노의 건틀렛, 얼마 쓰지도 못한 침묵의 신발까지 싹 날아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냐만.’
이번 일로 협회에게 업적 포인트와 따로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은 상태니 사실 장비를 다시 맞추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팔았으면 막대한 돈이 되었을 아이템들을 놓쳤다고 생각하니 하현은 입맛이 텁텁했다.
‘에휴…… 언제까지 이럴 순 없고. 앞으로 주의해야겠지.’
이틀이나 지난 일로 계속 끙끙 거릴 수는 없다. 박스로 아이템을 얻으면서 깔끔하게 털어내자고 생각한 하현은 박스를 바라봤다.
‘어떤 게 좋을까.’
울티노 때보다 한 단계 높은 괴물을 쓰러뜨리고 받은 거니 성능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 이번에 슈트를 제외하고 장비가 싹 날아갔으니 어느 부위든 상관없다.
어떤 것을 만들어볼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하현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역시 무기가 우선이겠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하현은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기로 결정했다.
슈트처럼 부서지지 않으며 강력하기까지 한 그런 최종 무기를 이번에 얻는 것이다.
‘좋았어. 일단 설정할 건 건틀렛에 내구도 무한…….’
설정을 하던 하현의 손이 돌연 멈췄다.
‘……내구도 무한이 좋나?’
내구도 무한이 정말 매력적인 옵션이긴 했다. 무기 상태도 신경 쓰지 않고 사냥할 수 있고 수리를 위해 쉴 필요도 없으니.
하지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슈트도 사실 내가 써서 좋아 보이지 다른 사람이 꼈으면 리스크가 컸을 거야.’
경험치 배율과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효과들은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방어구로 쓰기에는 방어력이 너무 낮았고 성장의 조건도 하현이 아니면 이루기 힘들 만큼 까다로웠다.
즉 이 슈트는 하현이었기에 활용할 수 있었던 방어구였던 것이다.
‘게다가 무기는 안 부서지는 것보다는 공격력이 좋아야 하니까. 거기다 등급도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내구도도 높아지니 어쩌면 필요 없는 능력치일지도 모르겠는데…….’
몇 번이고 신중하게 고민하던 하현은 그냥 설정에 건틀렛만 지정했다.
괜히 몇 가지 골라서 등급을 떨어뜨리느니 최대한 좋은 아이템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레전드 등급이야. 아무리 구려도 진노의 건틀렛보다는 훨씬 좋겠지.’
결정한 순간 망설여봐야 손해다.
하현이 곧장 생성 버튼을 누르자 톱니바퀴들이 움직이면서 천천히 상자가 열렸다.
푸쉬이익-
연기를 내뿜으며 열렸던 상자가 사라졌고, 그곳에는 묵직한 느낌의 건틀렛이 생겨났다.
가장자리에 피스톤 같은 것이 장착되어 있고 곳곳에 묵직하고 두꺼운 강철들이 덧대어져 있었다.
건틀렛보다는 기계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외형은 두들겨 맞으면 뼈가 아작 날 수준인데…… 과연 효과는 어떨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현은 건틀렛의 정보창을 펼쳤다.
기동요새 압축 피스톤 건틀렛(레전드)
내구도 350/350 방어력 180
캘시퍼의 몸에 담긴 기술의 정수가 압축되어 만들어진 건틀렛이다. 각종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내구도와 힘을 지니고 있다. 공격할 시에는 건틀렛의 방어력이 공격력으로 전환된다.
-모든 공격에 50% 추가 피해가 적용되는 대신 민첩이 20% 감소됩니다.
-다섯 가지의 기술 정수가 담겨져 있습니다. 단독발동과 복합발동 모두 가능합니다.
-공격이 적중할 시 데미지의 50%가 되돌아와 피해를 입습니다.
[기술 정수.]
1번-속성석을 장착할 시 해당 속성이 담긴 공격을 펼칠 수 있습니다.
2번-내구도를 소모해 강력한 방어막을 펼칩니다. 받은 피해에 따라 내구도가 감소되며 10 이하로 떨어지면 방어막 기능이 정지됩니다.
3번-장인들의 기술력 이하의 장치는 손을 대는 것만으로 분석, 조종 및 해제가 가능합니다.
4번-피스톤을 가동해 대상을 공격할 시 데미지를 3~5배로 증폭시킵니다. 충전 시간 10~30초.
5번-자체적으로 내구도가 수리되며 핵이 남아 있을 경우 완전히 파괴되어도 1의 내구도가 남아 재생합니다.
“…….”
건틀렛의 정보를 확인한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구도와 공격력이 진노의 건틀렛보다 훨씬 좋아졌고, 자체 수리효과로 인해 내구도는 거의 무한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다섯 가지의 기술 정수 역시 하나하나가 쓸 만한 효과였기에 말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민첩이 느려지는 데다가 모든 공격이 반동으로 반이 되돌아온다는 말도 안 되는 디버프가 있었지만.
“대, 대박이다…….”
디버프는 모조리 무시하고 반동이 오든 말든 간지럽지도 않는 하현에게는 상관도 없는 효과였다.
“이, 이런 아이템이 뜨다니…….”
레전드 등급이니까 조금 기대하기는 했지만 막상 나온 것은 하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이었다.
만약 장비들을 잃은 게 액땜을 했던 것이라면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이다.
“푸, 푸흣, 큭…….”
건틀렛을 바라보던 하현의 어깨가 마구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장비들을 잃으면서 왔던 허탈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안에서 휘몰아쳤다.
“당장…… 당장 써보고 싶다.”
마음과 같아서는 지금 당장 던전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물건이 하나 더 있었기에 하현은 조금만 참기로 했다.
‘이게 분명히 보조동력원이었지.’
남은 하나의 물건을 본 하현의 눈빛에는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다.
동력원이라면 그냥 조금 좋은 에너지원일 테니 재료 아이템으로써 쓸 만한 것이다.
지금 당장 좋은 무기로 눈이 돌아가 있는 하현에게는 솔직히 아무래도 좋을 만한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별 기대감 없는 마음으로 하현은 동력원의 정보창을 띄웠다.
캘시퍼의 보조 동력원(레전드)
내구도 300/300
캘시퍼의 모든 기술이 녹아들어 있는 핵이자 재현할 수 있는 동력원입니다. 아이템을 섭취하면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며 경험치가 쌓임에 따라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납니다.
-재현 가능한 기술 : 없음
정보창에 적혀 있는 정보들은 그렇게 많진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적힌 내용을 하현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
우우웅.
멍한 하현의 말에 대답하듯 동력원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