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콰아앙!! 퍼어엉!!!
“……엄청 거창하네.”
앞서간 토벌자들을 쫓아 던전을 달리는 하현은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혀를 내둘렀다.
‘거기다 거리가 잘 좁혀지지가 않아.’
먼저 들어간 이들과의 시간 차이는 기껏 해봐야 몇 분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가는 길목마다 보이는 것은 박살 난 골렘들과 문짝뿐이었고 앞서나간 이들은 좀처럼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S급은 S급이라는 거네.’
하현의 활약으로 괴물들의 수가 확 줄어든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빠르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앞에 토벌자들이 강력하거나, 괴물들이 형편없을 만큼 약하거나. 하현의 생각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다.
“저기 있군요. 바로 합류합시다.”
한참을 달리던 그때, 드디어 세 사람의 앞에 다른 토벌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싸우고 있는 괴물은 각양각색의 거대한 골렘들이었는데 상당히 강한지 전투가 늘어지고 있었다.
“속성 계열 괴물이군. 아민, 빙결 저항 마법으로.”
“예!”
민철의 명령에 옆에서 달리던 아민이 마법을 사용했다.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전면에 세운 민철은 창을 겨누며 전신에 힘을 끌어모았다.
“먼저 가겠습니다. 광인의 돌격!!”
시동어를 외친 민철의 몸이 바닥을 박차고 전방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져 나갔다.
푸른색 골렘을 상대하고 있던 토벌자들이 민철의 존재를 깨닫고 옆으로 비켰다.
콰아아앙!!!
민철의 돌진으로 가슴을 꿰뚫린 골렘은 동력원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하현은 민철이 선보인 위력에 속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다른 골렘들을 바라봤다.
‘대부분은 능숙하게 싸우는데…… 저 녀석이 문제인가 보네.’
여러 가지 색을 지니고 있는 골렘들 중에서도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골렘.
다른 골렘보다 덩치도 컸고 여러 가지 속성을 동시에 사용해서 까다로운 것 같았다.
“저도 갈게요.”
“네?”
아민이 당황하는 사이 하현의 두 손이 바닥을 짚었다. 뒷발을 걷어차면서 가속도를 얻은 몸이 무섭게 금색의 골렘을 향해 쏘아졌다.
[접근 확인.]
하현이 다가오는 것을 본 금색 골렘이 주먹에 불꽃을 두르며 내려찍었다.
미소를 지은 하현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주먹을 향해 달려갔다.
“디펜스 태클!”
키이이잉!! 쾅!!!
하현의 몸이 주먹과 맞부딪치자 골렘의 몸이 뒤흔들리더니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완벽하게 드러난 빈틈에 주변에 있던 토벌자들이 공격이 매섭게 골렘을 두들겼다.
-1지구 수호 골렘 카킨이 파괴되었습니다.
“나머지들 정리해!”
가장 많은 토벌자들을 묶고 있던 금색 골렘, 카킨이 부서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기울어졌다.
다른 골렘들도 하나둘씩 파괴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모두 끝났다.
“제가 좀 늦었죠?”
마지막 골렘까지 파괴된 것을 확인한 하현이 강철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주먹 자국이 가득한 검은색 골렘의 앞에 선 강철은 하현을 보고는 씩 웃었다.
“그 정도 활약했으면 아예 안 와도 상관없었다.”
하현의 말에 강철은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 줬다. 만약 하현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쯤 사상자가 생겼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흠. 근데 이젠 어디로…….”
주변을 살펴보던 하현이 강철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보려던 순간.
와락!!
뒤에서 나타난 지현이 하현의 어깨에 팔을 거칠게 걸쳤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현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지현은 씩 웃어 보였다.
“이야~! 너 좀 하더라? 진짜 대단했어!”
“아…… 예, 고맙습니다.”
스스럼없이 몸을 밀착하며 친근하게 이야기해 오는 지현의 모습에 하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모습이 또 마음에 들었는지 지현이 씩 웃었다.
“너 우리 길드 들어올래? 내가 쓰고 있는 스킬 몇 개 가르쳐줄 테니까 나랑 같이 사냥 다니자.”
“예, 예?”
“하하하.”
갑작스러운 제안에 하현이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아민이 웃으면서 하현의 반대 팔을 당겨 지현으로부터 빼내었다.
“하현 씨는 저희 검은 황소의 소속이랍니다. 이렇게 권유해 오시면 상당히 곤란해요.”
“흐음.”
겉으로야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민의 표정에서는 미묘한 적대감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본 지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더니 씩 웃었다.
“나는 그냥 마음에 들어서 제안한 것뿐인데. 거기다가 둘은 그냥 스폰 관계일 뿐이잖아? 그럼 결정은 본인이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뭐 혹시 다른 마음 있어?”
“그, 그게 무, 무슨!!!”
얼굴을 빨갛게 물든 아민이 뭐라고 따지려던 순간, 옆에서 바닥에 손을 대고 있던 지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봤다.
“그만, 집중에 방해된다.”
“…….”
지호의 말에 아민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지호가 하고 있는 일이 던전의 구조를 파악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켰으면 어떻게 하려고…… 아으 정말.’
마구 쏟아내려 했던 말을 꾹 집어삼킨 아민이 불만스러운 눈으로 지현을 바라봤다.
지현은 대강 그 속을 알고 있었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뭐지.’
아민에게 팔짱을 끼워진 채 두 사람의 사이에 낀 하현은 어리둥절한 채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민의 걱정과 다르게 들키는 것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후, 끝났다.”
바닥을 짚은 손을 거둬들인 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래라면 이 뒤로부터 길이 좀 꼬여 있던 것 같은데 넘어지면서 모조리 박살 난 것 같더군. 이쪽으로 가면 된다.”
지호의 발이 바닥을 옆으로 가볍게 훑자 푸른색 선이 바닥을 타고 내비게이션처럼 이어졌다.
일행들은 그 선을 따라 다시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한편, 일행이 향하고 있는 캘시퍼의 동력원 내부는 상당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키이이잉!!
하현과의 충돌로 캘시퍼의 내부는 처참하게 박살 났다.
부서진 것들만 반 이상이었는데 그로 인해 정지된 것까지 합하면 그냥 대부분 멈췄다고 봐야 했다.
덕분에 동력원은 부서진 외부와 내부를 수리하기 위해 가쁘게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침입자. 2지구 돌파.]
골렘에게서 전달된 내용에 동력원이 사방으로 전달하던 에너지를 멈췄다.
침입을 저지해야 했을 기능들이 정지되고 침입자들이 너무 강한 탓에 돌파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골렘 생성 지구 긴급 복구 시작.]
동력원은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모두 내부로 돌렸다. 지금은 침입자들을 저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황금 군단 골렘 이동.]
그와 동시에 본래라면 동력원의 근처를 지켰어야 할 골렘들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동력원 쪽의 미로를 복구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우우우웅!!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동력원은 더욱더 가쁘게 기동하며 에너지를 뽑아냈다.
***
“골렘들이 좀 늘어난 것 같은데?”
길 앞을 가로막았던 골렘들의 파편을 본 지현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나타나는 골렘들의 수가 확 증가한 것이다.
“……아무래도 복원이 시작된 모양이군.”
캘시퍼의 정보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지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뒤는 어떻게 될지 훤했기 때문이다.
“동력원이 있는 방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빠르게 움직인다. 앞으로는 나타난 골렘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서 빠르게 지나간다.”
지호의 말에 다른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바로 그때.
쿠웅!!
단순한 벽면이었던 것들이 위로 울리면서 그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 발로 부드럽게 걸어 나오는 그 모습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신을 빛내고 있는 황금색과 눈 쪽에 박혀 있는 하얀색 원석이 그들이 골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황금 군단 골렘.]
레벨 : 425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황금 골렘이다. 번영했던 시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골렘으로 마법과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징 : 숙련된 전투술. 숙련된 마법. 특수 마법저항력. 물리저항력. 높은 생명력.
“……정예 골렘이군.”
개개인의 스펙도 위협적이었지만 그 수가 자그마치 40에 육박했다. 절반 정도가 몸에 금이 가거나 사지 중 한두 개가 파손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라면 몰라도 골렘은 움직일 수만 있으면 충분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같잖군.”
다른 이들이 긴장하면서 골렘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강훈이 다른 토벌자들을 비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하현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고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정리하지. 자네들은 뒤에 빠져 있게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 강훈은 골렘들을 향해 달려가며 자신의 단검을 골렘들 한가운데로 던졌다.
녹색 빛을 띠며 날아간 단검이 바닥에 꽂힌 순간,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아아악!!
골렘들이 연기에 휩싸이는 것을 본 강훈은 씩 웃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골렘들과 자신의 독은 상극에 가까웠다. 거기다 이번의 독은 사용할 수 있는 독 중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지녔기에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 기여도는 내가 다 먹겠군.’
부식되어 만신창이가 된 골렘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강훈은 나머지 하나의 단검을 고쳐 잡았다.
자욱하던 연기가 걷어지고 그 안에 있던 골렘들의 모습이 다시금 나타났다.
겉이 녹아내린 골렘들은 강훈이 근처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움직이지 이지 않았다. 씩 웃은 강훈이 단검을 내려치려던 그때.
“?!”
콰아아앙!!!
녹아내린 것 같았던 정면의 골렘이 갑작스럽게 움직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피할 시간도 없었던 강훈은 단검으로 겨우 주먹을 막아냈고 그 반동으로 뒤로 튕겨나갔다.
“큭!”
자세를 다잡은 강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에 찬 강훈의 허를 완전히 찌른 골렘의 날카로운 공격.
강훈의 독에 녹아 있음에도 보여준 그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독을 거둬라. 강훈 길드장.”
골렘들을 보며 이를 갈던 강훈의 곁으로 다가온 지호가 말했다. 그 말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강훈이 지호를 노려봤다.
“이제 독에 면역된 것 같군. 오히려 흡수해서 복원하고 있다.”
“뭣…….”
당황한 강훈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호의 말대로 골렘들은 주변의 독을 빨아들이며 망가진 몸들을 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수 마법저항력이란 게 저런 거였군. 아무래도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단숨에 몰아붙여 죽여야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설 사람은 정해졌군.”
지호의 말을 들은 강철이 하현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행히도 이곳에는 마법으로 뭔가 하기보다는 주먹이나 칼로 두들겨 패는 걸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강훈 길드장은 아까 보니 모든 공격에 독을 사용하던데. 독 없이 공격해도 피해를 줄 수 있나?”
“……힘들 것 같군요.”
“그럼 나서지 않는 게 좋겠군. 이번에는 뒤에서 쉬게.”
“…….”
강철의 말에 강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미 골렘들이 독에 대한 내성을 지닌 모습을 보았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흐음. 몇 마리는 이전보다도 더 복구된 것 같은데요.”
골렘들의 동태를 살펴보던 하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했다. 그 말에 강훈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이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특성을 주의 깊게 봐두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그럼 이만.”
어깨를 으쓱인 하현은 다른 토벌자들과 함께 골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던 강훈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철컥!
독을 모두 흡수한 골렘들은 이전보다 더욱 완벽한 모습으로 변한 뒤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쉽사리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골렘들의 모습에 강철이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귀찮아졌군.”
“진형이 견고하다. 누구 한 명이 미끼가 되지 않는 이상 뚫는 건 불가능해.”
골렘들의 진형을 본 흑월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누군가 한 명 골렘들의 공격을 이끌어주지 못하면 뚫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골렘들의 공격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럼 저 먼저 갑니다.”
하현이 아무렇지 않게 바닥을 박차며 골렘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다른 토벌자들이 놀라는 사이 하현의 몸은 순식간에 골렘들을 향해 접근했다.
후웅!!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골렘들의 금색 검이 길어지면서 창으로 변했다. 빈틈투성이인 하현의 몸을 향해 창들이 매섭게 찔러 들어왔다.
퍼억!!
수십 개의 창이 하현의 몸을 후려쳤다. 몸이 뒤로 날아가려던 하현은 양팔로 몸을 찌른 창들을 와락 감싸 안았다. 창을 내빼려는 골렘들을 본 하현이 씩 웃었다.
“잡았다.”
***
[황금 군단 골렘 파괴.]
넘어온 보고에 동력원이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재 움직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손꼽힐 만큼 강력했던 골렘들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무너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저지할 뾰족한 방법은 없었고 이대로라면 파괴되고 말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완벽하게 이해한 동력원의 판단력이 극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장인들이 죽으면서 캘시퍼의 판단으로 봉인 처리 되었던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동력원의 불빛이 조금 불길하게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