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쿠우웅! 쿠우웅!!
지면을 내려찍는 소리가 도심 전체에 울려 퍼졌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가 쩌렁거릴 정도의 소리는 다가오는 괴물의 크기를 연상케 할 만큼 거대했다.
“정말로 저 녀석의 말을 믿는 건가.”
빌딩의 옥상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피곤해 보이는 남자, 우지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옆에 서 있던 민철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할 분은 아닙니다. 한번 믿어보시죠.”
“……나는 잘 모르겠군.”
민철의 말에도 지호는 미심쩍은 눈으로 하현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여인이 피식 웃었다.
“진짜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훤칠한 키의 여인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지호를 바라봤다. 옆에서 들려온 소리와 시선에 지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진짜로 넘어뜨리면 돌입하면 되고, 아니면 그냥 뒤로 빼면 돼. 그렇게 하자고 자기가 제의한 거잖아?”
“…….”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지현의 모습에 지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차피 유일한 방법이긴 했다.
다만 실패했을 시, 하현이 죽는다는 것이 조금 그랬다. 만약 그렇게 죽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죽음이 되기 때문에.
“목숨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뭐, 본인이 결정한 거잖아.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해.”
미소를 지은 지현의 대답에 지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하게 불편한 분위기.
지호는 블라우 슈랑에, 지현은 적견을 이끄는 길드장이다 보니 서로 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길드간의 경쟁 관계도 있었지만 개인의 불화가 더 많았다.
“……일단 기다려보면 알 수 있겠지요.”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민철이 중재를 하듯 이야기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길드를 공격하던 길드의 수장들이었지만 민철은 그들에게 적개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랫선에서 일으킨 일이었겠지.’
두 사람은 길드장 중에서도 독특한 자들이었다.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단련뿐, 길드는 이름을 빌려주고 단련에 대한 지원을 받는 스폰서 관계에 불과했다.
‘척을 지기보다는 회유를 해야겠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인재들이 꼭 필요했다.
민철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때, 아민은 초초한 표정으로 길가의 하현을 바라봤다.
“으으…….”
“불안하나?”
“예, 예?”
갑자기 들려온 물음에 아민이 놀란 표정으로 옆을 바라봤다. 아민의 옆에 서서 하현을 바라보던 강철이 심드렁하게 다시 물었다.
“저 녀석이 불안하냔 말일세.”
“……조금은요.”
강철의 물음에 아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태까지 하현이 벌인 일들은 대다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번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A급이 SS급에게 유효타를 먹인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만약 이대로 하현이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아민의 머릿속에 맴돌며 초조하게 만들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달려가서 텔레포트로 끌고 오고 싶을 정도로.
애달은 아민의 상태를 눈치챈 강철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걱정은 하지 말게.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걸 테니.”
“그거야 그렇겠지만요…….”
강철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민은 여전히 걱정되는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설득이 안 되겠다 싶은 강철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렸다.
“음?”
고개를 돌린 강철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토벌자들과 다르게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흑월은 벽면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복면 사이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아래쪽에 있는 하현을 향해 있었다. 옆에 있는 아민과 비슷하게.
‘호…… 저놈 봐라?’
흑월과 아민의 반응에 강철은 하현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강철은 갑옷 너머의 체형으로 흑월이 여성이라는 것을 대강 눈치챘기 때문이다.
‘저번의 질문도 그렇고 뭔가 있긴 했나보군. 어차피 실패해도 죽지는 않을 테니 여러 의미로 팔자가 좋은 녀…… 석…….’
하현이 처한 상황에 미소를 짓던 강철의 표정이 점차 미묘하게 변했다.
아무렇지 않게 스치고 지난 생각은 점점 커져 갔고, 마지막에는 강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깐 설마?”
어떤 방법으로 넘어뜨릴 것인지 알아차린 강철이 놀란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강철의 목소리에 돌아본 토벌자들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분명히 긴장될 법도 한데 하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철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진짜 가능하다면…… 터무니없는 괴물 녀석이구만.’
***
쿠우웅!! 쿠우웅!!!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건물, 도로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심하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역시 덩치가 좀 있긴 한가 보네.”
영상을 통해 대략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그 여파를 체감하고 있으니 위압감이 전혀 다르다.
하현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지를 바라봤다.
쿠우웅!
저 멀리 아주 작은 건물처럼 보였던 요새는 시시각각 커져 갔다.
주변에 작은 건물들을 박살내며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거대한 요새.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20층은 넘을 빌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이제는 확실하게 주변의 지면이 강하게 흔들리고 건물에도 위험한 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준비할 시간임을 느낀 하현은 지면에 양손을 딛고 한 발을 뒤로 빼며 몸을 지탱했다.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잡은 하현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앞을 바라봤다. 그냥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것도 나름 타이밍 계산이 필요했다.
‘아직…… 아직이다.’
한 번의 실수로 수십, 수백 개의 건물이 파괴될 것이다. 하현은 침착하게 기회를 쟀고,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찼다.
“디펜스 태클!”
콰앙!
시동어를 외친 하현의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힘의 비례로 가속도를 얻자 요새를 달려가는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라졌다.
콰아앙!!
태양을 등진 요새는 일대 전체를 가리며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현은 흔들림 없이 눈앞의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들었다.
‘간다!’
타이밍은 완벽하다.
캘시퍼의 다리가 움직이는 경로를 예지로 확인한 하현은 그곳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콰아아아앙!!
어지간한 빌딩보다 더 큰 다리가 하현의 앞에 내려 꽂혔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하현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하현의 어깨가 캘시퍼의 다리와 부딪쳤다. 캘시퍼에 몇천 분의 1보다 작은 크기인 하현의 태클.
이런 무식한 태클로 캘시퍼가 넘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키이이이이이이이잉!!!!
그런 불가능한 일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스킬의 힘이다.
끼기기긱…… 쿠구구궁!!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할 캘시퍼의 몸이 거대한 신음을 터뜨리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요새에 걸린 마법저항력이 스킬을 저항하기 위해서 불꽃을 튀겼다.
파지지직! 파지직!!!
디펜스 태클은 상대의 공격을 맞았을 때, 피해를 감소시킨 만큼이 발동률이 된다.
캘시퍼의 몸을 감싼 마법저항력은 발동률이 99%라도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수준이었기에 사실상 넘어뜨리기란 불가능했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쩌저적!
하현의 발동률은 100%였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앙!!!!!
여태껏 견디던 마법저항력이 박살 나고, 스킬의 발동을 알리는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단 한 번을 넘어진 적도, 넘어질 수도 없었던 캘시퍼의 거체가 뒤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
“…….”
수백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요새가 뒤집어지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토벌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천천히 뒤로 기울어지던 캘시퍼는 그대로 지면을 향해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웅!!!!
-이동장치의 관절구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재생 전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요새의 외벽이 86% 붕괴되었습니다.
-외벽의 수호자 골든 아르텐 골렘이 70% 파괴되었습니다.
-마법 억제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캘시퍼 내부의 마법 억제가 모두 해제됩니다.
-골렘 생산지대의 78%가 파괴되었습니다. 골렘의 리젠률이 대폭 줄어듭니다.
-영겁의 미로 동력원이 파괴되었습니다. 미로가 가동 중지되었습니다.
-속성저장, 추출소의 제어 마법이 해제되었습니다. 속성 골렘의 생성이 중지되며 마나의 폭주로 긴급 폐쇄됩니다…….
내부 시설의 파괴를 알려주는 알림창들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도취감에 하현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넘어뜨렸다아아아아!!!!”
하현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토벌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박찼다.
요새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췄고 외벽에 설치되었던 무기들은 파괴되거나 동력이 끊겨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으하하핫! 대단하잖아 저 애송이!”
“소리치지 마라!”
옆에서 폭소를 터뜨리며 자지러지는 지현의 모습에 지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토벌자들의 발판에 생성된 마법진은 토벌자들을 캘시퍼의 위로 이동시켰다.
[적……발견…….]
간신히 살아남은 요새의 수호자, S급 괴물인 골든 아르텐 골렘이 전신에 금이 간 상태로 위를 올려다봤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외벽에 살아남은 골렘들의 수는 상당했다.
“저 녀석이 밑밥은 깔아줬다. S급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면 밥값은 해라!”
아래의 골렘들을 바라본 강철이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이야기에 다른 토벌자들의 눈이 번쩍였다. 지현은 씩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 그런 건 말 안 해줘도…….”
붉은 색 오오라를 손에서 쥐어짜낸 지현이 눈을 번뜩였다. 붉은 유성이 골든 아르텐 골렘의 머리를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안다고 영감탱이야!!!”
콰아아아앙!!!!
지현의 주먹이 골든 아르텐 골렘을 압축기에 넣은 깡통처럼 짓누르고도 힘이 남아 바닥을 후려쳤다.
그 충격에 요새의 지반이 처참할 정도로 갈라졌고 주변의 골렘들이 넘어졌다.
“무식한 녀석.”
그 모습을 천천히 활강하며 바라보던 지호가 손을 휘저었다.
그의 등 뒤로부터 수십, 수백 개의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살아남은 골렘과 간신히 기동하고 있는 무기들을 향해 수천 갈래의 벼락을 쏟아냈다.
콰아아앙!!!
하현이 만들어낸 거대한 밑밥, S급 토벌자인 두 사람의 일격 두 가지에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렸던 캘시퍼의 외벽이 완전히 함락되었다.
쿵!
손쓰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자 흑월과 강철을 비롯한 토벌자들은 안전하게 착지했다.
안쪽으로 향하는 문은 이미 캘시퍼가 넘어지면서 처참하게 박살나 열려 있었다.
“돌입해라!”
***
“하현 씨!”
캘시퍼의 앞에 서 있는 하현에게 민철과 아민이 다가왔다.
“아, 오셨네요.”
“몸은 괜찮으세요?!”
하현의 앞에 내려온 아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펴봤다.
언제나 그렇듯 상처 하나 없는 하현의 상태를 확인한 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 너무 사람 간 떨리는 행동은…….”
“방금 전 활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군.”
막 뭐라고 하려는 아민의 말을 가로막은 민철이 하현을 바라봤다.
“이것만으로도 하현 씨는 큰 활약을 하셨습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던전에 들어오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민철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피해면역의 스킬에 제한 시간이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하현을 던전에 데리고 가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라니까.’
그런 의도를 읽은 하현은 민철을 안심시키기 위해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