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46화 (46/158)

# 46

12.기동요새 캘시퍼

마주보고 선 강철과 하현은 주먹을 휘두르며 가쁘게 움직였다.

서로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계속되는 공방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빈틈.’

하지만 쌓아 둔 실력은 손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하현의 빈틈을 발견한 강철의 발이 다리를 후려쳐 자세를 무너뜨리고 주먹이 가슴을 향해 쇄도해왔다.

무난하게 후려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현의 몸을 살펴보던 강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철은 내지르던 주먹을 갑작스럽게 회수했다.

빠아악!!

한 박자 느리게 강철의 주먹이 있었던 곳에 하현의 두 주먹이 맞부딪쳤다.

자신의 몸이 맞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강철의 주먹에 데미지를 주겠다는 의도였다.

‘이놈 봐라?’

자신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응용한 날카로운 공격. 순식간에 성장한 하현의 모습에 강철은 씩 웃으며 회수했던 주먹을 다시 휘둘렀다.

후웅, 빡!!

첫 타로 방어를 유도하고 다른 한 손으로 그 빈틈을 정확하게 찌른다.

예지의 특성을 이용하여 날카롭게 찌른 강철의 한 수를 마무리로 대련이 끝났다.

“후우…… 역시 힘드네요. 페이크가 잘 구분이 안 가요.”

“편리한 스킬인 만큼 어려운 법이지. 뒤로 가면 페이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괴물들도 나타나니 잘 배워 둬라.”

공격을 미리 볼 수 있는 예지는 무척이나 편했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었다.

상대의 페이크 공격까지 실제 공격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 페이크 공격을 구분해내는 능력을 길러 두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 실전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이 예지였다.

“그래도 확 달라졌는데. 좋은 경험이라도 했나 보군?”

“아…… 뭐 그렇죠.”

강철의 말에 하현은 그때의 광경을 떠올렸다. 그라칼과 흑월이 보여준 전투.

하늘을 뒤덮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공격 경로는 떠올릴 때마다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라칼이야 괴물이라 그렇다 쳐도 흑월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같은 인간일까 싶을 정도였다.

흑월의 모습을 되새기던 하현은 강철을 바라봤다.

“선생님, 혹시 흑월이라는 토벌자 아세요?”

흑월은 토벌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비밀이 많은 측에 속해 있었다. 맨 얼굴이나 레벨, 본명, 성별 등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고 해봐야 10년 전부터 활동했다는 것뿐이다.

‘얼핏 봐도 20대 초반처럼 보이던데. 어려 보인다고 가정해도 중, 고등학생 때부터 토벌자로서 일했겠지.’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서 그런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현은 흑월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 방법을 조금이라도 알면 자신도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것뿐이겠지?’

그것 말고는 흥미를 가질 이유가 없다. 아마도.

“흐으음…… 아무래도 잘은 모르지.”

하현이 자신의 생각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강철이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나는 공식적으로 20년 전에 은퇴한 사람이니 말이다. 해봐야 어쩌다가 싸우는 모습을 몇 번 본 것 정도?”

“어땠습니까?”

“흠. 한마디로 정리하면 천재 노력가다. 제일 귀찮은 녀석이지.”

강철의 평가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본 강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벌자로서는 나쁘지 않아. 다만 따라잡을 상대로 삼기에는 귀찮다는 거다. 천재인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노력까지 하면 얼마나 무지막지 하겠냐. 너 같은 놈처럼 말이야.”

하현을 바라본 강철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나고 나서 이제 3주가 좀 지났는데 첫날과 비교하면 성장한 수준이 너무 남다르다.

‘이 정도 속도라면 1년도 안 돼서 S급을 찍을지도 모르지.’

B급만 되도 토벌자들은 섣불리 난이도 높은 던전을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C급을 벗어나는 순간 높아지는 던전의 난이도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B급임에도 불구하고 C급의 던전, A급이 B급 던전을 도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도전 정신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것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지.’

목숨을 걸고 사냥에 임하는 토벌자일수록 명줄이 짧지만 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즉 B급일 때도 A급 던전을 망설임 없이 들어갔던 하현의 성장 속도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흠. 확실히 그러네요.”

“그래, 그러니까 너는 어디 가서 사냥이 쉬웠다거나 레벨 업이 제일 쉬웠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칼 맞으니까.”

“하하. 맞아도 상관없습니다.”

강철의 농담에 하현은 넉살좋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 너는 진짜 맞아도 멀쩡하겠지.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만 하자.”

“예, 나가서 점심이라도 드실래요?”

“글쎄…… 뭐 그래도 상관은…….”

우우웅.

강철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을 울렸다.

하현과 강철은 서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휴대폰을 꺼냈다.

‘토벌자 협회.’

휴대폰에 떠오른 이름에 하현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협회로부터 직접 호출하는 일이 어떤 일들인지 최근에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래, 뭐 또 터졌나 보네. 빨리 받아봐라.”

손짓을 한 강철은 전화를 받으며 슬며시 멀어졌다. 하현도 뒤늦게 전화를 받았다.

“하현 씨, 이전에 전화 드렸던 진한입니다.”

예상과 달리 전화를 받은 진한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침착해서가 아닌, 상상치도 못한 일이 터져 버리면서 어쩔 수 없이 침착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였다.

“무슨 일입니까?”

“조금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협회 내부에서 설명드릴 테니 와주실 수 있습니까?”

“바로 가겠습니다.”

“지금 계신 곳으로 바로 마중을 보내겠습니다. 강철님과 기다려 주십시오.”

전화가 끊어지고 하현은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도 전화가 끝났는지 휴대폰을 넣고 다시 하현에게 되돌아오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했다.

“은퇴해서 다 죽어 가는 늙은이까지 부르는걸 보면 어지간히 큰일인가 보군.”

“…….”

후웅!

강철의 말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집 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최하현 씨, 마강철 님. 마중 나왔습니다.”

“가자.”

“예.”

하현과 강철은 협회의 마법사를 통해 텔레포트로 협회로 들어섰다.

둘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마법사는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이윽고 나타난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긁었다.

키잉.

기묘한 음성과 함께 마법사의 앞으로 원래 없었던 40층 이후의 층수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오…….”

꽤 신기한 광경에 하현이 감탄을 터뜨리는 사이 마법사는 45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의 신호를 무시한 채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가 도착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두 사람을 이끌고 마법사가 들어간 방안은 큰 회의실이었다. 그 안에는 강철과 하현보다 먼저 온 인물들이 많았다.

정장을 입고 있는 협회의 관리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과 흑월, 하민철, 김아민, 박강훈 등 안면이 있는 토벌자들도 서로 모여 앉아 있었다.

‘불려온 사람들을 보니 정말 강자들만 초대된 건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알아본 사람들에서 김아민만 제외해도 S급이 3명이다.

하현은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강철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어? 하현 씨도 오셨어요?”

“흠. 확실히 하현 씨라면 불려올 법하군요.”

“크흠.”

하현을 발견한 아민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민철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앉아 있던 강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하현이 동급으로 취급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현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흑월을 바라봤다.

“…….”

하현을 알아본 흑월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가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자세를 잡았다.

그사이가 워낙 빠른 탓에 하현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귀엽네.’

속으로 피식 웃은 하현은 아민과 민철을 바라봤다.

“아민 씨랑 민철 씨는 무슨 일인지 알고 있으세요?”

“……예, 아래쪽에서 보고를 받아서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는지 민철과 아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나오니 점점 궁금해졌다.

“초청하신 분들이 모두 오셨으니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회의실의 앞으로 나선 진한의 목소리에 하현과 강철은 고개를 돌렸다.

착석을 확인한 진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11시 05분경. 아래 지역에 차원의 구멍이 나타났습니다. 나타난 괴물은 현재 협회의 본부인 이곳을 향해 경로를 잡고 달려오는 중이며…… 그 괴물을 막기 위해 여러분들을 불렀습니다.”

‘음……?’

진한의 말에 하현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이 정도 토벌자들을 모두 소집한다는 말인가?

“자세한 것은 괴물의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추가로 하겠습니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진한은 옆의 마법사를 통해 마법을 펼쳤다.

괴물을 감시하고 있는 관리자의 마법과 연결되면서 회의실의 상공에 거대한 화면이 떠올랐다.

콰앙! 콰앙! 콰앙!

화면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거대한 요새였다.

성벽 위에는 조금 낯설게 생긴 각종 무기가 무장되어 있으며 각종 골렘들이 성벽 위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를 고스란히 옮겨 둔 것 같은 모습.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얼핏 보아도 200m는 넘는 것 같은 높이와 일반 운동장의 20배는 될 것 같은 무지막지한 크기를 지닌 그 요새가.

콰앙!!! 콰앙!!! 콰앙!!!

괴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든 토벌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정말로 자신이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콰앙!! 콰앙!!!

요새를 짊어진 거대한 기계는 쉴 새 없이 자신의 발들을 놀리며 아래의 도시를 짓밟고, 유린했다.

그 거대한 요새보다 3배를 웃도는 압도적인 크기와 질량에 도시의 건물들은 마치 먼지처럼 무너져갔다.

그러던 그때, 요새가 지나가는 길목의 앞으로 조금 높은 산이 나타났다.

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요새가 멈추거나 능숙하게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키이잉 콰아아앙!!!!

요새의 앞부분의 포신에 거대한 빛이 모여 쏘아지더니 요새의 앞을 가로막던 산을 비롯해 뒤의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계는 순식간에 황폐한 볼모지로 변한 터의 위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

화면에 떠오른 장면을 본 토벌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힘에 짓눌린 채 눈도 떼지 못했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기계의 존재를 인식한 토벌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시련이 나타났다. 창을 향해 시선을 돌린 토벌자들의 눈에 경악이 묻어났다.

[움직이는 요새 캘시퍼.]

고대의 장인들이 채광을 위해 만들었던 기동요새 캘시퍼. 하지만 캘시퍼를 만들어낸 장인들은 황금을 둘러싼 내전으로 전멸했다. 그러나 기술의 정수인 캘시퍼는 주인이 사라졌음에도 스스로 자신을 가공하고 채광을 통해 동력원을 충당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자원의 채취와 파괴밖에 모르는 폭주 요새를 저지하라.

난이도 : SS

보상 : 공헌도에 따른 막대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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