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44화 (44/158)

# 44

협회의 안으로 들어온 하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전에 오전에 찾아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토벌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정산하고도 안 가는 사람들도 있네.’

업적 포인트의 점수는 요 한 달간 토벌자들 사이에 세력 변화를 나타나내는 경우도 있었다.

갑자기 포인트가 확 늘어난 길드가 있고 줄어든 길드가 있다면 둘 사이의 무언가의 교환이나 교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길드에 속하지 않는 일반 토벌자들은 그 변화를 놓치면 피곤해졌기에 이렇게 자신의 정산이 끝나고도 갱신표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지. 근데…… 뭐지 저건.’

데스크를 향해 걸어가던 하현은 협회의 중앙 홀을 바라봤다.

집단으로 보이는 이들이 홀 여기저기에서 갱신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유심히 바라보던 하현은 그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아민 씨랑 민철 씨네. 그러면…… 저 사람들은 10대 길드인가.’

정산 날이다 보니 그 유명한 10대 길드들도 모두 모인 모양이다.

한번 얼굴이라도 보자는 생각에 하현은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인지라 누가 길드장인지는 몰랐지만 보는 순간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느낌이 확실히 다르네.’

민철이나 아민처럼 모여 있는 자들 중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두세 명씩 꼭 있었다.

아마 그들이 길드장이거나 길드 내부에서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리라.

“아, 하현 씨.”

한참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던 하현을 발견한 아민이 그를 불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10대 길드원들의 시선이 하현을 향해 쏟아졌다.

‘……이건 또 어마어마하네.’

순식간에 느껴지는 여러 가지 시선에 하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선들도 섞여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10대 길드에 이만큼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산하러 오실 거면 연락주시죠. 저희가 마중했을 텐데.”

“아뇨,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곁으로 다가온 아민의 말에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전에 길드 뒤풀이 이후로 묘하게 살가워진 아민의 태도가 좋기도 했지만 적응이 안 돼서 조금 버거웠다.

‘뭔가 있었나……? 그렇게 거창한 대화는 없었던 거 같은데.’

평소랑 다를 것 없었던 것 같은데 느낌은 확실하게 변했다.

아민의 살가운 태도에 하현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하현을 향해 다가왔다.

“자네가 최하현이군.”

50대쯤 돼 보이는 중후한 남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말투와 희미하게 느껴지는 적의.

저곳에서 왔다는 것은 분명 10대 길드의 높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뜻이다. 하현은 그가 대충 어떤 사람일지 예상이 갔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박강훈 길드장님.”

평소의 부드러운 모습과 다르게 까칠해진 아민은 이쪽으로 온 남자, 박강훈을 노려봤다.

그 날선 물음에 강훈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허헛. 요즘 큰 활약을 연달아 펼친다는 유망주를 보러 오는 것도 검은 황소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스폰서 관계이지만 조금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군요.”

“……제가 말하는 게 그게 아닌 걸 아실 텐데요.”

강훈의 말에 아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린 스콜피온의 길드장 박강훈.

하현을 죽이려고 했던 그가 이렇게 넉살좋게 다가오는 것 자체가 가증스러운 일이다.

“흐음. 그러니깐 그린 스콜피온의 길드장이십니까?”

아민의 반응으로 대강 확신을 내린 하현이 강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선을 돌린 강훈은 씩 웃었다.

“그러네, 요 근래에 조금 신세를 졌네.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어.”

뼈 있는 말투에 슬며시 느껴지는 살기. 점잖아 보이지만 역시 그 길드에 그 길드장이었다. 하현은 피식 웃으면서 강훈을 바라봤다.

“깨달으신 게 있으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근데 아직도 몇 가지는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몇 가지 더 알려드릴까요.”

“허헛.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지. 전의 일로도 충분하네.”

하현의 말에 강훈은 나름대로 부드럽게 넘기며 대답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뒤틀려진 강훈의 속내를 알아차린 하현은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아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겁니까?”

“아 지금 정산 중이거든요. 협회 측에서 길드 총합을 따로 띄워줘서 그걸 확인하려는 거예요.”

이전의 정산에는 하현이 워낙 일찍 와서 못 봤지만 정오를 넘기면 새로운 갱신표가 나타난다.

각 길드가 얻은 업적 포인트의 총합이 떠오르는 길드 갱신표가 나오는 것이다.

본래는 이 갱신표가 길드장들까지 결과를 기다릴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유례없는 게이트 현상 이후라서 그런지 시민들의 이목이 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정산은 조금 신경이 쏠려 있어요.”

“흐음. 왜 기자들이 저렇게 많나 했더니 그런 거군요.”

출입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하현은 기자들을 바라봤다.

정산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바깥에는 여전히 수많은 기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길드의 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이니 말일세. 승자는 매번 정해져 있지만.”

아민과 하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훈이 잔뜩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이야기했다. 그 대답에 아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라면 쪽팔려서 저런 말도 못하겠다.’

매달 정산의 결과는 대부분 그린 스콜피온이 1위를 차지한다.

온갖 더러운 수를 일삼아서 확보한 길드원의 수, 구역의 넓이가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흐음…….”

강훈과 아민의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순위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개인 랭킹

1위 [흑월 S급-380,000Pt]

…….

12위 [박강훈 S급-180,000Pt]

‘이번에도 흑월 씨가 1위고…… 저 사람은 12위인가.’

인성은 덜 돼먹었지만 생각보다 실력은 있었던 모양이다. 갱신표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던 하현은 아민을 바라봤다.

“만약에 말입니다. 거대 길드의 장이고 S급의 토벌자가 B급 토벌자보다 업적 포인트가 낮으면 이야기가 좀 많이 나오겠죠?”

“네? 아 뭐…… 어떻게 이야기 되냐에 따라서 아마 엄청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흐음. 그렇단 말이죠.”

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현은 강훈을 흘끔 바라보다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현의 의미심장한 물음과 행동에 아민과 강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협회의 갱신표의 순위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개인 랭킹

10위 [최하현 B급-200,000Pt]

“…….”

“…….”

눈앞에 나타난 결과에 아민과 강훈, 둘 다 벙 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협회에 돌아다니는 모든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갱신표를 바라봤다.

그린 스콜피온의 영역에 있는 던전들을 닥치는 대로 정지시키고, 게이트를 거의 단신으로 막아냈으며 S급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큰 업적을 세웠다.

그로 인해 얻은 업적 포인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흠, 잘 나왔네요.”

그새 되돌아온 하현은 갱신표에 떠오른 자신의 이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생각해 보니 이게 다 그린 스콜피온 덕분이군요. 좋은 사냥터를 아주 마아~ 않이 가지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이제 곧 인터뷰할 것 같은데 그때 잘 말씀드리죠.”

바깥에서 갱신표를 보고 있던 기자들이 놀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흘끗 본 하현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를 본 강훈은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눈가와 목에 핏대가 솟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민도 환하게 웃으며 하현에게 말해보였다.

“토벌자로서의 격을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겠죠.”

“하하. 너무 치켜세우시면 부끄럽습니다.”

“치켜세우기는요. 박강훈 길드장님 말씀대로 승자는 정해진 법이에요. 그렇죠, 길드장님?”

생글생글 웃으면서 물어오는 아민의 모습에 강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가기 전에 이번에 제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민 씨, 좀 도와주실래요?”

“물론이죠. 길드장님께 말씀드리고 올게요.”

아민은 허락을 받기 위해 민철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고개를 돌려 강훈을 바라봤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신세 많이 졌습니다. 박.강.훈 길드장님.”

강훈을 뒤로하고 아민과 하현은 협회의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현의 옆에 붙은 아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최고였어요. 하현 씨.”

이 정도 거리면 뒤에 있는 강훈의 귀에 들릴 것이다. 하지만 아민은 들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했다.

“뭐, 그냥 받은 만큼 돌려준 겁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했을 거예요.”

“아뇨, 하현 씨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했을 거예요.”

고개를 저은 아민은 하현을 바라봤다. 부당한 일을 목격해도 그냥 피해 가려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설령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굳이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다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어떤 사람은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민은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리라.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그냥 그렇게 단순한 것이다.

“아…… 음. 하하.”

아민의 시선을 느낀 하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아민은 쿡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자자. 얼른 가요.”

“예.”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추는 둘의 모습에 질문을 받겠다는 의미임을 알아차린 기자 한 명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정산에서 상위권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다렸던 기자의 질문에 하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토벌자로서의 기본 소양. 신예 토벌자 최하현의 일침.’

‘그린 스콜피온, 그들은 길드인가 건달인가.’

‘거대 길드의 도 넘은 횡포. 이대로 괜찮은가.’

인터넷에 떠오른 뉴스들을 본 강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반응에 오히려 더 불안해진 부길드장이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길드장님…….”

“닥쳐.”

부길드장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낮게 깔린 강훈의 목소리가 그의 말을 막았다.

스산한 말투에 부길드장은 아무런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으아…….”

만약에 여기서 더 말을 걸었다가는 지금 바닥에 널브러진 채 녹아내리고 있는 저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부길드장은 재빠르게 방의 밖으로 나왔다. 홀로 남은 강훈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 하현…….”

빠드드득.

분노와 치욕으로 얼룩진 소리는 한동안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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