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38화 (38/158)

# 38

10. 게이트 현상

“후. 드디어 다 했네.”

회식이 끝나고 이틀 후. 검은 황소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복원된 집 안에서 하현은 거실에 펼쳐진 장비들의 산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반을 시련의 대가로 소멸시켰지만 토벌자들에게서 받아낸 장비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100명쯤 되는 토벌자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것까지 다 회수했으니 당연한 것이다.

‘마음과 같아서는 그냥 싹 다 팔아버리고 싶지만…….’

그때 하현을 찾아온 토벌자들은 그린 스콜피온에서도 나름대로 실력 좀 있다는 녀석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지고 있던 장비들 중 쓸 만한 것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괜히 돈 주고 사느니 여기서 찾아보는 게 낫지.’

하현은 각 부위 별로 정리해 둔 장비들의 능력치를 살펴보며 하나둘씩 감별해 나가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장비들은 고스란히 가방에 넣어두고 좋은 것들은 일단 놔둔다.

그런 식으로 한 번 솎아낸 뒤 하현은 남아 있는 장비들끼리 또 비교하는 식으로 다시 한 번 솎아냈다.

얼추 물건이 다 걸러진 하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장비들을 바라봤다.

‘신발은 이동속도 30% 증가하는 좋은 거 하나 생겼고…… 반지랑 귀걸이는 다 갈아치우게 됐네.’

토벌자들에게서 얻은 액세서리들 중에는 디버프 없이 힘과 민첩, 두 가지를 5%씩 올려주거나 민첩을 10% 올려주는 상등품들이 상당히 섞여 있었다.

강철의 말대로 번 돈의 대부분을 투자해서 맞췄던 모양이다. 물론 이제는 하현의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이 장비들만 다 팔아도 몇십 억은 벌겠다…….’

가방에 들어가 있는 장비들을 바라보던 하현은 고개를 돌려 아직 놓여 있는 무기들을 바라봤다.

무기들 중에서도 상당히 성능이 좋으면서 하현의 취향에 맞은 13개의 무기들.

진노의 건틀렛보다 안 좋거나 간신히 비슷한 수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현은 그것들을 팔지 말까 고민했다.

이전에 강철이 해줬던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토벌자가 무기 하나만 들고 다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전투가 얼마나 오래될지 모르는 이상 여분의 무기는 필수지. 원래 쓰던 무기가 아니더라도 좋으니 좋은 무기 생기면 몇 개는 들고 다녀라.’

강철의 조언은 하현처럼 던전을 하루 종일 도는 사람에게는 특히 맞는 말이었다.

던전을 돌다가 건틀렛의 내구도가 다 돼서 수리하러 가거나, 팔꿈치 같이 무기가 없는 부분으로 사냥한다고 낭비되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남겨 두자.’

어차피 돈은 지금 저 장비들만 처분해도 충분해 보인다. 빼앗은 물건 중 얻은 작은 공간 가방을 꺼낸 하현은 무기들을 모두 넣고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그럼 이제 정산하러 가볼까.’

장비들이 가득한 가방도 인벤토리에 넣은 하현은 토벌자 협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산과를 향해 올라간 하현은 직원의 앞에 장비들이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것들 좀 모두 정산해 주시겠어요?”

“네? 아…… 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장비에 직원은 다른 직원들 몇 명을 데리고 와 빠르게 정산 작업을 시작했다.

아직 오전 10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보니 정산은 빠르게 끝났다.

“후우. 장비들의 정산 가격은 모두 합산해서…… 28억 8천 5백만 원입니다.”

정말로 좋은 장비들은 하현이 장착하거나 여분으로 놔뒀음에도 불구하고 장비의 처분 값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나왔다.

겸사겸사 얻으려 했던 수익이 본래 수익을 뛰어넘을 정도로 나오자 하현은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정산 금액은 계좌로 넣어 드릴까요?”

“네? 아…… 네.”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장비들을 치우고 정산을 처리했다.

자격증을 건네받은 하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1층으로 내려왔다.

“……어마어마하네.”

전에 받았던 11억도 아직 반을 안 썼는데 그 두 배는 넘는 돈이 한 번에 들어와 버렸다.

실감도 가지 않는 이 상황에 하현은 그저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아, 온 김에 그것도 처리하고 갈까.”

밖으로 나가려던 하현은 협회에서 할 일이 떠올랐다.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느꼈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배우면 좋겠다 싶은 스킬들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난 김에 가자고 생각한 다시 몸을 돌렸다.

협회에서 스킬을 판매하고 있는 7층으로 올라온 하현은 앞서 알아봐뒀던 스킬 두 개의 이름을 말했다.

“도발과 징벌, 두 가지 말씀이시죠?”

“네.”

“도발은 300만 원, 징벌은 1,000만 원으로 총 1,300만 원입니다.”

두 개의 스킬은 탱커라면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스킬에 속해 있었기에 값이 상당히 싼 편이었다.

하현은 간단하게 가격을 지불하고 스킬을 습득했다.

도발(Lv.1) : 액티브. 반경 10m안에 괴물들의 주의를 20초간 이끌어내고 그동안 피해가 10%감소합니다. 소모 마나 100.

징벌(Lv.1) : 액티브. 스킬을 사용한 이후 몸 주변에 피해를 축적하는 막을 생성합니다. 축적된 피해는 폭발로 치환되며 축전된 데미지에 따라 범위가 최대 반경 5m까지 확장됩니다. 한계 축적 시간 5분. 소모 마나 100.

도발로 주의를 이끌고 징벌을 통해 약소하게나마 데미지를 되돌려준다.

초기에 큰 피해를 줄 수 없는 탱커 계열의 토벌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연계 스킬이었다.

‘그래도 징벌에 한계 시간이 있는 건 좀 아쉽네.’

한계 시간만 없다면 데미지를 있는 대로 축적하고 거의 필살기 수준의 공격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현은 약간의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뭐 그래도 있는 게 어디야.’

스킬들을 확인한 하현은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던전에 갈까 했지만 시간이 조금 애매한 터라 집에서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갈 생각이었다.

‘물은 끓으려면 좀 걸리겠고…… 그동안 TV나 볼까.’

라면 물이 끓는 걸 기다리는 동안 하현은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흥미가 가는 내용이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리던 하현의 손이 뉴스 채널에 멈췄다.

아나운서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 근래 괴물들의 출현이 잦아지면서 토벌자 협회는 외출을 삼가하고 꼭 필요하다면 긴급 탈출을 위한 대가를 꼭 소지한 채 외출을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외출하시는 데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정오 뉴스…….”

“흐음. 끝났네.”

틀자마자 끝나버린 뉴스에 하현은 흥이 식어버려 그대로 TV를 껐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오던 아나운서의 멘트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괴물들의 출현이 잦다…… 확실히 그런 소리가 종종 있었지.’

이전에는 많이 등장해 봐야 2~3마리가 연속으로 등장했던 괴물들이 요 근래에는 적어도 5마리, 많으면 7마리나 넘게 한 지역에 골고루 등장한다고 했다.

원인 모를 이 변화에 토벌자 협회도 곤란해하고 토벌자들도 상당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듯했다.

‘흐음……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던데.’

이전에 리자드맨 족장 때부터 시작해서 그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괴물들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토벌자들의 위상도 높아지니 어찌 보면 좋을 일이지만, 하현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사상자나 부상자는 없지만 더 심해지면 나올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돈이 잘 벌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것은 조금 찝찝하다. 하현은 일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지간하면 큰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우우웅.

하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유난히 상황이 딱 맞게 들려온 진동에 하현은 조금 불길함을 느끼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에 보내온 메시지는 하민철, 김아민, 두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전화번호 중에서도 유일하게 숫자가 아닌 글자로 떠오르는 곳.

토벌자 협회.

그곳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불안감이 드디어 확신으로 변한 하현이 메시지를 펼쳤다.

‘대규모 게이트 현상 발생. B급 이상 토벌자들은 협회로 집합해 주십시오.’

***

일반적으로 차원의 구멍은 한 마리의 괴물만 토해내고 다시 사라진다.

하지만 아주 간혹, 몇십 년에 한 번 재앙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고는 한다.

그것은 바로 괴물을 소환하고 사라져야만 하는 차원의 구멍이 닫히지 않는 것이다.

열려진 구멍은 일정 주기로 계속해서 괴물들을 토해내고 도시는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괴물을 토해내는 차원의 구멍, 협회는 그 현상을 게이트 현상이라고 규정했고 나타날 시 최우선 토벌 대상으로 정했다.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5개의 게이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아직까지는 나오는 괴물들의 수준은 D~C급이며 서로 간의 적대심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변할 수도 있으므로 B급 이상 토벌자분들만 지원해 주십시오.”

협회의 건물 곳곳에서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는 관리자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보였다.

메시지를 받고 모여든 토벌자들은 그 영상을 뚫어져라 살펴봤다.

“현재 3개의 지역은 인근 지역 내의 토벌자로 충분하지만 2개의 지역에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지원하실 토벌자분들은 협회 내부의 텔레포트룸으로 모여 주십시오…….”

관리자의 말에 토벌자들이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현에게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물었다.

“하현 씨는 안 가실 건가요?”

“음?”

익숙한 목소리에 하현은 고개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아민과 민철,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도 메시지 받고 오셨나보군요.”

“예, 협회의 개인적인 요청도 있었고 해서 왔어요. 길드원들을 배치해주다 보니 저희가 제일 늦었네요.”

여러 토벌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길드에게 도움을 구하면 인력을 쉽게 손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시 길드는 최우선 협상 대상이었다.

“그럼 검은 황소는 아래로 내려간 겁니까?”

“네, 저희는 지금 한창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니까요. 활약할 수 있을 때 잔뜩 해야죠.”

민철의 S급 달성 이후로 길드의 위상이 올랐다고는 하나 그전에 받은 타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린 스콜피온이 조금 주춤한 이 사이에 최대한 빠르게 피해를 복구하고 힘을 축적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 그린 스콜피온 쪽에서 접근은 없었나요?”

문득 떠오른 아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손을 써두기는 했지만 그린 스콜피온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시하고 손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 겉으로는 딱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아무리 그린 스콜피온이라고 해도 협회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협회에 하현과 그린 스콜피온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고해 뒀기에 현재 하현은 건드리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당장 안전해졌다는 뜻이다.

“뭐……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만.”

걱정하는 아민과 다르게 하현은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밤사이에 암살을 오던 던전 내에서 시비를 걸어주던 뭐든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바라고 있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조금 앙금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니까.’

아마 이 앙금이 모두 풀리려면 그린 스콜피온이 해체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기회만 잡히면 저번처럼 있는 대로 짓밟아 주리라고 하현은 속으로 다짐했다.

“하현 씨는 안 가실 생각입니까?”

여태까지 대화를 지켜보던 민철이 하현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하현은 조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갈까 했는데…… 지금 조금 고민 중입니다.”

메시지만 봤을 때는 당장 급한 일이다 싶어서 와봤더니 생각 이상으로 분위기는 차분했다.

토벌자들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불러들이고 있다 보니 빠르게 수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한번 가보시죠. 원래라면 조금 위험한 곳이라 권하지 않겠지만 하현 씨라면 문제없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저 게이트 현상도 한 번쯤은 경험해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길드장님 말씀이 맞아요. 다른 던전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니까요. 그리고 게이트 현상은 긴급 사태라서 업적 포인트도 두 배로 적용돼서 벌이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흐음.”

민철과 아민의 제안에 하현은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경험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업적 포인트가 두 배라면 또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긴급 토벌자 모집을 종료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신 토벌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방금 전에 이야기를 하던 관리자가 다시 화면에 나타나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했다.

그 단호한 말에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민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긴급 모집이 끝났네요. 아쉽지만 이제는 지원하셔도 업적 포인트 두 배는 못 받으시겠어요.”

“……벌써 아래쪽에 지원이 충분해졌다는 말입니까?”

자연재해 같은 재앙을 상대하면서 확신을 내리듯 말하는 그 태도가 하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고 저렇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 의문을 알아차린 민철이 대답했다.

“협회의 전력 분배 능력은 확실합니다. 모든 지역에 던전들이 폭주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토벌자들을 나누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니 말입니다.

“흐음.”

수백, 수천 개의 던전이 폭주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이 협회라고 생각하니 확실히 그럴싸했다.

게다가 게이트 현상도 이번에만 일어난 일이니 더욱 그렇다.

“그럼 뭐 저는 다음에 가보죠.”

하현은 미련 없이 깔끔하게 포기했다. 비상 상황도 해결되었고 2배라는 혜택도 사라졌으니 굳이 갈 필요성도 사라졌다.

던전에서 새로 배운 스킬이나 써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셔서 게이트를 경험해 보고 싶으시면 연락주세요. 그때는 저희가 개별적으로 모시러 갈게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두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한 하현은 협회의 밖으로 나왔다. 바깥의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휴대폰으로 게이트 현상에 대한 뉴스나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는 침착하단 말이야.’

하현이 보기에 게이트 현상은 당장 세계가 멸망할 것 같은 재앙 같았다. 하지만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는 그저 홍수 피해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그렇게 느껴질 만큼 협회가 처신을 잘했다는 뜻이겠지만 하현이 보기에는 그저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다섯 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나타났단 말이지…….’

오는 길에 찾아보니 게이트가 동시에 많이 생겨도 여태까지는 두 개가 최대였다.

물론 그때마다 게이트의 규모도 다 다르니 같다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요 근래 괴물들의 잦은 등장도 그렇고…… 아마 다른 토벌자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그 징조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그에 대한 내색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 준비는 갖추고 있으리라.

‘나도 조금 준비를 해둬야 하나.’

개인에서 할 수 있는 준비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을 아닐 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현은 던전에 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때.

콰득!

“음?”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하현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쓰레기였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금방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놓인 부서진 과자박스였다.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하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던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우웅!!

“……으음.”

침대 위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하현이 부스스 눈을 떴다.

‘몇 시야?’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2시쯤에 던전을 다 돌고 돌아왔으니 잠든 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누가 자꾸 연락하는 거야?’

하현은 얼굴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의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봤다.

‘토벌자 협회’

“…….”

그 글을 보는 순간 약간 멍했던 하현의 머리가 찬물을 끼얹어진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하현은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전화를 받았다.

“토벌자 최하현 씨 맞으십니까?”

조금 다급한 사내의 목소리. 그 뒤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는데 그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 큰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예, 제가 최하현입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비상사태가 발발해 하현 씨의 도움이 급히 필요해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

콰아아앙!!

“……!!”

하현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집이 뒤흔들리며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현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린 집의 바깥으로 나갔다.

“…….”

바깥으로 나온 하현은 멍하니 집의 담벼락을 바라봤다. 수리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난 담벼락이 녹색의 거인에 의해 부서졌다.

“캬르고오옥!!”

담벼락을 부슨 괴물은 하현을 발견하고 흉성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개…….”

“캬르악!!”

하현의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한 괴물은 하현을 찢어발기기 위해 달려왔다.

그 거친 움직임에 그나마 남아 있던 담벼락도 박살 났고 마당 또한 엉망으로 갈라졌다.

“그만해, 이 새끼야!!”

그 모습에 한계가 찾아온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뛰어올라 괴물의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

퍼억!!

괴물의 머리통이 담벼락처럼 가볍게 박살 났다.

무너진 몸은 이미 망신창이가 된 담벼락을 깔고 앉아 완전히 회생 불가능으로 만들었다.

“아……후우…….”

도대체 어째서 이곳에 괴물이 나타난 것인가? 그에 대해 하현이 의문에 휩싸였을 때, 전화기 너머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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