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여기…… 물 드세요.”
“…….”
다시 아민의 아파트로 돌아온 하현은 조용히 컵을 받아들였다. 말없이 한 번에 물을 들이켠 하현은 컵을 식탁에 내려두었다.
“흠흠. 그러니깐 집에 들어선 순간 원인 모를 불꽃이 터져 나왔고…… 그로 인해 집이 모두 불타신 거죠?”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운 아민의 물음에 하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전에 그린 스콜피온에서 이 일에서 떨어지라고 권유하러 온 걸 대차게 거절하셨고…….”
하현의 상황을 정리한 아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친놈들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짓까지 할 거라고는…….’
그린 스콜피온은 10대 길드 중에서 가장 세력이 넓고 악질이기로 소문난 길드였다.
토벌자로서의 사명감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이익을 쫓아 움직인다.
협회라는 중재자가 있지 않았다면 범죄자 집단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들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지만 이렇게 움직이다니.
“……그린 스콜피온의 짓이 맞겠죠?”
속을 다스린 하현이 조용히 물었다. 그에 조금 고민하던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런 미친 짓을 할 녀석들은 그 녀석들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증거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영악한 놈들이라 증거가 남을 행동은 하지 않거든요.”
그린 스콜피온의 손속은 거침없고 깔끔하다.
자신들에게 적대심을 드러낸 토벌자들이 은퇴를 했든 던전에서 사라졌든 말 한마디 없는 것을 보면 그 부분에서는 수준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아민의 말에 하현은 이마를 주물렀다. 확실히 물증은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범인은 그린 스콜피온이었다.
‘그놈들이 아니면 갑자기 내게 그런 행동을 할 녀석들은 절대로 없으니깐.’
심증은 확실하지만 물증이 없어 법적으로 제지를 못하는 상황.
그 사실에 하현은 분노보다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법적으로도 보복을 못하게 되었으니.
“아민 씨, 아까 전에 그린 스콜피온을 포함한 길드들이 공격한다고 했었죠?”
“네? 아 네…… 그렇죠.”
“아까 그 의뢰 받아들이겠습니다.”
“예?”
하현의 갑작스러운 수락에 아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현 씨 설마…… 정말로 그린 스콜피온한테 복수하시려는 거예요?”
누구든지 하현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을 당한다면 분노가 치솟아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덤벼들기에는 그린 스콜피온은 너무 큰 집단이었다.
당장 검은 황소가 목숨 걸고 전면전을 펼쳐도 질 수밖에 없는 덩치인데 하현 혼자라면 말이 필요 없다.
“의뢰를 받아주시는 건 고맙지만 저희가 원했던 건 하현 씨가 위험에 빠질 정도까진 아니에요. 그냥 어떤 던전의 완수 방법을 찾았다는 식의 소문을 퍼뜨리는 수준으로…….”
“걱정 마세요.”
걱정하는 아민을 달래듯이 하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뭘 하든 제가 죽을 일은 없어요. 그러니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 말 그대로 그린 스콜피온이 무슨 짓을 하든 하현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그린 스콜피온에게 제대로 되갚아줄 수 있는가, 그것뿐이다.
“그보다는 아까 주목을 끌 방법 말인데 지금은 생각해 두신 게 그것뿐인가요?”
“네? 음…… 그렇죠. 너무 심한 방법을 사용하면 정말로 하현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린 스콜피온의 구역 근처에 있는 던전의 완수로 이목을 끄는 게 가장 적당하고 생각했었어요.”
하현이 요 근래 던전을 완수한 유일한 인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적절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목만 끌뿐, 사실상 그린 스콜피온에게 가는 피해가 없는 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구역…… 이라고 말씀하시던데. 길드가 구역도 소유할 수 있습니까?”
한참 방법을 떠올리던 하현이 문득 아민의 말에서 기묘한 부분을 찾았다.
던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길드가 구역을 가진다는 것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 그게 공식적으로 구역이라는 건 없는데…… 암묵적으로 다들 인정하는 그런 느낌이에요.”
길드의 본부가 있는 곳 주변에는 당연히 해당 길드의 인원들이 더 많이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드의 거점이 놓이는 장소들은 그 길드의 ‘구역’으로써 토벌자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구역 내부에 있는 던전, 그리고 나타난 괴물들은 해당 길드의 소유라고 봐도 무방해요. 왜냐면 가장 먼저 출동할 수 있는 게 길드의 인물이니까요. 하지만 독점이 심하면 협회에 제지가 있어서 대부분 적당히 하는 편이에요. 그린 스콜피온은 빼고 말이죠.”
협회의 존재 덕분에 대부분의 길드들은 중소 규모의 길드나 개인 토벌자와 조율을 한다.
하지만 오직 그린 스콜피온만이 구역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든다.
협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암계약으로 토벌자들을 운용하고 자신들에 따르지 않는 토벌자들에겐 온갖 방해 공작을 일삼아 구역 안에서 내쫓는다.
그 악명이 어마어마한 탓에 그린 스콜피온의 구역은 가지 않는 것이 수칙이 될 정도였다.
“그런 짓을 일삼아도 이번과 같이 증거가 없어서 협회도 어떻게 못해요. 토벌자 집단의 암 덩어리라고 해도 무방한 존재죠.”
그린 스콜피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모두 들은 하현은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었다.
‘구역 내부의 던전은…… 모두 그놈들 소유나 다름없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 구역 내부의 던전은 자신들이 소유한 던전처럼 여겨지고 그들의 주 수익원일 것이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하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아민 씨 덕분에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오른 거 같습니다.”
“네?”
떠오를 만한 것이 있었나 싶은 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민의 얼굴을 본 하현은 그저 짙은 미소를 지었다.
***
B급 던전, 갈기 고블린 요새.
강력한 고블린이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산 속 요새 배경의 던전.
괴물의 질은 등급에 비해 낮지만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빼곡한 숲과 한 마리라도 놓치면 수백 마리로 되돌아오는 특성 탓에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던전의 숲에는 각종 마법 재료로 쓰이는 식물들이 풍부했고 고블린들 또한 값비싼 마법 아이템을 드랍해 그린 스콜피온의 구역 내에서는 손꼽히는 수익의 던전이었다.
화르르르륵!!
그리고 그 높은 수익을 자랑하는 던전 내부가 현재 산불로 뒤덮여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캬아악!! 뜨겁다!”
“물! 물을 가져와!!”
숲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은 고블린들과 숲 속에 숨겨진 요새들도 남김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불꽃에 던전의 보스, 아킥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어떤 미친놈이 이곳에 불을…….”
다른 고블린보다 머리가 좋은 아킥은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새가 있는 곳은 밀림의 중심.
화공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도 불에 휩싸여 죽겠다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도 무마할 수 없을 만큼 불꽃에 휩싸이는 요새를 바라본 아킥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음. 잘 탄다.”
그리고 그 불의 원흉인 하현은 산책이라도 하듯이 여유롭게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방화를 통한 대량 학살을 연속으로 성공하였습니다. ‘불의 폭군’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고블린들이 하현이 붙인 불길로 인해 타죽자 자연스럽게 경험치가 들어왔다.
쏠쏠하게 들어오는 경험치에 하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불이 더 잘 타오르도록 돌아다니며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숲이 모두 불타올라 불이 꺼져갈 때쯤.
-고블린 족장 아킥을 쓰러뜨렸습니다.
-던전 정지에 필요한 몬스터 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갈기 고블린 요새가 한 달간 비활성화됩니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아킥이 불꽃에 휩싸여 죽으면서 던전 정지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폐허로 변한 숲을 본 하현은 뿌듯한 표정으로 던전 밖으로 나왔다.
“야!”
던전에 나오기가 무섭게 성난 사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자신을 불렀음을 알고 있는 하현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봤다.
험상궂은 얼굴에 검은색 철제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 그 얼굴은 아민에게서 받았던 그린 스콜피온의 실력자 목록 중에 실린 한 명이었다.
“너 지금 저 던전을 정지시킨 거냐?”
사내의 말을 시작으로 그와 함께 있던 토벌자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사내와 하현을 둘러쌌다.
자신을 위축시키려는 그들의 모습에 하현은 피식 웃었다.
“정지시켰다. 왜?”
“왜? 허 참, 시팔 진짜 어디서 굴러들어온 새끼가 상도덕도 모르고…….”
하현의 당당한 대답에 기가 찬 듯 사내는 대놓고 욕설을 섞으며 중얼거렸다. 그 의견에 동조하듯 주변의 토벌자들도 하현을 향해 비난 섞인 시선을 향했다.
“C급 이상 던전은 정지 안 하는 게 예의인 거 몰라? 우린 뭐 정지 못 시켜서 안 시키는 줄 아냐고. 근데 어디서 갑자기 온 새끼가 똥오줌 못 가리고 개판을 만들어!!”
콰아앙!!
사내가 강하게 발을 굴리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위협에 하현은 자신은 둘러싼 토벌자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래서 뭐 불법이라도 되나?”
“……뭐?”
“던전을 정지한 게 불법이라도 되냐고. 나는 인류를 위해서 위험이 될 던전을 정지한 것뿐이야. 법적으로 문제되면 뭐라 하든가.”
기죽는 것도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하현의 모습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붉게 달아올랐다.
“쯧쯧.”
그리고 하현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순간, 분노가 터졌다.
“개새끼가!!!”
순식간에 주먹을 치켜든 사내는 무방비한 하현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후려쳤다.
빠아아악!!!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를 만큼 위력적인 주먹.
하지만 뒤로 살짝 밀리는 선에서 그친 하현은 주먹으로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먼저 쳤다?”
“뭐…….”
“대력타.”
콰아앙!!!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준비해 뒀던 하현의 대력타가 그의 몸을 후려쳤다.
공중으로 붕 떠오른 사내는 그대로 바닥을 몇 바퀴 구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
갑옷에 선명하게 남은 주먹 자국을 본 토벌자들 사이로 싸늘한 기류가 흘렀다.
그 분위기를 읽은 하현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바라봤다.
“니들도 쳐봐. 나처럼 맞고 멀쩡할 수 있으면.”
“…….”
하현의 말에 토벌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 날아간 사내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실력도 좋고 레벨도 높은 토벌자였기 때문이다.
“뭐야, 없어?”
눈치만 보고 덤벼들지는 않는 토벌자들의 모습에 하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 비꼼에 모두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토벌자를 노려봤다.
“없으면 꺼져. 괜히 자존심 세우는 척 하면서 뻗대지 말고.”
“…….”
하현의 시선을 피한 토벌자는 주섬주섬 옆으로 비켰다.
그 사이를 통과한 하현은 그대로 던전 밖으로 나왔다. 거리로 나온 하현은 목을 어깨를 매만졌다.
“흐음…… 전에는 250레벨로 간 보더니 이번에도 조금만 올렸네.”
방금 전 날려 보냈던 사내는 A급에 거의 도달한 280레벨로 상당한 강자였다.
하지만 이전에 250레벨 정도도 한 방에 쓰러뜨렸다는 것을 보면 그다지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여러 명을 보내면 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뭐 그렇게 느긋하게 해봐야 손해 보는 건 그놈들이니깐.’
어깨를 으쓱인 하현은 휴대폰을 꺼내 메모 기능을 켰다.
그리고 그 안에 적혀 있는 수많은 던전의 이름 중 방금 전 정지시킨 갈기 고블린 요새를 지웠다.
‘그새에 꽤 많이 했구만.’
상당수 지워진 것에 하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린 스콜피온의 구역으로 쳐들어온 지 12일째.
하현은 그동안 구역 내부에 있는 C, B급 던전을 닥치는 대로 정지시키고 시비 거는 길드원들을 박살냈다.
단순했지만 그 파급력 하나는 어마어마했다.
주 수익원인 던전이 하나둘씩 정지되는데 그것을 막지 못하자 그린 스콜피온 쪽은 조금씩 다급해졌다.
이 속도로 간다면 구역 내부의 C, B급 던전들이 모조리 정지되기 때문이었다.
‘C는 보통 2주에서 3주, B는 한 달. 순식간에 한 달 매출 박살이지. 거기다 소문도 빠르게 퍼지고 있고.’
10대 길드라고 불리는 곳이 구역을 헤집는 한 사람을 못 막고 있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갔다.
수익도 깎여 가서 답답해하던 찰나에 소문까지 퍼져 이미지도 깎이니 그린 스콜피온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다음에는 그래도 A급이 찾아오려나.’
우우웅
다음에 갈 던전을 고르기 위해 휴대폰을 보던 도중, 정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일에 아민이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전달하라고 붙여준 사람이었다.
“예, 무슨 일이세요.”
“하현 씨, 지금 어디 계십니까?”
“방금 갈기 고블린 요새 정지시키고 나오는 길입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매일같이 최소한의 휴식 시간만 가지고 하루에 두 개에서 세 개의 던전을 정지시킨다.
다른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태연히 해내는 하현의 모습에 정보원은 진심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 생겼습니까? 아직 정기 보고 시간은 아닌데.”
“아! 아무래도 그린 스콜피온이 이번에는 제대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거물이 지금 그쪽으로 들어갔습니다.”
“흐음…… 거물 말입니까?”
정보원의 말에 하현이 흥미로운 말투로 되물었다.
“네, 이름은 김태현. 레벨 340대의 A급 토벌자입니다. 무소속 토벌자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린 스콜피온의 사냥개로 이쪽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사냥개라. 대충 감은 잡히는데……. 일단 어떤 사람입니까?”
“아, 잠시만요.”
공원의 안으로 들어온 하현은 통화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벤치에 앉았다.
잠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정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록을 보면 주로 길드에 대항하는 토벌자들을 암살하는 데 쓰이지 않았나…… 라고 추측되는 인물입니다. 그 정도 레벨이면 제거되지 않는 사람이 드무니까요.”
A급 토벌자부터는 토벌자 내부에서도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특급 클래스이다.
300레벨 이상부터는 갑자기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 양도 늘어나고 괴물들의 수준도 확 올라가 노력만으로는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민 씨는 뭐라고 했습니까?”
“아 부길드장님은 현재 일이 막바지에 다다라 연락이 힘듭니다. 3일 정도면 일이 마무리될 것 같다고 전해 드리라고 하시더군요.”
“흠…….”
정보원의 말에 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민에게 받은 이목을 끌어달라는 의뢰도 어느새 3일 지나면 끝난다.
하지만 아직 복수를 완료했다고 하기에는 하현은 부족함을 느꼈다.
‘이왕이면 마지막에 한몫 거하게 챙기면서 엿을 먹여주고 싶은데.’
잠시 고민을 하던 하현은 정보원에게 물었다.
“김태현이라는 녀석 어떤 녀석입니까?”
“독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스킬을 지니고 있는 캔슬러 출신입니다. 성격은 거칠고 잔인하기로 유명한데 그 스킬 때문에 대인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태현의 정보를 들은 하현은 머릿속에 떠오른 작전을 이러지리 손보기 시작했다.
윤곽은 잡히지만 이 정도로는 조금 수지타산에 안 맞는다.
“그거 말고는 또 유명한 거 없습니까?”
“음…… 아, 집단 린치를 주로 쓴다는 정보도 있네요. 괴롭힐 가치가 없으면 직접 손을 안 쓰는 괴상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집단 린치라…….”
정보원의 말에 하현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정보로 어느 정도 계획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조건만 갖춰진다면 화려하게 복수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두 가지 정도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예, 말씀해주세요.”
“첫째는 제가 다음에 정지시킬 던전이 스낙의 거탑이라고 소문을 내주세요. 그린 스콜피온이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잘못하면 습격당할지 모른다고 했는데도 행선지를 알린다니. 하현의 위험해 보이는 부탁에 정보원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혹시…… 이런 물건을 좀 구할 수 있습니까?”
“네, 네?”
조용히 속삭인 하현의 부탁에 정보원이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할 수 없습니까?”
“으음. 조건에 부합되는 물건이 길드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기는 한데…… 꽤나 위험한 물건입니다. 어디에 쓰실지 모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하현 씨도 다칠 수도…….”
정보원에 말에 하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괜찮습니다. 그럼 소문은 바로 내주시고 물건도 최대한 빠르게 보내주세요. 알겠죠?”
“예, 예, 알겠습니다.”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정보원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집어넣은 하현은 벤치에서 일어섰다.
‘어떤 놈일지는 모르겠지만…… 라인 잘못 탄 줄 알아.’
“다음 던전이 스낙의 거탑?”
“예, 예. 검은 황소 내부에 숨어든 녀석이 알아온 것이니 확실합니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로 두 발을 올린 남자, 김태현의 물음에 중년의 남자가 가득 위축된 모습으로 대답했다.
본래 이 지역의 담당자로 나름대로 실력도 좋은 자였지만 태현의 앞에서는 그 부질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실력이 좋다고 해도 결국은 B급.
A급의 토벌자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들 몇 명 관리하는 자신과 달리 그는 간부들에게 직접 명령을 받는 위치였다.
“흐음…… 스낙의 거탑이라. 장소는 잘 잡혔네.”
피식 웃은 태현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사내를 바라봤다.
“그…… 최하현? 그 새끼 어떤 새끼라고 했더라?”
“뛰어난 방어 계열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캔슬러입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가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궤를 달리하는 스킬을 지녔다고 합니다.”
“흐음…… 궤를 달리한다…….”
콰작!
태현은 자신의 손에서 놀아나던 단검을 그대로 책상을 향해 내려찍었다.
끝부분이 갈고리처럼 휜 단검은 아주 간단하게 절반 이상 파고들어갔다.
“캔슬러 새끼들치고 제대로 된 새끼들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단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태현이 시선을 돌려 사내를 바라봤다.
뱀과 같이 날카로운 시선에 사내의 몸이 크게 위축되었다.
“지금 당장 250레벨 이상 애들 싹 다 모아서 던전 주변에 대기 타고 있으라고 해. 들어가면 그대로 밟게.”
“네, 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몇 개의 던전이 유지가…….”
푸쉬이익.
사내의 말이 끝나기 전에 태현의 단검이 녹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책상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뒤질래?”
짧은 한마디.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여 버릴 것 같은 태현의 살기등등한 시선에 사내는 다리를 떨며 곧장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지 중 하나가 병신이 되거나, 그냥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사내는 부디 태현의 기분이 풀리기를 속으로 싹싹 빌었다.
“꼭 두 번 말해야 알아 처먹는 새끼들이 있더라. 뒤지기 싫으면 그냥 한 번 말할 때 알아들어, 새끼야.”
“아, 알겠습니다!”
단검을 다시 거둬들인 태현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사내는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가서 애들 모아서 던전 정지시켜. 알았냐?”
“예, 예!”
“가 봐.”
태현의 말에 사내는 재빨리 방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벌벌 떨면서 처 말하네. 겁준 것도 아닌데 기분 더럽게…….”
나중에 잠시 손 좀 봐줘야겠다고 생각한 태현은 자신의 신발 아래에 깔려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리를 다니고 있는 하현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요새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설쳤다던데…… 어떻게 울어 재낄지 궁금하네.”
이미 태현에게 하현은 죽는 것으로 결정되었기에 어떻게 죽일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추악하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지, 그 순간을 기대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