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35화 (35/158)

# 35

9.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강철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내로 나온 하현은 만나기로 정했던 장소로 갔다. 골목길 안에는 이미 아민이 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민 씨.”

“아. 오셨군요.”

다가온 하현을 본 아민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아까 전에는 제가 너무 급했죠? 워낙 갑자기 일이 터진 터라 조금 그랬네요.”

“흠…… 일단 가벼운 일은 아닌 것 같던데 빠르게 이야기하죠.”

진정한 듯했지만 아직 다급함이 남아 있는 아민의 모습에 하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현의 제안에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저희 집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바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서.”

“괜찮아요.”

“그럼.”

하현의 수락에 아민은 거리를 좁히고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신형이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아민의 집 현관에서 나타났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선 하현과 아민은 이전처럼 부엌의 식탁에 앉아 서로를 마주봤다.

“그래서…… 길드에 무슨 일이 난 겁니까?”

도대체 검은 황소쯤 되는 길드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할 일이 무엇인가?

하현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하현의 모습에 아민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길드장님은 모두 내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셨지.’

민철이 어떤 일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현재 길드의 모든 결정권은 아민이 위임받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하현에게 의뢰하는 이번 일은 모두 아민이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조금 독특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일반적으로 캔슬러들이 가지는 특유의 거만함도 보이지 않았고, 침묵의 하수도에서는 본인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괴물들과 싸웠다.

요 근래 토벌자들 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나름대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야.’

하현이라면 길드의 상황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도 좋다고 결론을 내린 아민은 하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현재 길드에 처한 일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저희 길드는 다른 10대 길드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하현 씨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구요.”

“……10대 길드요?”

갑자기 스케일 확 커진 이야기에 하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민이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검은 황소는 급격하게 성장을 이룬 길드예요. 길드장님을 중심으로 약 10년 만에 10대 길드까지 세력이 확장되었죠.”

당시 굵직한 길드들이 몇 개가 돌연 해체되었을 때, 토벌자로서 두각을 드러냈던 하민철은 흩어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공백이 된 구역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때의 과감한 판단 덕분에 10년 지난 지금, 검은 황소라는 10대 길드가 탄생했던 것이다.

“기반이 탄탄치는 않았지만 길드장님을 비롯한 길드원들의 활약으로 저희는 금방 안정기에 돌입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었어요. 하지만…… 그게 다른 길드들에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에요.”

본래라면 자신의 아래로 들어와야 했을 구역들을 검은 황소가 집어삼키자 몇몇 길드가 앙심을 품었다.

그 결과가 지금 그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상황으로 연결된 것이다.

“세 개의 길드가 손을 잡고 저희 길드원들을 위협과 회유로 뒤흔들었어요. 그동안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본 상태구요.”

길드들의 공격에 검은 황소는 순식간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민철과 아민은 그것을 하현의 유명세를 통해 회복하려고 했었고 실제로 성공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회복이 무색할 정도로 길드들의 공작은 더욱 거세졌고 소유하고 있던 던전들을 정지시키고 인력을 배치해야 할 만큼 막다른 길로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음. 일단 상황은 알겠는데……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단 겁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을 것 같은데.”

몇 년째 지속된 길드간의 싸움을 뒤엎을 만한 능력은 아직 자신에게는 없었다. 하현의 말에 아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상황을 뒤엎을 방법은 저희가 준비하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아주 잠깐이라도 그 길드들의 이목을 모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걸 하현 씨가 해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검은 황소는 지금 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준비해 뒀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들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저도 힘든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만큼 의뢰를 받아주셨을 때 확실하게 답례를 치르겠습니다.”

“이목을 끈다…….”

아민이 부탁한 일에 하현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이목을 끄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다만 과연 자신이 정말로 할 수 있을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하현의 표정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아차린 아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하현 씨는 현재 토벌자들 내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요 근래 A급 던전에서 괴물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더 심해졌죠.”

기사의 무덤은 공개된 던전이기에 가끔씩 사냥하러 들어온 토벌자들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회피 위주로 연습하고 있었던 하현은 걸릴 것이 없다고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토벌자들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제 막 B급에 오른 토벌자가 A급 괴물을 잡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그거였나…….”

“그러니깐 하현 씨라면 분명히 가능해요.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세요.”

고개 숙여 부탁하는 아민의 모습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위험한 상태지만 역전할 방법은 확실히 있다. 대신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안 도울 이유는 없지만…… 섣불리 결정할 일은 아닌데.’

예전이라면 검은 황소를 적대하는 길드들의 텃세에 성장이 방해될까봐 포기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장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더 이상 길드들을 무서워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검은 황소를 돕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리고 누구를 돕는 게 더 이득인가 그 두 가지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잘 지냈다고는 하지만…… 해봐야 한 달도 채 안 됐지.’

그동안 만난 일이라고 해봐야 계약 때, 침묵의 하수도 때, 이 둘뿐이었다. 그 짧은 만남으로 검은 황소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뒷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동안 이들이 착해 보였다고 무조건 착하리란 법도 없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현은 차분한 표정으로 아민을 바라봤다.

“아직 뭐라고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군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저희도 그렇게 간단히 결론내릴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현의 말에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의뢰는 간단하게 결정을 내릴 만큼 작은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토벌자로서의 삶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큰일인 것이다.

“3일 안에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자리에서 일어선 하현은 아민의 배웅을 받으며 집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닥쳐온 일에 하현은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쉽사리 결론이 안 나네.’

만약 조금만 더 검은 황소나 상대 길드들에 대해 알았더라면 이리 고민하지도 않았으리라.

이래저래 일이 복잡하다 싶은 하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하현 씨.”

그때, 뒤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하현의 이름을 불렀다. 하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남자를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훤칠한 키에 입가에 맺혀 있는 부드러운 미소. 남자는 살가운 태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왠지 모를 불쾌감이 느껴졌다.

‘뭐하는 녀석이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불쾌감.

하현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현의 눈빛을 알아차린 것인지 남자는 명함을 건네었다. 명함을 받은 하현은 그곳에 적힌 글자를 읽어봤다.

‘그린 스콜피온 영업부장 이태식.’

10대 길드 중 하나인 그린 스콜피온. 그곳에서 자신을 찾아온 것을 깨달은 하현은 명함을 건넨 사내, 태식을 바라봤다.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최하현 씨.”

***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드시고 싶으신 거라면 뭐든지 시키셔도 됩니다.”

하현을 이끌고 레스토랑으로 온 태식은 곧장 모든 테이블을 사들였다.

덕분에 넓은 레스토랑의 내부에는 오직 하현과 태식, 두 사람뿐이었다.

“점심시간에 찾아온 것도 다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야기 나누려고 온 것입니다. 괘념치 마시고 시키시죠.”

“……그러면 A세트로.”

뭘 먹어도 익숙하지 않은 메뉴들이었기에 하현은 메뉴판에 보인 메뉴중 하나를 골랐다.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레스토랑의 직원을 불렀다.

태식이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하현은 그를 바라봤다.

‘아마…… 검은 황소와 대적한다는 길드중 하나가 이 녀석들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갑자기 10대 길드가 접근해올 리가 없다.

도대체 어떤 제안을 하려고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인지 하현은 궁금해졌다.

“보아하니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셨으면 하는 얼굴이군요.”

“그렇죠.”

하현의 대답에 태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명 아민과 비슷해 보이는 인상인데 어째서인지 이 남자만큼은 불쾌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럼 음식이 나오기 전에 살짝만 이야기해 둘까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괸 태식은 하현을 바라봤다.

“제가 하현 씨를 찾아온 것은 그만 검은 황소와의 인연을 청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태식이 말해오는 것은 예상대로 검은 황소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현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식을 바라봤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야 현재 저희 그린 스콜피온이 검은 황소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죠.”

나름대로 숨길 만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태식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런 당당한 태도에 하현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10대 길드인 적랑, 블라우 슈랑에, 두 길드도 저희와 함께 검은 황소를 공격하고 있지요.”

“……딱히 당당히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거리낌 없으시군요. 알려져도 상관없는 겁니까?”

“네, 알려져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말을 멈춘 태식은 피식 웃으며 하현을 바라봤다.

“이 사실을 알리셔도 과연 원하시는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지…….”

조금 미묘한 태식의 말에 하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과연. 불쾌함의 원인이 이거였나.’

과거 아민이 자신의 길드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었다면 태식은 자신의 길드를 힘입어 하현을 완전히 깔보고 있었다.

언제든지 짓밟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대하는 것처럼.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재 저희 세 길드는 검은 황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검은 황소가 가져간 저희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죠.”

“권리?”

“예, 본래 저희들은 10대 길드가 아니라 9대 길드여야 했습니다. 검은 황소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들은 본래 저희 세 길드가 나눠 먹었어야 할 구역. 그것을 하민철 길드장이 갑자기 나타나 모두 빼앗은 것입니다.”

검은 황소가 일의 원흉이라는 듯 이야기하는 태식. 그 말에 하현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몇 개의 길드가 무너졌을 때 검은 황소가 수습한 걸로…….”

“아아, 그건 아니지요.”

하현의 말을 들은 태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잘랐다. 그 일방적인 태도에 하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검은 황소의 주장입니다. 원래 자신의 사정을 직접 말할 때는 가해자도 피해자가 되지 않습니까. 검은 황소의 의견도 그런 것입니다. 그걸 그대로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태식의 말대로 아민이 말한 사정은 모두 자신들 위주로 말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현도 그것을 경계하고 의뢰의 결정을 미뤘었다. 하지만 그것은 검은 황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쪽이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대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하현 씨의 말대로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하현의 지적에 태식은 예상외로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쪽은 10대 길드가 셋. 저쪽은 검은 황소 단신입니다. 그런 사실 따위는 처음부터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지요.”

하현의 태도가 살갑지 않자 태식은 곧장 태도를 고쳤다.

미소는 여전히 입가에 머금고 있었지만 그 말투나 행동에서 묻어나는 거만함을 숨기려는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검은 황소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해도 그들은 저희들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길드에 들어온 하현 씨가 그런 아무래도 좋은 사실에 매달릴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희생하기에는 하현 씨가 지닌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장황하게 말 늘리지 말고 짧게 말하세요.”

태식의 거만한 태도에 하현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태식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리고 미소를 유지한 채 조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니깐…… 검은 황소랑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면 그만 손 털고 나오시라는 겁니다.”

태식의 말이 나옴과 동시에 두 사람의 테이블에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는 사이 음식을 가지고 온 직원들이 하나씩 세팅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하. 제가 너무 말이 심했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의 뜻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현 씨가 지닌 재능은 고작 그런 곳에서 사라질 만한 것이 아닙니다.”

분위기를 전환하듯 말투를 고친 태식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아직도 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경고가 서려 있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시고 천천히 다음 이야기를…….”

“그만.”

일방적으로 말을 자른 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봤다.

태식은 말을 멈추고 일어선 하현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도 알겠고 나름대로 나를 위한 충고라는 것도 알겠어. 근데…….”

태식의 이야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하현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만한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하현은 태식을 노려봤다.

“너도 죽기 싫으면 함부로 사람 깔보지 마, 새끼야.”

하현은 자신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차렸다.

시종일관 자신을 깔보는 태식의 태도. 그 행동이 마치 이전 세계에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현은 그에 대한 불쾌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10대 길드를 적으로 둔다는 것은 생각하신 만큼 멋진 일이 아닙니다. 후회하시기 전에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자리에 앉으시죠.”

미소를 지우지 않은 태식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압도적 우위라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그 모습에 하현은 피식 웃었다.

“후회하게 해봐. 10대 길드고 지랄이고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니깐. 그리고.”

말을 멈춘 하현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태식을 바라봤다.

“나이 처먹고 숫자 놀이하고 싶으면 적당히 쳐해. 말끝마다 10대 길드. 10대 길드. 쪽팔린 줄 알아야지…… 등신 새끼.”

마지막 말을 끝마친 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레스토랑의 밖으로 나갔다.

“…….”

한 입도 먹지 않은 음식들이 나열된 테이블에 앉아 홀로 레스토랑에 남은 태식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새끼, 처분해.”

전화가 끊어지고 태식은 휴대폰을 내렸다.

콰작!

손에 들린 휴대폰은 종이 쪼가리처럼 처참하게 박살났다.

***

“진짜 별 등신 같은 새끼를 다 보겠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하현은 분을 삭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그들이 유리한 상황이고 거대 길드라고 해도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었다.

태식의 시선, 행동은 거만함 그 자체였다.

자신들이 10대 길드고 강하기 때문에 하현은 당연하게 자신들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따르지 않으면 처분한다.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품은 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제안이 아니라 강요였다.

‘그런 놈이 영업부장이면 그 길드도 정상일 리가 없지. 어떤 놈들인지 알아봐야겠어.’

어떻게 알아볼지 방법을 생각하며 집에 도착한 하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음?”

집 안으로 들어선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코에 풍기는 기묘한 냄새.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집 안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건 뭐…….”

파칵.

하현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 무언가 부딪치는 건조한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하현의 발밑에서 터져 나온 강렬한 불꽃이 그대로 집 전체를 불사르며 솟구쳤다.

“……트랩 발동 확인했습니다. 이동하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꽃을 확인한 남자들이 이윽고 그 모습을 감췄다.

퍼어엉!!!

하현의 집에서 터져 나온 불꽃은 만족을 모르는 듯 몇 번이고 불꽃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불꽃들이 꺼졌을 때는 집의 기둥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불타올라 사라졌고.

“…….”

어느새 슈트로 갈아입은 하현이 본래 거실이었던 곳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

하현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무슨 술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주변의 민가는 약간의 피해도 없었다.

하지만 하현의 집에 남은 것은 그을린 자국과 흩날리는 재뿐. 자신의 돈을 털어 구매했던 주택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쓰으으읍……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신 하현은 이전에 강철에게서 배운 시련의 응용법을 떠올리며 사용했다.

[아민과의 대화.]

상대방이 허락한다면 거리의 제한 없이 휴대폰을 대신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없음.

보상 : 아민과의 대화.

-시련을 수락하고 상대가 수락하는 즉시 완료됩니다.

곧장 수락한 하현은 아민의 답신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당혹스러워하는 아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하, 하현 씨? 이런 연락 방법은 어떻게…….

“아민 씨.”

아민의 말을 자른 하현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말했다.

“그린 스콜피온 그 새끼들, 족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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