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32화 (32/158)

# 32

대련으로 더러워진 옷을 강철에게 받은 추리닝복으로 갈아입은 하현은 다시 거실에서 강철과 마주 보고 앉았다.

“흠…… 우선 앞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하현을 살펴본 강철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든지 물어보세요.”

“너 캔슬러지?”

레벨이 높아질수록 얼마든지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스킬을 만들어 내거나, 전투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하현이 지닌 힘은 명백히 그 레벨의 선을 넘어서 있었다.

“네,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확신이 담긴 강철의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그런데 그렇게 티가 많이 났습니까?”

다른 토벌자들과 겉모습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하현은 강철이 확신에 가깝게 이야기하자 조금 궁금해졌다.

그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좀 그렇지. 캔슬러인 토벌자들은 어지간해서는 티가 나는 법이거든.”

“어떻게 납니까?”

“흠. 우선 지금 내가 본 모습으로만 하자면 첫째로 토벌자로서의 지식이 조금 부족하다는 거지.”

지식의 부족이라는 말에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나름대로 토벌자에 대한 지식은 알아 두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흠…… 부족하다면 아까 전에 말씀하신 시련의 활용법 같은 거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건 아는 놈들만 아는 거라 조금 애매해. 굳이 말하자면 장비와 스킬이라는 거겠지. 너 싸울 때 끼는 액세서리 꺼내봐.”

강철의 말에 인벤토리를 연 하현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액세서리인 에리슨의 펜던트를 꺼냈다.

그러자 강철이 보라는 듯 펜던트를 가리켰다.

“봐라. 벌써 이렇게 차이가 나지 않냐.”

“어떻게 차이가 난다는 겁니까? 이 정도면 좋은 아이템일 텐데.”

에리슨의 펜던트라면 누가 보아도 상당한 성능을 지닌 액세서리다. 그런데 지식이 부재라니, 하현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대다. 좋은 아이템을 껴서가 아니라 좋은 아이템만 끼고 있는 게 문제지.”

“좋은 아이템만이라면…… 다른 걸 안 꼈다는 게 문제입니까?”

“그래, 보통 토벌자라면 성능이 좋지 않은 액세서리라도 우선 되는 대로 낀다. 왜냐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거든.”

아무것도 끼지 않는 것과 방어력을 10이라도 올려주는 반지를 끼는 것.

어느 쪽이 이득이냐고 하면 당연히 후자다. 하지만 캔슬러들은 조금 달랐다.

“캔슬러들은 레벨을 넘어선 강함 탓에 매번 전투에서 여유가 넘치지. 그렇다 보니 사소한 스탯의 차이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확실히 그러네요.”

강철의 말에 하현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당장 전투에 부족함이 없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낮은 성능의 장비를 무시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여유가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어. 막말로 길 가다가 갑자기 A급, S급의 괴물이 튀어나온다면 어쩌겠냐. 그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얼마 안 되는 스탯도 중요해.”

강철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죠.”

사실 강철이 말한 예시는 하현에게 통용되지 않았다. A급이든 S급이든 결국 자신을 못 죽일 테니.

하지만 강철의 말대로 적게나마 민첩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장착했으면 사냥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다.

‘언젠가 좋은 액세서리 얻으면 그때 끼면 되지 라고 생각한 게 너무 여유로웠어.’

굳이 착용 안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착용한다고 손해 보는 것도 없었다. 하현은 자신의 안일함에 조금 반성했다.

“일단 스킬은 내일부터 배우고 오늘은 가는 길에 협회에 들러서 장비부터 장만해라. 돈에 여유 있으면 열 손가락부터 귀고리까지 꽉꽉 채워.”

“예, 알겠습니다.”

하현이 대답을 들은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추리닝은 내일 와서 돌려주면 되니 오늘은 입고 가라. 한…… 아침 8시쯤에 오면 되겠군.”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강철의 배웅을 받으며 주택의 밖으로 나온 하현은 강철의 충고대로 곧장 아이템을 장만하기 위해 협회로 향했다.

협회의 10층.

그곳에는 협회가 소유하고 있는 스킬, 칭호,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마켓이 존재했다.

10층에 도착한 하현은 직원을 향해 다가갔다.

“어떤 용무로 찾아 오셨나요?”

“액세서리를 구매하려고 왔습니다.”

“액세서리 말씀이시군요. 앞에 설정창을 띄워드릴 테니 원하시는 조건을 골라서 설정해 주시면 찾아드리겠습니다.”

직원이 가볍게 키보드를 두들기자 곧장 하현의 앞으로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아이템의 부위, 원하는 효과, 조건의 유무 등을 결정할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거라면…… 역시 민첩이지.’

마나는 에리슨의 펜던트가 워낙 회복 옵션이 좋은 탓에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하현은 이참에 부족한 민첩 스탯을 커버해 볼까라고 생각했다.

‘반지 10개랑 귀걸이 2개. 전부 민첩을 베이스로 고르고 조건은 없음. 그리고…….’

한참 원하는 구매의 설정을 맞춰 가던 하현의 눈에 마지막에 있는 설정창이 눈에 보였다.

그곳에는 저주의 유무라는 조금 낯선 설정창이 적혀 있었다.

‘저주의 유무라면…… 아!’

의아해하던 하현은 에리슨의 펜던트를 떠올렸다. 대충 무슨 설정인지를 알아차린 하현은 곧장 설정을 마친 뒤 완료를 눌렀다.

“아이템 설정이…… 응? 저주가 있는 아이템으로 설정하셨는데 괜찮으세요?”

잘못 설정한 것 아니냐는 직원의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조건에 해당되는 아이템들 띄워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하현의 눈앞으로 아이템들의 목록이 나타나 있는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성능과 가격대를 본 하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아이템의 매물이 찾기 힘들 정도로 깊숙한 곳에 있다는 말에 하현은 내일 강철에게 가기 전에 찾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해 수령을 미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시.

아이템을 수령 받고 나온 하현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은 아이템들을 건졌네.’

하현은 자신의 열 손가락을 가득 채운 반지들을 바라봤다. 색색의 작은 보석이 하나씩 박혀 있는 반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 반지들의 효과는 상당했다.

‘10개의 반지 모두 민첩을 10~20 이상 높여준다. 거기다가 귀걸이는 민첩뿐만 아니라 마나 회복량도 올려줘서 총 30%나 올라갔고.’

약소하게나마 능력치를 올리려고 찾아왔던 것과 다르게 하현의 스탯은 놀라우리만치 크게 상승했다.

무려 민첩이 200 넘게, 레벨로 치자면 40이나 오른 것이다.

‘이것들이 다 합해서 고작 1억 정도라니. 정상적으로 샀으면 3억은 훨씬 넘게 깨졌을 텐데.’

보통 액세서리라면 단독 효과만으로는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지만 하현이 고른 반지 중에는 단독 효과로도 수천만 원은 받을 아이템도 몇몇 개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하현은 일반적인 가격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격으로 액세서리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민첩 강화의 반지

내구도 10/10 마법 방어력 5

민첩를 강화시켜주는 마법이 걸려 있다. 하지만 불균형한 마법이 담겨져 있어 착용자의 신체를 흩뜨립니다.

-민첩 스탯 5%증가.

-민첩을 제외한 착용자의 전 스텟을 15% 감소시키고 마나의 최대량이 300 감소합니다.

하현이 고른 10개의 반지. 그것은 일반 토벌자들이라면 절대로 착용하지 않을 치명적인 디버프가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 해도 그보다 심한 디버프가 있다면 당연히 쓸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그 모든 디버프들을 불간섭으로 막을 수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은 가격에 뛰어난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디버프 아이템들을 착용한다. 이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조금만 더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진작 착용해서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라면 템들이 너무 없다는 거지.’

디버프가 담겨진 아이템들은 성능이 좋을수록 디버프가 더욱 강해진다.

하현이 낀 반지들도 예전에 어떤 토벌자가 팔고 몇 년 이상 협회의 창고에 처박혀 있는 것들이 쌓인 것이니 말 다한 것이리라.

‘저주 아이템들은 다 마법 추출에 사용한다니 다음에 한 번 그쪽에 찾아가 봐야지.’

아이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하현은 어느새 강철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꽤 일찍 왔군.”

하현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철을 바라봤다.

이전과 같은 동네 할아버지의 간소한 차림이 아닌 검은색 도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숙련된 무술인 같았다.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불편할 것 없이 잘 잤지. 그나저나 너는…….”

어깨를 매만진 강철은 하현의 몸을 살펴봤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귀걸이와 반지의 모습을 본 강철은 씩 미소를 지었다.

“시킨 대로 장비는 확실히 마련한 것 같군.”

“예, 장비 하나 바꿨는데 어제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뭐. 스탯이 높아졌다고 또 무조건 강해졌다고는 볼 수 없지. 너무 자만하지 마라.”

하현의 말에 피식 웃은 강철은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네게 스킬을 전수하겠다. 방법은 두 가지, 던전에서 사냥을 통한 실전 방법과 간단하게 내가 그냥 전수해 주는 것. 어느 쪽이 좋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스킬을 전수받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하현은 두 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수하는 건 별다른 특징도 없다. 대신 실전을 통해 가르치는 건 전수를 하면 스킬을 받았을 때 레벨이 올라가 있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 약간의 위험만 감수하면 그 편이 시간 대비로 효율이 좋아.”

“그런 거라면 실전으로 하겠습니다.”

하현은 망설임 없이 후자를 골랐다. 어차피 던전에 가서 죽을 일도 없고 스킬 레벨도 높아진다는데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하현의 호쾌한 대답에 강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래저래 나랑 잘 맞는 것 같군. 뭐 혹시 잡았으면 하는 유형의 괴물은 있냐?”

“딱히 그런 건 없지만…… 이왕이면 스킬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일대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요.”

하현의 말에 강철은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던전의 정보를 뒤져봤다.

그리고 이내 적당한 곳을 떠올렸는지 입을 열었다.

“딱 좋은 곳이 있긴 한데…… 거기가 아직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군. 일단은 가보자.”

“예.”

하현과 강철은 그대로 지하철을 이용해 던전을 향해 갔다.

하현은 그렇다 쳐도 강철은 의상부터 생김새까지 상당히 돋보였기에 가는 길에 수많은 시선을 받았다.

“……꼭 지하철로 와야 했습니까?”

주변에 몰리는 시선에 조금 무안해진 하현이 조심스레 강철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강철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게 더 싸. 돈 좀 번다고 팍팍 쓰면 금방 바닥난다.”

“흠흠…….”

강철의 충고에 볼을 긁적인 하현은 주변을 봤다.

토벌자가 워낙 흔한지라 그렇게 수상하게 여기는 표정들은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불안감 같은 것이 서려져 있었다.

‘뭐지…… 선생님이 무섭게 생겨서 그런가?’

강철의 생김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하현이 의아해하는 사이 주변을 흘끔 본 강철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요 근래 조금 뒤숭숭하다더니 사실인 것 같군.”

“뒤숭숭하다니요?”

하현의 물음에 강철은 모르고 있었냐는 듯 바라봤다.

“요 근래 차원의 구멍 발생 빈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이래저래 긴장된 상태다. 뉴스에도 몇 번 나왔는데 못 봤냐?”

“……아, 제가 또 뉴스 같은 걸 잘 안 봐서.”

집에서 아침을 먹고 밖에서 던전을 돌면서 점심과 저녁을 챙겨먹고 새벽쯤 돼서 집에 돌아온다.

그다음에는 바로 잠을 자는지라 사둔 TV는 잘 보지도 않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괴물들에 대한 정보는 늘 알아 둬라. 밥벌이를 떠나서 그것들을 처리하는 게 토벌자들의 의무니깐.”

“……예.”

토벌자의 의무. 당연한 것 같은데도 조금 낯선 그 단어에 하현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이군. 20년은 더 됐나.”

“산에 있는 던전은 또 처음이네요.”

강철이 데리고 온 던전은 도시 쪽에 있는 한 야산의 중턱이었다.

어느 정도 던전에 가까워지자 던전의 주변을 감싼 검문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

거의 요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차원이 다를 두꺼운 방벽. 거기다 B급 던전보다 거의 두 배는 돼 보이는 관리자들의 수와 무장 상태.

그 살벌한 분위기에 하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저…… 여기 난이도가 어떻게 됩니까?”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호위에 하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물음에 강철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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