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8.노장의 모든 것
‘이 집인가…….’
홍삼 세트를 한 손에 든 하현은 눈앞에 보이는 집을 바라봤다.
도시의 외곽 지역, 작은 동네 안에서도 크게 눈에 띄지도 않는 평범한 주택.
하지만 그 실상은 20년 전 S급에 근접했던 토벌자, 마강철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초인종을 앞에 두고 가볍게 심호흡을 한 하현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짧은 벨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인터폰 너머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토벌자인 최하현이라고 합니다. 마강철 어르신을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
하현의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대문 너머 현관문이 열리면서 사진으로 보았던 마강철이 걸어 나와 대문을 열었다.
“방금 토벌자라고 했나?”
회색 러닝과 파란 반바지에 녹색 슬리퍼. 동네 할아버지라고 해도 좋을 만한 옷차림이었지만 마강철의 몸이 그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키는 2미터를 훌쩍 넘겼고 팔은 하현의 머리통, 허벅지는 하현의 허리만 했다.
그냥 규격이 다르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모습.
“예, 최하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하현은 기죽는 것도 없이 평범하게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했다.
“이렇게 찾아뵙게 되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만나 뵙고 싶어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흐음…….”
깍듯한 하현의 인사에 마강철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하현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돌렸다.
“일단은 들어오게.”
“감사합니다.”
하현은 곧장 마강철을 따라 주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집의 안은 겉과 똑같이 별다른 특징 없이 일반적인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라면 혼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럿이 사는 것처럼 가구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 앉게나.”
거실의 바닥에 앉은 마강철은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하현은 시키는 대로 마강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상자를 마강철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빈손으로 오는 건 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별거 아니지만 가져와봤습니다.”
갑자기 불쑥 찾아왔는데 이런 최소한의 선물이라도 없으면 정말 실례라고 생각에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괜찮네. 아직 자네와 초면인 데다 어떤 인연으로 될지 모르는 이상 이런 물건을 섣불리 받고 싶진 않군. 마음만 받겠네.”
마강철은 하현에게 받은 홍삼 세트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하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신중한 인물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하현은 홍삼을 옆으로 치워 두었다.
얼추 이야기할 분위기가 잡히자 마강철이 하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하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협회에 등록된 어르신의 스킬들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원하는 전투 방법을 그대로 옮겨 둔 것 같더군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어르신에게 직접 배웠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스킬은 만든 당사자에게 직접 배우면 추가 경험치도 얻을 수 있고 사용법도 빠르게 익힐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스킬을 공개한 토벌자의 성격이 좋은 편이라면 이렇게 직접 찾아가 돈을 주고 배우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나에게서 직접 스킬을 배우고 싶다…….”
하현의 말을 들은 마강철은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살펴봤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몇 년이 지나도 이런 녀석들은 꼭 온단 말이야.’
토벌자를 은퇴하고 20년. 하현과 같은 이유로 마강철을 찾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지 않고 찾아왔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 년에 두 명은 꼭 왔었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마강철은 자신을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잉, 쯧! 협회 놈들이 스킬에 공개된 이름만 지워줬어도…… 업적 포인트가 모자라다고 안 없애준다니. 그놈의 업적 포인트에는 무슨 꿀을 발라 뒀나.’
어떻게 보면 미련처럼 남은 자신의 후대 양성의 욕심이 잘못인 것도 있지만 안 찾아온다면 그럴 일도 없지 않은가.
마강철은 속으로는 마구 투덜거리면서도 여전히 고뇌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엄청 엄격하고 진지한 사람은 아닌가보네.’
나름대로 무게를 잡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하현의 눈에는 본래의 성격이 어떤지 어렴풋하게 보였다.
눈동자에서 그 가벼운 느낌이 폴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지 자신을 내켜 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보였다.
‘혹시 공개 안 한 다른 좋은 스킬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왔더니…… 힘드려나.’
마강철이 공유해 둔 스킬들은 하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킬들을 먼저 만들어 둔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하현은 마강철이 공개하지 않은 다른 스킬들에 대한 욕심도 생겼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번 정도는 더 찔러 봐야지.’
한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하기에는 마강철의 스킬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하현이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마강철이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좋네. 스킬을 가르쳐주지.”
“예?”
생각보다 흔쾌히 수락하는 마강철의 대답에 하현은 의외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강철이 말을 덧붙였다.
“단, 자네가 정말로 내 스킬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말일세.”
“증명…… 말입니까?”
“그러네, 몇 가지 시험만 해보면 바로 알 수 있지.”
강철은 속으로 씩 웃었다. 자신의 후대 양성의 욕심과 귀찮음을 타협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험.
여태까지 찾아온 녀석들 중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시험입니까?”
“별로 어려운 건 아닐세. 내 스킬을 알고 있다면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는 알고 있겠지.”
마강철의 스타일은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이용한 마치 전차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었다.
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강철이 씩 웃었다.
“그럼 간단하네. 레벨 대비로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 그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면 되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마강철의 시험.]
마강철에게서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시험을 통과하여 마강철에게 인정받으십시오.
난이도 : 없음
보상 : 마강철의 인정
‘……이런 것도 시련이 가능해?’
눈앞에 떠오른 창에 하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련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종의 시스템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것까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수락하지 않을 건가?”
“아, 아뇨, 하겠습니다.”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좋네, 그럼 밖으로 가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마강철은 그대로 마당으로 향하는 큰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현은 엉거주춤 그를 따라 여분의 슬리퍼를 신고 따라갔다.
“그럼 시작하겠네.”
마당으로 나온 마강철은 손바닥을 바닥으로 향한 채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의 아래로 무언가 빛 같은 것이 뭉치는가 싶더니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목각 인형이 생겨났다.
‘뭐…… 마법도 배운 거야?’
갑작스러운 소환 마법에 하현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 하현의 앞에 또다시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강철의 시험1]
목각 인형을 통해 강한 공격력을 증명하십시오.
난이도 : 없음
보상 : 다음 시험으로 연계됩니다.
“이거…… 뭡니까?”
“음? 보다시피 자네의 힘을 측정할 목각 인형이네만.”
무슨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마강철의 물음에 하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니깐…… 소환 마법 같은 걸 배우신 겁니까?”
“아니, 시련을 활용해서 소환한 걸세. 혹시…… 모르는 건가?”
강철의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도 이런 식의 활용법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흠…… 일단 그건 시험에 통과하면 알려주겠네.”
강철이 사용한 것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시련의 활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지금 설명해 줄 이유는 없었기에 강철은 대충 미뤄두고 목각 인형의 배를 가볍게 두드렸다.
우우웅.
강철이 두드린 곳이 희미하게 빛을 내더니 이곳을 때리라는 듯 붉은색 원이 새겨졌다.
“이 목각 인형은 자네의 힘 스탯을 레벨 대비로 측정할 걸세. 내가 바라는 수치는 60% 이상일세.”
“흠, 그냥 붉은색 원을 힘껏 때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러네.”
강철의 대답에 하현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온 정장 상의를 벗어 마당의 의자에 올려다 놓았다.
그리고 셔츠를 걷어 올린 뒤 주먹을 꽉 쥐었다.
“흐읍!!”
빠아아악!!!
하현은 온 힘을 다해 있는 힘껏 목각 인형을 후려쳤다. 그러자 목각 인형이 부서질 것처럼 뒤로 크게 휘청거렸다.
‘호오.’
그 통쾌한 일격에 강철은 의외라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봤다. 여태까지 찾아온 녀석들 중에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일격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준비는 좀 된 놈인데?’
미친 듯이 흔들리던 목각 인형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강철은 결과를 보기 위해 목각 인형의 정보창을 바라봤다.
“뭐……?”
산전수전은 다 겪은 토벌자 마강철.
그런 그가 입을 떡 벌린 채 떠오른 정보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하면 또 별다른 일은 아니었다.
[하현 : 100%]
그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수치가 떠있었을 뿐이다.
정보창에 떠오른 숫자를 본 강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눈이 침침해진 것인가 하고 눈가를 매만지고 다시 보았지만 그 결과는 여전했다.
‘배, 백 퍼?’
레벨 대비로 힘에 투자한 비율이 백 퍼. 그렇다는 것은 올힘이라는 미친 짓거리를 벌였다는 것이 아닌가?
“어르신?”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강철의 모습에 하현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철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 흠흠! 아무것도 아닐세.”
자신도 모르게 본래 말투가 나온 강철은 헛기침을 하며 말투를 바꿨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목각 인형의 정보를 바라봤다.
‘……살다 살다 별걸 다 보는군.’
일단 기준선은 통과했다. 마강철은 정보창을 끄고 하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단 첫 번째 시험은 통과했군. 두 번째로 넘어가겠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완료창이 뜨자 목각 인형이 나타날 때와 같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해서 두 개의 하얀색 글러브가 강철의 손위로 나타났다.
[마강철의 시험2]
마강철과의 대련으로 방어력을 증명하십시오.
난이도 : 없음.
보상 : 마강철의 인정.
‘대련인가.’
방어력을 확인하는 방법이야 역시 맞는 것밖에 없다. 하현은 글러브를 손에 끼고 있는 강철을 바라봤다.
“이 두 개의 글러브는 내 공격력을 자네의 레벨에 맞춰서 펼쳐지게끔 만들어주는 걸세. 만약 5분간 내 공격들을 버텨낸다면 자네를 인정하겠네.”
하현을 바라보는 강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올힘에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필시 방어력은 낮을 거다. 어떤 대책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했다면 고생 좀 할 거다.’
이글거리는 강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하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시련이 수락되자 강철은 천천히 자세를 잡아보였다. 복장만 보자면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아야만 하지만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가 얕볼 수 없게 만들었다.
‘5분간 그냥 맞고만 있어도 되지만…… 대강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곧 자신이 배우게 될 힘이니 제대로 한번 겪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철을 따라 자세를 잡은 하현은 숨을 가다듬고 전신을 긴장시켰다.
팟!!
바닥을 박찬 하현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강철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빈틈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맞은 다음 대응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리석군.’
하지만 그런 하현의 행동에 강철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쾅!!
앞으로 내딛은 강철의 발이 땅에 움푹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하현의 주먹을 무시한 채 주먹을 내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자신에게 들이닥칠 주먹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먹을 내지르는 강철의 무모한 모습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현은 자신의 가슴팍에 다가온 강철의 주먹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퍼어억!!
강철의 주먹에 얻어맞은 하현의 몸이 튕겨나가다시피 뒤로 날아갔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호흡을 끊고 들어온 주먹은 하현의 자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흠?”
바닥을 구르는 하현의 모습을 보던 강철은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봤다.
분명히 때렸는데 그 특유의 손맛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걸 때린 기분인데.’
강철이 조금 찝찝한 표정으로 주먹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바닥에 넘어진 하현은 방금 전 공방을 떠올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먼저 내질러졌던 자신의 주먹은 처음부터 빗나간 것처럼 강철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뒤늦게 내질러졌던 강철의 주먹이 자신의 주먹과 거의 비슷하게 몸을 후려친 것이다.
‘분명 레벨이 맞춰진다고 했으니 스탯의 차이는 거의 없을 테고…… 시동어도 없었으니 스킬도 아니야. 그렇다면 방금 그게 단순한 기술의 차이라고?’
분명 강철도 자신과 같이 민첩에는 거의 투자를 안 한 쪽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하현은 의아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가겠습니다.”
“흐음…….”
나름 강하게 쳤음에도 피해가 전혀 없는 것 같은 하현의 모습에 강철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오게나!”
***
5분간의 대련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전투는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하현이 내지른 공격들은 모두 허공을 갈랐고 강철의 공격은 매번 하현을 후려쳐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하지만 상황과 달리 승자는 하현이었다. 조건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5분간 버티는 것.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하현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강철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하현의 옷은 여기저기 마당을 굴러 엉망진창이었지만 반대로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고 아픈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방어력의 문제가 아냐.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뭔가 있어.’
몸에 묻은 먼지를 간단하게 털어낸 하현은 강철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보아하니 어렴풋이 눈치채신 것 같군.’
앞으로 지도를 받을 건데 굳이 꽁꽁 숨길 필요는 없다. 하현은 조금만 숨기고 강철에게 이야기했다.
“일정 시간 동안 피해를 면역시켜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사용해서 대련을 버틴 겁니다.”
“뭐…….”
피해면역이라는 말에 강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했던 그 반응에 하현은 그다음에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궁금했다.
‘사기라고 욕을 할까 아니면 받아들이실까.’
강철은 잠시 신기한 눈으로 하현은 위아래로 살펴봤다. 그리고 자신의 주먹을 쓰다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리가 있군. 시험은 이걸로 끝이네. 시험은 통과했네.”
모든 시험이 끝난 것을 확인한 하현은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스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비겁하다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피해면역이라는 스킬은 어떻게 보자면 정말 반칙과도 같은 스킬이다.
충분히 욕먹을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하현의 말에 강철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사뭇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비겁하다고 말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내가 내건 조건은 오직 5분간의 대련을 버티라는 거였네. 스킬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지.”
“……그렇습니까?”
“그러네, 그리고 덧붙이자면 오히려 사기라고 말하는 녀석들이 멍청한 걸세.”
“불합리하다고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현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문 강철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상 사는 게 본래 그런 것일세. 불공평함은 기본적인 전제로 깔려 있지. 거기에 항의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걸세. 그냥 그렇게만 알아 두게나.”
“…….”
말을 끝낸 강철은 몸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갑자기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에 하현이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마지막으로 확실히 하세. 자네는 협회에 공유되지 않은 내 스킬들만 몇 가지 익히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내게서 전투 방법도 함께 배우고 싶은 것인가.”
강철의 물음에 하현은 고민에 빠졌다. 본래 자신의 목표는 분명 스킬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대련을 겪어보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전투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충분히 배울 가치가 있어.’
당장은 사소해 보여도 뒤로 갈수록 기술은 분명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하현은 결정을 내리고 대답했다.
“전투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조금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은가?”
뒤를 돌아본 강철의 모습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어설픈 각오로 들어선 순간 크게 다칠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하지만 하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어떤 훈련에도 절대로 죽지는 않을 테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좋다!”
하현의 대답과 동시에 진지하기 짝이 없던 강철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드디어 생겨난 제자에 대한 흥미로 가득 찬 강철이 있을 뿐이었다.
“보아하니 살살 하는 건 취향이 아닌 것 같으니 최대한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철저하게 가르쳐 주지! 그리고 어르신은 나이 들어 보이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예, 선생님.”
순식간에 사람이 뒤바뀐 그 모습에 황당할 법도 했지만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던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일단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앞으로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나 하지.”
다시 몸을 돌린 강철은 거실의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거실의 안쪽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선생님.”
“음? 뭔가?”
하현의 부름에 강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돌아봤다.
“아까 거절하셨던 홍삼 말입니다. 이젠 제가 가르침 받는 입장이니 홍삼을 드려도 되겠지요?”
“…….”
미소를 지은 하현의 말에 강철은 조금 벙 찐 표정을 짓다 이내 피식 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