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아민과 함께 텔레포트한 하현은 그녀의 집 거실에서 나타났다.
특징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을 본 하현은 속으로 조금 안도했다.
‘다행히 불간섭이 문제는 안 일으켰군…….’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이지만 아직 그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현은 다음에 날 잡고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크기네. 생각보다 검소한 스타일인 모양이야.’
거대 길드의 부길드장이면 그래도 좀 어마어마한 대저택에 살지 않을까 생각했던 하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신발은 현관에 벗어서 놔두시고 부엌의 식탁에 앉아 계세요. 제가 간단하게 요깃거리 만들어 드릴게요.”
“아. 예.”
아민의 말에 자신이 거실 한 가운데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하현은 곧장 신발을 현관에 벗어두고 부엌의 식탁에 앉았다.
“토스트로 괜찮으시죠?”
긴 머리를 거슬리지 않도록 한줄기로 대충 묶은 아민이 하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상관없습니다.”
“네, 그러면 토스트 만들어 드릴게요.”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꺼낸 아민은 능숙한 솜씨로 토스트를 만들었고 함께 마실 음료를 컵에 따라 하현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하현의 대각선에 앉은 아민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드셔보세요.”
“잘 먹겠습니다.”
하현은 곧장 토스트를 베어 먹었다.
토스트의 맛은 그냥 무난한 맛이었지만 공복 상태라 그런지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하현은 솔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엄청 맛있네요. 그냥 토스트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겠네요.”
“후훗. 그래요?”
하현의 감탄에 아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하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먹는 데 집중했고, 토스트를 거의 다먹어갈 때쯤.
아민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슬슬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아직도 이래저래 당혹스럽거든요.”
“흠…….”
아민의 말에 하현은 남은 토스트를 다 먹고 음료로 목을 축였다.
‘던전 완수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지.’
굳이 던전 완수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이유도 없다.
하현은 어떻게 둘러댈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내 괜찮은 이야깃거리를 떠올렸다.
“터널의 함정 중에 아래로 떨어지는 구덩이 있지 않습니까.”
“아, 네, 그러고 보니 그런 함정이 있었죠.”
통로의 수많은 함정 중에서 구덩이는 상당히 엉성한 함정에 속했었다.
떨어진다면 절대로 살 수 없을 만큼 악랄했지만 열리는 순간이 조금 느린 터라 대처가 쉬웠던 것이다.
덕분에 하현도 빠지는 일 없이 손쉽게 통과했었지만, 아무래도 여기서는 이야기를 조금 바꿔야 할 듯했다.
“거기에 빠졌습니다. 스킬 덕분에 떨어졌을 때 죽지는 않았는데 이후에 빠져나오는 데 좀 고생을 해서…….”
“아…… 그렇게 된 거군요.”
하현의 말에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내부에서는 전화도 통하지 않았기에 연락 수단도 없었을 것이고 그 구덩이의 깊이는 측정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했다.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기적인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시니 다행이시네요. 시련을 써서 올라오셨나요? 거기 벽면에 윤활 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 있어서 그냥은 못 올라오셨을 텐데.”
“아, 네, 시련으로 올라왔습니다. 대가가 삼 일간 구덩이의 밑에서 생존하라는 내용이라서 조금 오래 걸렸네요. 비상식량도 정말 아슬아슬했죠. 하하.”
아민의 말에 하현은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이전에 하현이 시련을 통해 던전으로 이동한 것처럼 던전의 안에서 탈출하기 힘든 함정에 빠진 경우 시련을 통해 탈출하는 일도 종종 있다.
다만 그런 목숨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한 대가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방법이었다.
“천운이 따라줬네요…… 그럼 일단 실종 신고랑 이런 것들은 모두 취소해둘 게요.”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뇨, 무사하시니 다행이죠.”
하현의 말에 아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부드러운 미소를 받은 하현은 잠시 앉아 있다 이내 할 이야기가 없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야밤에 여러모로 실례를 많이 끼쳤습니다.”
“아, 네.”
하현이 일어서자 아민은 그를 배웅하기 위해 현관까지 나왔다. 문을 열고 하현이 밖으로 나서려던 그때.
“아! 잠깐만요, 하현 씨.”
아민이 무언가 떠올린 듯 다급하게 하현을 불러 세웠다.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봤다.
“왜 그러세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검토한다고 집에 들고 왔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 안으로 들어간 아민은 곧이어 폴더 하나를 들고 와 하현에게 내밀었다.
하현은 의아해하며 그 폴더를 펼쳐봤다. 그 안에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사내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누구지?’
전혀 본 적도 없는 사진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민을 바라봤다.
그에 아민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하현 씨가 말하신 분 찾았어요. 그분이 마강철 씨예요.”
***
“이 사람이 그 스킬들의 주인이란 말이지.”
집으로 돌아온 하현은 아민에게서 건네받은 폴더를 바라봤다.
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굳은 얼굴과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큰 덩치와 근육을 지닌 사내. 그가 바로 하현이 찾던 마강철이었다.
하현은 사진을 향했던 시선을 내려 과거 마강철이 토벌자로서 이룬 업적들과 정보들이 적힌 것을 살펴봤다.
‘A급에다가 20년 전 기준으로 380레벨 이상 추정이라니…….’
토벌자를 구분할 때 쓰이는 등급은 S~E까지 간단하지만 후반부인 B부터는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
구간이 50레벨인 초반과 다르게 B부터는 100레벨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등급을 나눈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380레벨 이상이라면 현재 11명밖에 없다는 S급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것도 20년 전이니 어쩌면 지금은 S급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20년 전 돌연 은퇴. 자신이 모은 업적 포인트를 이용해 토벌자로서 활동한 증거들을 없앤 것으로 추정된다…… 인가.’
전성기나 다름없었던 시기에 갑작스러운 은퇴.
당시 사회는 떠들썩했지만 부탁을 받은 협회의 힘으로 금방 묻히면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생각보다 가깝네.’
마강철이 살고 있는 곳은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만 가면 갈 수 있는 마을이었다. 하현은 모두 읽은 폴더를 덮어 책상위에 올려 두었다.
‘스탯만 찍고 자야겠다.’
[하현]
레벨 : 190 칭호 : 악마 살해자
생명력 : 1,630/1,630
마나 : 1,620/1,620
힘 : 965 민첩 : 201
체력 : 200 지력 : 199
공격력 : 193 방어력 : ???
추가 스탯 : 185
‘37레벨이나 올랐네.’
처음에 나온 스켈레톤은 C급, 뒤에 나온 스켈레톤들도 B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거의 삼 일이나 쉬지 않고 잡다 보니 얻은 경험치가 어마어마했다.
추가 스탯을 모두 힘에 투자한 하현은 스탯창을 끄고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전이라면 벽에 머리를 박았을 테지만 넓은 침대는 하현을 받아들이고도 남아돌았다.
침대에 누운 하현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얻어낸다면 확실히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불간섭을 이용한 임기응변식 전투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마강철이 가진 경험과 스킬, 둘 중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분명히 넘어설 수 있다.
하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표는…… A급. 330레벨 정도의 강함으로 목표로 잡으면 되겠군.’
A급인 이케론을 잡을 수 있는 상황까지는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현의 힘이 A급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B급 중간 정도는 될 것이다.
‘불간섭에 기대면 기댈수록 사냥 시간은 늘어만 날 테니깐.’
다음에 이케론을 잡을 때는 불간섭의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면서 잡을 수 있도록, 하현은 그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이젠 좀 자야겠다…….’
내일 있을 첫 만남에 퀭한 인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침대에 제대로 몸을 눕힌 하현은 그대로 눈을 감아 3일 만에 제대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