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악탈론과의 전투가 시작된 지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멈춰라!]
“내가 왜 멍청아!”
콰앙!!
하현은 후려치는 공격은 피하고 그 외의 공격들은 맞아준 다음 반격하는 식으로 싸워 나갔다.
피해가 계속해서 축적되어 가는 이케론과 다르게 하현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멀쩡한 하현의 모습에 화가 솟구친 이케론의 두 눈이 더욱 거칠게 불타올랐다.
[망자의 절규!]
꺄아아아악!!!
시동어와 함께 이케론의 몸 주변으로 오싹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정 수치만큼 생명력을 깎아버리는 강력한 저주였다.
-저주 ‘망자의 절규’에 저항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하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괴력!”
쩌적!
저주를 발동하느라 생긴 빈틈에 하현은 또다시 이케론의 골반과 다리의 이음새를 후려쳤다.
처음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데미지가 축적되자 뼈에 금이 갔다.
[비켜라!]
자신의 몸에 금이 간 것을 본 이케론은 황급히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하현은 이케론의 뼈를 잡고 골반뼈의 구멍을 통해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공격!”
콰쾅!!
그러는 사이 공동의 한구석에 있던 리자드맨 주술사들이 이케론의 머리통을 향해 불덩어리를 던졌다.
레벨 차가 워낙 큰지라 큰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피해를 계속 누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인간!!]
콰드드득
하현의 향해 적개심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이케론이 몸을 낮추며 기운을 모았다.
계속해서 모여드는 검은 기류는 이케론의 모습을 모두 가릴 정도로 변했다.
[죽음의 돌격!]
외침과 동시에 하현이 반응하지 못할 빠른 속도로 이케론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휩쓸린 하현은 그대로 이케론과 함께 벽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벽면에 닿자 이케론의 몸을 감쌌던 검은 기류들이 사방을 향해 폭발했다.
망자인 이케론에게는 데미지가 없는 공격이었지만 산 자에게는 다르다.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위력, 즉사기에 가까운 스킬인 것이다.
[죽었나. 드디어…….]
“업화의 불꽃.”
콰아아앙!!!
이케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꽃이 주변에 남아 있는 검은 기류들을 날려버리며 터져 나왔다.
그 불꽃을 정면으로 받은 이케론의 몸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쩌저적!
방금 전 죽음의 돌격을 펼치면서 온 부담과 불꽃의 위력으로 뼈의 금이 더욱 크게 번졌다.
이케론은 비틀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욱한 먼지를 바라봤다.
[대체. 이건…….]
“뭐긴, 너도 끝이란 거지!”
먼지 사이에서 뛰쳐나온 하현이 이케론의 다리를 잡아 있는 힘껏 옆으로 휘둘렀다.
불꽃을 맞고 자세가 삐뚤어져 있었던 이케론은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고.
꽈득!
마침내 이케론의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크어어억!!]
고함을 내지르는 이케론의 모습에 하현은 곧장 부러진 다리를 잡아 있는 힘껏 공동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혹시나 다리를 붙일 수 있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제 뭐 두 발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꼴사납게 됐군.”
[죽인다!! 네놈!!]
하현의 조롱에 이케론은 분노를 토해내며 팔을 휘둘렀다.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간단하게 공격을 피한 하현은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전투를 진행하면서 하현은 한 가지 좋은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건틀렛의 타격시 충전되는 스택인 ‘분노’가 아주 소량의 충격으로도 차오른다는 것이다.
탁탁탁.
기타 줄을 치듯이 단검이 하현의 건틀렛을 살짝살짝 긁어내자 점점 그 색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고 있는 이케론의 두 눈이 일렁거렸다.
[설마, 그건…….]
“업화의 불꽃!!”
콰아아앙!!!
경악하는 이케론의 몸에 또다시 업화의 불꽃이 작렬했다.
소유하고 있는 마나가 적은 탓에 위력은 조금 낮았지만 최소한으로 보장된 데미지가 있었기에 타격이 컸다.
[크어어억!!!]
쩌저적!
불꽃에 휩싸인 이케론의 뼈 전체에 실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단검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스택을 쌓았다.
[크아아아악!!!]
비명이나 다름없는 절규를 내지른 이케론은 팔을 휘둘러 하현의 몸을 벽으로 날렸다.
콰아앙!!
붕 떠오른 하현의 몸은 그대로 벽면을 처박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스택을 쌓고 있었던 하현은 붉게 물든 건틀렛을 이케론을 향해 겨눴다.
“업화의 불꽃!!”
콰아아앙!!!
[크어어억!!!]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일으키려던 이케론은 다시 들이닥친 불꽃에 힘이 빠지며 넘어졌다.
벽면에서 다시 빠져나온 하현은 기계적으로 단검을 빠르게 튕겼다.
-건틀렛의 내구도가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스킬을 쓰고 마나가 뚝 떨어질 때 마다 에리슨의 펜던트 효과로 일정 수치만큼 빠르게 차올랐다.
그러는 사이 스택이 쌓이면 하현은 차오른 만큼의 마나들을 이용해 몇 번이고 이케론을 향해 업화의 불꽃을 휘갈겼다.
-건틀렛의 내구도가 5%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업화의 불꽃!!!”
콰아아앙!!
내구도상 마지막 불꽃이 이케론의 몸 전체를 불살랐다.
단검을 멈춘 하현은 몸에 무수한 실금이 난 채 쓰러져 있는 이케론을 바라봤다.
[크어……어…….]
“까닥 잘못하면 잡을 뻔했네. 너무 흥분했나.”
아슬아슬하게 이케론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전투는 끝이 났고, 시련의 전체적인 난이도의 파악은 끝났다.
‘완수가 코앞인데도 못한다니…… 큭. 진짜 아깝네.’
당장 한 대 툭 치기만 해도 끝날 시련을 그냥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하현은 입맛을 다셨다.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에 다시 오마.”
[무……슨…….]
공격을 멈추고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는 하현의 모습에 이케론은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에 하현은 대답 대신 시련 창을 펼쳤다.
“시련 포기!”
-시련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시련을 포기할 시 여태까지의 결과는 취소됩니다.
“그래.”
-시련을 포기하셨습니다. 현재 소환된 보스를 잡아도 아이템과 완수 보상은 얻으실 수 없습니다.
깔끔하게 던전 완수의 시련을 포기한 하현은 그대로 이케론을 뒤로한 채 던전 밖으로 나왔다.
우우우웅.
하현이 던전에 나오자 포탈이 옅은 소음을 내며 기동을 중지했다.
던전 내부에 사람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드디어 정지된 것이다.
‘흠…… 그동안 연락 안 왔나?’
하현은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켜봤다.
그러자 아민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상당한 양으로 쌓여 있었다.
‘다 어디 있냐는 내용이네…… 일단은 전화해야겠군.’
자신을 찾는 아민의 메시지를 읽은 하현은 아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시간이 새벽이다 보니 아민의 목소리는 조금 비몽사몽 했다.
내일 연락할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하현은 통화를 계속했다.
“접니다. 늦은 밤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어? 하현 씨?”
하현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아민의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잠시 침묵에 휩싸이더니 황당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아니 어…… 죽으신 거 아니었어요?”
“예? 누가 죽어요?”
아민의 말에 이번에는 하현이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때 함정 안쪽으로 들어가셨잖아요. 이후로 모습이 보이시지 않으셔서 조사대를 보낸 다음 이틀 동안 찾아봤는데 안 보이시 길래 그냥 함정에 당하셨다고 생각한 건데…….”
“…….”
확실히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서 그동안 연락이 안 되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하현은 목을 긁적였다.
“음…… 일단 이쪽으로 사람 좀 보내주실래요? 돌아갈 방법이 시련밖에 없네요.”
“아, 그럼 제가 지금 거기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전화가 끊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창고의 주변으로 푸른색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아민이 나타나 바닥에 착지했다.
“……안녕하세요.”
“아…… 예, 오랜만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과 조우한 아민과 그런 그녀를 맞이한 하현은 어색한 태도로 인사를 나눴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더니 아민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들어야겠네요. 간략하게는 설명해 주실 수 있죠?”
“음. 그게…….”
꼬르륵
막 아민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하현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현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시선을 살짝 돌렸다.
“……뭐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