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포탈이 열린 지 어느덧 24시간.
까드득.
“아……음…….”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하현은 눈앞에 스켈레톤이 달려들자 반사적으로 팔꿈치로 후려쳤다.
전투가 길게 이어지면서 건틀렛의 내구도를 아끼기 위해 바꾼 방법이었다.
빠악!
하현의 팔꿈치에 맞은 스켈레톤은 머리뼈가 박살나면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때 옆에 있던 스켈레톤이 하현의 머리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텅! 빠악!
하현은 칼에 맞아주면서 팔꿈치로 후려쳐 반격했다.
순식간에 2마리의 스켈레톤이 쓰러졌고, 쓰러뜨린 숫자의 네 배인 8마리의 스켈레톤이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게임 노가다 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인가.’
성장하는 것은 즐겁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다. 성장의 즐거움과 전투의 피로, 하현은 그 두 가지의 경계선을 누비며 그저 숨 쉬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스켈레톤들을 때려잡았다.
‘좀 자극이 될 만한 게 왔으면…….’
쿠웅!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소리에 하현은 포탈을 향해 돌아봤다.
여태까지 나온 스켈레톤들보다 1.5배 크고 투구까지 쓰고 있는 색다른 스켈레톤들이 포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야, 얘들 잡아!”
“크아악!”
새로 나온 스켈레톤을 본 하현은 그대로 주변 스켈레톤의 처리를 변종에게 맡긴 뒤 온 힘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아압!!”
빠아아악!!
갓 터널 밖으로 나오던 스켈레톤의 머리통에 온 힘이 실린 하현의 주먹이 작렬했다.
그리고 곧이어 반대손이 갈비뼈 아래쪽을 파고들어가 척추 뼈를 붙잡고 부러뜨려 버렸다.
까드득!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나 바닥에 눕게 된 스켈레톤은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적의를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현의 발이 금이 가 있던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이 오르는 소리와 함께 흐리멍덩하던 하현의 눈에 생기가 되돌아왔다.
24시간 만에 한 방에 죽지 않는, 싸울 맛이 나는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으하하!!”
기운이 되돌아온 하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스켈레톤들의 사이를 미친 듯이 휘젓고 다니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또다시 24시간 후.
“음…….”
다시 흐리멍덩한 눈으로 돌아온 하현은 능숙하게 스켈레톤 병사들의 골통을 부수고 척추를 박살 냈다. 한 방이 아닐 뿐, 잡는 데에는 도가 튼 것이다.
까드득!!
“흠.”
옆으로 쳐 내려는 스켈레톤의 공격을 한 발 다가가는 것으로 회피한 하현은 있는 힘껏 스켈레톤의 다리를 후려쳤다.
우드득!!
나름대로 튼튼한 뼈였지만 이음새를 노린 하현의 정확한 일격에 스켈레톤의 몸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하현은 머리통을 짓밟아 부수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꼬르륵
‘배고프다. 졸리기도 하고…….’
벌써 이틀째 연속되는 사냥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하현의 배는 계속해서 우렁찬 소리를 냈고 졸음도 계속해서 쏟아져 눈이 가물가물했다.
자칫 잘못하면 전투에 큰 지장이 생길 만한 상태.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전투에 지장이 생기려 하는 순간.
-상태이상 ‘굶주림’에 저항하셨습니다.
-상태이상 ‘졸음’에 저항하셨습니다.
알림음이 울리면서 굶주림과 졸음이 날아가 버렸다. 어느 정도 상태가 나아진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괴물이 나오든가 아니면 차라리 졸음이나 굶주림이 확실하게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냥 바로 나갈 텐데.’
굶주림과 졸음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에 지장이 없을 만큼 딱 덜어내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덕분에 하현은 계속해서 어중간한 굶주림과 졸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쉬지 않고 싸울 수 있게 하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못 견딜 만큼 정신적 피로감이 왔지만 하현은 성장에 대한 의욕으로 그것들을 견뎌냈다. 그렇게 포탈이 닫히기까지 5시간쯤 남았을 때.
쿠구구구궁!!!
여태까지 미동도 없었던 포탈이 갑작스럽게 크게 흔들리더니 이윽고 더욱 거대하게 변했다.
그에 멍하니 사냥하고 있던 하현은 포탈을 바라봤다.
콰아앙!!!
여태까지와는 압도적으로 다른 거대한 울림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하현보다 4배는 큰 크기에 검은색 뼈, 그리고 몸 곳곳에 장착된 짙은 푸른색의 갑옷.
[크아아아아악!!!]
홀로 포탈에서 넘어온 스켈레톤은 검은 기류를 터뜨리며 흉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푸른색으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하현을 노려봤다.
[막았는가. 이 문을. 네놈이.]
단문으로 끊어지는 미묘한 어투와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차가운 음성.
그것이 스켈레톤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린 하현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막았다.
[그렇다면. 죽음뿐이다. 네놈에게는.]
그 대답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스켈레톤은 포탈의 근처에 모여 있던 검은 기류들을 손바닥으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그 손에 검은색의 서늘한 느낌을 주는 대검이 생겨났다.
-데스 나이트 이케론이 나타났습니다.
-이케론을 퇴치할 시 남은 시간과 관계없이 포탈의 문이 닫히며 시련이 완수됩니다.
‘데스 나이트 이케론…… 이놈이 마지막 보스구만.’
이제 이 던전 완수 시련의 체험도 마지막 차례가 온 듯했다. 알림 창을 본 하현은 곧장 자세를 잡고 이케론과 마주했다.
[받아라. 생명의 탄식을.]
이케론은 한 손으로 대검을 쥔 채 하현을 향해 겨눴다. 그러자 그 손으로부터 짙은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하현을 향해 날아와 덮쳤다.
“흠.”
전신을 옭아매는 검은 기운. 하현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멀쩡한 모습으로 기운들을 바라보다 귀찮다는 듯이 손으로 털어냈다.
-저주 ‘생명의 탄식’에 저항하셨습니다.
[……무엇이냐. 네놈.]
하현의 손길에 아무렇지 않게 흩어지는 저주에 이케론은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보시다시피 그냥 사람이다! 돌격!”
“캬아아악!!”
이케론의 물음에 대충 대답한 하현은 스켈레톤과 싸우고 있던 변종에게 명령을 내려 먼저 보냈다.
[……죽어라. 그렇다면!]
자신에게 달려오는 변종을 본 이케론은 자신의 검은색 대검을 양손으로 잡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둘렀다. 그에 변종도 불꽃으로 대검을 만들어내 마주 휘둘렀다.
콰아아앙!!
두 개의 검이 충돌하자 거대한 불꽃이 터져 나왔고, 변종의 몸은 걸레짝처럼 변해 공동의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의 눈이 조금 휘둥그레졌다.
“……잠깐, 쌘데?”
변종의 레벨은 230, 즉 B급에 해당되는 소환수였다. 그런데 그런 소환수를 일격에, 그것도 저렇게 파리 죽이듯이 간단하게 죽였다면 그 무력은 A급 수준인 것이 분명했다.
‘설마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모자라 보스도 A급 수준이라는 거야?’
해봐야 저번의 악탈론 수준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던 하현은 생각을 고쳐야 했다. 아무래도 정말 이 던전은 다른 던전들과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일단 뭐 이번에는 깨면 안 되니깐.’
어찌 되었든 시련을 완수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체험만 해볼 뿐.
하현은 적당히 싸우다가 빼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케론을 바라봤다.
[끝인가. 이걸로.]
근엄한 모습으로 검을 쥔 채 바라보는 데스 나이트. 평소라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했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럴 리가!”
어차피 완수하는 것은 다음번.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하현은 이케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네놈도!!]
이케론은 하현을 향해 대검을 매서운 기세로 휘둘렀다. 어디를 베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곤죽 내버릴 기세로 휘둘러지는 대검.
촤아아악!!!
그 공격을 하현은 몸을 던지다시피 한 슬라이딩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 뛰어올랐다.
“괴력!!”
하현은 온 힘을 다해 이케론의 골반과 다리뼈의 이음새 쪽을 후려쳤다. 노려볼 만한 무릎과 팔꿈치 쪽은 갑옷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용없다!]
하지만 공격에 맞았음에도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이케론은 하현을 손으로 후려쳐 날려 보냈다.
바닥을 몇 번 구르면서 자세를 잡은 하현은 곧장 앞을 바라봤다.
“읏!”
[망자의 돌격!]
콰아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내질러진 이케론의 대검은 하현의 복부를 찌르며 그대로 공동의 벽에 처박혔다.
벽 전체에 금이 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어리석은…… 놈?]
자욱한 먼지 너머로 하현을 바라보던 이케론이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분명 상대를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스택 고맙다.”
먼지가 가라앉고, 그 안에서 하현은 진한 붉은색으로 변한 건틀렛으로 대검을 붙잡았다.
“업화의 불꽃!!”
콰아아아앙!!!
마나 전부를 사용해 펼쳐진 업화의 불꽃은 하현을 중심으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이케론의 검을 타고 올라가 몸 전체에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으윽!!]
투자한 마나의 양만큼 위력이 강해지는 업화의 불꽃이었기에 몸 전체가 불에 휩싸인 이케론은 처음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사이 배를 짓누르고 있던 대검이 느슨해지자 하현은 재빠르게 빠져나와 이케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력! 전투 강행!”
온 힘을 다해 바닥을 박찬 하현은 혼란에 빠진 이케론의 머리통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상태를 회복한 이케론이 하현을 쏘아봤다.
[죽여 버리겠…….]
-울티노 토벌자의 효과로 위압이 발동되었습니다.
하현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이케론의 몸이 잠시 굳었다. A급 괴물이었기에 발동된 위압의 효과가 적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에 하현의 주먹이 쇄도했다.
빠아아악!!!
딱딱하게 굳은 이케론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하현의 주먹에 맞고 속수무책으로 뒤로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네놈…….]
하현에게 당한 것이 굴욕적인지 이케론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기류를 내뿜었다.
몸에 아직 남아 있는 불꽃들은 검은 기류에 짓눌리면서 사라졌고 이케론의 두 눈은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죽인다. 반드시!!!]
방금 전보다도 더욱 흉흉한 기세를 보이는 이케론을 본 하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어, 해봐. 할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