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철창을 넘어서 온 하현은 물에 잠수한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위의 통로로 올라가서 걸어가고 싶었지만 수면 위가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뭐. 불간섭 덕분에 안 올라가도 상관없지만.’
벌써 10분째 계속되는 잠수였지만 하현은 호흡에 곤란함 없이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수로의 끝에 도달했다.
‘이 위로 올라가라는 건가.’
여태까지 계속해서 막혀 있었던 수로의 윗면이 이 끝에서는 뚫려 있었다. 하현은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갔다.
“후우…… 뭐야, 또 공동?”
수로 밖으로 펼쳐진 곳은 방금 전 공동과 비슷했던 장소였다. 다만 이어진 수로는 하현이 나온 곳 하나뿐이었고 전체적으로 크기도 조금 작았다.
‘수로라 하기에는 물을 받아들이는 장소도 없고…… 뭐 하는 곳이야?’
수로 밖으로 나온 하현은 슈트와 건틀렛의 화염으로 물기를 말리고 공동을 살펴봤다.
수로를 통해 들어온 물들은 내부에 만들어진 물길을 따라 공동에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원 모양이라…… 뭐 또 마법진이나 그런 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길을 바라보던 하현은 공동의 중앙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하얀색 기둥 위로 검은 구슬이 올려져 있는 장식물이 있었다. 뭔가 낌새를 느낀 하현은 기둥이 있는 중앙을 향해 다가갔다.
‘이건 기둥이 아니라…… 뼈였군.’
사람의 손뼈가 기둥처럼 보일 만큼 무수하게 겹쳐져 있었고 그 손바닥들의 위로 검은 구슬이 놓여 있었다.
‘이게 아마 던전 완수 조건이겠지.’
구슬을 바라보던 하현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이 구슬에 닿기 전, 하현의 손이 멈췄다.
‘……이걸 진짜 해도 되나?’
하현은 조금 망설이는 표정으로 구슬을 바라봤다. 아까는 완수 조건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해 들어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길드의 수입원인 던전을 그냥 없애버린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해서 사이가 틀어졌을 때는…… 손해가 크면 컸지 덜할 것 같진 않은데.’
나름대로 같이 가볼 만한 파트너라고 생각했었던 자들이 아닌가. 머리가 차분해지자 자신이 너무 흥분했던 것을 알아차린 하현의 손이 조금씩 구슬에서 멀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던전의 완수는 계륵이야. 조금 아깝지만…… 발견해 뒀다는 것에 우선 만족하는 게 좋겠어.’
정 아쉬우면 나중에 던전의 소유권을 받아낼 만한 계약을 은근히 제약하면 될 것이다. 결정을 내린 하현은 입맛을 다시며 그대로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하현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던전 완수도 시련 형식이었지?’
이전에 칼튼의 악몽 던전 완수를 발견했을 때, 하현은 던전 완수가 보상이었던 시련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시련은 수락과 거절이 가능한 일반적인 형식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떤 시련인지 봐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완수만 안 하면 결과적으로 던전은 유지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현의 몸이 다시 구슬의 앞으로 향했다.
‘그래, 완수 시련을 확인해 두면 나중에 도움도 되고 충분히 가치가 있어.’
결정을 내린 하현은 그대로 구슬을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망자의 원석이 가동되었습니다. 포탈이 생성됩니다.
푸화아아악!!
하현의 손이 닿기가 무섭게 구슬에서 검은색 기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하현을 날려 보냈다.
휘청거리며 물러섰던 하현은 간신히 자세를 잡고 구슬을 바라봤다.
쿠구구궁!!
구슬이 허공에 떠오르자 받치고 있었던 뼈들이 흩어졌다. 그러고는 서로의 뼈마디 끝을 잡으며 거대한 사각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커져가던 사각형은 허공에 떠오른 구슬이 양쪽의 뼈들에게 붙잡히면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거대한 사각형의 안쪽으로 검은 기류가 맴돌아 막을 만들어냈다.
‘포탈이라니…… 무슨 포탈이지?’
하현이 조금 긴장한 눈빛으로 포탈을 바라보는 순간, 막 너머로부터 백골의 머리 수십 개가 동시에 나타났다.
쿵!
머리 다음으로 뻗어져 나온 백골의 다리는 얇은 뼈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발을 굴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까드득.
검은 기류를 갑옷처럼 두르고 푸른 불꽃을 두 눈에 머금으며 나타난 20마리의 스켈레톤.
그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은 절로 군단을 떠올리게 만드는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시련이 완수되었습니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망자의 군단 토벌.]
망자의 군단은 눈앞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재앙과 같은 존재입니다. 대륙이 망자의 군단이라는 재앙에 휩쓸리지 않도록 막아내십시오.
난이도 : A
보상 : 던전 완수와 그에 대한 보상.
-포탈은 3일간 열리며 그 사이 던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시련에 실패하게 됩니다.
‘난이도 A?’
시련을 본 하현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B급 던전에서 A급 시련이 나타나다니, 구조상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여기가 좀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쿵!
하현이 시련을 보고 놀라는 사이, 다음 열의 스켈레톤들이 밖으로 나왔다.
하현은 순식간에 40마리로 불어버린 스켈레톤들을 살펴봤다.
‘스켈레톤 자체는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아. 역시 저 3일간 버티라는 게 문제겠지.’
던전의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3일이나 연속으로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
아마 그것이 시련의 난이도를 A로 상승시킨 가장 큰 이유인 듯했다.
까드득.
하현을 본 스켈레톤들이 이를 갈며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시련 창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는 씩 웃었다.
“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던전 완수의 시련을 잠깐 맛만 볼 생각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이득이 찾아온 것이다.
‘3일 동안이나 쉬지 않고 몬스터가 나온다니. 이게 웬 떡이야?’
이전에 비슷하게 리자드맨들로 얻은 경험치가 얼마만 했던가. 하현은 씩 웃으며 스켈레톤들을 바라봤다.
까드득
어느새 밖으로 나온 스켈레톤들의 수는 80마리로 늘어났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스켈레톤들의 모습에 하현은 사냥을 시작하기 전 건틀렛을 들어 봤다.
‘처음 써보는 건데 어떨지 모르겠네.’
하현은 진노의 건틀렛에 담겨져 있는 소환 마법의 설명을 읽어봤다.
무기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능력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것이다.
[화염 리자드맨 소환.]
마나를 소모하여 네 가지 타입의 화염 리자드맨들을 소환하실 수 있습니다. 중복 소환은 불가능합니다. 소모 마나 1,500.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A타입 : 140레벨 화염 리자드맨 20마리.
B타입 : 150레벨 화염 리자드맨 병사 8마리. 155레벨 화염 리자드맨 주술사 2마리.
C타입 : 165레벨 화염 리자드맨 투사 3마리.
D타입 : 230레벨 화염 리자드맨 변종 1마리.
소환 코어와 악탈론의 뿔로 같이 장비로 만들어 리자드맨 소환 마법은 놀랄 정도로 강력해졌었다.
하현은 소환 목록을 훑어보고 타입을 결정했다.
“화염 리자드맨 D타입 소환!”
하현의 외침과 동시에 마나가 거의 모두 소모되었다. 그리고 건틀렛에서 강렬한 불꽃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것이 한데 뭉쳐 하현의 두 배만 한 불덩어리가 되어 형체를 갖춰갔다.
“키아아아악!!!”
붉은색 비늘에 도마뱀보다 악어에 가까운 사나운 얼굴. 거기에 불타오르는 갑옷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은 리자드맨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돌격!”
“키아아악!!”
하현의 외침에 따라 화염 리자드맨 변종이 스켈레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변종의 손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더니 붉은색의 거대한 폴암이 생겨났다.
콰아아앙!!
휘둘러진 폴암은 스켈레톤들의 몸에 불꽃을 터뜨리며 휩쓸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다른 한 손으로는 대검을 소환해 또다시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완전 보스급이잖아?’
불꽃을 이용해 각종 무기들을 소환하며 싸우는 변종은 압도적으로 스켈레톤들을 죽이며 경험치를 쏠쏠하게 벌어왔다.
‘50%인 게 조금 아깝지만 뭐 어때. 어차피 괴물은 3일간 계속 나올 테니깐.’
잡을 몬스터는 넘치니 반 토막 나더라도 그 편이 더 효율적이다.
어깨를 으쓱인 하현도 곧장 눈앞의 스켈레톤을 향해 달려들어 주먹으로 후려쳐 봤다.
빠악!!
불굴의 전사가 발동된 하현의 주먹에 맞은 스켈레톤은 뼈에 금이 가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의 눈빛이 번뜩였다.
‘역시 난이도에 비해선 약해. 그렇다면!’
스켈레톤의 강함을 확인한 하현은 곧장 괴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기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드득!
주먹에 맞은 스켈레톤은 뼈가 박살나면서 단번에 불타오르며 재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씩 웃었다.
“한 방짜리다!”
그때부터 하현은 미친놈처럼 쉬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고 스켈레톤들의 수는 순식간에 반절로 확 줄어들었다.
포탈을 통해 나오는 수보다 하현과 변종이 잡는 수가 더 많은 것이다.
-분노가 모두 충전되었습니다.
전투를 반복하는 사이 타격 수치인 ‘분노’가 쌓이면서 진노의 건틀렛이 처음보다 더욱 진한 붉은색으로 변했다.
알림음을 들은 하현은 곧장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뒤로 빼!”
하현의 명령을 들은 변종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스켈레톤이 뭉친 곳을 향해 하현의 몸이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업화의 불꽃!!”
밝게 발광한 하현의 두 건틀렛이 땅바닥에 부딪쳤고, 하현의 중심으로 강렬한 불꽃이 사방을 향해 폭발했다.
화르르륵!!!
단 한 번의 스킬로 공동에 남아 있었던 스켈레톤 50마리 정도가 단숨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불꽃으로 그을린 바닥에서 일어선 하현은 변종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일로와 서.”
변종과 함께 포탈의 앞에선 하현은 팔짱을 끼고 스켈레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쿵!
그리고 또다시 포탈에서 스켈레톤들이 나타난 순간.
“밟아!”
둘의 공격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