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26화 (26/158)

# 26

“캬륵!”

-던전 정지에 필요한 몬스터 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침묵의 하수도가 한 달간 비활성화됩니다.

마지막 그렘린 어쌔신을 잡은 하현이 손을 풀며 알림창을 바라봤다.

‘한 달이나 정지되는 건가. 이러면 던전을 정지시키는 게 매너가 아니라고 할 법도 하군.’

던전의 정지 기간은 등급이 높을수록 길어지는데 그렇다 보니 C급 던전 정도가 되면 암묵적으로 정지는 하지 않는 그런 룰이 있었다.

그런데 이전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하현은 이전에 3개의 던전을 정지했다가 다른 토벌자들이 제발 참아달라고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던전을 한 달이나 정지시키다니. 조금 아깝지 않나.’

정지의 보상이 높기는 하지만 적정량을 잡으면서 쭉 이어간다면 그 쪽이 훨씬 보상이 높다.

거기다가 침묵의 하수도에서 나오는 잡템들은 꽤 값이 나갈 만한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쪽 던전 담당 한 명이 일이 생겼다고 고수익의 던전을 무려 한 달이나 정지시킨다니.

하현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은 황소가 작은 길드도 아니고 말이야. 뭔가 일이 있는 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가면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하현은 생각하며 눈앞에 있는 어두컴컴한 하수도의 통로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여긴 또 안 들어갔네.’

여태까지 띄엄띄엄 등불이 달려 있던 통로와 다르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통로.

분명 막힌 통로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도현은 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괴물들을 잡느라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 끝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나가서 간단하게 한잔 합시다.”

“아, 잠깐만요.”

던전의 정지를 확인한 도현이 팀원들을 격려해 주면서 던전의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하현이 그들을 불러세웠다.

그에 고개를 돌린 도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처음부터 궁금했던 건데 이 앞으로는 왜 안 가는 겁니까?”

“아…… 으음.”

하현의 물음에 도현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렸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거긴 안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이 던전에서 가장 질이 안 좋은 함정이죠.”

과거 처음 침묵의 하수도를 공략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토벌자들은 당연히 이 통로 너머에 보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갔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섰을 때 뜬 것은 다름 아닌 시련이었다.

[진실의 목격.]

하수도에 숨겨진 진실을 찾으십시오.

난이도 : B

보상 : 없음

시련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미묘했던 내용. 하지만 이 통로의 안에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었기에 토벌자들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통로 속에 있는 수많은 함정과 그렘린 어쌔신들의 암습에 버텨가며 그들은 던전을 돌파했다.

그리고 끝내 그들을 맞이한 것은 보스…… 가 아닌 텅 빈 공동이었다.

보물 상자도, 보스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하수도의 중앙 부분으로 보이는 넓은 공동뿐이었던 것이다.

“들어가지 마세요. 함정들이 하나같이 위험한 데다가 뚫고 가도 아무것도 없어 허무할 뿐입니다.”

“흐음…….”

당시 토벌자들 중 한 명이었던 도현의 만류에 하현은 통로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뭔가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칼튼의 악몽을 완수한 이후로 하현은 수상한 부분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뭔가 있는 것 같은 장소는 도통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만 가보겠습니다.”

“예?”

하현의 말에 도현이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그렇게 위험하다고 했는데도 들어가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에라도 다치시면…….”

“괜찮아요. 죽기야 하겠어요?”

“…….”

하현의 말에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자신들한테는 함정이 문제가 되지만 여태까지의 모습을 보면 하현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대충 살펴보고 나갈게요. 다시 들어오려면 한 달이나 걸리잖아요.”

정지된 던전은 사람들이 모두 나간 순간부터 포탈이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에 이 던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이상 꼭 가보고 싶었다.

“정 그렇다면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지만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 일단은 제가 어떤 함정이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기록해 둔 게 있으니…….”

도현은 자격증을 꺼내서 하현에게 정보를 넘겨 주었다. 대충 통로의 구조와 어떤 함정들이 있는지 기록된 내용이었다.

“몸조심하세요. 괜히 무리는 하지 마시구요.”

몇 번이고 당부를 한 도현은 두 명을 데리고 먼저 던전 밖으로 나갔다. 하현은 그 세 명을 보내고 그대로 통로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간이라도 단절 된 것마냥 불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통로의 안. 하현은 답답함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불 없이는 못가겠네.’

하현은 아까 전에 얻었던 그렘린 어쌔신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검지를 세워 단검을 꾹 누르며 원 모양으로 문질렀다.

화르륵!

그러자 건틀렛의 효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단검의 표면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주변을 밝혔다. 하현은 그것을 횃불 삼아 통로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것 말고는 별다를 게 없네.’

이전 통로보다 크기 작을 뿐, 그 모양새나 배치는 다를 것 하나 없었다.

본래 안에 있었을 그렘린 어쌔신들은 아까 전에 밖으로 유인해서 잡은 데다 던전도 정지된 탓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함정이 하나 나올 때인데…….’

딸깍 쾅!!

하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면에서 튀어나온 창들이 하현의 몸을 찔렀다.

어지간한 토벌자였으면 그대로 전신에 구멍이 뚫렸을 만큼 강력한 함정.

‘윽… …물에 빠질 뻔했잖아.’

하지만 하현은 창에 밀려 밑의 수로로 빠질 뻔했을 뿐,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창을 잡고 다시 통로의 위로 올라온 하현은 창을 바라봤다.

‘함정들이 꽤나 악랄하긴 하군.’

반응 속도부터 위력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는 함정.

잘 만들어진 함정이구나라고 하현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다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파파팟!!

옆 벽면이 열리고 화살들이 비처럼 하현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하현의 몸에 닿은 화살들을 몸을 조금 움찔거리게 할 뿐, 곧장 튕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콰아앙!!

수로 쪽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해머가 하현의 몸을 벽면으로 찍어버렸다. 하지만 해머가 물러나자 하현은 박살난 벽면에서 태연히 걸어 나왔다.

푸하아악

이번에는 한눈에 보아도 치명적으로 보이는 독무가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왔지만.

-골무독에 저항하셨습니다.

하현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쉬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로 함정은 모두 무용지물이었고 토벌자들에게 지옥 같았던 통로는 하현에게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돌파 당했다.

‘저기인가.’

어두운 통로의 끝에 보이는 불빛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하수도의 중심인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에는 하현이 나온 통로뿐만 아니라 수십 개의 통로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는데 그 옆의 수로를 통해 모인 물들이 중앙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모인 물길들은 다른 수로들보다 세 배는 넓어 보이는 수로를 향해 모여 흘러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생겼군.’

공동도 조금 어두컴컴하긴 하지만 못 볼 정도는 아니었기에 하현은 단검을 집어넣고 주변을 살펴봤다.

도현이 말한 대로 특별한 것은 없는 듯 보였다.

‘흐음…… 제일 의심이 가는 거라면.’

하현은 물이 모여 흘러가는 거대한 수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수로의 옆으로 이어져 있는 통로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텅-

“어?”

하지만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막혀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하현은 다른 통로들도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들어가지는 것은 이쪽으로 들어온 통로뿐, 모든 통로들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여기가 진짜 이 던전의 끝인가?’

겉보기에는 길이 뚫려 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던전의 한계선에서 나타나는 구조였다.

아무래도 정말 이곳에는 더 이상 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없는 듯했다.

“흐음…….”

조금 싱겁게 끝이 난 탐색에 하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전에 토벌자들도 희생자를 내면서도 강행 돌파하고 통로가 모두 벽에 막힌 걸 깨달았을 때, 거기서 수색을 중단하고 복귀했었다.

통로 이외에는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앞의 희생이 무의미했다는 허탈감에 더 이상 던전에 있고 싶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잠깐.”

하현의 눈에 물이 흐르는 수로가 밟혔다. 혹시 실마리를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하현은 다시 한쪽 통로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 데다 안쪽도 보이지 않는 기괴한 느낌의 수로.

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수로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부패의 물에 저항하셨습니다.

“그냥 물이 아니었어.”

어느 정도 확신이 든 하현은 그대로 망설임 없이 손을 더욱 뻗었다. 그리고 안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텅.

그러자 수로를 가로막고 있는 철창이 하현의 손에 닿았다.

혹시 잡을 수 있나 했지만 철창은 보이지 않는 벽에 살짝 걸쳐 있는지 잡을 수 없었다.

‘여기는 아니고.’

수로에서 손을 꺼낸 하현은 이윽고 다른 수로로 가서도 손을 집어넣고 철창을 만져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30개 가까이 되는 수로들을 모두 검사하던 그때.

꽈악.

‘……!’

다른 것들과 별다를 것 없는 수로들 중 하나의 철창이 하현의 손아귀에 움켜쥐어졌다.

그에 느낌이 온 하현은 망설임 없이 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데다 그 깊이도 알 수 없는 수로의 안.

하현은 묘한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수로의 철창을 붙잡았다.

‘이거다!’

손의 감촉에 확신이 생긴 하현은 곧장 철창을 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양쪽으로 벌렸다.

끼기기긱.

그러자 철창이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천천히 양쪽으로 벌어지면서 사람 한 명이 통과할 만한 틈을 만들어냈다.

‘이럴 줄 알았어! 뭐가 없을 리가 없잖아!’

숨겨진 뭔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하현은 물속 안에서 입을 크게 벌리며 기뻐했다.

본래라면 물이 들어와 곤란할 상황이었지만 호흡이 곤란해지면 위험하다 판단한 것인지 불간섭이 물을 막아줘 문제는 없었다.

‘근데 이게 만약 진짜 던전 완수의 단서라면…… 이 던전을 완수해야 하나?’

이 던전은 검은 황소가 사적으로 소유한 던전. 일반적인 던전처럼 마음대로 완수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하현은 철창을 붙잡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조항에도 없었고…… 음 그쪽도 없었지. 거기랑…….’

머릿속을 자극해 하현은 아민과 작성한 계약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모두 되새김한 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던전을 완수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었군.’

뭐라고 한소리 듣더라도 던전 완수를 앞에 두고 그냥 갈 수는 없다.

애초에 서로의 계약 관계니 이번에는 계약에 빈틈을 보인 검은 황소 측의 실수나 다름없었다.

‘음…… 업적 포인트나 가득 벌어주면 되겠지 뭐.’

그렇게 생각한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