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7.침묵의 하수도
도시의 외곽 지역에 있는 작은 창고.
그 앞으로 검은 밴 한 대가 부드럽게 들어와 세워졌다. 그리고 안에서 네 명이 내렸다.
‘여기인가…….’
그중에 한 명인 하현은 신기한 눈으로 창고를 바라봤다.
그냥 길가다가 흔히 볼 수 있는 창고 안에 던전이 존재한다니,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최하현 씨, 이쪽입니다.”
“아, 예.”
멍하니 창고를 바라보고 있던 하현을 흘끔 본 파티의 리더, 정도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하현은 그를 따라 창고의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창고의 안에는 던전으로 들어가는 포탈 하나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세 명의 길드원이 있었다.
정도현은 그들에게 간략하게 인사하고는 포탈의 앞에 섰다.
“지금부터 저희 임시 1팀은 침묵의 하수도로 진입, 내일 새벽 6시 전까지 침묵의 하수도를 정지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휴식 시간은 10분, 총 15번 정도를 돌아야 합니다.”
도현의 말을 들은 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방금 이야기한 계획은 평범한 토벌자라면 쉽사리 소화해내지 못할 만큼 혹독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하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내가 이상한 거지 그게 기본은 아니었겠지.’
기본적으로 하현은 던전을 돌면서 스탯을 찍거나 아이템을 분류할 때 말고는 쉬지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만큼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는 도현의 계획은 마냥 여유롭게 느껴졌다.
“흠.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현 씨?”
“예?”
하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도현이 하현을 바라보며 물어왔다.
나이는 도현이 40대로 훨씬 많았는데도 미묘하게 상급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평소에 어떻게 던전을 도시는지 모르니 이걸로 괜찮은가 해서 말입니다.”
“아, 예, 뭐 충분합니다. 평소랑 비슷하니까요.”
평소와 비슷하다는 하현의 대답에 다른 두 명의 팀원들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에 하현은 목을 긁적였다.
‘……조금 속 쓰린데.’
이전 세계에서 하현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본 시선은 경멸이나 짜증이 담긴 시선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경외심이 담긴 시선은 도통 적응이 안 됐다.
‘차라리 깔봐 줬으면 좋겠는데.’
깔보는 이의 콧대를 짓뭉개는 건 쉽지만 기대하는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건 또 어려운 법이다.
하현이 불편해하는 걸 깨달은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두 명의 이목을 모았다.
“흠흠! 일단 이제 진입할 테니 장비로 갈아입읍시다.”
도현의 말에 팀원들은 각자 인벤토리에서 무구를 꺼내 갈아입기 시작했다.
도현을 비롯한 세 명은 모두 근접형이었기에 상당히 두터운 갑옷과 검들을 착용했다.
“하현 씨는 방어구가 그게 다예요?”
하현이 라이더 슈트만 입고 더 이상 방어구를 입지 않자 팀원 중 한 명인 강희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이게 다인데요.”
“그걸로 괜찮…… 아, 저도 참. 하현 씨한테는 그런 거 필요 없으셨죠?”
하현이 가진 스킬을 떠올렸는지 희준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반응을 본 하현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 스킬은 어떤 거라고 알려져 있습니까?”
“하현 씨의 스킬 말입니까?”
“예.”
방어력이 무한이라는 사실은 최대한 감추는 편이 좋다.
때문에 하현은 다른 토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 놓고 최대한 헷갈리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보통 일정 시간 동안 피해 면역이 가장 유력하다고들 하고 있죠. 그 외라면 그냥 방어력이 엄청 높아진다거나?”
“흐음.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아뇨, 뭐 거창한 거라고.”
하현의 감사 인사에 희준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은 하현은 장비를 마저 입기 위해 새로 만든 무기를 꺼냈다.
진한 붉은색에 용의 팔을 그대로 옮겨 둔 것 같은 날카로운 느낌의 건틀렛.
한눈에 보아도 예사로운 장비가 아닌 그 모습에 팀원들의 시선이 절로 모였다.
진노의 건틀렛(유니크)
내구도 70/70 방어력 65
진노의 악마 악탈론의 뿔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건틀렛이다. 화염의 정수가 개방되어 강력한 불을 머금고 있으며 화염 리자드맨의 소환 마법이 담겨져 있다. 공격할 시에는 건틀렛의 방어력이 공격력으로 전환된다.
-모든 공격에 20% 추가 피해.
-모든 공격에 지옥의 불꽃(Lv.10)이 적용됩니다.
-화염 리자드맨 소환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전투로 분노가 모두 차오르면 스킬 ‘업화의 불꽃’을 사용 가능합니다.
칼튼의 악몽에서 얻은 악탈론의 뿔과 소환 코어를 검은 황소에서 소개해준 장인에게 맡겨 만들어낸 무기, 그것이 바로 이 진노의 건틀렛이었다.
‘펜던트도 착용해야지.’
건틀렛을 착용한 하현은 인벤토리에서 에리슨의 펜던트도 꺼내 착용했다. 이로써 하현의 장비 착용은 모두 끝났다.
“흠흠. 우리도 어서 마저 갈아입죠.”
잠시 하현의 무기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팀원들도 마저 장비의 착용을 끝냈다.
준비가 모두 끝나자 도현은 팀원들을 하나둘 점검하다가 불현듯 떠올랐는지 하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던전에 대한 정보는 들으셨습니까?”
“네, 어떤 던전인지는 모두 알고 있으니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도현의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계약을 맺은 당시 아민에게서 서류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침묵의 하수도.
이름 그대로 거대한 하수도가 배경인 던전으로 보스도 없고 그렘린 어쌔신이라는 암살자형 괴물만 나오는 조금 독특한 던전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던전에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형은 저를 선두로 희준이 제 왼쪽, 하현 씨는 제 오른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수가 후방을 맡겠습니다.”
도현의 자리 배치에 딱히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기에 팀원들은 모두 수긍했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 진형을 이룬 네 사람은 그대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하수도 청소.]
하수도에 괴물들이 쌓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모릅니다. 빠르게 정리하십시오
난이도 : B
보상 : 경험치.
-시련이 완수되지 않고 계속해서 방치될 시 던전 밖으로 괴물이 소환됩니다.
‘역시 여기는 시련을 주는 쪽이군.’
던전의 가치를 평가할 때 이런 사소한 시련을 주는가 안 주는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모두 시련을 수락하고 앞으로 걸을 때에는 사방을 경계하십시오.”
팀원들에게 조용히 주의를 준 도현은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에 따라 하현을 포함한 팀원들은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하고 던전을 돌면 이런 기분인가.’
혼자서 걷다가 괴물이 나오면 두들겨 팬다.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 던전을 돌던 하현에게 있어 이렇게 단체로 긴장하면서 주변을 경계하는 건 상당히 신선한 기분이었다.
‘근데 쉽사리 나오질 않네.’
하지만 좀처럼 나오질 않는 괴물에 하현은 던전의 내부를 살펴봤다.
침묵의 하수도는 이름값을 하는 던전으로 매우 기묘한 분위기였다.
옆의 거대한 수로로 분명 물이 흘러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 던전은 없겠지만 여기는 더하단 말이야.’
그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벽면에 띄엄띄엄 달려 있는 은은한 등불에 의지하며 걸음을 옮긴 지 10분.
슬슬 하현이 지루함을 느끼려고 할 때.
픽
하수도를 은은히 밝히고 있던 등불들이 모두 일제히 꺼졌다. 한순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진 던전의 안.
“옵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현이 나지막하게 외치며 자세를 잡았다.
침묵의 하수도에서 괴물이 나타나는 전조가 바로 이 불이 꺼지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지?’
다른 팀원들과 같이 주변을 경계한 하현은 괴물의 기척을 느끼기 위해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리고 희미하게 무언가가 느껴졌다고 생각한 순간.
파캉!!
칼날이 하현의 눈을 후려쳤다.